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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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많은 감정을 갖고 사는 딸은 비단 화자인 뿐만은 아니다. 나 역시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자식이니까 당연히 잘 해야 하는 것에 더해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더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정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하나로 정해진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화자가 보여준 엄마를 향한 감정은 단 하나다. 엄마의 눈빛 하나로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의 고단함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믿고, 엄마보다 불쌍한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여기며 살았다.


의 엄마는 자식을 고통 속에 던져 넣으면서도 자신이 힘들었다는 토로만 반복한다. 애가 징징거리니까 일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묶어 놓고 일하면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 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식의 두 손을 묶어놓고, 엄마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했을까 싶지만, 자신의 상황이 힘들었던 것과 자식을 그렇게 대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은 공존하는 거 아니었나? 그런 엄마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듯 성장해 온 는 엄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불법도 저지르게 되지만, 그것마저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보면서 참 강심장이구나 했는데, 이게 다 엄마에게 강하게 훈련(?)받으며 성장한 덕분인가 싶기도 하더라. 어쨌든, 좀 특이한 모녀관계인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살인 사건이 등장하면서 좀 더 묘하게 변한다.


모범생이 되고 싶었으나 실패한 는 모범생 연기를 하며 지낸다. 엄마는 시장의 형제축산에서 일하고, ‘는 사장님의 딸 변민희와 같은 반이 된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빨간색 mymy가 도난당하고, ‘는 변민희가 미화부장의 책상 서랍에 mymy를 돌려놓는 것을 본다. , 범인이 변민희였구나. 그날 이후로 실종된 변민희의 수색 작업은 난항을 겪지만, ‘는 이날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제 변민희 실종 사건은 살인사건인지 실종 사건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15년이 흐른 후, 갑자기 변민희의 시체가 발견된다.


변민희가 실종되었을 때부터 몇몇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되고 헛소문에 시달리면서 인생이 피폐해지지만, ‘는 그러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날의 일을 굳이 떠올릴 이유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고 취직하고, 밥벌이에 정신없던 와중에 엄마의 억지스러운 비위도 맞추며 살아가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의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래서 변민희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았냐고? 이 소설 읽다 보니, 갑자기 일어난 살인사건이 흥미롭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느껴질 것도 같은데,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 게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등하는 것 같으면서도 같은 편으로 살아가는 이 모녀의 모습에 집중하며 읽게 된다. ‘는 엄마를 미워하는 듯하면서도 걱정하고, 엄마 때문에 불법도 저지른다.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 역시 딸 하나 잘 키우겠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았다. 이게 사기인지 도움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뛰어들고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삶이 되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요구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딸에게 징징거렸다. 이거 뭔가 바뀐 것 같다. 그 옛날, 일하는 데 방해된다고 징징거리던 딸의 손을 묶어놓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딸이 엄마의 징징거림을 듣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 어느 날의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이 모녀가 말이다.


아무리 뒤져도 묻은 자리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때 묻는 게 아니었어. 귀찮아도 갈았어야 했는데.”(233페이지)


어떤 잔인함은 너무 평온하게 표현되어 더 공포스럽다. 각자의 형편은 각자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이다. 오늘의 세상이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은 고맙기도 하지만, 그 도움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누구는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할 세상과 사람을 책임져가면서 살아갔을 뿐이다. 그러한 삶의 과정이 전쟁 같아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이해될 수 있나?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이, 그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저 무서웠다. 그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했던 것도 아닌데,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각자의 몫을 해내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묻어버리는 일이 이렇게 쉬웠나 싶었다. 그 일로 누군가는 꿈에서 멀어지고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에 빠졌는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없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앞으로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라고 외치면서 살아갈 것만 같다. 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 방식이 이런 거라니, 좀 끔찍하긴 하다. 그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더 섬뜩할 뿐이다.


