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을 받았다. 당장 무엇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건 아니다. 시간이 있을 때 이 교육에 참여해보고 싶었다는 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이 교육을 받게 된 이유를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언젠가 이 교육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건 아직 실습을 마무리하지 않았기에 지금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애가 있는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에 속한 내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함으로써 좀 더 따뜻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갑자기? 내가 이 교육을 받아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었다. 갑자기 왜? 사실 몇 년 사이에 겪은 일들로 장애인활동 지원사를 관심 두게 되었다. 그 역할은 말 그대로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 건데, 그에 앞서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언젠가 그 일을 하게 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있어서였다.


재작년 겨울에 사회복지 실습을 지역아동센터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장애 비장애 아동 통합 보육을 하는 곳이었다. 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에서 이곳으로 아이를 보내기 위해 대기 번호를 걸어놓아야 할 만큼 지원자가 많은 곳이었다. 그만큼 장애 아동 돌봄을 하는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게 되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어려운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었다는 게 맞겠다. 처음 접하는 장애 아동과 소통하는 것부터 그 아이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니 대처하는 것도 너무 서툴렀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배워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장애인에 관해 더 알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애 아동을 센터로 데리고 오는 장애인활동 지원사 몇 분과 이야기하면서, 그때야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역할을 처음 알게 되었다. ,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이들에게 활동지원사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거기에 몇 가지 더 이유를 찾자면, 시아버지는 시력을 거의 잃어서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옆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시어머니를 보게 되었다. 몇 년 전 무릎 시술을 받으면서 몸의 불편함이 늘어가는 엄마를 보면서도 느끼는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몸의 불편함, 혹은 신체의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의 불편함으로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저절로 시선이 갔다. 그들을 동정하거나 차별하기 위한 시선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타인을 더 이해하고 싶은 바람과 나를 비롯해 나의 주변에 있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그러니까, 백지상태에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싶은 작은 마음이라고 해두자.


작가 엄정순의 그림책 코끼리를 만지면과 뇌 병변 장애가 있는 정영민의 에세이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내가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을 받는 4일 내내 나의 가방에 함께 있었다. 강의 들으면서 틈나는 대로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듣는 내용이 얼마나 생생한 현실인지 와 닿곤 했다. 엄정순 저자는 시력을 잃은 아이들에게 코끼리를 직접 접하고 만질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아이들이 손으로 보는 코끼리는 정말 다양한 모습이었다. 생각할수록 궁금해져요. 코끼리를 직접 만나고 싶어요.”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으로 이 그림책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꼈다. 본 적이 없는 코끼리,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만지고 느끼는 것만큼 코끼리의 모습이 선명해질 수 있을까? 저자의 시도가 너무 위대하게 보였다.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고 소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었다.


특히 정영민 저자의 책은 내가 들은 강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기도 했고, 장애인으로 살면서 저자가 겪은 많은 일이 강의를 듣는 동안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장애를 여전히 불행하고 나쁜 일로,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여긴다. 일상을 꾸려나가는 보통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도 보통 사람이다.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 형편껏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그냥 보통 사람.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9페이지)


정말로, 평범했다.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은 총 5일 동안 4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실습은 따로 진행된다. 특정 자격증이 있으면 나흘 동안 32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나는 나흘 동안 32시간의 교육을 받았는데, 오전 오후 각 4시간씩, 모두 여덟 명의 강사가 강의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각종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셔서 강의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장애인이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무선 마이크를 끼고,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시간을 충분히 소화해냈다.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거나, 이십 대의 건장한 청년으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거나, 선천적 신장 장애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거나, 장애인 거주 시설을 운영하는 담당자이거나. 내가 만난 강사 모두가 장애인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말하고 원하는 것은 정영민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일상을 꾸려나가는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라는 거다. 몸이 불편하다고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날들이었던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너무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그 보통의 삶,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을, 누구나 바란다.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거였다. 소위 잘 사는 나라들에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아?’ 잘 산다고 장애를 갖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장애를 덜 갖게 지원해주니까 장애인이 적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을 한 건지 바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등록제다. 의사의 진단서와 온갖 서류를 갖춰 제출하고 심사받아서 통과해야만 장애인으로 등록된다. 이렇게 말하니까 쉬운 과정 같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노인 장기요양등급 받는 과정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비슷하거나 더 힘들다고 생각되더라) 나에게 장애가 있다고 증명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다는 게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복지가 잘 된 나라들은 일찌감치 장애를 위한 지원이 있고, 장애인 등록도 우리나라보다 수월하단다. 그러니 몸의 불편함을 알게 되면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국가의 지원으로 이 불편함을 치료하면서 한 사람의 독립적인 삶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장애인이 다른 나라보다 적은 게 아니라, ‘등록된장애인 숫자가 적다는 게 진실이다. 의료적 기준에 따라, 국가가 인정하는 장애인이 적을 뿐이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제대로 치료나 지원받지 못함으로써,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고, 한 사람으로 온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 아닐까.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장애는 설명되지 않거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이나 거북함에 대해 증명을 요구하면 대부분 추상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장애는 상세히 기록될 수 없는 불편이다. 증명도, 명료한 판단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명료하고 확정적이길 원한다. 정상성에 대한 환상이다. 현실에 우영우 변호사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91페이지)


