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고전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한 가지. 너무 유명해서, 여러 버전으로 접해서 내가 이미 그 작품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 착각 속에는 고전을 많이 읽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고전 거의 안 읽었다. 이상하게 상 받은 작품들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고전이 재미가 없더라는 거다. 물론 모든 고전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그저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거나 아니거나, 뭐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게 고전을 두고 몇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새롭게 만나는 고전의 버전이 일러스트였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게 된 제인제인 에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제인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고, 이모의 집에서 길러진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모 집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객식구 한 명이 늘었지만, 아무도 관심 두는 이가 없다. 이모의 집은 분위기가 살벌하다. 폭력적이고 매일 싸운다. 제인은 이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만 지내자고 혼자 마음먹는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야 했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그렇게 제인은 부모님이 바다에 나갔던 것처럼 뱃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을 때 제인은 뉴욕으로 떠난다. 아마 그 집 식구들 누구도 제인이 떠나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티격태격에 바쁜 나머지 제인이 그 집에서 살았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제인은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작은 방을 구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자리를 또 구해야 했는데, 용모단정한 이를 뽑는다고 해서 간 일자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라는 대로 갔더니 저택이었고, 집주인 이름은 로체스터. ㅋㅋㅋ 제인이 할 일은 로체스터의 딸 아델을 돌보는 유모였던 것. 유모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에 생각했다. , 고된 직업이겠군. 진상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들었으니, 가장 오래 버틴 유모가 일주일이겠지. 바로 뒤돌아서서 나갈 줄 알았던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 사실 제인은 어릴 적 혼자 지내며 외로웠던 시절을 아델에게서 다시 본 거였다. 엄마가 없이 아빠와 살지만, 아빠는 바빠서 아델을 볼 시간도 없는 게 현실. 제인이 지금 아델을 보는 게 동정은 아니겠지만, 안쓰러운 어린 시절을 지내는 건 맞지. 어쨌든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점점 아델을 보러 가는 일이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아델의 아빠, 로체스터!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델의 상황을 아는 제인은 이때다 싶어 로체스터에게 아델의 상황을 말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도 혼자 지낸다고, 친구가 없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고, 학습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로체스터는 과외 선생을 들이라고 했던가? , 뭐든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였군. 하지만 우리의 제인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지. 로체스터에게 유치원의 상담에 참여하라고, 아델을 좀 더 잘 돌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그러다가 점점, 제인은 심장이 없는 듯 살아가는 로체스터에게 반하고, 로체스터 역시 제인에게 마음이 가는데...


원작에서도 아이가 있었던가?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반전같이 존재했던 비밀의 방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난다, 누구라도 그 방에 접근하려고 하는 순간 저택에서 쫓겨난다고. 제인은 이 약속을 잘 지키지만, 설마 아델의 아빠에게 마음에 뺏길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저택은 어디든 수상한 기운이 풍기고, 로체스터를 바라보는 마음을 자꾸만 심쿵하다. 이상하게 원작보다 뭔가 더 스릴 있고 더 로맨틱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밤에 계단을 오르던 그 남자는 누구일지, 로체스터가 강렬하게 제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뭔지. , 이거 정말 사랑인가요? ?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고, 배경이 현대로 바뀐 것만 좀 다른 듯하다. 제인이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로체스터와 관계가 더 진전되는지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 죽을뻔한 위기를 같이 탈출했으니, 사랑하는 마음에 전우애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지 않았을까? 중간에서 아델이 또 중재자 역할도 잘할 것 같고. 이 정도면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읽으면서도 계속 쏠리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역시 고전이라기보다는 로맨스 소설 아닌감? 근데 왜 열린 결말처럼 보여줬는지 모르겠군. 둘이 다시 만나서 잘 먹고 잘살았다, 이것까지 확인사살 해주면 안 되는 법칙이라고 있는 건지 뭔지. 문장 말고 그림이 보여 주는 장면들이 확실히 더 설레긴 하다. 막 뽀뽀하는 이런 장면도 넣어주고 말이야.


