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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평점 :
돈 모으는 방법을 모른다. 가진 돈을 아끼면서 쓰고 저축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마음 편하게 돈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그렇게 모아봤자 오르는 물가,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는 없다. 지금 사는 곳 가까이에서도 신축 아파트 분양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한 번도 청약을 넣지 못했다. 지금도 H사의 아파트가 내가 사는 곳 바로 옆에 신축으로 올라가는데도 청약을 꿈도 꾸지 못했다. 당첨이 문제가 아니라, 당첨 후의 감당해야 할 것들을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다들 비슷하게 말하기도 한다. 일단 당첨되고 봐야 한다고, 안 되면 도중에 팔면 된다고. 하지만 쏟아지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서, 입주 시기 가까워지니 분양가보다 낮게 팔려는 사람이 나타나는 걸 보면 무섭다. 본인도 감당 못 했기에, 투자를 의미로 던졌을 그 집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우리 어릴 때 하던 부루마블 게임 알지? 그것도 봐. 땅 먼저 따먹고 건물 먼저 짓는 놈이 이기는 거야. 세상이 그거랑 크게 다를 것 같아?”(54쪽)
“비둘기도 다만 한 줌의 땅이라도 내려앉아서 먹이도 먹고 물도 마셔야 사는 거지. 인간도 저녁에는 돌아와 쉴 집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근데 당신 같은 사람들이 집 싹쓸이해서 책임도 안 지는 게 새 발목 자르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허공 위 구름에 사는 사람도 있어요? 집이 열 채든, 백 채든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닙니까?”(212쪽)
아이의 교육이나 장래를 걱정하던 평범한 주부 은주가 주변 사람들의 투자(?)에 눈을 뜨게 된 건, 지금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의 주변 환경이 말해주고 있었다. 남편의 서울 발령을 앞두고 아이와 먼저 초월시로 이사한 은주는, 남편이 사는 집이 팔리지 않아서 현재 초월시에서 월세로 거주 중이다. 아이는 새 학교와 친구들에 만족하지만, 아이 친구 엄마가 작은 집 월세로 사는 아이와 놀지 말라고 했다는 말에 결심한다. 망설이기만 했던 아파트 투자를 자기도 해보겠다고. 이미 은주의 친구 혜경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좀 만졌다고 했고, 직장 선배 민정도 이 분야에서 돈을 굴리면서 은주가 부러워할 만한 거주 환경을 완성해 놓았다.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부동산 투자 강의도 들으면서 가장 가깝고 잘 아는 곳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은 은주였다. 그것도 지금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갭투자로 몇 채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계약서를 하나씩 불려갈 때마다 뿌듯했다. 대기업이 초월시로 들어오기로 하자 집값도 계속 올라갔다. 남부러울 게 없던 그때, 나락으로 떨어질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문제는 은주의 아파트. 동대표는 집값 내려간다고 입주민들 입단속을 하고, 햇살 따뜻한 곳에 나와 있던 할머니들의 의자를 치우기도 한다. 보기 흉하다면서, 이런 것만 보인다면 집값 떨어진다면서 말이다. 아파트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부터, 갑자기 에어컨 실외기가 화단으로 떨어지고, 어느 집주인은 비어 있는 집에 청소하러 왔다가 귀신을 보고 기절한다.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산다고, 회색빛을 한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주의 딸 지안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질감 없이 술술 읽히는 이 소설이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들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무섭기까지 했다. 이게 대부분 사실이었으니까. 특히 빌라 전세 세입자들이 피눈물을 쏟아내게 하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 법의 교묘한 틈을 파고들어 돈을 챙기는 악마 같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숨어 있었다.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잘도 살아간다. 이런 걸 보면 부동산이 부의 축적이라는 말이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 내 집 한 칸 구하려는 사람들의 눈물은 더 많아질 것 같고, 그 눈물을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들 역시 더 늘어날 것만 같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모으는 방식을 어디까지 참견하고 제재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젠가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사장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냥 여윳돈 있어서 하나 사두려고 하는지(Buying), 실거주 목적으로 이사를 계획하는 건지(Living) 물었었다. 당연히 내가 살 집을 구하려고 방문했던 곳에서 들었던 이 낯선 질문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 그때는 참 순진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살면서 세입자를 들이는 이들은,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다. 누구나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누구나 세입자를 들이고, 누구나 부동산으로 돈을 쌓을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냥, 이 소설을 읽고 있다 보면 정말 은주처럼 부동산 투자에 발을 들여서 차익으로 부를 쌓는 게 현명한 건지, 무리해서 덤비는 것보다 나 쉴 집 한 칸 있으면 만족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기에 헷갈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복선처럼 들려왔던, 은주가 기대했던 호재에 찬물이 끼얹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예상했던 반전이 일어나니 나부터도 기절할 것 같았다. 은주의 딸 지안이 엄마의 손목에 끈을 묶어놓았던 것처럼, 엄마가 새처럼 날아갈까 봐 걱정했던 것 같은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다. 다행인 건 은주에게 이 일은 잘 마무리되었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현실에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 속 결말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준비를 하고 시작해야 하는지 경고해 주는 느낌이고, 지금 은주와 같은 위기에 빠진 사람이라면 어서 그 늪에서 빠져나오라는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부동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또 다른 사회 문제와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게 그대로 보여서 뉴스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뭐가 됐든, 삶의 우선순위를 정한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판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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