너무나 귀한 시간에 눈물이 날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특히 현재 장애인 단체의 대표로 있는 한 분의 강의가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정영민 저자가 말하는 그 평범한 삶을 얻고 얼마나 귀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 말하는 표정에서 세상 더 없을 기쁨을 보았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전동휠체어에 의지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그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위해 큰 노력을 하면서 이 자리에 있다고 했다. 엄마가 아들을 놓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업고서 등하교시켰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이들과 연결되었고, 단체까지 만들어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대학을 졸업했고, 여러 가지 활동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둘 다 몸이 불편한 상태로 결혼생활을 이어가다가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아내를 단념시키느라 힘들었는데, 장애인활동 지원사 정책이 시작된다는 얘기에 용기를 내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몇 번의 유산이 있었지만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고, 아들이 태어나고 3개월 후부터 장애인활동 지원사의 도움으로 믿고 양육하게 되었다고. 그 아들이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때 인연을 맺은 장애인활동 지원사는 지금도 이 가정에서 이모라고 불리며 가족 그 이상으로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좁은 집에 휠체어 두 대가 같이 움직이기 어려워서 주택을 개조해서 이사하고, 아들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그 아들은 자기가 성인이 되면 이모에게 어떻게 잘하고 싶은 부모에게 이야기를 날들을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차별을 겪으며 살아오기도 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들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우리 지금 행복하지?” 이 한마디에 강사의 말을 듣던 수강생 모두가 손뼉을 쳤다. 당신의 삶을 너무나도, 미치도록 응원한다고, 말이 더 필요 없었다.


행복이 뭘까.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행복한 것도 같고, 눈앞에 놓인 걱정거리에 한숨이 가득하기도 하고. 마음이 어느 정도 놓여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강사의 아내가 남편에게 행복하다고 건네는 말을 듣다가, 눈물이 흘렀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어느 날의, 누구네 집 일상으로 보였는데, 누군가는 그 환경을 만들기까지 애써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꺼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내가 그 교육을 한번 받았다고 그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장애인의 삶에 완전히 들어갈 수도 없다. 다만, 여러 방향에서의 장애 이해 교육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이해의 과정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소수자를 대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글쎄, 이게 나이 들어가는 마음인 건지, 요즘에 주변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보게 되면서 생긴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사회가 나 혼자서 잘 났다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거다. 공존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새삼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누구에게나 장애가 생길 수 있고,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바람으로, 그저 평범한 삶을 바라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먼 이야기도, 그저 꿈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고 연결된다. 장애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 어쩌면 그 모든 문제의 핵심 열쇠가 장애일 수도 있다. 어떤 장애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새롭게 재편될 수 있다.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182페이지)