몇 년 전 언젠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내용도 알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눈을 호강하면서 봤던 작품인데, 이거 느낌이 다르다. 문장으로 장면을 그려가면서 읽는 그 느낌이 더 말캉하다고 해야 하나. 주디가 저비스 씨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밀당 잘하라고 중얼거렸다. 일상을 너무 오픈하는 거 아니냐고 주디를 구박하면서 읽었다니까. 나중에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혼자 안절부절.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이미 눈치챘는데, 주디만 몰라.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니까!!! 뒹굴뒹굴하면서 읽다가 발차기를 여러 번, 혼자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읽으면서 주디랑 저비스 씨 때문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주디가 너무 순진하게 보여서, 저비스 씨가 빨리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말이야. 처음 뭣 모르고 펼쳤을 땐 동화를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빠져들면서 이 소설의 장르를 확인했다지. 로맨스 소설이지 뭐야. 홍홍. 아무래도 내 고전(?) 취향은 이런 건가 보다. 읽고 보니 말랑말랑해지는 거? ^^ , 주인공에게 너무 이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읽다 보면 그게 잘 안 됨. 이제 막 변신펼쳤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떠려나. 기대 반 설렘 반. 뭔가 묵직한 여운까지 한꺼번에 와닿았으면 좋겠네.


두 작품 모두 어린 여자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도, 당당한 삶 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세 역시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험난한 성장 과정이었어도, 고아 소녀였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완성해가고 있었다는 것. 제인 에어의 원작이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여성의 삶이 남자의 보호 아래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것과 그래서 결혼까지 닿아야 완성된 인생이라고 믿었을 때라고 하니, 현대판으로 각색된 제인에서는 로체스터의 보호나 선택이 아닌 제인 자신의 커리어와 당당함으로 인생을 완성해간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외면당한 자기 화풍이 인정받고 전시회까지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리가 굳어진다. 그리고 사랑도 더 탄탄하게 이뤄가리라고 믿는다. 그게 인생이지.


혹시라도 나처럼, 고전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분위기로 들려오는 여러 버전을 접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네그려. 활자로 빽빽한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일러스트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먼저 만나도 충분히 즐겁다. 뭐든, 읽는 게 먼저 아니겠음둥? 읽고 보니 재밌다. 그리고 더 재밌어질 이야기들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말이다.











#제인 #제인에어 #키다리아저씨 #변신 #죄와벌 #고전 #명작

#책읽기 #로맨스 #책 #책추천 #문학 #소설 #일러스트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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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6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 키스씬은 캔디가 생각난다는.... 분위기 캔디와 테리우스의 키스씬과 분위기 너무 비슷합니다. 그러고보면 제인에어도 결국 캔디장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꺄아악~ 캔디와 테리우스.
이야기의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죠? 캔디형 주인공. ^^

다락방 2022-01-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키스씬 때문에 보고싶네요 ㅋㅋㅋㅋㅋ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까르르르르~
그림 스타일이 좀 투박(?)한 느낌이 있는데, 로맨스드라마 보는 느낌이 강합니다. ^^
 
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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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간다. 유년 시절도, 사랑도, 삶도. 머무는 것은 당신이 남기는 흔적뿐이다. 그 흔적은 당신의 아이들 내부에 살아 있거나 담의 돌로 남는다. (430페이지, 요쉬카 브라이트너 귀한 내면아이)


잔인했다. 전편을 읽은 많은 독자가, 살인 사건은 잔인했는데 그 사건을 둘러싼 비요른의 대사나 태도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면서, 이게 살인인데 왜 웃음이 나는 건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 이 시리즈는 사실 소재 자체가 독특해서 누구라도 궁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혀 다른 지점에 있다고 여겼던 명상살인이라니.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살인마 비요른에 빠지게 될 줄 몰랐던 게 함정이다. 이 남자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그의 살인이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변명이 와 닿기도 하는 걸 보면 그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살인 사건이, 살인마가 이럴 수 있는 거야?


오픈된 결말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한껏 고조시켰던 1권 이후에 제법 빠르게 출간된 두 번째 이야기다.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비요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을 거다. 앞서 그가 찾아갔던 명상 선생의 가르침은 실제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면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비요른은 이 명상 요법으로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불안을 잠재우면서, 그의 또 다른 살인으로 연결한다. 비요른과 사샤는 결심했다. 다시는, 더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계속된 살인이 이제는 좀 지겨워지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내도 있고 딸도 있지 않은가. 나름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40대 초반의 한 남자일 뿐이다. 그런 그의 살인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멈추지 못하고 계속되는지 알 수 없다.


