"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진상조사위원회에 조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유족들의 의견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헌법은 우리나라 최고의 법이다. 그리고 다른 법률들은 이 헌법에 기초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헌법에 위배된다는 얘기는 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얘기다.

 

이만큼 헌법은 우리네 삶의 기본을 규정한다. 그만큼 헌법은 공명정대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법은 공정한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희망버스를 조직했던 송경동 시인에게 벌금 100만원이 내려진 판결, 파업에 성공한 노동자들에게도 각종 벌금이 부과되는 판결들, 그리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강하면서도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판결들.

 

'000했으나 000은 아니다'라는 판결과 '당시의 관행이었다'는 말로 넘어가 버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것은 힘있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판결이었고, 힘없는 사람들은 각종 소송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 법, 헌법, 헌법 하는 시대. 과연 법치만능주의가 성립하는가? 법이 누구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법의 잣대에 맞추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사람에게 법이 맞추어야 한다. 법이 경직되어 있다면 고쳐야 한다. 헌법 역시 수차례 개정을 하지 않았던가.

 

또한 법은 해석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판결하더라도 만장일치로 판결이 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소수 의견들이 나오기도 한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도 이럴진대, 지금 자식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유족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이지 위배된다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헌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나? 최소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법가라고 불리는 한비자. 그가 법을 중시했지만, 법 만능주의에 빠졌을까 하면 그것은 의문이다. 법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기초한 법가의 사상을 정치에 응용한 사람이 상앙이라면, 그 상앙이 법을 글자 그대로 집행하려고 하다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는 것이 좋다.

 

이들 법가는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 구분하지 않고 공정하게 법적용을 하자고 하는데, 지금은 과연 그러한지도 의문이고...

 

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법가가 천하통일을 하지 않고, 인의로써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한 유가가 세상을 통일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리는 법 집행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 위에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 이것이 사실 법가의 궁극적인 주장이 아니었을지.

 

"한비자"가 다시 생각나고,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제자백가들에 대해서 잘 정리한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다시금 생각난다.  

 

사람을 위한 법... 그러한 정치...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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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표지에 노란 배가 떠 있다. 노란 배에는 글자가 쓰여 있는데, "잊지 말아요 세월호 0416"이다.

 

아마도 좀 자란 사람에게 잊혀지지 않을 숫자와 이름. 그러나 억지로 잊게 하려고 하는 이름.

 

이 이름에 피로감을 더해 억지로라도 잊게 하려고 하는 지금.

 

그것이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어제와 이어져 있고, 어제로부터 온 오늘이 내일로 연결이 되는데...

 

"삶창" 100호.

 

많은 삶창들이 모이고 모여 100호를 이루었고, 이제 100호를 기점으로 더 많은 삶창들이 나오게 되겠지.

 

양질전환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잡지가 100호까지 발간이 되었다면 그 의미가 상당할테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조금 편제가 달라졌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좀 줄었고, 새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 글들이 늘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일반 독자들의 글이 줄었고, 약간은 전문적이라 할 글들이 늘었다고나 해야 할까.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져 책에 나온 글들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었는데, 그래서 깊이와 높이, 전문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즐겨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호에는 그런 일반(?이 말도 좀 이상하다. 사람들은 모두 일반 사람들인데...다만, 좀 배웠다고 하는 그래서 지식인라고 하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말로 쓰고 있다고 봤으면 한다) 사람들의 글보다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글이 많이 실렸다.

 

책의 내용이 수평보다는 수직으로 좀더 깊어지고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하여 "오늘"이라는 특집 글에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되, 조금은 지식인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위한 글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지금까지와의 편집방향과는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식인의 글들임에 틀림없지만 학술적이지는 않다. 인문학적 소양, 인문학적 소양 하는데, 사람들이 누구나 인문학적 소양을 지녀야 하듯이 글들이 조금 깊어졌을 뿐이다.

 

사회를 보는 눈을 함께 걷은 보통사람들에서 조금은 다른 위치에서 볼 수도 있음을, 그래야 더 잘 보임을 말해주듯이.

 

해고노동자들, 핵발전소, 방송, 그리고 스포츠까지. 이게 이번 호 "오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아마도 이런 주제들은 늘 우리에게 "오늘"이 될터인데, 우리가 이를 어떻고 보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서 바꿔나가느냐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창'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겠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다. 하나하나 내가 일상에서 겪는 일이고 별다른 생각없이 지나치는 일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또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역할을 이제 100호까지 해왔다. "삶창"이 더 길게 이 역할을 잊지 않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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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월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아마도 비유를 할 때 늘 등장했던 '타이타닉호'가 아니라 '세월호'가 등장하리라.

 

그만큼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만큼 우리나라 지도층(?이 말 쓰기 싫다. 무슨 지도층. 그렇다고 형식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나라에서 지배층이라고 하기도 그러니...집권층이라고 해야 하나?)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현상이 어떠한 위기상황을 "우리는 세월호에 타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비유하게 하리라.