#mymy #강진아 #북다 #문학 #한국문학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미스터리

#엄마와딸 #가족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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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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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엄마가 50대의 나이에 혼자 베트남으로 떠났다는 말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물론 저자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호사스러운 휴가처럼 떠난 게 아니었기에, 낯선 땅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통하면서 생계를 위해 또 달릴 것을 알기에 마냥 부러워할 일이 아닌데도, 부러웠다. 적어도 저자의 엄마는, 자기 두 다리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누군가의 아무개가 아니라, 엄마 이름 세 글자로 사는 인생을 찾게 된 거잖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생활에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던져진 것처럼 보였지만, 저자의 엄마는 그동안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가슴 속에 품어왔던 간절한 삶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자의 힘이 느껴졌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건, 작가만이 아니었다.


8남매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돈을 벌었고, 이른 나이에 자기 가족을 이루면서 삶은 더 치열해졌다. 자기 가족이 생긴 만큼 책임감도 더 커졌다. 한평생을 치열하게, 부지런하게 살아온 저자의 엄마가 베트남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또 열심히 부지런하게 살아갈 테니까. 다만,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떠밀려 간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앞섰다. 돈 때문에 간 거였다. 더 벌어야 했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벌어야 했다. 엄마만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에 응원도 보냈다. 남은 가족은 괜찮다고, 엄마의 시작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엄마 자신만 걱정하는 삶을 바랐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누려보라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걱정으로 시작했던 엄마의 베트남 생활이 5년이 넘어간다. 엄마는 잘 적응했고, 그곳 사람들과 잘 지냈다.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던 엄마의 일솜씨는 어딜 가지도 않았다. 엄마를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엄마는 자기가 짊어지고 있던 많은 역할에서 벗어나, 엄마만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멋있어 보였다. 그 나이에 열심히 자기 삶을 일구며 사는 사람. 낯선 땅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편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사는 사람. 저자가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저자의 엄마는 잘 적응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그 삶이 엄마에게 잘 맞는 옷처럼 보여서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동안 저자가 알던 엄마가 전부는 아니었음을, 엄마가 속해 있던 환경이 만든 슬픔을 지우고 바라보니 엄마가 다시 보인다는 것을. 혼자여서 힘든 일들보다 혼자서 누리는 행복에 기뻐하는 엄마의 표정만을 눈에 담는다. 엄마와 딸, 가족으로 엮이고 서로의 인생에 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살아가던 것이 당연해 보였는데, 이제는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삶과 저자의 삶. 가족으로 살아왔기에 못 보던 것들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가족이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저자 엄마의 삶을 나도 응원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식들 결혼해서 다 나가면, 자기 혼자 발 뻗고 자면서 속 시원하게 살겠다고. 엄마에게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자식들 키우고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 아주 고단했을 것이다.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나란히 놓아둔 젓가락처럼 잠들기도 했다. 사는 집의 주방 한쪽을 개조해서 통닭을 튀기기도 했다. 시장에 가게 한 칸 임대해서 밥을 팔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를 먹이고 키우고 가르쳤다. 아무리 각자 벌어서 결혼한다고 해도, 엄마는 자기의 최선을 다해 부모의 역할도 해야 했다. 여동생이 결혼하면서 엄마의 모든 경제활동은 멈췄다. 고단하다고 했다. 돈은 없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가게를 정리한 돈으로 엄마는 여동생의 결혼 준비를 도왔다. 일을 안 하면 좀 편할까 싶었는데, 아버지가 환자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또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여행도 다니면서 자식들 집에도 찾아다니고 그러면서 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다. 엄마만의 방은커녕, 엄마만의 시간도 없이 살아온 날들이 보상받을 기회가, 없었다.



