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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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마을이 한 가족처럼 지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분위기다. 남의 집 창문 너머의 일을 모두가 아는 세상, 마을 사람 전체가 오지라퍼가 되어 남의 삶에 함부로 침범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혹자는 관심이라고, 서로서로 좋은 마음인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갑지 않은 엮임이다. 이 소설을 읽고 보니,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왜 마을 사람들이 한 사람의 감정을 다 안다고 말하며 쥐고 흔드는지 알 수 없어 분노가 치민다. 동생을 잃은 슬픔을, 아직도 이 사건이 개운하게 해결되지 않은 답답함을 당신들이 아느냐고 욕하고 싶기도 했다. 무엇을 숨기고 있기에 온 마을이 나서서 이 사건을 감추려 드느냐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왜 그렇게 지내왔는지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 돕고 사는 인간의 매력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날은 트레이시가 사격대회에서 일등을 한 날이다. 동시에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동생 세라가 일부러 져준 것을 안 트레이시는 화가 났지만, 빗길을 뚫고 혼자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갈 동생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곧 대학에 입학할 동생이지만 항상 걱정스러웠다. 위험하니까 국도가 아닌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세라는 국도로 향했고 집에 가던 길에 실종되었다. 도로 한쪽에는 세라가 몰고 가던 트레이시의 차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세라도, 세라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곧 마을에서는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나왔지만, 왜 이제야 다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까? 트레이시는 언제나 의문을 품어왔다. 이 사건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고, 에드먼드가 범인이 아닐지 모른다고, 마을 사람들이 뭔가를 숨기고 믿어왔다. 그 와중에 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세라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화학 교사였다가 형사가 된 트레이시. 동생 사건 때문에 형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 세라가 발견되거나, 이 사건을 다시 처음부터 확인하고 수사해야 할 때, 바로 지금이다.


에드먼드 하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된 이유가 뭘까? 그는 의심할 게 너무 많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니 구속할 수도 없었다. 뒤늦게 목격자가 나타나고 온갖 증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이 되자 그는 세라 실종(살인)사건의 완벽한 범인이 된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왜? 그는 끔찍한 성범죄 전과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이 된 것 같아서 트레이시는 그의 재판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다. 앞선 사건에서도 그는 강간범이었지만 가석방되었고, 그에게는 강간범, 전과자, 성범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가 세라를 해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지만, 법은 언제나 유죄의 증거가 바탕이 되어 판단해야 했으니. 형사로 살아가면서 트레이시의 눈에 그의 유죄가 더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공정하게 재판받지 못했다고, 그가 과거의 범죄 때문에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법제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유명한 법률가 윌리엄 블랙스톤 경의 말처럼, 무고한 죄인 한 명을 만들기보다는 범법자 열 명을 놓치는 편이 낫습니다. (353페이지)


이미 구속되어 20년간 교도소에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의 유죄 여부를 따지는 게 트레이시에게 중요했을까? 나는 그녀가 그를 교도소에서 꺼내주고 싶은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무죄 증명에 왜 그렇게 애쓰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가 바라는 건 그의 무죄가 아니라 20년 전의 그의 재판이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가 범죄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는 것처럼 재판이 진행된 것을 되돌려놓고 싶었던 거다. 그 후에 그녀가 바라는 일. 세라 사건을 제대로 다시 수사하여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녀는 목적에 다가간다. 에드먼드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세라 사건의 조작된 증거와 진실에...


그래서 결말이 어땠냐고? 세상에나.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소름에 닭살이 일어났다. ‘혹시나하는 호기심은 설마싶은 불안으로 바뀌었고, ‘진실은 때로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가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의 분량 절반이 스릴러물로 채워지고, 후반부는 법정물로 채워진다. 점점 긴장감은 고조되고, 마을 전체가 감추는 듯한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갈증으로 목이 마르곤 했다. 그 안에서 여러 가지 감정과 분위기가 이 소설을 대신 말하는 듯하다. 가족을 잃은 이의 상실감을 공유하고, 과거 범죄자였다는 이유로 새로운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부당함을 인지하며 새롭게 접근하는 일, 법의 판단 기준에 증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안에서 계속 등장하면서 시선을 붙잡는 것은, 시애틀의 강력반 형사 트레이시가 맡은 사건이었다. 아무리 수사하고 증거를 수집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미제 사건으로 넘어가서 오랜 세월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갇혀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답답하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세라 사건과 겹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데, 독자의 마음 한구석에는 그녀가 이 사건 역시 세라 사건이 진실을 드러낸 것처럼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게 한다. 모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설령 그 진실을 우리에게 줄 것이, 개운함이 아니라 고통일지라도 말이다.


TV에서 형사나 프로파일러가 등장해 과거의 사건을 들려준다거나, 새롭게 해결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흥미롭게 들리곤 했던 과학수사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니, 정말 과학수사의 발전은 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걸 느낀다. 세라 사건 역시 그때는 증거를 눈앞에 두고도 확인할 수 없던 것들이 20년의 세월을 건너와 다시 확인해보니 정확하게 밝혀지곤 한다. 인간의 기억력으로 분명해질 수 없는 것이 과학수사가 바탕이 되어 증명한다. 그때는 단순한 증거에 불과한 것이, 얇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담고 있는 많은 진실이 밝혀졌을 때의 짜릿함이란!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미 8권이나 출간되었다고 하니, 다음 이야기도 곧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13년 동안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작가의 이야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트레이시가 고군분투하던 니콜 핸슨 사건은 물론이고, 어떤 사건이든 끝까지 파헤치며 진실에 다가가는 끈질김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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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12-31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마을 사람이 짜고 숨긴 일이 드러나면 트레이시는 괜찮을지... 한번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범인이다 하면 안 될 듯한데, 그럴 때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걸 과학수사로 알게 되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거기에만 매여서 잘못 보기도 하더군요 여기에서는 과학으로 그때 일이 밝혀지는군요

구단 님 2021년 마지막 날 편안하게 보내시고 새해 잘 맞이하세요


희선

구단씨 2021-12-31 22:42   좋아요 0 | URL
마을 사람 전체가 속인 건 아니에요. 몇몇이 숨긴 진실이 사건의 열쇠가 되는 거죠.
하지만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의 일을 다 알고 지낼만큼의 분위기였으니,
전체적으로 당사자만 뭔가를 모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소설의 결말, 범인을 알고 나면 뭐가 옳을 걸까 많이 고민하게 되는 듯합니다.

추워지네요. 연말연시 평온한 날들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