 

진행중. 어쩌면 세월호에 탄지도 모르고 우리는 항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 상황이 되면 우리를 내버려두고 제일 먼저 저희들끼리 탈출할 승문원들을 그래도 라고 믿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믿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잘 인도해주겠지 하는 믿음... 억지로라도 믿고 싶은 마음. 그렇지 않으면 이번 호에 나온 최용탁의 글에서처럼 울분에 차서 한탄만 할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에 관한 글. 'GMO'에 관한 글이다. 쌀 전면 개방, 정부 쪽 용어로는 쌀 관세화라고 하는데, 올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하지.

 

농민들을 제외한, 국민들을 제외한 정부 관료들의 협상이었고, 협상이라는 단어의 뜻이 이렇게 변질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타결이라고 해야 한다.

 

협상이란 내것과 네것을 두고 둘이 적절하게 만족하는 수준에서 합의를 보는 행위이고,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3개의 대안을 가지고 나서야 하는데, 도대체 우리 정부는 몇 가지 협상안을 지니고 있었으며, 최소한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는지...

 

그냥 언론에서 흘러나오는대로 관세화 타결... 그것도 관세를 몇%로 할지는 정하지도 않고. 이러니 "무조건 쌀 수입 개방"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무조건 쌀 수입 개방"

 

이는 식량주권의 포기이다. 핸드폰을 팔아서 쌀을 사면 된다는 어이없고 한심한 얘기가 한 때 나오기도 했는데... 쌀은 곧 생명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협상하겠다는, 협상할 수 있다는 정부 관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관료들인지...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이와 더불어 잘 안되고 있는, 어쩌면 취약한 부분이 'GMO'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번 호를 읽으니 우리나라는 이러한 GMO에 대해서 엄격하게 규제를 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GMO에 관해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음에 다국적기업들이 당황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일본과 우리나라는 GMO에 관해서 느슨한 편이라 이들이 우리나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GMO가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걸리는데, 곧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강에도 이상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막아야 하는게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이 해야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GMO에 관한 법률이 잠자고 있다는 현실.

 

이번 호에 나온 김성훈 전 장관과의 대담을 읽어보면 GMO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 GMO가 쌀개방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세월호 참사로 이끌어갈 암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정말로 철저하게 GMO나 쌀개방에 대해서 고민하고 대체해야 하는데.

 

세월호 해결이 지지부진하듯이 쌀개방이나 GMO에 대해서도 지지부진하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암초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고.

 

교육으로 인해서 정신이 피폐해지고 쌀개방으로 인해서 식량주권에 위협을 받으며, GMO로 인해 건강까지 위협받는 이런 상황.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녹색평론 138호.

 

보라. 지금 우리는 이렇다. 우리는 위험한 세월호에 타고 있다. 각성하자. 세월호에서 내려야 한다. 세월호가 더이상 운항되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녹색평론은 절규하고 있다.

 

절규다. 정말로. 이 절규가 여러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울리는 가슴들이 서로 함께 절규한다. 절규들... 한 소리가 되어 세상에 울린다. 그래야 한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그걸 말하고 있다.

 

녹색평론이.

 

추석인데...녹색평론 이번 호를 읽고 가족끼리 논의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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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서 다산 정약용이 생각났다.

 

그가 살았던 시대...

 

정조 집권기 희망에 불타던 시대.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하게 했던 시대. 그래서 꿈많은 젊은이들이, 능력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시대.

 

온갖 사상들이 들어오고, 실험되고 정치권에 반영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상들이 탄압을 받을 전조를 마련하기도 했던 시대.

 

그러다 곧 정조의 사망 이후 닥친 광풍의 시절...

 

꿈많던, 능력있던 사람들이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던 시대. 굳건하게 버티려고 하던 잎들을 일부러 날려버리던 시대.

 

다산은 두 시대를 견디어 내었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또 밀려난 다음에는 집필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고 남겨두었다.

 

그런 그가 쓴 한시에는 시대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고, 그 시대를 건너가는 지식인의 삶이 온전히 드러나고 있다.

 

어떨 때는 그의 목소리가 걸러지지 않고 나타나기도 하고...

 

학창시절 배운 '적성촌에서'나 '애절양' 말고, 다산의 한시집을 다시 읽으니 마음에 쏙 들어오는 시들이 있다. 물론 한시를 읽어낼 능력이 없어서 번역한 한시집을 읽었지만 말이다.

 

한문으로 읽지 않아도 그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리고 다산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네가 사는 시대는 어떤가? 설마 나와 같은 시대는 아니지? 나와 같이 이런 노래들을 부르는 시대는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해야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지. 왜 자꾸 다산이 떠오르지. 그가 살았던 시대가 떠오르지. 그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왜 들지. 

 

그가 견디어 내어야 했던 그 시대가!

 

다산이 쓴 시 세 편을 보자... 과연 지금과 다른지. 