장애인활동 지원사 교육이 무료는 아니다. 일정의 비용을 내야 한다. 정해진 인원이 있어서 일찍 마감한다고, 교육을 시작하기 한 달도 훨씬 전에 수강료를 완납하라고 했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 사이 마음이 바뀌면 취소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다가 개강 날짜가 되었기에 그냥 수업에 참여했다. 너무 좋은 내용의 시간이었기에 취소했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는 사람과 함께 이 수업을 들으면서 내내 말했다.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이 돈이 아깝지 않은 귀한 시간이었다고. 많은 사람이 이 교육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조금 가까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지난번 요양보호사 강의를 들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이 강의까지 듣게 되어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그 흔한 말이 얼마나 가치 있는 말인지 다시 가슴에 새겼다. 보통 사람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에 모두가 귀를 열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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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내가 이 자격증을 갖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머릿속에서 이게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 잠깐 머물기도 했다. 그럼 내가 이 분야로 일을 하려고 그랬을까 싶지만 딱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 일을 모르는 거라서, 언젠가는 내가 이 자격증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뭐든 배우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보통은 2~3개월 과정으로 이론 수업을 듣는데, 나는 다른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2주 정도 이론 수업을 듣고 하루 실습을 하고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초스피드로 수업을 듣다 보니 따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많았지만, 배우는 동안 재미있었다. 이미 내가 현실에서 겪은 사례도 많았고, 요양보호나 간병, 장기요양제도에 관한 여러 가지 행정적 내용에 관해 알게 되는 부분도 유용했다. 자격증 취득이나 시험 준비 여부를 떠나서, 시간이 되면 이 수업은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다. 정말 일상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처음 학원에 등록했을 때 사전 조사를 하는데, 이 자격증 취득 목적을 적으라고 했다. 다양한 답변 중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가족 요양이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니, 어느 날 엄마가 지금보다 더 몸이 불편해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면, 막상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스럽기만 할 것 같다. 이미 아버지 때 한번 경험했었고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피해갈 수 없다면 이 위기를 잘 넘어가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었다.


대만의 한 만화가가 12년 동안 부모님을 돌보며 임종을 지킨 과정을 담아낸 만화 나의 독박 간병 일지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간병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찾아보던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부분은 독박이란 말이었다. 누구나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고, 간병이 필요한 상황 역시 너무 많았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다만, 독박이란 단어가 주는 우울과 분노는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었기에 듣고 싶었다.


