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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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스페인 여행기다.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여정에서 특급열차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기차 여행도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때만 해도 특급열차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교통수단이었으리라. 그런 교통수단을 타면 사람이 주체가 되지 않고 객체가 됨을, 무엇을 할 수도 없이 그냥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게 되어 '관에 드러누운 시체처럼 잠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14쪽)고 한다.


그럼에도 특급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는 그 나름의 묘미가 있다고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을 때, 다른 집들과 다른 언어, 다른 경찰들, 다른 색깔의 토양과 다른 풍경을 지닌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내게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온다'(16쪽)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체코를 떠나 독일,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 도착하게 된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인물, 풍경, 풍속 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지금도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으며(세르반테스,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 등등),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톨레도 등 많이 들어본 지역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벌어지는 투우 경기에 대한 소개도 하고 있으며, 플라멩코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투우는 동물학대로 요즘은 거부되고 있지만 한때 스페인에서 대유행했던 행사였으니 차페크가 그것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페크는 투우에 대해서는 양가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반려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렇다고 투우를 그냥 거부하지는 않는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지닌 고유한 풍습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영국 편처럼 날카로운 풍자는 없지만 스페인의 다양성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다양성이 필요함을, 그런 다양성이 우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여행이 필요하고.


꼭 여행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다양한 관점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 자신만의 관점에 빠져 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엘 그레코를 이야기하는 글에서 '눈이 자신의 비전에 열정적으로 고정된 사람은 모두 조금 미친다. 혹은 적어도 그는 비전의 소재와 형식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에게서 가져오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다.'(55쪽)고 했다.


미쳤다는 것은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에 집중한다는 의미고,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이 고정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시에 대두되었던 예술의 흐름으로 매너리즘은 이상적인 형태와 조화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예술표현을 하는 경향이라고 하니, 바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차페크가 말하는 매너리즘은 자기 습관에 빠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라고 하는 우리가 흔히 쓰는 뜻과는 거리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자신만의 세계가 중요하듯 다른 사람의 세계도 중요하다는 것. 즉 나만 옳다는 독선에 빠지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차페크는 말하고 있다. 그래서 스페인의 다양한 지역, 다양한 사람들, 풍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페크의 이런 생각은 이 책 말미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지금도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하고. 여행을 하면 다름을 통해서 나를 다시 보고, 나를 더 풍요롭게 하듯이, 그만큼 다른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그의 마지막 말로 스페인 여행기를 맺고자 한다.


'... 자신들만의 문명화된 모습이 받아들여져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사랑에 대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니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요? ... 우리가 이렇게 만나 기쁘니 국가들의 연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다만 주의할 점은, 그 나라들이 제각기 개성을 살려서 꾸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 다른 머리카락 색깔과 다른 언어를 가져야 하고, 그 나라만의 독특한 관습과 문화를 지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그 나라만의 신을 가질 권리도 있어야겠지요. 왜냐하면 모든 차이점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겨질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기에 우리 삶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우리를 구분 짓는 모든 것으로 우리를 하나되게 만들어봅시다!' (219쪽)


이런 혜안이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자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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