어느 순간 엄마와 나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앞에서 나를 이끌고 다녔던 엄마는 이제 나의 옆에서, 뒤에서 조용히 나를 따른다. 누군가의 보호자, 누군가의 대리인,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버린, 요즘 나의 생활이 그렇다. 특히 결혼하고 따로 살면서 더 또렷이 보인다. 내가 알던 엄마와 다른 모습을 보게 되면서 적잖이 당황하곤 한다.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슈퍼맨처럼 보였는데, 그런 엄마가 지금은 자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기 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날들을 보내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것처럼 여행 계획을 세웠다가도 멈추기를 여러 번이다. 집 근처 10분 거리 마트에 가는 것도 무서워한다. 불편한 다리로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겁이 많아졌다고, 많은 게 무섭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지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단단해졌을 것 같은데, 이제 자기 자신만 지키면 되는데 그것도 어려워졌다. 당당하고 힘이 셌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이런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내가, 저자 엄마의 도전과 용기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잖아...


세상 많은 엄마가, 엄마, , 아내 등 많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겠지만,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름 하나. 그것을 지키려는 다짐을 저자가 들려주고 있다. 아무개라는 자기 이름, 자기 시간,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엄마만의방 #김그래 #유유히 #알라딘북펀드 #우리엄마 #엄마의인생

#에세이 #그림에세이 ##책추천



주절주절, 가슴 속 말들이 끝도 없이 밀고 나온다. 다시 밀어 넣어야 하는데, 계속 튀어나오려고 해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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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정석 - 당신의 후반부 인생을 지탱해 줄 4개의 기둥
문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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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봤다. 그저 밥벌이니까, 싫어도 해야 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의 생계와 직업은 그런 의미를 많이 차지한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저자가 인생의 후반부에 특히 강조하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소득 창출을 꾀하라는 말을 듣고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구나 싶더라. 알고 있었지만 우선순위에 둘 수 없던 현실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라 깊이 고민할 겨를이 없는 게, 우리들 대부분의 인생살이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어차피 인생 후반전의 제대로 된 레이스를 해야 한다면 저자의 조언을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살면서 돈은 필요하다. 은퇴를 걱정하는 이유도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거다. 저자는 은퇴 준비를 하면서 확인해야 4가지인 돈과 놀이, 건강과 관계를 강조한다. 돈이 없으면 일상을 누릴 수 없으니 삶의 질을 따질 겨를이 없을 테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지 않다면 의미 없는 삶이다. 일만 하다가 여유를 즐길 관심사가 없다면 인생이 재미가 없을 거고, 나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타인과의 관계가 나쁘다면 혼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너무도 옳은 말인데, 이게 어려워서 모든 삶을 통틀어서 고민하는 큰 주제가 아닐까 한다. 이 문제는 은퇴 후가 아니더라도, 어느 나이에서나 고민하게 일 아니던가. 그런데 저자의 말을 듣고 보니, 나이 들어 살면서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젊었을 때 모를 감정의 문제까지 섞어 들면, 노년의 삶은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으니, 노후 준비는 더 탄탄하게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각자의 사정과 형편으로 누구나 똑같이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저자의 조언대로, 4가지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서 준비해야 한다. 가장 먼저는 돈이다. 누구나 알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방식을 저자에게 다시 듣는 기분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상황 판단과 알맞은 지출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현재의 경제 상태, 소비 습관 등을 확인하면서 조절하는 게 시작이다. 혹시 자산이 아니라 빚이 있다면, 이 빚을 해결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진 돈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지금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 몸의 변화를 스스로 느낀다. 나이라는 숫자가 늘어가면서, 나의 몸도 달라진다. 기억력을 시작으로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기도 하고, 건강 챙긴다고 하는데 성인병이 늘어나기도 한다. 분명 이 상태가 되기 전에 전조증상이 있었을 거다. 내 몸이 보내는 어떤 신호가 있었을 텐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방치해서 지금에 이른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좋은 음식, 좋은 약 많겠지만, 무엇보다 기본 식습관을 유지하면서도 운동이 빠진 일상은 위험하다. 이미 아는 얘기라고 말하겠지만, 재차 강조해야 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기에 또 듣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알면서 못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기에, 이렇게나마 잔소리(?)를 들으면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품어본다.