나도 비슷하긴 하지만, 저자에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간병인의 삶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암에 걸리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저자가 부모의 주돌봄자가 되었다. 그 중에서 갑자기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힘들었다고 한다. 육체적 힘듦과 정신적인 피로감은 저자 자신의 일상도 피폐하게 만들었다. 고통에 뒤척이는 환자 곁에서 함께 잠 못 드는 시간을 보냈고, 환자가 느끼고 분출하는 분노까지 받아내야 했으니 오죽했을까.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투명한 상자 안에 갇힌 것 같다고 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어느 날 나에게도 찾아온 갑작스러움이 이 상황과 다르지 않았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심근경색으로 입원하게 된 아버지는 다른 환자들보다 상태가 나빴다. 오래된 당뇨병과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병원에서 금지하는 것만 골라서 하는 아버지의 몸은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심근경색이 왔으니,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중환자실에 있던 시간이 길었다. 어느 정도 회복되고 요양병원으로 옮기기까지의 대학병원 병실에서의 생활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아버지가 대학병원 퇴원과 동시에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내가 병실을 탈출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왜 누군가에게 간병은 독박으로 찾아올까. 각자 나름의 사정은 있다. 저자의 오빠들은 따로 살고 있었고 집에 잘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와도 손님처럼 잠깐 머물다 갔다. 저자의 언니는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언니가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저자와 교대하듯 간병을 했다. 저자의 엄마는 옆에서 같이 아버지를 간병할 수 있었지만, 엄마 역시 암 치료를 받는 환자였다. 그러니 아버지의 간병은 대부분 저자의 몫이었고, 또 그게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받아들이면서 간병 생활을 이어나갔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부모와 아들 딸, 이렇게 다양하게 가족이 구성되어 있는데, 왜 돌봄이 이 가족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역할일까. 저자의 말처럼, 아마도 시대적 배경이 그 이유가 될 듯하다. 여성의 가사 부담이 컸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픈 가족이나 어른을 간병하고 책임지는 돌봄자 역할은 딸이나 며느리가 맡았던 것처럼, 많은 가정에서 아직도 이 분위기는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우리 집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은 직장을 옮기거나 결혼을 하면서 집을 떠났고, 부모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살았던 자식은 나였다. 두 사람 몫을 해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엄마의 고됨을 같이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노인이 된 엄마가 노인이 된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으니 당연하게 내가 그 몫을 해야 했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보니 나에게 남은 건 우울감과 분노였다. 가족이니까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왜 이 고됨을 나 혼자 해야 하는가 싶은 마음이 뒤섞였다. 그렇다고 다른 형제자매가 모른 척한 건 아니다. 나름의 도움이 되어주었지만, 이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오롯이 나와 엄마였으니. 엄마와 나는 마치 전쟁터의 전우처럼 지냈다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 조금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환자였던 아버지의 자리에 엄마가 있고, 나는 여전히 이 가정의 돌봄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나의 독박 간병 일지의 저자 미아오가 아버지를 보내고 다시 어머니의 돌봄자가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보니, 현실적으로 간병을 말했을 때 보답은 없고 고통과 상처만 가득한, 결과가 정해진 여정이라는 표현도 있더라. 돌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쉽게 호전되지 않고, 어쩌다 한번 오는 다른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듣는 게 일쑤라고. 그때마다 상처는 배가 되어 고통스럽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지저분하게 이게 뭐냐고 정리 좀 하라는 말 한 마디에, 도대체 정리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던 적도 많다. 늘 잠이 부족해서 어지럽고,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어디 머리 기대고 눈 좀 붙일 데가 없는지 찾는 게 일인데, 이 공간에 스며들지 않은 사람이 쉽게 뱉는 말에 받는 상처는 육체적 고단함보다 더 고통스럽게 가슴에 꽂힌다. 이 돌봄의 역할에 같이 참여해야 할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거의 일 년에 한번 정도 병원생활을 하게 되더라.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불편하고, 멀쩡하게 잘 걷다가 넘어져서 손등 뼈가 골절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냥 웃음만 났다. 별 수 있나, 병원에 갈 짐을 챙겨야지. 여행도 잘 안 가서 구석에 놓아둔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 항상 병원이 춥다고 말하는 엄마이기에 1인용 전기장판과 작은 담요 한 장, 멀티탭, 일회용기, 생수, 각티슈와 물티슈, 속옷과 수건 등 이제는 익숙한 입원 물건들을 챙겨 넣고 캐리어 지퍼를 닫곤 했다. 올해가 시작하자마자 또 병원행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아서 지켜보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다행인가. 아니면 언제 또 나빠질지 몰라서 가슴 졸이는 시간을 지내는 게 더 힘든 일인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저자의 꿀팁이 유용하니, 각 가정에서 잘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첫째, 부모님이 건강할 때 진지하게 가족회의를 해라.

(쉽지 않다. 의견도 다 다르고 사는 형편도 달라서 해결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미리 이야기를 해 두어야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덜 당황하게 된다. 완벽한 해결 방식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될 테니 평소 이 부분에 관한 의논은 자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둘째, 쑥스럽더라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라.

(, 진짜 쑥스럽긴 하다. 그래도 좋은 말,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나도 아직 사랑한다고까지는 말 못 하는데, 약간 느끼한 말도 곧잘 한다. 진심은 말하지 않으면 그대로 잘 전달되지 못한다.)

셋째, 부모님의 정기 건강검진을 꼭 챙겨라.

(12월 말에 엄마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상소견이 보여 2차 검사까지 받았다. 조직검사를 받으러 가야 할 것 같아서 대학병원에 미리 예약까지 해 놨었다. 다행히 2차 검사에서 더 나쁜 게 보이지 않아서 대학병원 예약을 취소했지만, 이미 안 좋은 걸 확인했으니 주기적으로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검사를 받고 안 좋은 결과를 확인하고 또 다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피가 마른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직장인이 아니어도 2년에 한 번씩 기본 건강검진 거의 무료로 받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꼬박꼬박 챙겨서 건강 상태 확인하자.)


간병의 경험담을 통해 이미 마음 다짐을 했어도, 간병을 지속하기 위한 자세를 만든다고 해도, 어디 이 간병이란 놈이 쉽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피해갈 수 없다면, 독박이든 함께하든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다면, 좀 더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미 저자와 같은 시간을 겪어온 내가 느끼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했다. 저자의 경험담이, 저자의 방식이 완벽한 답은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같은 경험을 해야 한다면 먼저 한 사람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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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림에세이 ##책추천 #돌봄의역설 #가장느린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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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3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16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인과 약속을 하고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신호등 위에 쌓인 눈을 맞았다.