마피아를 변호하며 손잡은 그는 이미 마피아의 머리 위에 있다. 딸의 유치원 자리로 마련한 건물에 자기 변호사 사무실도 열었고, 그 건물에서 살기도 한다. 유치원 원장은 그의 동료(?)가 된 사샤. 하하. 웃음이 나는군. 우리나라 유치원만 생각하면 사샤의 이미지로 유치원 원장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 듯하다. 암튼 그는 조직의 보스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 보스의 원수 같은 조직의 보스 보리스를 납치했다. 그러면서 두 조직 사이를 왔다 갔다, 마치 두 사람이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자리를 비운 것처럼 행동했다. 그때마다 그의 명상은 계속되었다. 그의 안에 있던 내면 아이의 목소리에 휘둘리며 여전히 그가 머문 자리, 그가 만났던 사람 중 일부는 사라지거나 죽었다.


나는 살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쿠르트와 보리스가 죽는다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내면아이는 죽음을 원한다.

그러나 보리스를 죽이는 건 원치 않는다.

이건 정말 양립할 수 없는 대립 관계일까? (350페이지)


언젠가 접했던 심리 관련 도서에서나 매체를 통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 우리 안의 내면 아이는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마주하는 대상이었다. 현재 나의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찾으면서, 그 시간을 거슬러 찾아낸 것은 아주 오래전 우리가 상처받았던 그때로 돌아간다. 이 고통의 시작점을 찾아내어 제대로 위로하고 다시 마주하면서 현재의 나를 다독인다. 있었던 일이 없던 일로 되지 않고 상처가 아무리 나아도 흉터는 남겠지. 그런데도 이 치유 과정조차 없다면 고통은 더 심해지고 영영 나아지지 않을 테니, 우리는 이 노력으로 내면 아이와 마주하는 기회를 얻곤 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마주했던 내면 아이가 비요른에게는 계속된 살인을 만든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의 목소리를 따르면서, 그는 스스로 멈추고 싶던 살인 행위에 점점 더 깊게 빠져든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점잖게 말이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그와 사샤가 반년 동안 가둬놓았던 보리스의 행방을 아는 이가 나타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협박을 받는다. 보리스를 죽여야만 해결되는 이 협박의 끝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더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누구의 죽음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얼마 전인데, 그 다짐을 깰 수는 없다. 더군다나 협박범이 누군지도 모른다. 한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이 협박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계속 끌려가야 한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의 거짓말, 소설 쓰기는 계속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유치원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고, 자기를 오해한 아내의 의심을 풀어줘야 한다. 알프스에서 사고사당한 웨이터의 죽음의 목격자도 벗어나야 한다. 비요른이 예상하지 못한, 자기를 옭아맨 것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날지 정말 궁금했다. 그를 벌주고 싶으면서도, 매번 그가 위기를 벗어나는 걸 보면 혹시 비요른이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래도 되나? 살인자에게 이렇게 빠져들어도 되는 거냐고! 이번에도 비요른과 사샤 콤비의 위기 탈출은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활약한 사샤의 지구 구하는 유치원 만들기 대책은 이 살벌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 폭탄을 터트렸다. 매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한 소설임이 틀림없다.


