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 왜 과학은 여성의 업적을 기억하지 않을까?
펜드리드 노이스 지음, 권예리 옮김 / 다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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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여성만이랴.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패자가 되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도 많고, 공동연구를 했음에도 배제된 사람도 많을테니... 역사에 모두가 기록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특정한 성별, 인종, 신분 때문에 역사에서도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 책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리라 생각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류에서 배제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다못해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남자들에게는 붙이지 않는 그 접두어를 여성들에게는 꼭 붙이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러니 이 책에서 다루는 과학자, 수학자들이 활동했던 시대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청강만을 할 수 있었다든지,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도 교수가 되지 못하고, 교수가 되었어도 무급으로 강의하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또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은 경우도 있고.. 여러모로 여성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도 그 장벽을 뚫고 자기 자리를 차지한 여성들이 있다. 여성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들. 그러나 당대에는 인정을 잘 받지 못했던, 인정을 받았더라도 겨우 말년에 가서야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

 

모두 16명의 수학자, 과학자,, 의학자를 다루고 있다. 그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또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루이스 부르주아 부르지에(여왕의 산파), 마리아 쿠니츠(천문학-은혜로운 우라니아 출간), 마리 뫼르드라크(화학), 라우라 바시(물리학),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수학-컴퓨터 프로그램의 선조라고 할 수 있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우리가 알고 있는 간호사로서가 아니라 통계학자로서), 메리 퍼트넘 저코비(의학), 소피야 코발렙스카야(수학),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물리학, 화학-우리가 알고 있는 퀴리 부인), 리제 마이트너(핵분열의 물리학), 에미 뇌터(수학), 바버라 매클린톡(생물학), 그레이스 머리 호퍼(수학-컴퓨터 프로그램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학문), 도러시 크로폿 호지킨(화학), 우젠슝(실험물리학), 거트루드 벨 엘리언(신약 개발)

 

이들은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이 아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 속에 남아 있는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영원히 우리들에게 남아 있고, 우리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한때 여성들을 속박했던 시대에도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 자리를 찾았던 여성들이 있음을, 이제는 특정 성별, 인종, 신분, 지역 등으로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서 더 잘 깨달을 수 있다.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다시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의미도 바로 이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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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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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라는 책이 두 권이다. 한 권으로 나온 책을 청소년용과 원문을 살린 번역으로 냈다. 출판사가 다르고, 출판한 목적이 다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좀 유명해진다 싶으면 청소년판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또 나온다.

 

청소년들은 어려운 책을 읽기 힘들어할 것이라는 어른들의 배려인가?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언제 어려운 책을 읽지? 그냥 청소년용을 읽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레 성인 수준으로 올라가나?

 

그건 아니다. 물론 청소년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청소년판을 내는 것은 좋다.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고. 오죽했으면 조선시대에도 청소년용 교육 책으로 '동몽선습'이니, '격몽요결'이니, '사자소학'이나 하는 책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예전 조상들이 청소년용 책에서 끝내지 않았듯이, 청소년용 책을 읽었으면 성인용 책도 읽어야 한다. 즉, 읽기 편하게 요약 정리, 또는 발췌나 윤문을 한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원문을 최대한 살린 책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 책은 어른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저번에 읽은 책이 청소년용이라 쉽게 읽어갈 수 있다면 이 책은 내용도 더 많고, 더 많은 사회적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게다가 유리천장을 깬 이 흑인여성들 말고도 여성이기 때문에 인종 불문하고 차별을 받았던 백인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에 흑인 남성들 이야기도 나오고.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라 여겨지던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얼마나 극심하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이들의 인종차별 철폐가 내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외부를 의식하기도 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알려준다.

 

전쟁으로 흑인들이 참전을 하게 되니, 흑인 남성들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남성들의 영역에 여성들이 진출하니 여성들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또 흑인 여성들이 일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은 외부의 변화에 기인한 경우도 꽤 있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리나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인종통합 교육을 실시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는 것.