얼굴로 녹아내리는 눈 모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데,

너무 춥다...


아침 빙판길에 차조심을 얘기하고,

한낮의 녹아버린 눈에 미끄러워 넘어지지 말라고 얘기하고,

저녁이 되면서 다시 얼어붙는 온 세상에 더 추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녹색광선 책이 예뻐서 사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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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5-01-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광선이 책 예쁘게 만들어요. 셰리 저도 반한 책!

구단씨 2025-01-08 19:20   좋아요 0 | URL
^^ 네. 책이 너무 예쁘고 손에 잡히는 감촉도 좋아요.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때로 법이 내리는 그 처벌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분명 법의 기준으로 판단했을 테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에 서서 충분히 변호했을 테고. 살아가면서 배운 인간의 자세가 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도 하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촉법악법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건가.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긴 촉법소년은 촉법소년이 저지르는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촉법소년법이 정말 실수(?)였다고 말하는 어린 인격을 잘 성장시키고 있는지 짚어보게 했다. 그렇다고 촉법소년법을 이용한 범죄가 반드시 이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기 이익을 위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눈감아주려는 계산하는 어른들의 욕심도 포함된다. 그게 내 자식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늦는다. 모든 것이 다 끝난 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레퍼토리에서는 침묵에 집착하는 소년 범죄자가, 이미 저지른 범죄로 처벌을 받고 나왔는데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원에서 2년 형을 살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또 저지르는 범죄. 사람을 죽이고 협박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시끄럽다는 게 전부다. 소년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여성 피해자는 오히려 덤덤하다. 자기를 괴롭히는 이들을 소년이 죽여주었는데, 그렇게 침묵을 외치던 소년은 점점 말이 많아진다. 여성은 개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 같은 법이라고 하지만, 소년은 교정교육을 비웃으며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다. 이 범죄가 소년의 마지막 범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무엇이 잘못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이 소년에게 주어진 처벌이 전혀 교정교육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촉법소년법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변호사 아버지를 둔 소년이 일부러 대상을 정하고 친 장난에 두 명이 죽는다. 이 녀석이 얼마나 영악한지, 아니면 변호사 아버지가 하는 짓을 보고 배운 건지 뭔지, 사고를 내고서도 자기 빠져나갈 궁리부터 한다.(네메시스의 역주) 원래 촉법소년이 무적이긴 한데 증거까지 없으니 완전히 최강 무적이 된 거지. 나를 누가, 어떻게 처벌하겠어. 안 그래?” (네메시스의 역주95페이지) 이 단편은 법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던 한 아버지의 질주로 시작된다. 감히 내 아들에게 회복될 수 없는 장애를 만들어? 그 분노를 비웃기라도 하듯 차분하게 그 질주의 현장을 지켜보는 소녀가 있다. 누군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죄하지 않는다면, 남은 건 복수뿐이라는 감정적인 판단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는 제대로 살고 있으니 과거 따위는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과거는, 진심 어린 뉘우침 없이 지나온 과거는 현재의 삶에 깊숙하게 파고들기도 한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의 이야기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채로 살아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족발 배달을 나갔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된 아들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경찰조사 역시 이대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법에 맡길 게 아니라 직접 이 사건을 판결하기로 마음먹은 아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역지사지. 같은 경험을 해봐야만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는 참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식을 지키려고 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되돌아왔을 때, 그때는 많은 것이 늦은 때다.


인상적인 작품이 정해연 작가의 징벌과 소향 작가의 OK목장의 혈투였다. OK목장의 혈투는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개입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여기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좋게 좋게뭐를 좋게 좋게하라는 말인가. 흔히 말하는 같은 동네 사람끼리 이러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그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좋게 좋게했더니 더 심하게 되돌아온 경우도 많이 봤고, 가해자들은 전혀 개선의 의지가 없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한 후로 다짐했다. 아는 사이라고 해서 판단의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 끈끈하게 연결된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끝도 없는 배려를 받는다. 그것도 공평하지 않다. 힘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를 흔들고 조정하며, 그 힘을 가진 이들의 자녀가 어른들의 축소판인 아이들 사회에서 똑같이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는 이가 없고, 그 잘못을 덮어주기에 급급하여 썩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곳. 이런 곳에서 그 어른들의 손길로 키워지는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온 마을이 합심하여 키운 아이는 더는 아이라고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며, 아이 앞에서 우쭈쭈 재롱만 피우던 부모가 후회할 때가 머지않은 것만 같다.