비요른의 명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를 둘러싼 범죄와 살인도 계속된다. 중간중간 그의 명상은 여전하지만, 그 명상은 어느 순간 힘을 잃는 듯하다. 그를 지배하는 건 그의 내면 아이였으니까. 처음 명상으로 그 자신을 치유하려던 목적은 이제 내면 아이를 내세운 살인으로 변질되었고,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죽음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그 죽음의 범인을 찾는 일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어라, 이거 타이밍 죽이게 되어버렸는데? 나는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이야. 소설을 쓰듯 이야기 한 편을 완성했을 뿐이라고.’ 정말 이상하다.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도는 것만 같다. 그가 계획하는 대로 유유히 흘러가는 모든 상황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 이러면 안 되는데. 그가 직접 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그는 살인자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그를 미워하거나 붙잡고 싶기는커녕 순간순간 그의 모자란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기까지 하니. 이걸 어쩌면 좋나.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이보다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음을 치유하면서도 인간이 휘둘리는 무언가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성인 비요른은 어린 내면 아이에게 빠져들어 살인의 재미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평범한 우리 인간은 사람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존재다. 그러니 언젠가는 비요른도 그의 살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그의 생각과 행동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의 어둑한 마음의 지하실을 열었더니 거기에 있던 천진한 살인 파트너가 있었다. 자기도 몰랐던 자아를 만나면서 그는 더 은밀한 살인자가 된다. 더 기묘한 살인의 중심에서 즐거워진다.


보통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화가 나면서 왜 이런 결말인 거냐고 투덜댔을 텐데, 곧 출간될 3권 소식에 너그러운 마음이 생긴다. 지하실, 그 안의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서 빨리, 닫혀버린 그 지하실 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단 말이다!




#명상살인2 #명상살인 #내면아이 #카르스텐두세 #비요른 #내안의살인파트너

#5살아이가왜사람을죽였을까 #엔딩맛집 #블랙코미디

##책추천 #문학 #소설 #추리소설 #범죄소설 #세계사컨텐츠그룹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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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서관입니다
명혜권 지음, 강혜진 그림 / 노란돼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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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이용한 지 20년 정도 된 것 같다좀 더 일찍 이용했다면 좋았을 것을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아마 내가 책을 읽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도서관 자체를 이용할 생각도 못 했던 거겠지지금이라도 도서관 활용을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가장 먼저는 읽고 싶은 책을 다 구매할 수 없고구매한다고 해도 놓아둘 공간도 없기에 도서관은 꼭 필요하다는 것여러 가지 도서관 문화 행사나 가끔은 몇 시간씩 머물면서 조용하게 책 읽고 오기도 하는 편안한 장소가 된다는 것그리고 더 많은 이유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있겠지.



몇 페이지 안 되는 그림책 같지만그 그림 속에 도서관의 모습이 너무 실감 나게 담겨 있어서 놀랐다도서관 문 열기 전에 가서 자료실 문 앞을 서성이던 기억도 나고서가 사이를 돌면서 책을 구경하고 찾기도 하고가지런히 꽂힌 책을 보면서 어떤 책이 이용자들에게 사랑받았는지 그대로 확인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가끔 자료실 안의 널따란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오기도 했고한쪽에 꽂힌 주간지나 월간지를 들춰보기도 했다집에서는 다 소화하지 못할 책을 만나기도 하는 곳이지만이상하게 도서관의 그 고요한 분위기가 좋아서 찾게 되기도 한다책을 빌리러 갔다가 여기저기 훑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적도 많고계획에 없던 엉뚱한 책을 빌려오기도 했다그런 우연으로 몰랐던 좋은 책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반납된 책을 북 트럭에 담아 옮기는 소리누군가 책을 빌려 가면서 바코드 찍는 소리담당 직원에게 뭔가를 물어보기도 하는 소리 등 도서관 안의 대부분은 소리로 가늠하게 된다기본적으로 조용하게 있어야 하는 곳이기에 웬만한 소리는 저절로 귀에 들어온다.


이처럼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이지만사실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이용자들을 위한 문화 수업도 진행되고독서 마라톤이나 독후감 대회 같은 독서 장려를 위한 행사도 있다단순히 ’ 이상의 것을 이뤄내는 곳이기도 하다일반 시민을 위한 문화 전반을 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




도서관이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우리가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라마치 도서관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도서관의 구석구석을 설명해주기도 하면서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즐겁고 흥미로운지 자랑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정말 몇 문장만으로 이 책을 다 표현하고 있어서 놀랍기도 하지만그림 하나하나에 도서관의 모든 장면이 담겨 있어서 놀라움이 크다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도서관 모습을 담았다도서관에 직접 가서 모든 곳의 사진을 찍어와서 그대로 그려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지도서관의 어느 장소에서 어떤 몸짓으로 책을 마주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도서관이 문을 열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에 흐뭇해하고책들이 자리한 서가 사이사이의 틈까지 숨을 이어간다도서관 이모저모를 알리는 게시판의 소식들을 눈에 담고때로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곳이 도서관이다책과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곳이 되어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는다혹시라도 도서관이 커다랗게 지어진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면이 얇은 책으로 시작된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도서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중요하고가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될 터이니. 