 

유리 천장을 깬 흑인 여성들이 있음에도 인종 차별은 여전하다는 것,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중류층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과연 많은 흑인들이 그런 삶을 살아갔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항공산업의 발달로 흑인들이 거주하던 곳이 이들이 떠나면서 슬럼화 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전히 인종 차별이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미국이 달에 한 발을 내디디면서 인류의 위대한 걸음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이 말은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인물들이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고, 이 걸음이 인종 차별을 없애는 위대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청소년 판에서는 이들이 한 일이 영웅적으로 부각되었다면, 이 책에서는 이들이 내걷는 걸음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걸음이 인종 차별을 철폐하는 일로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동참이 있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과와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에 청소년 판을 읽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인종 문제에 대해서 좀더 깊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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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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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로 잘 알려진 피터 드러커가 쓴 자서전이다. 자서전이라고 하기보다는 드러커가 만난 사람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드러커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남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자서전인데, 자신의 할머나로부터 자서전이 시작된다. 할머니의 독특한 말하기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 헤메와 게니아에 대해서, 자신이 영향을 받았던 선생인 엘자와 소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렇듯 자서전이지만 다른 사람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한 그들을 통해서 드러커가 어떤 점을 배웠고, 그 사람들에게서 취한 것과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던지도 알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드러커의 자서전을 나로 하여금 읽게 만든 사람은 바로 폴라니다. 아니 폴라니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려 했던 사람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사회 개혁을 했느냐 하면 긍정적인 답을 할 수가 없다. 세상은 한 개인에 의해 또는 한 집안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인간에 대해 탐구하면서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폴라니를 보면서, 사회 변화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는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노력들이 쌓이고 쌓인 상태에서 어느 순간 바뀌는 것이라는 사실. 특정한 인물이 사회를 바꾸려다 또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하려다 희생되는 경우를 '헨슈와 세퍼' 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드러커가 히틀러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감정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는데, 그가 전체주의를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와 독일, 영국에서 만났던 인물들에 이어 193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로 자서전을 끝맺는다.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강대국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즉 동일성 강요보다는 다양성 인정으로 사회를 이끌어갔기 때문에 유럽보다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드러커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그것이 드러커를 있게 한 힘일지도 모른다.

 

이런 형식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를 살피기 전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야겠단 마음을 먹는다.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나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결국 나를 만들어주는 것은 남들이다. 다른 존재들이 나를 구성해준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도 역시 다른 존재들이다. 바로 남이다. 드러커가 자서선에서 남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남들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만나는 남들을 보아야 한다. 그들이 곧 나이므로. 이렇듯 이 책은 흥미진진한 사람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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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 - 여성이었고, 흑인이었고, 영웅이었다
마고 리 셰털리 지음, 안진희 옮김 / 노란상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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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허균이 쓴 글이 있다. '유재론'이라고. 너무도 많은 인재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글.

 

중국보다도 좁은 땅덩어리에, 중국보다도 훨씬 적은 인구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분으로 사람을 나누고, 또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양반 중에서만 발탁을 하니, 어찌 나라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한탄하는 글.

 

사회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서 능력 발휘할 기회를 아예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능력을 발휘한다면 한참 걸릴 일들이 더 빨리 해결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였을까? 1900년대에 들어와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미국에서도 겪은 일이다. 아니 미국은 1960년대까지도 이런 일을 겪었다. 물론 지금도 인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영화로 먼저 알았다. "히든 피겨스" 감춰진 인물들이라니... 아니,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책으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작이 있었다니, 그것도 출판이 되었으니, 책으로도 읽어야지...

 

   미국 나사(NASA)라고 통칭하자. 지금은 그렇게 이름이 바뀌었으니.. 이곳에 여성 공학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그 여성 중에서 흑인 여성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사에는 백인들만, 그것도 백인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들에 의해서 미국 항공, 우주 산업이 발전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만큼 흑인 여성들은 이중으로 감춰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는. 인종분리정책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미국 남부에서 흑인 여성들이 지닐 수 있는 직업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는 힘들었다고 하니...

 

  이런 흑인 여성들에게 기회가 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회는 전쟁을 통해서 온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간 공백을 메워야 하는 사태가 온 것.

 

항공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사람들이 필요한데, 전쟁터로 대부분 나간 자리를 메워줄 사람들로 여성, 또 흑인 여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한다.

 

수학, 과학에 재능이 있었으나 기껏(?) 수학교사나 과학교사로만 지낼 수밖에 없었던 흑인 여성들에게 항공산업에 종사할, 그것도 교사보다는 월급이 두 배 이상 많은, 기회가 온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인물...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캐서린 존슨. 그리고 차세대 학자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틴 다든.