요즘 자주 보는 <이혼 숙려 캠프>에서 역할극 시간을 가장 기다린다. 많은 부부가 그들만의 이유로 이혼을 고민하는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 그대로 마주 보게 하는 방식이 역할극 아닐까 싶다. 내가 저랬다고? 내가 할 때는 몰랐던 태도나 말투가, 다른 사람이 내 모습을 표현하는 걸 보고 그때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거다. 보통 거울 치료라고 하는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출연자들도 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해연 작가의 징벌에서 보여주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위에서 말했지만, 역시나 역지사지가 답인가. 똑같은 경험을 해봐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구나 싶었다.


너희 이거 범죄야, 불법이라고!”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여자애가 히죽 웃었다. 뒤에선 다른 아이들도 진솔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서로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긴 머리 여자애가 말했다.

우린 촉법소년인데?” (징벌46페이지)


징벌의 주인공 진솔은 배우다. 정체 모를 이들에게 납치되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가학적인 폭행을 당한다. 처음에는 무슨 스토커 범죄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배우라는 신분을 이용해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진솔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었다. 이 지랄 같은 성격은 지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학교 폭력을 일삼았던 진솔이, 가해자는 잊었던 그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가 있다. 소설은 촉법소년 범죄가 한 편 더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고민했던 촉법소년 문제의 답을 확인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이야기였다. ‘2045, 청소년들의 비행이 도를 넘기 시작하자 촉법소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결과 제11호 처분, ‘정신 징벌이 제정(65페이지)되기에 이른 거다. 정신 징벌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한다. 그 충격은 실제 당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 때문에 정신을 놓는 경우도 있고, 극도의 불안 장애를 얻거나 사회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되기도 한다. 거울 치료만큼 확실한 치료 방법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들이 처벌받는 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여전히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으나, 어떤 식으로든 한 가지 의견을 선택해야 한다면 징벌 연구소장의 한마디가 더 와 닿는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징벌65페이지) 여전히 우리에게 범죄 처벌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어렵다. 법으로만 판단해도 만족스럽지 못할 거고, 우리 안에 남은 많은 감정, 특히 분노와 억울함은 쉽게 해결되지도 않을 거다. 많은 부분이 소설이니까 가능한 상황이겠지만,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판결에 직접 응징하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한 인격으로, 아직 책임능력이 부족해서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하는, 보호처분으로 대신하여 한 인간의 올바른 성장을 바라는 처벌을 내리는 일. 취지도 이해하고,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만든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 법을 이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매체에서 보도되는 많은 사건, 이슈화되지 않았어도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면서, 정말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고민할 일이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중학교 두 곳, 초등학교 한 곳이 있다. 이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몰려나오면서 보이는 말과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많다. 아파트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니 한밤중이나 새벽에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든 아이들의 고성도 들리곤 한다. 근처 골목에서 또래 아이를 폭행하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내가 보고 느낀 많은 장면을 다 옮길 수는 없으나, 한 가지 생각은 계속된다. 이 아이들이 정말, ‘아이들일까.










#촉법소년 #정해연 #소향 #윤자영 #김선미 #홍성호 #네오픽션

#소설 #한국문학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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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기지 말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서 읽던 곳을 표시하지도 말라. 책머리를 말지 말고, 책을 베지도 말며, 팔꿈치로 책을 괴지도 말고, 책으로 술 항아리를 덮지도 말라. 먼지 터는 곳에서는 책을 펴지도 말고, 책을 보면서 졸아 어깨 밑에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서 접히게 하지도 말고, 던지지도 말라.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지 말고, 힘차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며, 책을 창이나 벽에 휘둘러서 먼지를 떨지도 말라.”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이덕무, 솔출판사 1996)


책을 이렇게 여겨야 하는데, 읽고 싶을 때 펼치는 건 좋고, 책을 두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애물단지 같고, 그렇다고 막 내다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진짜 아껴주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이 환경이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더라는...