사람들이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를 만드는 곳나는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나는도서관입니다 #명혜권 #그림책 #노란돼지 #어린이책

#책읽기 #책추천 #도서관 #도서관으로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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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1-02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보이는 곳에 제가 읽은 책이 한권 있네요 두권짜리 《헬프》... 다른 분들은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 책을 많이 보셨을 듯... 도서관에서 가서 지켜보고 쓰고 그렸을 듯합니다 도서관에 자주 가는 사람은 반가울 듯하고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도서관 분위기를 느끼겠네요

구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구단씨 2022-01-03 22:47   좋아요 1 | URL
마치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처럼 장면 그대로가 살아있어요.
제가 도서관에서 보는 풍경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깜짝 놀랐어요. ^^

추위가 왔다 갔다 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꼬마요정 2022-01-03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또 읽어보고 싶게 하시네요 ㅎㅎ 도서관을 이용하면 좋은데 참 잘 안 됩니다ㅜㅜ 그래도 올해는 꼭 도서관엘 가야지.. 맘 먹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 사무실 근처에 하나 생겼거든요. 너무 반가웠어요!!

늘 좋은 책 알려주시고,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원하시는 일 다 이루시길 바랍니다^^

구단씨 2022-01-03 22:48   좋아요 2 | URL
저도 예전에 비하면 도서관 이용 뜸해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책을 덜 읽기도 하고요. 코로나 상황에 도서관 가도 앉아 있을 수가 없고요.
그나마 도서관 문 열고 도서 대출 가능한 게 어딘가 싶습니다. 다행이죠. ^^

건강 조심하시고, 2022년 더 행복해지세요. ^^

물감 2022-01-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가 당선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1월에도 좋은 리뷰 많이 써주세요 ㅎㅎ

구단씨 2022-01-11 15:0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물감님. ^^
그림책에 좋은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자주 읽으려고요.

서니데이 2022-01-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구단씨 2022-01-11 15: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계속 보여주세요. ^^

러블리땡 2022-01-0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01-11 15: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굿즈에 눈길 주지 말자, 그동안 굿즈 때문에 모셔온 책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잊지 말자,

혹시라도 굿즈에 눈길이 가거든 꼭 필요한 것인지 백번 이상 생각하자............는 다짐이었건만.


독서대, 쿠션, 머그컵, 유리잔, 가방, 젓가락, 텀블러, 뭐 셀 수도 없이 많은 알라딘 굿즈가 있었더랬죠.

조금 과장하자면, 저의 살림은 알라딘 굿즈로 채워졌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ㅠㅠ

이사하면서 가져온 알라딘 굿즈로 물 마시고, 커피 채워서 다니고, 방바닥 뒹굴 때 머리 기대고,

책상 위 펜들 모셔놓고, 여기저기 메모해놓은 포스트잇에, 외출용 가방까지. 흐음...

다들 저랑 비슷하신 거 맞죠?



근데 이번에는 알라딘 굿즈가 아닌, 도서 굿즈가 땡겨서요.

아주 소박하게, 소박하고 또 소박하게 하트 티스푼이 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거죠? 


아멜리 노통브의 <너의 심장을 쳐라>, <갈증> 구매하면 하트 티스푼을 준답니다.

물론 포인트 1500점 차감입니다. 공짜는 아닙니다. ㅡ.ㅡ;;;

근데 며칠 전부터, <갈증> 도서 출간 소식에 살펴보다가 갑자기 

그 흔하고 흔한 하트 티스푼이 왜 자꾸 눈앞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건지.

필요하면 그냥 돈 주고 하트 티스푼만 사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음.... 음... 


이상하게 자기 합리화 시작입니다.

나는 <갈증> 도서가 궁금했어. 그냥 책이 읽고 싶었을 뿐이야. 근데 책을 사려니까 숟가락도 하나 준다네.

