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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그래봤자 운동을 싫어하니 먹는 것만 조절하고 있을 때), 가장 힘든 건 한밤중에 허기가 찾아올 때다. 먹는 양을 줄이고 움직임을 평소보다 더 늘리다 보니 때때로 찾아오는 허기짐은 배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빨래하러 세탁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파트 뒤쪽에 열어둔 베란다 문틈으로 라면 냄새가 밀려 들어오더라. 하아, 도대체 누구냐. 누가 이 시간에 라면 냄새를 풍기며 내 속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냐. 화가 난다. 먹으면 그만인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마음은 곧 분노가 된다. 내가 안 먹는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먹는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물론 건강과 외모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 맘대로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온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슬프다.
나의 상황과 조금 다른 얘기지만, 주인공이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상황은 내가 경험한 다이어트의 시간과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까운 미래의 독일. 채식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개인의 기호에 맞게 먹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채식주의를 안 하면 이상한 인간 취급받는 분위기였다. 알 것 같다. 틀린 건 아닌데 틀렸다고 보는 시선들 말이다. 그런 분위기가 거기서 멈췄다면 다행인데, 이미 세상이 달라졌다. 정육점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몇 개 안 남은 정육점은 유해시설로 분류되었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정육점이 유해시설이 될 수 있느냐고?! 주인공인 ‘나’는 육식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지만, 자신을 미개인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육식을 끊어보기로 한다.
채식주의 생활에 들어간 ‘나’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렇게 바뀐 세상에 일원으로 인정받는 건 쉬웠으나, 그의 몸은 폐허가 되어갔다. 육식의 금단 증상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머릿속에는 고기 생각으로 가득했다. 눈앞으로 헛것이 보이는 것은 일상이고, 치아도 빠졌다. 고기가 채워주던 단백질이 부족해서 그런가. 얼마나 고기가 그리웠던지, 누가 먹다가 땅에 떨어트린 소시지가 그의 시선을 한참 붙잡기도 했다. 갑자기 채식만 해서 그런지 왜인지 똥 싸는 것도 문제가 생겼다. 이상하다. 나는 변비가 찾아오려고 하면 일부러 채소를 더 먹고 공복에 차가운 우유도 때려 넣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갑자기 바뀐 채식의 삶으로 똥 싸는 게 어려워졌다니. 갑자기 채식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먹는 걸 조절하기 어려웠을 때 단식원에 들어가 볼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혼자서 이 조절에 성공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채식주의 세상에 속하고자 애쓰던 그는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가 공유해주는 정보를 참고해서 채식 생활을 잘 이뤄내고 싶었다. ‘톰 두부’는 ‘나’에게, 이 위기를 견디는 방식의 하나로 육식이 그리울 때마다 글로 써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먹지 못하는, 육식으로 가득했던 삶의 즐거움을 글로 적어보면서 상상으로나마 섭취해보라는 의미인가. 어쨌든 뭐든 이 위기를 넘기는 방법이 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점점 ‘나’에게도 채식이 익숙해지는 듯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육식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오를 거로 믿었다. 남편의 육식을 이해하지 못해 떠난 아내도, 회사의 동료 속에도 다시 속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왕따 취급받는 삶은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좋았어. 이제 ‘나’도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어. 성공의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목표를 향해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을 때. 그 믿음을 훼손하는 무리가 찾아오는 건 다이어트의 순간과 닮았다. 식사 조절에 내 몸이 익숙해질 무렵, 줄어든 식사량이나 칼로리 낮은 음식 섭취에 적응되어 안심할 때, 한밤중의 라면 냄새처럼, 어느 상가 근처를 지나다가 달콤·짭조름한 갈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처럼, 나의 뇌를 뒤흔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라면 국물 한 입만, 잘 익은 갈비 한 조각만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미치겠다. 이미 아는 맛이라 견디는 게 더 힘들다. 주인공인 ‘나’에게도 라면 냄새, 갈비 냄새가 찾아왔다. ‘톰 두부’가 비건 친구들을 앞세워 채식주의를 주도하려고 했다면, 또 다른 토론의 장에서는 ‘육수맛내기69’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는 인물 ‘베르트’가 채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육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나’는 베르트를 만나고 채식주의를 중단하기로 한다. 채식주의가 선전하는 좋은 의도를 믿지 말라면서 그가 권하는 육수 한 잔에 마음이 요동친다. 우리가 혹한 채식주의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면서 속지 말라고. 동물의 존재 이유가 육식주의자를 위해서라나 뭐라나, 비타민이나 두부로 육식을 대신하며 채식의 건강함을 말하는 게 특정 회사의 배를 불리는 계략이라는 듯이 말하는 베르트의 언변에 ‘나’의 몸은 다시 육식의 세상에 푹 담긴다.
‘나’는 어떻게 변할까. 주인공이 채식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이유도 괜히 억울한 마음이 컸지만, 다시 육식의 세상으로 뛰어든 주인공이 어떤 삶을 또 만들어갈지 궁금했다. 이미 아는 맛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고기를 굽고, 맛있게 적당히 익힌 고기를 씹는 식감, 잘 어우러지는 소스를 얹어서 한입 베어 물면 입에서 녹아내리는 그 맛. 아.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나’는 이 즐거움을 나만 느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기와 같은, 채식주의를 하다가 육식주의자로 개종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가 베르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스러운 채식주의에서 행복을 되찾은 육식주의자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 자기와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공감하면서.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새로운 육식주의 신도의 전도에 성공하면서, 이제 그의 모든 삶은 육식주의로 가득 채워졌다. 다시는 과거로, 사람들의 시선에 총을 맞으면서 견뎌냈던 채식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리. 절대.
주인공의 육식주의는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혹시나 다른 채식주의자들이 그를 공격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채식주의자들은 돌아선 그의 육식주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그의 사회생활이 예전의 일상으로 정상으로 여겼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 같은 독자의 이런 평범한(?) 궁금증이나 결말을 깡그리 무시한 것처럼, 전혀 다른 반전을 내놓음으로써 뒤통수를 갈겼다. 아니, 이럴 수가! 정말이지,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이었나? 아니,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이런 반전이 가능하구나. 이 배신감, 이 분노를 책임지라고. 아아아아아아악~~!!
채식이냐 육식이냐 그걸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재배하듯 키워지는 가공육의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 해야 하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극과 극으로 치달을 필요도 없고, 최소한 각자가 바라는 식습관의 방향, 육식이든 채식이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맞는 거 아닌가? 타인이 나의 식탁 위 음식을 정하거나 방향을 정하는 건 아니어야 하니까. 그래도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육식과 채식은 공존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데, 그 육식의 식탁에 오르기 위한 고기들을 어떻게 키워내고 가공해야 하는 게 맞는 방식인지 고민할 필요는 있겠다. 이 소설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결론처럼, 그들 모두 옳습니다.
“부탁입니다. 제게는 창살 밖의 자유로운 삶이란 없습니다. 저 밖에서는 두 번 다시 안전해질 수 없을 겁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길을 건널 수도, 레스토랑에 갈 수도, 이 세상 어느 간이식당에서 먹을 수도 없을 거예요. (중략) 너무나 모순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들 모두 옳습니다.” (12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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