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백남준 -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말하는 백남준과 함께한 삶, 사랑, 그리고 예술
구보타 시게코 지음, 남정호 옮김 / 이순(웅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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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 '비디오 아트'라는 분야를 창시한 세계적인 미술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몇 안 되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른다. 어떤 감동을 받은 적도 없다. 그냥 거대한 전자기기들의 모음이라는 단순한 생각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다다익선'을 보고서도 어떤 감흥도 받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만큼 그의 예술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백남준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세상을 뜨고 없는 그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관에 남아 그를 기억하도록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의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와 우리나라 기자의 합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합작품이라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이다.

 

구보타 시게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백남준의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내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다. 그의 아내가 그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일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부부가 모두 예술가일 때 주로 남편 쪽은 유명하고, 아내 쪽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오노 요코-백남준과 친구였다고 한다-를 아는 사람보다는 그의 남편이었던 비틀즈 멤버인 존 레넌을 더 잘알고 있듯이, 백남준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를 비디오 아티스트로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남정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의 글을 읽어보면 구보타 시게코라는 예술가, 백남준의 그늘에 가려버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에 백남준의 작품과 같은 숫자의 작품을 보관하게 하고 있는 작가, 구보타 시게코... 그가 들려주는 백남준과 그의 예술 이야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남준이라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서 접한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적인 내용들도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백남준의 예술세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 백남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게코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백남준의 기사를 보고, 그 기사에 난 사진을 보고 백남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고.

 

'스물일곱 살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별처럼 멀리 있는 예술가였다. 남자로서도 좋아했지만 예술가로도 흠모했다. 저렇게 빛나는 남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 역시 치열한 예술가가 되어 그에게 닿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의 연인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온 지난 40년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열망과 정진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희열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362-363쪽)

 

그리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드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예술가 동료로서 만남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본도 아닌 미국에서, 백남준에게는 가정은 관심 밖의 일.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헤어지고 다시 백남준에게로 돌아간 시게코.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에서 백남준은 어떤 결정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시게코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대로 백남준은 따른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일본으로 독일로 미국으로 세계를 유랑하다시피 한 백남준에게 한 곳에 머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여자에게 매인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시게코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는다. 사실상의 혼인관계 생활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는 시게코도 마찬가지다. 백남준과 함께 있으면 되니...

 

이런 그들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 계기는, 바로 시게코의 병이다. 여자로서는 치명적인 병. 낯선 타국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걸리면 치료하기 힘든 그런 시절, 백남준은 시게코와 결혼식을 올리고, 시게코가 치료하게끔 한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순간, 그들은 함께였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삶. 함께 하는 예술가의 삶. 물론 앞에서 인용한 시게코의 말처럼 백남준의 예술 활동으로 인해 시게코는 손해를 많이 본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 예술가 부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보다는 남성 쪽이 좀더 활동하고 여성은 묻히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그렇다고 시게코가 예술 활동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보완을 해주는 예술 동료로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백남준 쪽이 좀더 혜택을 보았다 할지라도 시게코는 그에 대해서 큰 불만을 지니지는 않는다. 그것을 앞에 인용한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하지 못한 백남준에게 체계적인 미술 공부를 한 시게코는 정말 좋은 동반자였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동료.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의 일들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더이상 예술활동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접고, 그는 그 와중에도 예술활동을 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 과정을 글로 풀어낸 책. 그들의 사랑과 예술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그냥 전위예술가라고, 나와는 동떨어진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백남준을 내 곁으로 오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책이라고 할까.

 

내가 읽은 책은 2010년 판인데, 2016년에 다른 판으로 다시 이 책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이 백남준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역시 세상을 떴다고 하고. 2015년에.

 

이 책에 '야곱의 사다리'라는 예술 작품이 나온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 백남준의 예술작품 이름이기도 하지만, 백남준과 시게코가 함께 올라간 사다리이기도 하리라. 두 분이 하늘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지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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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준 평전 - 통합과 인애의 정신 실천한 민족운동가
박남일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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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장병준이라니...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장병준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아마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 집안 사람들이 많이 독립운동에 관여했는데, 이렇게 알려지지 않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의 뒤에 사진을 보니 장병준이 죽은 뒤 그의 장례를 가족장이 아닌 사회장으로 치렀다.

 

사회장이라 함은 사회를 위해서 일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역시 당대에는 독립운동가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다만 그가 중앙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지방에서 지냈기에, 많이 잊혀졌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 지긋지긋한 중앙주의)

 

물론 그가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앞에 나서서 이름을 떨치기 보다는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족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않고 나섰던 사람.