 

남의 것 본뜨기에만 정신 없으니

 

슬퍼라, 우리나라 사람들이여

자루 속에 갇힌 듯 너무 외져라.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엔 높은 산이 주름졌어라.

팔, 다리가 언제나 굽어 있으니

큰뜻이 있다 한들 무엇으로 채울 건가.

성현께선 만리 밖 먼 곳에 계시니

그 누가 이 어둠을 열어 주려나.

머리 들어 인간세상 바라다봐도

밝은 마음 가진 사람 보기 드물고,

남의 것 본뜨기에만 정신 없으니

정성껏 자기 몸 닦을 틈이 없어라.

무리들이 어리석어 바보 하나 떠받들고

야단스레 다같이 숭배케 하니,

질박하고 옛스런 단군 세상의

그 시절 옛 풍습만 못한 듯해라.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28쪽

 

지구화 시대... 우리는 아직도 다산이 한탄한 그런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고...

 

그래도 다산 시대는 한반도가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남북으로 갈려 육로로 대륙으로 진출할 길이 막혀 있으니, 다산 시대보다 더 못한가...

 

다음 시.

 

     고관집 아들

 

고관집 대문 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땅에 떨어지자마자 당장 귀한 몸 되네.

아이 때부터 아랫사람 꾸짖는 법을 가르치니

총각이 되면 벌써 오만스레 고갤 세우네.

아첨하는 식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팔찌도 걷어 주고 버선까지 신겨 주네.

잠자리서 너무 일찍 일어나지 못하게 하니

아들이 병이라도 날까 두려워서라네.

높은 벼슬 저절로 굴러들테니

애써가며 글공부 쌓지도 않네.

 

 

그 아이가 자라더니 과연 드날려

말 탄 채로 대궐에 들어가더라.

말 달리는 게 마치 나는 용 같아

네 다리가 하나도 땅에 닿지 않더라.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65쪽

지금 서울대 입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보면 이 시에 나타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굳이 서울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재계, 정치계에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리고. 

 

이런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떨까? 세상을 변혁하고 싶은데, 할 수는 없고, 오히려 자신은 멀리 쫓겨나 버린 상태.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상의 비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는데...

 

       근심에 쌓여

 

어렸을 땐 성인(聖人) 배울 생각했었고

중년 들며 점차로 현인(賢人)이라도 바랐어라

늙어 가며 우하(愚下)도 달게 여겼지만

근심에 싸여서 잠들 수 없어라.

 

한 알의 야광주가

장삿배게 실렸다가

바다 복판서 바람 만나 가라앉으니

만고에 그 빛이 빛날 수 없어라.

 

취하여 북산에 올라 통곡을 하니

울음소리 푸른 하늘 끝까지 닿았네.

옆 사람들 내 뜻을 알지 못하고

내 한몸 궁박해서 운다고 하네.

 

술 취해 정신 없는 사람들 속에

몸가짐 단정한 선비가 있네.

모두들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이 사람만 미쳤다고 몰아세운다네.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120-121쪽

 

답답하다. 다산이 다시 이 시대에 와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세상엔 이런 미친 사람 대접받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다.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이고,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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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시국선언 및 조퇴투쟁으로 3명 영장 신청

 

이게 며칠 전 기사다.

 

헌재에서 교원노조의 집단행위를 금지한 교원노조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교사의 정치중립성이라는 명목하에 교원노조를 설립하되, 집단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이 헌법에 맞다는 판결이라니...

 

교사의 정치중립성은 필요하다. 수업에서 교사가 정치적 발언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학교에서 교사이지 학교 일과가 끝난 다음에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자기 의견을 똑바로 말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할 수 있는지...

 

최근에 다산의 한시를 읽었다. 이 책의 뒷부분 다산의 시해설에서,

 

다산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세상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善)을 드러내고 악(惡)을 징계하는 뜻이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154쪽

 

여기서 시를 교육으로 바꾸자. 그러면 무엇이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교육은 절대로 중립일 수 없다. 교육내용을 국가에서 정하면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대안 교과서를 만들면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하여 교육현장은 진보와 보수가 자기들의 논리를 가지고 충돌하는 장소이다. 이런 충돌이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한다.

 

하나의 사상만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지식의 근친상간, 사상의 근친상간이 되어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게 될 뿐이다.

 

백가쟁명... 온갖 사상들이 교육현장에 넘쳐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교육이 절대로 정치중립적이지 않음을 논파한 책.

 

교육이 정치에서 중립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파헤친 책이다. 이런 책이 이미 오래 전에 나왔는데...왜 아직도 우리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지...

 

이는 학생들은 교사들의 말을 무조건 듣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교사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교사는 교사이기 전에 시민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자신의 수업을 하지 않고 정치적 발언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업시간에는 정해진 교육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를 떠나서, 즉 학교 밖에서는 교사는 시민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대부분의 나라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아쉬운 판결이고, 아쉬운 영장 신청이다.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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