놀이라고 하니까 어디 놀러 다니는 거 생각할 수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단순히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고, 생계를 위한 밥벌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다. 일상의 곳곳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고, 하루의 고단함을 늘 있다. 노후의 시간은 거기에 우울감과 불안함까지 얹어지니 더 즐겁고 정신적인 피로를 풀어주어야 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일을 하지 않게 되면 이 우울감은 더 심각해진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많은 어르신들이 손에서 일을 놓게 되면서 무료함을 보이곤 했다. 바쁘면 바쁜 대로 몸이 힘들지만, 이제 더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바쁜 게 더 즐거웠다고 말할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놀이, 즐겁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일 찾아가면서 일상의 피곤함을 날릴 수 있는 창구로 삼아야 한다.


관계의 문제는 또 어떤가. 엄마는 노인일자리 참여하시는데, 당연한 듯 가시면서도 툴툴거린다. 같은 구역에서 일하는 한 아주머니와 성격이 정말 맞지 않아서 맨날 티격태격하신다고. 그만큼 살아오셨으니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 여럿 봤을 테고, 이 정도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무던해질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이렇게 관계에 어긋나는 경우가 생기면 마음의 병도 생기기 마련이라, 그 사람에 큰 의미를 두지 마시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저자가 노년의 삶에 필요한 4가지를 언급하면서 관계의 문제를 넣은 이유도 알 것 같다. 인간관계는 우리가 나이 들었다고 피해 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죽는 순간까지 우리가 신경 쓰면서 살아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 문제도 조언했는데, 이 부분은 지금 내가 들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배우자에게 무관심해지는 순간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 상대가 나를 배려하는 만큼 나도 상대의 의견과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는 중이다.


책 제목이 은퇴의 정석인데, 듣고 보면 그냥 우리 사는 동안 계속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게 노년에 다다를 때 더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기에, 더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제로 받아들여야겠다. 개인이 바꾸거나 어길 수 없는 규칙이 있다면, 이는 그렇게 정해진 사회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니까.



#은퇴의정석 #문진수 #한겨레출판 #하니포터8##책추천 #책리뷰

#은퇴후의삶 #노년의삶 #100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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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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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뭘 좀 배워보려고 다니던 평생교육원의 수업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하다 보면 이 일이 재미있기도 할 거다. 일은 그렇게 배우고 적응하면서 할 수 있지만, 사람 때문에 힘든 건 자기가 가르쳐 줄 수 없으니 그것도 현명하게 잘 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그 강사에게서 또 듣게 되는 그 순간,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수강생은 없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이미 사회생활 오래 해 오던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그 수업을 받기 이틀 전까지 일하다가 간 거였는데, 어떤 또라이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또 무섭기도 하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또라이였던 적은 없었을까?


누가 가장 싫습니까?


공용 얼음 틀에 콜라 얼음, 커피 얼음 얼려놓는 사람.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공용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정수기 옆에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사람.

인기 많은 커피믹스를 잔뜩 집어다 자기 자리에 모아두는 사람.

공용 전자레인지의 코드를 뽑고 무선 헤드셋을 충전하는 사람.

탕비실에서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사람.

공용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몇 개씩 꽉꽉 넣어두고 집에 가져가지 않는 사람.

공용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면서 가글하는 사람.


이들과 함께 탕비실을 쓴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누가 가장 싫습니까?” (7~8페이지)


첫 페이지 첫 줄에서부터 갑자기 등장하는 질문에 당황했다. 누가 가장 싫으냐고 묻는 걸 보니, 다 싫은 데 그중에 누가 더 싫은지 골라보라는 질문이 유쾌할 리 없다. 그런데도 질문에 집중하면서 굳이 한 사람을 찾아내려고 내 눈이 바빴다. 글쎄, 듣고 보면 누구 하나 싫어하지 않을 수 없게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어디에서나 해도 되는 행동이 아니었다. 공용 공간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걸까?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마치 무시하듯 탕비실을 개인 공간처럼, 타인과 공유하는 곳이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행동하는 이들의 특성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아직도 이들 중 가장 싫은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한 사람만 고를 수 없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이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 다 있다.