 

책은 이들이 나사의 전신인 랭글리 항공 연구소(NACA)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흑인 여성을 가로막고 있던 유리 천장을 부숴버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냄으로써, 또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냄으로써 다음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낸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도 처음에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다. 특히 화장실부터... 여기에 식당에서도 자신들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는 팻말까지 있으니... 이 팻말을 치우고 또 치우고, 결국 팻말이 없어지게 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다른 보이지 않는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도로시 본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관리자가 된다. 또 세상의 발전을 꿰뚫어보고, 수학 계산만 하는 컴퓨터(계산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에서 컴퓨터(우리가 말하는 컴퓨터다)를 다루는 프로그래머로 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수학적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메리 잭슨과 캐서린 존슨...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연구원이 되는 크리스틴 다든. 또 이 책에 잠깐 언급되는 많은 흑인 여성 수학자들.

 

이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흑인-여성'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리 천장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넓히고, 완전히 유리 천장을 없애버리는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발을 내디디긴 힘들다. 하지만 첫발을 누군가 내디디면 그 다음 사람이 발을 내밀고 걸어가기는 한결 쉬워진다. 그렇게 길이 난다. 이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런 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히든 피겨스'

 

쉽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이들이 지녀야 했던 무게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결코 편하지 않았을 발걸음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또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유리 천장이 여전히 있지 않나 하는 성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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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임상철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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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에 나와 있는 제목 밑에 이 책을 설명하는 글.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이 말이면 이 책이 어떤 성격을 지닌 글인지 잘 알 수 있다.

 

글쓴이는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이고, 빅판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빅판이 된다는 것, 빅판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글만이 아니라 그림도 있는데, 모두 이 글을 쓴 임상철이 그린 그림들이다. 아마도 평범한 가정이나 조금 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미대에도 가고, 본인이 좋아하는 미술 활동을 하면서 살아갔을 테지만,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해 보육원 생활을 하고, 그나마 자리잡았던 직장은 IMF를 맞이하면서 문을 닫고 말았으니, 그는 가족 해체에 이어 자신의 생계마저도 해체되는 고통을 겪게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먼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내일을 보며 오늘을 살고, 조금 더 멀리 보아야 모레 정도를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삶이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한다.

 

  노숙인이라고 다들, 삶을 포기한,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 그냥 무료 급식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것이다.

 

  노숙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것,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 보면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의지 앞에서는 제 아무리 험한 고통이라도 사람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 비록 곤경에 빠뜨릴 수는 있을지라도 그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임상철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다.

 

 (<- 이 책 45쪽에 있는 그림)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사람이며 이 일을 한 지는 한 달도 안 된 초보자다. 이 잡지는 일반 잡지가 아니다. 자신이 홈리스란 사실을 인정하면서 팔아야 하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잡지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낯이 두꺼워서도, 자존심이 없어 창피를 몰라서도 아니다. 홈리스 삶이 점점 더 힘겨워지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132쪽)

 

  '분명 잡지 장사는 맞는데… 뭔가가 부족하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잡지는 분명코 판매자들이 표지 모델과도 같은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으로 찾고자 했던 답을 찾은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판매할 잡지부터는 내 이야기를 적어 복사해서 끼워 넣어보기로 작정했다. (133쪽)

 

자신이 홈리스임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빅판이다. 빅이슈를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홈리스임을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감추고 싶기도 했을 테고.

 

하지만 여기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그는 <빅이슈>가 바로 자신들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판매하는 <빅이슈>에 자신의 글을 넣어서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빅이슈>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려 한다.

 

슬픔이 담긴 글들도 있고,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한 상황을 알려주는 글들도 있지만, 글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끈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는 만남들, 글쓴이는 <빅이슈>를 통해서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도 이제는 홀로 끊어진 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끈이다. 우리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책에는 그가 <빅이슈>를 판매할 때 한 사람이 28권을 사 간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들이 자기 생일 잔치를 해준다고 모였는데, 그 친구들에게 선물할 거라고 <빅이슈> 28권을 사간 젊은이 이야기.

 

그뿐만 아니다. 팬을 자처한 사람부터 나올 때마다 <빅이슈>를 사가는 노인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그는 <빅이슈>에 담아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나눈 이야기들이 이렇게 책으로 엮여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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