지난달에 조경국의 책 정리하는 법을 읽고 있었는데, 신간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책(솔직히 책 정리는 포기한 상태라서 이런 책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 없다는?)을 읽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고, 그래도 이 작은 공간에 쌓아둔 책을 조금이라도 숨 쉬게 해주기 위한 뭔가 기발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기 시작했던 건 아닐지 추측해본다. 이제 와서 말이다. 제목부터 기대하게 만들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제시해 줄 책 정리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정리법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만 하는 건 아니겠지. 암튼, 그러다가 이 책을 읽는 중에, 이 책을 언급하는 다른 분들의 글이 이상하게 자꾸만 보이게 되는 터라(일부러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눈에 띄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책을 완독하고 할 말을 찾아야겠다 싶었다는 게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목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전자책으로 책장의 책을 바꿀 게 아니라면, 역시나 종이책은 보관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예전보다 종이책 사는 비중이 줄기는 했으나, 지금도 꾸준히 종이책을 사고 있고, 작은 책장에 꽂아둔 책은 늘 포화상태이다. 거기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까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오는데, 또 이런 습관(책 사고 책 빌려오고)이 고쳐지지도 않는 터라 다른 변화를 꿈꾸지는 않는다. 이런 패턴 안에서 집안을 조금 덜 어지럽히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이 그냥 또 한쪽에 잘(?) 쌓아두는 거라는 건 안 비밀이지만, 하아, 또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책을 들여오는 것만큼 이 집에서 내보내는 비율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가 추가되는 부분인 듯하다.


저자는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급기야 돈을 주고 사무실을 빌려 책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던데, 이 방법은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공간이 협소하다면, 내가 가진 책을 도저히 줄일 수가 없다면, 이 책들을 보관할 장소가 따로 마련될 수도 있다면, 그래, 나만의 공간을 꼭 내 집안에 마련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저자의 방법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주 잠깐. 지난번에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집 외의 다른 공간을 마련하자면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하고, 또 어느 분의 말씀처럼 같은 뜻을 가진 여러 명이 모여 얼마씩 갹출하여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소유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을 테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만 볼 수 없는 게 또 다른 문제들이 남겨져 있었으니, 그분의 말씀처럼 각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의미가 있을 거고, 공동으로 이용하자니 각자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소유하지 못할 수도 있고, , ...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나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도 잘 안 갈 것 같다는 거다. 이 작은 집 안의 작은 방에 만들어둔 서재도 하루에 한 번도 안 들어갈 때가 있고, 내가 읽은 책도 그 자리에 정리 잘 안 하고 아무 데나 던져둘 때도 있는데, 내가 마련하고도 이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돈 낭비에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 될 것이고, 내가 정리하지 않은 습관 때문에 다른 이용자에게도 민폐가 될 게 분명하여, 나는 저자처럼 따로 사무실 따위 마련하여 내 책을 보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 . 나 같은 인간에게는 이게 맞아.


다시 이 책 얘기를 좀 해보자면, 저자는 이렇게 책을 자꾸만 들여오니 장소 부족, 집 안 구석구석 책으로 채워 넣느라 거실도 이용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욕을 먹는 건 당연했고,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에도 책이 쌓여 있다니, , 이분은 어떤 대책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헌책방까지 열게 되었다니, 놀랍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책이 너무 많아 포화상태이고, 그 책을 팔기도 하면서 정리하고, 책이 많은 공간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헌책방도 책 정리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거였네. (저자의 말대로라면, 헌책방으로 큰 수입을 얻는 건 기대하지 마시고~) 하지만, 이 방법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헌책방은커녕 여기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기에, 아직은, 그래 아직은 이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게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저자는 보통 많이 구매하는 책장 대신 경량랙과 이케아의 빌리 책장을(경량랙은 지금 집 안 정리에 활용하느라 몇 번 구입했는데, 추가로 책장이 필요해지면 이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소장한 책 목록 정리할 수 있는 비블리(https://bibly.ai/) 앱도 추천해 주었다. 내가 가진 책 목록을 정리해 주는 것도 좋은데, 사실 나에게는 내가 찾는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책을 바로 찾을 방법이 시급하다.