합숙 리얼리티 쇼 탕비실에 섭외된 인물들의 특징이다. 이 리얼리티 쇼에 섭외된 이들은, 함께 탕비실을 쓰기 싫은 사람으로,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뽑은(?) 탕비실 빌런들이었다. TV 쇼에 섭외된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데, 섭외된 배경이 이러하니 난감할 뿐이다. 매일 얼굴 보고 마주한 이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평소에 동료들에게 베풀고 싶었던 친절과 배려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불편했다는 걸 이렇게 확인하게 된다. 쇼의 출연자들은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얼음은 동료들의 인터뷰에 화가 났다. 그가 탕비실 냉장고의 얼음 틀에 콜라, 커피를 얼려놓은 이유는 동료들에게 베푼 호의였다. 그런데 그 호의가 오싹한 소름으로 전달되었다는 걸 알고 나니, 회사로 돌아가 동료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 감정도 잠시, 그들이 왜 자기를 탕비실의 빌런으로 뽑았는지 확인하려면 이 쇼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이제부터는 쇼의 출연자들과 싸우는 전쟁이었다.


굳이 탕비실이라는 공간이 아니어도, 이와 비슷하게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갈등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호불호가 나뉘기 마련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뒤돌아서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야지. 그렇다고 이런 판단이 옳기만 한 걸까. 회사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 중에 탕비실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공용 공간이면서 사적인 공간도 될 수 있기에, 숨 막히는 업무 중에 잠시 쉬어가는 곳이 될 것 같은데, 이곳에서 불과 몇 분씩 마주치는 사람과 어느 정도로 소통할 수 있을까. 그저 잠깐이다. 냉장고에 케이크를 몇 개씩 넣어두니 내가 보관해 두고 싶은 음식 하나 넣을 공간이 없어서 미워지고, 맑은 얼음이 필요한데 왜 굳이 콜라나 커피를 얼려놓아서 남는 얼음 틀이 없게 하는 건지, 다른 사람도 있는데 혼잣말인 듯 아닌 듯 왜 자꾸 중얼거리면서 거슬리게 하는지, 다 같이 먹으라고 놓아둔 것을 왜 자기 몫인 것처럼 잔뜩 집어 가고 있는지 모를 사람들. 이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불만을 품지만, 정작 우리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갈 만큼 가깝지도 않고 시간이 여유롭지도 않다. 그래서 타인이 불편해할 행동을 하는 나를 이해시키며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전쟁 같은 이 쇼에서 이기고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은, 게임의 규칙을 어기며 힌트를 얻는다. 힌트라고 하는 건, 출연자의 동료들이 등장하는 인터뷰였는데, 말이 인터뷰지 뒷담화에 가깝다. 거기에서 주인공 얼음은 충격을 받는다. 내가 배려하고 호의를 베풀려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불편하고 소름 돋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동료들에게 그의 행동은 호의가 아니라 섬뜩한 공포가 될 수도 있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서로 그 상황과 문제에 관해 얘기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니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계속 해 왔던 호의를 베풀고, 동료들은 주인공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으면서 자기들끼리 불쾌함을 토로하는 정도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주인공이나 동료들이나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서로 얼굴 붉히면서 해야 하는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있었을까? 내 취향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게 이미 불쾌한 감정이 생겼는데, 좋은 말로 이유를 물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탕비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도 같다. 그냥 얼음을 얼릴 수 있게 얼음 틀을 남겨두세요. 다른 사람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니 케이크를 계속 쌓아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이 마실 커피믹스를 남겨주세요. 등등.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면, 이 공용 공간에서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함을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그렇게까지 했는데 씨알도 안 먹히는 인간이라면 그냥 탕비실의 빌런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만.