아, 물론 공짜는 아니야. 돈 내래. 단돈 1500원에 하트 숟가락 하나. 이거 괜찮은 거래 아닌가? 응? 아니야? 음...


어차피 <너의 심장을 쳐라>는 지난 번에 샀잖아. 왜 그때는 하트 티스푼을 안 줬을까. ㅠㅠ

기회는 이번 밖에 없어. 그러니까 <갈증>을 사야해. 

마침 조카가 오늘까지 사용해야 하는 카드 잔액을 5600원이나 넘겨줬잖아. 

서점에서 오늘까지 사용해야 하는 상품권 1000원도 줬네? 그러니까. 이건 사지 않으면 안 될 일.

거의 절반 가격에 책도 사고, 숟가락도 생기고. 응? 괜찮은 거 맞쥐?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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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01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즈 노예인 제가 봐도 탐납니다???!!!!!!!
특히나 작가 이름이 새겨져 있다니!!!
저런 건 어디서도 살 수 없잖아요ㅜㅜ
아....굿즈 지옥!!! 물욕을 자제할 수 없는 세상이에요^^

구단씨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하세요^^

구단씨 2022-01-02 22:28   좋아요 1 | URL
예뿌죵? ㅎㅎㅎ 새로울 것 없는 디자인인데도 왜 이렇게 탐날까요?
일단 주문했으니, 도착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헤헤~

건강하시고, 대박운이 터지는 2022년 즐기셔요~

황후화 2022-01-01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거 넘이쁜데요~
굿즈 노예아닌 제가 봐도 탐납니다 ㅋㅋㅋㅋㅋ
잘사신듯여~~

그나저나 새해가 밝았군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단씨 2022-01-02 22:29   좋아요 1 | URL
굿즈 노예에서 벗어나고자 매번 발버둥치는데, 언제나 이렇게 복병이 숨어 있습니다요. 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로나 상황에 언제나 건강하시고요.
 
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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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마을이 한 가족처럼 지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분위기다. 남의 집 창문 너머의 일을 모두가 아는 세상, 마을 사람 전체가 오지라퍼가 되어 남의 삶에 함부로 침범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혹자는 관심이라고, 서로서로 좋은 마음인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갑지 않은 엮임이다. 이 소설을 읽고 보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왜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의 감정을 다 안다고 말하며 쥐고 흔드는지 알 수 없어 분노가 치민다. 동생을 잃은 슬픔을, 아직도 이 사건이 개운하게 해결되지 않은 답답함을 당신들이 아느냐고 욕하고 싶기도 했다. 무엇을 숨기고 있기에 온 마을이 나서서 이 사건을 감추려 드느냐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왜 그렇게 지내왔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 돕고 사는 인간의 매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날은 트레이시가 사격대회에서 일등을 한 날이다. 동시에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동생 세라가 일부러 져준 것을 안 트레이시는 화가 났지만, 빗길을 뚫고 혼자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갈 동생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곧 대학에 입학할 동생이지만 항상 걱정스러웠다. 위험하니까 국도가 아닌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세라는 국도로 향했고 집에 가던 길에 실종되었다. 도로 한쪽에는 세라가 몰고 가던 트레이시의 차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세라도, 세라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곧 마을에서는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왔지만, 왜 이제야 다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까? 트레이시는 언제나 의문을 품어왔다. 이 사건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고, 에드먼드가 범인이 아닐지 모른다고, 마을 사람들이 뭔가를 숨기고 믿어왔다. 그 와중에 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세라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화학 교사였다가 형사가 된 트레이시. 동생 사건 때문에 형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세라가 발견되거나, 이 사건을 다시 처음부터 확인하고 수사해야 할 때, 바로 지금이다.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가 뭘까? 그는 의심할 게 너무 많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니 구속할 수도 없었다. 뒤늦게 목격자가 나타나고 온갖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세라 실종(살인)사건의 완벽한 범인이 된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그는 끔찍한 성범죄 전과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이 된 것 같아서 트레이시는 그의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다. 앞선 사건에서도 그는 강간범이었지만 가석방되었고, 그에게는 강간범, 전과자, 성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가 세라를 해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지만, 법은 언제나 유죄의 증거가 바탕이 되어 판단해야 했으니. 형사로 살아가면서 트레이시의 눈에 그의 유죄가 더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했다고, 그가 과거의 범죄 때문에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유명한 법률가 윌리엄 블랙스톤 경의 말처럼, 무고한 죄인 한 명을 만들기보다는 범법자 열 명을 놓치는 편이 낫습니다. (353페이지)