 

그렇다고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다라고 진영 논리에 가둘 수 없는 사람. 비록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돈을 민족을 위해서 썼고, 교육 운동에도 투신했고, 그의 사위들 중에서는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했으니... 그에게는 어떤 진영보다는 민족을 위한 길이 무엇일까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일제시대에 좌우합작단체인 신간회에 그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고, 전라도 지역, 특히 목포지역에서 그는 신간회가 잘 운영되도록 힘썼다고 한다. 민족독립을 위해서는 좌든 우든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이 전면에 나설 수가 없게 흘러갔다. 장병준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그는 미군정에서 실시한 과도입법정부에 참여하여 좌우합작을 추진하지만, 남과북에 각기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전쟁이 나면서 그의 가족 역시 풍비박산된다.  전쟁으로 사위 두 명을 잃었으니...

 

하지만 이승만 독재를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이제 부정선거 규탄에 앞장선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폭로하는 시위에 앞장서는 그는 4,19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산 시위보다도 광주 시위가 더 먼저 일어났다고 하고, 그 시위의 맨 앞에 장병준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남아 있으니...

 

그후 도지사 자리를 마다하고 참의원 선거에 나가 낙선한 다음에는 조용히 물러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며, 중앙에 진출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음에 더 빨리 잊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울 때 알게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 사람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꼭 해야할 일이라면 한 사람들. 그리고 그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병준이라는 이름이 낯설기는 하지만, 그처럼 민족을 위해서 일한 사람은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그 이름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독재에 분연히 맞섰던 그... 일제라는 침략자에 맞섰던 그... 그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민족주의자들. 반갑다.  이런 작업이 지속되어 더 많은 잊혀진 민족운동가들이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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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표 만화와 환호하는 군중들
한국만화문화연구원 지음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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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의 데뷔 30주년이 맞이하여 그에 대하여 만화에 관련된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일명 허영만에게 헌정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화가가 30여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참 드문 일이다.

 

특히 만화하면 좀 떨어진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허영만과 같은 만화가의 존재로 인해 만화 역시 하나의 예술로 존재함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린 시절 만화를 보면 공부 안 하고 이따위 만화책이나 본다고 야단을 맞곤 했다. 만화는 공부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불량서적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었다. 그래서 만화가가 된다고 하면 우선 혼부터 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만화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게 아니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는 만화보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만화방 가서 몇 시간이고 만화책에 묻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만화가들이 박봉성, 이현세, 고행석, 이상무, 김영하, 그리고 허영만 등이다. 이들의 만화에 빠져 만화방에 가곤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가들 중 허영만에 대한 책.

 

그에 대해서는 최근에 "식객"이후로도 더 많은 만화가 나왔지만, 지금은 40주년이 넘었지만, 이 책은 "식객"이 연재되는 데서 멈추고 있다. 벌써 12년 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부터, 그의 작품 소개, 그를 바라보는 제자들 이야기에, 그의 만화를 캐릭터로 확장하는 일, 그리고 그의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는 것까지, 한 마디로 허영만의 만화세계를 모두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허영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읽으면 좋을 책인데... 특히 그가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또 그가 지금까지 40년을 넘게 우리에게 알려진 만화가로 존재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만화가라면 골방에 박혀 밤새도록 만화를 그리고 낮에는 폐인처럼 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허영만은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주장하는 사람이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니며, 차도 당시에 벤츠를 끌고 다닐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

 

공장식 만화가들이 대세를 이루었고, 대부분의 만화책들이 이렇게 공장처럼 역할을 나누어 분업시스템으로 창작, 발간되곤 했는데, 여기에서 탈피해 예술가로서 지내고 있다는 것,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람에게 읽히는 만화를 그리려 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엄청난 자료 수집으로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에 맞는 또는 시대를 앞서가는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어쩌면 허영만 만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온 비결일 수 있다는 점 등을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미생"의 작가로 유명해진 윤태호 역시 허영만의 제자로 출발했다는 사실, 그가 말하는 허영만을 읽는 재미도 있는 이 책은, 만화가 이제는 예술로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예술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공장식 생산에 치중했던, 학교에서는 공부에 방해되는 존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만화에서 이제는 만화를 중점으로 가르치는 학교도 생길 정도로 만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또한 인터넷 상에 만화를 발표하는 공간도 많이 생겼고, 만화가를 지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만큼 이제 만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허영만과 같은 만화가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아직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허영만... 그의 만화 세계를 알 수 있는 책.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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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광대다 - 얼음 같은 세상, 마음을 녹이는 현장예술가 최병수
박기범 외 지음, 노순택 외 사진 / 현실문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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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이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를 읽고 최병수에 관한 책이 또 한 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데 검색해 보니 품절이다. 품절,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 몇 년이 지나면 품절이 되어 더이상 구할 수 없게 된다. 아쉽다.