이 책 안에서 뭔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책 정리하는 법을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책에 관한 다른 부분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을 옮길 때 박스보다는 보자기를 이용하는 게 낫고, 책 커버를 씌우는 것도 책을 잘 보관하는 방법이며,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도 언급한다.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 보다 보니, 나도 종종 이용하는 목공풀 바르는 방법도 있었고,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스테이플러 박는 방법도 있었다. 가정용은 종이 몇 장 박히는 스테이플러인데, 예전에는 페이지 벌어져서 페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책을 도서관으로 가지고 가서 큰 스테이플러 박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오래된 양장본은 세워서 꽂아두는 것보다 누워서 놓는 게 덜 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니, 책장 맨 아래 칸에 꽂아둔 두툼한 양장본을 편히 누워서 자게 해 둘 마땅한 자리를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서재의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조언하는데, 작가별, 장르별, 출판사별, 시리즈별, 색깔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방법은 새삼스럽지도 않기에 그냥 자기가 내키는 대로 정리하는 게 방법이지 않을까. 나는 딱히 어느 기준으로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 거의 세 부분으로 분류하여 꽂아두기는 했다. 맨 왼쪽(방의 안쪽)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장해 두고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 가운데는 세계문학을 꽂아두고 이 책들 역시 언젠가는 다 읽지 않을까 기대하며 남겨두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방문 쪽)에는 최근에 산 책 위주들로 꽂아 두었는데, 이 녀석들은 빨리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고,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여 빨리 이 방에서 내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꽂아두었다. 그럼 이렇게 책을 막 내보내면, 언젠가 또 이렇게 내보낸 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생기는데, 그때 또 한 번 방출 여부를 확인하고 고민한다. 먼저 도서관 비치 자료인지 검색해 보고, 도서관에 있는 책이면 바로 방출 상자로 넣어두고, 도서관에 없는 책이면 일단 다 읽어보고 내보낼지 말지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보류. 그럼 이렇게 내보내는 책은 또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도 세 가지로 정하게 되는데, 중고 도서로 판매하거나, 도서 기증으로 보내거나, 너무 오래되고 중고 판매나 기증으로 보내기에도 애매한 것들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보낸다. 이 책의 저자도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선물하거나 중고로 팔거나 기증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정녕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정리하지 않는 게 방법일지도. ㅎㅎ


아예 정리하지 않는 것도 저리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잡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정리하면 됩니다. 세상에 급한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아 포기한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애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책 정리하는 법, 117페이지, 조경국, 유유출판사)


이 방 안에 쌓아둔 책들이 그 양을 늘리지 않도록 신경 쓰자고 다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 같기는 한데 항상 불안하다. 책을 계속 사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책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결혼하면서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이 방은 오롯이 내가 가진 책들로 채워져 있는데, 사실은 아직 엄마 집에도 내 책이 남아 있다. ㅠㅠ 한 번씩 엄마한테 갈 때마다 필요한 책을 몇 권씩 들고 오기는 하는데, 그걸로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엄마가 이사를 하시거나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그날이 오기 전에 내 몫의 정리는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다. 엄마 집에 남겨두고 온 책의 대부분은 버려질 운명일 것 같지만, 그것도 진짜 이삿짐 싸는 수준의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결론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 얼마나 많은 책을 남겨두고 잘 정리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보다 더 적게 소장하는 법을 찾고 싶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살아갈 것 같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남긴 책을 정리해 줄 사람도 없을 테니.


나는 애서가도 아니고 장서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의 책(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보니 이 방안의 책은 5백 권 안팎일 것 같다)으로도 버거워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보다 더 많은 책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책을 많이 소장하는 사람, 책을 아끼고 보듬어주는 사람, 책에 마음을 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다들 그 책들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아껴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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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09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난 것 같아요.
요즘은 구매를 줄이고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이나 전자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어요
책이 쌓이지 않아야 집 정리가 되더라고요^^

구단씨 2024-10-13 22:53   좋아요 1 | URL
저도요. 한때 책에 집착해서, 읽기 위함이 아닌 눈앞에 두기 위한 마음으로 마구 사들였던 적이 있네요.
지금은 책 구매 욕심보다는, 님처럼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으로 읽거나 소장하고 싶은 책은 매달 한두권씩 구매하는 정도네요.
지금도 책 정리중이에요. 내보낼 것들 박스 하나 구해다가 차곡차곡 채워 넣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