이미 구속되어 20년간 교도소에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의 유죄 여부를 따지는 게 트레이시에게 중요했을까? 나는 그녀가 그를 교도소에서 꺼내주고 싶은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무죄 증명에 왜 그렇게 애쓰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가 바라는 건 그의 무죄가 아니라 20년 전의 그의 재판이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가 범죄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는 것처럼 재판이 진행된 것을 되돌려놓고 싶었던 거다. 그 후에 그녀가 바라는 일. 세라 사건을 제대로 다시 수사하여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녀는 목적에 다가간다. 에드먼드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세라 사건의 조작된 증거와 진실에...


그래서 결말이 어땠냐고? 세상에나.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소름에 닭살이 일어났다. ‘혹시나하는 호기심은 설마싶은 불안으로 바뀌었고, ‘진실은 때로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가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의 분량 절반이 스릴러물로 채워지고, 후반부는 법정물로 채워진다. 점점 긴장감은 고조되고, 마을 전체가 감추는 듯한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갈증으로 목이 마르곤 했다. 그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과 분위기가 이 소설을 대신 말하는 듯하다. 가족을 잃은 이의 상실감을 공유하고, 과거 범죄자였다는 이유로 새로운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부당함을 인지하며 새롭게 접근하는 일, 법의 판단 기준에 증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안에서 계속 등장하면서 시선을 붙잡는 것은, 시애틀의 강력반 형사 트레이시가 맡은 사건이었다. 아무리 수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미제 사건으로 넘어가서 오랜 세월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갇혀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답답하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세라 사건과 겹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가 이 사건 역시 세라 사건이 진실을 드러낸 것처럼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게 한다. 모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설령 그 진실을 우리에게 줄 것이, 개운함이 아니라 고통일지라도 말이다.


TV에서 형사나 프로파일러가 등장해 과거의 사건을 들려준다거나, 새롭게 해결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흥미롭게 들리곤 했던 과학수사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정말 과학수사의 발전은 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걸 느낀다. 세라 사건 역시 그때는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확인할 수 없던 것들이 20년의 세월을 건너와 다시 확인해보니 정확하게 밝혀지곤 한다. 인간의 기억력으로 분명해질 수 없는 것이 과학수사가 바탕이 되어 증명한다. 그때는 단순한 증거에 불과한 것이, 얇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담고 있는 많은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짜릿함이란!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미 8권이나 출간되었다고 하니, 다음 이야기도 곧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13년 동안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작가의 이야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트레이시가 고군분투하던 니콜 핸슨 사건은 물론이고, 어떤 사건이든 끝까지 파헤치며 진실에 다가가는 끈질김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내동생의무덤 #로버트두고니 #비채 #김영사 #추리소설 #스릴러 #법정추리

##책추천# 소설 #해외문학 #형사트레이시시리즈 #진실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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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31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마을 사람이 짜고 숨긴 일이 드러나면 트레이시는 괜찮을지... 한번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범인이다 하면 안 될 듯한데, 그럴 때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걸 과학수사로 알게 되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거기에만 매여서 잘못 보기도 하더군요 여기에서는 과학으로 그때 일이 밝혀지는군요

구단 님 2021년 마지막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잘 맞이하세요


희선

구단씨 2021-12-31 22:42   좋아요 0 | URL
마을 사람 전체가 속인 건 아니에요. 몇몇이 숨긴 진실이 사건의 열쇠가 되는 거죠.
하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의 일을 다 알고 지낼만큼의 분위기였으니,
전체적으로 당사자만 뭔가를 모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소설의 결말, 범인을 알고 나면 뭐가 옳을 걸까 많이 고민하게 되는 듯합니다.

추워지네요. 연말연시 평온한 날들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