 

왜 품절이 되었을까? 최병수란 예술가, 많이 알수록 좋을 것 같은데... 그의 예술이 아직도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하다가, 현장예술은 현장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

 

그에 관한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현장이 변하면 현장예술이 사라지고 기록으로 남듯 그의 책도 그때의 시의성이 사라지면 품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과연 그의 예술의 현장성이 사라졌는가? 지금 우리는 그가 87년에 이한열이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듯이,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환경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지 않은가. 평택 대추리가 강정에서 상주에서 또 밀양에서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그 죽음을, 그 일들을 둘러싸고 또다시 반복되는 일들을 우리는 겪지 않았는가. 마치 데자뷰 현상(기시감)을 느끼듯이... 책임자는 여전히 처벌이 안 되고 있고, 우리는 다시 거리로 거리로 나오고, 현장예술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지 않은가.

 

최병수의 예술, 과거에 했던 현장예술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이 다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읽히기보다는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작품들이 사진으로 많이 실려 있으므로. 지구온난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고, 그가 만든 얼음 펭귄은 계속 녹고 있는 상태이며, 새만금의 갯벌은 썩어버렸고, 사패산 터널은 뚫려 버렸으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더한 환경 파괴, 생태 파괴, 우리들의 삶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 삶은 온갖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것을 알려줄 현장예술가가 너무도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최병수에게 기대지 말고 우리 모두가 현장예술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작은 촛불 하나를 들고 나온 사람, 그 사람들이 바로 현장예술가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거리에 그려내고 있는가. 그런 현장예술가들, 우리 모두가 현장예술가가 되어 세상을 예술로 바꾸어내고 있다. 바꾸어내려고 하고 있다.

 

예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들의 삶에 예술이 어떻게 다가와야 하는지, 최병수의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예술은 민중과 늘 함께 했으므로.

 

책의 제목이 된 권정생 선생의 글에 '병수는 광대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자신의 온몸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은 그 다음을 아쉬워 한다. '보는 사람 있어도 모두 구경꾼 뿐이다. 그래서 병수는 외롭다' 고.

 

우리나라 민주화, 환경, 생태, 그리고 세계 평화까지 최병수가 참여하지 않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예술은 없다. 그는 온몸으로 우리에게 세계의 위기를, 우리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의 광대놀음은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냥 박수만 치고 끝낼 뿐이었다. 권정생 선생은 그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모두가 구경꾼만은 아니었다. 그의 광대놀음을 보고, 그의 현장예술을 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이제는 광장으로 나와 자신이 현장예술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거대한 예술이 된다. 최병수의 예술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함께 참여한다.

 

이 책에도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최병수는 외롭지 않다. 이 책은 비록 품절이 되었지만 삶 속에서 그의 예술은 현장에 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와 겹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다양한 그의 활동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의 예술이 현장에서 사라진 과거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예술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이런 현장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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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7
신경림 지음 / 돌베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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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이란 주제로 엮은 신경림의 글을 모은 책이다. 제목은 단순하다. 그냥 "신경림"이다. 신경림이라고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전통 가락을 시에 살린 '목계장터'의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목계장터에 얼마나 애착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잘알게 되었는데...

 

'목계장터'란 시를 세 번이나 썼다는 사실. 두 번까지 쓴 시는 그가 시집에 싣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 염무웅과 여행하는 도중에 청년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다시 고쳐 쓴 작품이 지금 우리가 애송하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시, '목계장터' ('목계장터' 이 책 169쪽-174쪽)

 

이렇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수필이라는 글이 지닌 특성답게 신경림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신경림의 어린 시절 이야기, 집안 사람들 이야기, 자신이 만난 사람들 이야기 등등이 실려 있어, 신경림이라는 작가의 사생활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그가 살아온 시기가 일제 말에서 6.25전쟁을 거쳐 군사독재 시절을 거쳤으니, 평탄치 않은 시대를 헤쳐온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굴곡 많은 현대사를 허체며 살아온 시인의 삶을 담은 글들은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생각하게 해줄 수 있다.

 

물론 직접적으로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선동하는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방황하던 시인의 모습, 또 그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청소년들은 삶에 대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간접경험, 그것이 수필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여 이 간접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도 된다.

 

시인이 거쳐온 세상이 험난했다면, 지금은 훨씬 나아진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과연 시인이 살아온 세상에 비해 나아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가 답일 것이다.

 

시인은 유신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냈는데, 지금 청소년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으니, 이 책에 실린 신경림의 글들이 먼 과거, 또 신경림이라는 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수필을 읽으며 이 시대를 버텨내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어떤 힘을, 희망을 발견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 상황을 떠올리며, 자꾸만 시인의 '동해바다'란 시가 생각이 났다. 이 시를 지금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시를 읽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동해바다

              - 후포에서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신경림, 길,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9쇄. 59쪽.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비리를 저질렀다. 주변의 잘못이다. 또는 의도와는 달리 결과가 잘못 나왔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그것 또한 내 탓이라고, 친구를 잘못둔 것고 내 탓, 결과가 의도와 다르게 나온 것도 내 책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할 일.

 

그래서 국민들의 비판을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우리나라의 밤이 촛불로 환하게 밝혀지고 있는데, 그 희망의 빛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그래야 이 책에 나온 시대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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