일반 회사에서 탕비실의 빌런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출연자였지만, 그 출연자 안에는 탕비실의 빌런이 아닌 인물이 숨어 있다. 이 쇼에서는 그 술래를 찾아야, 우승하고 상금을 획득할 수 있다. 술래가 누굴까 하면서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이 게임의 술래를 추적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힌트로 얻게 되는 각 출연자의 뒷담화는 의외이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짜 서로를 모를 수도 있다는 게, 서로를 알아가겠다는 의지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시간에 쫓겨 굳이 타인의 마음까지 다 알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건 아니었는지 고민이 되더라.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처럼, 굳이 싫어하는 사람까지 더 알아가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가야 할 필요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싫어하게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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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7-1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후 생각만 해도 홧병이........

저는 그거 있어요.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양치를 아에 안하는 사람보다 더 싫어요.....

stella.K 2024-07-12 17:48   좋아요 0 | URL
거 예전에 무슨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일을 해결하니 능률적...? ㅋㅋ

그런데 물감님은 그런 사람을 어찌 아시나요? 화장실 사용은 1인1체제인데...
너무 짖궂나요? 제가 궁금한 건 못 참아서리...ㅠㅋ

물감 2024-07-12 16:48   좋아요 0 | URL
그런 사람이 누굴 말하시는 거에요? 양치 안하는 사람?

stella.K 2024-07-12 16:55   좋아요 0 | URL
헉, 제자리에서 양치질 하면서 화장실 가는 사람이라고 쓰셔서
그 두 가지일을...? 그랬던 건데 뭔가 혼선이 있나 봅니다.

stella.K 2024-07-12 17:33   좋아요 0 | URL
아, 그러니까 자기 책상에서 양치질하다 화장실 가서
나머지 일처리를 하는..! 이제 이해했네요.
미안합니다. 제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화장실 간다는 표현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오버했네요.
저는 아직 그런 사람은 못 봐서요. 싱크대 개수대에서 양치질하는 사람은 봤지만.
둘 다 혐오스럽긴 하죠.

이거 남의 서재에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유, 민망해라. 어쩐담...ㅠ

물감 2024-07-12 17:40   좋아요 1 | URL
정확히는 양치질을 하면서 복도를 누비는 걸 말해요. 화장실 붐벼서 시간 아낀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참 보기 그렇습니다... 저는 자주 봤거등요 😅

구단씨 2024-07-12 19:14   좋아요 1 | URL
물감님. 그런 사람, 저인 것 같아요. ㅠㅠ
제가 밖에서는 안 그러는데, 집에서는 양치하면서 온 집안을 활보하고 다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옆지기가 아무 말도 안 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진짜 별로였을 것 같아요. 반성하고 있어요...
오늘부터는 꼬옥~ 양치는 화장실 안에서 다 하고 나오는 걸로 할게요. ^^

stella.K 2024-07-12 19:51   좋아요 0 | URL
헉, 오늘 제가 여러가지로 실수를 저지르는가 봅니다.
이번엔 구단님께 걸리네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사람 저마다 사정이 있고 습관이라는게 있는데. ㅠ 미안합니다. 제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잊어주시면 더 고맙고요. 😢 좋은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24-07-1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긴 하죠. 뒤통수가 가려운 적. 혹시 내가하는...?
그런 적이 있을까 봐 참긴하는데 제가 또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 어느 날 폭발하기도 하죠.
그래서 꼰대란 소리 듣기도 하고.
빌런이 따로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암튼 이 소설 흥미롭네요. 나중에 함 봐야겠어요.^^

구단씨 2024-07-12 19:15   좋아요 1 | URL
이 책 소개 페이지에서 빌런이라고 표현했기에, 저도 따라서 써봤습니다만,
보통은 서로 다른 방식에서 시작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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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먹을까?”

점심과 저녁 사이에 밥을 먹고 나니 정작 저녁을 먹어야 하는 때가 되자 애매했다. 밥을 먹자니 차리기가 귀찮고, 식사를 배달시키자니 굳이 배달로 밥을 또 먹어야 하나 싶은 마음. 만만한(?) 게 치킨인 걸까. 선뜻 입 밖으로 나오는 메뉴가 치킨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왔음에도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먹어왔던 닭이, 치킨으로 생명을 다하기까지의 시간을 이 책에서 다시 듣고 보니, 치킨이 다르게 보인다. 치킨은 닭튀김이라기보다 덩치만 큰 병아리 튀김입니다. 품종개량이 되지 않은 병아리는 성체가 되기까지 5개월이 걸립니다. 생명 공학 기술의 발전은 성장에 필요한 5개월을 단 5주로 줄였습니다. 한국에서만 매월 9,000만 명()이 넘는 닭, 아니 병아리가 생후 2개월에 접어들면 고기로 죽습니다. ‘치느님으로 칭송받고 11닭이 기본인 양 불호 없는 식재료로 전시됩니다.”(28페이지)


충분히 들어왔던 많은 사람의 비건한 삶이 나와 닿지 않아서,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막막했다. 그러면서도 미식을 즐기는 비건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만나본 이 책은 간단하면서도 비건한 미식이 가능한 초간단 레시피를 알려주기도 했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살게 되는 저자의 평범한 일상과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했다. 어느 장르로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빠져들면서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가진 선입견을 많이 무너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살이 막 찌기 시작했고, 말로는 다이어트를 외치지만 운동도 식사조절도 하기 싫은 욕심은 다이어트와 점점 멀어졌다. 충분히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귀찮다는 거였다. 저렇게 만들어 먹으려면 이런저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너무 번거롭게만 보였다. 그래서 건강하게 먹으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저자가 행하는 비건한 식탁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간단하게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비건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처음에 소개했던 치킨으로 나오는 닭의 수명부터, 동물성 재료로 만들어지는 많은 음식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은 달라졌다. 꼭 이렇게만 먹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입으로 넣어서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에게 부엌은 요리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빈자리를 채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혼하고 이사하고, 새로운 공간에 새 생활을 열면서 마음을 달래는 일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방법의 하나가 요리였고, 비건한 식탁이었다. 그런 저자에게도 주변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에는 음식이 있었다. 특히 2장에서 반성하면서 읽게 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치킨집은 불이 나는데, 치맥 대신 바삭하게 익힌 김치전과 맥주를 먹었다는 장면에서 많이 생각했다. 그러네,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 왜 치킨이 필수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꼭 그날 치킨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가대표를 응원하는데 치킨이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테두리가 바삭하게 익어서 마치 튀김처럼 찢어지는 김치전을 갑자기 먹고 싶다.


생후 6개월의 돼지가, 겨우 계절 두 개를 넘기고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동네의 어느 고깃집에서는 그 6개월 동안 키워진 돼지가 가장 맛있고, 그 맛있는 돼지가 준비된 가게라는 문구도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서도 고개만 끄덕였다. 맛있는 돼지갈비를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하나로 그 집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동물성 식재료의 운명을 하나씩 듣고 있다 보면, 정말 이렇게 먹는 습관이 틀린 게 아닌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비건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다. 가끔은 치킨도 먹으면서 살고 싶은데, 감자보다 짧게 살다가 치킨이 된다는 닭, 계절 두 개를 견디고 식탁에 오른다는 돼지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경험과 이 책에 담긴 레시피를 보고 다다른 지점은, 완벽한 비건보다 비건의 삶을 인정하는 것과 비건 지향인으로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는 소심한 다짐으로 무거운 고민을 줄여보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 건, 저자의 레시피가 하나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번거롭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쉽게 발견하는 재료로, 100퍼센트가 아니어도 그 음식의 맛을 내면서 먹을 방법이 있었던 거다. 남은 채소들로 소스를 만드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쳤다. 괜히 남은 채소들 상해가는 거 보다가 버리기도 여러 번인데, 쓰고 남은 채소를 굳이 남겨두지 말고 이렇게 소스로 만들어서 다른 음식에 함께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음식으로 건강한 일상을 보내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살이 찌고, 몸은 무거워지고, 그래서인지 피곤함이 더 찾아오고 병원에 갈 일도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할 만한 비건 생활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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