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요양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봐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보내드릴 준비를 하라고. 멀리에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그 주 주말에 다 모여서 아버지를 보러 갔다. 그리고 이틀 후 새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시 가족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에, 이제 나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계시던 요양병원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었고, 미리 한번 상담받아본 터라 고인을 요양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확인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바로 화장 예약하고, 장례식장의 어떤 크기의 방을, 얼마짜리 꽃으로 장식할 것인지, 음식은 몇 인분을 시작으로 할 것인지, 나무젓가락 하나까지 다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관, 수의 가격까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한 사람을 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다 돈이었다. 정확하게는 얼마짜리 품목으로 이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만 원짜리 관보다 천 원짜리 관을 선택하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혼자 민망하기도 했다. 바로 화장할 건데 수의를 어느 가격대로 골라야 하는지 어려웠다. 음식 도우미는 우리 자매들이 해도 되는데 꼭 장례식장을 통해 고용해야 한다고, 하루면 충분한 인력을 3일로 계산해 줘야 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꽃장식을 해야 손님들이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일이 앞섰다. 웃음이 났다. 장례를 치르는데 이런 게 걱정할 일이었구나 싶어서.


그동안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문객으로 드나들었던 장례식장의 현실을, 실제로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식을 경험하고 보니 이런 생각만 남더라. 이렇게 장례식을 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법적으로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일이므로 고민할 게 없다. 문제는 장례식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었다. 다행인지, 우리가 이용한 장례식장에서는 외부 반입할 수 있는 품목이 있어서 미리 확인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필요 없는데도 장례식장 안에서 우리가 필수로 이용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음식 도우미, 기본적으로 주문해야 할 음식의 양부터 자잘한 용품들까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시간이 아니라 날짜로 계산되는 대실료였다. 48시간도 안 되는데 꼬박 3일의 비용을 내야 하는 방식도 아까웠다.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장례식의 씁쓸한 현실로 남았다는 것. 흔히 상술이라고 하는 게 여기서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었다.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일이 꼭 이런 방식이어야만 하는 걸까?


슬기로운 장례문화라는 제목을 보고 궁금했던 건, 요즘에 관심 두던 무빈소 장례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경험한 장례문화가 의미 없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또 언젠가는 나의 엄마,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을 보내는 일에 상주가 되어 참여해야 하기에 기존 장례문화가 남긴 장점, 최근 도시화, 핵가족화 등으로 변화하는 장례문화를 배우고 싶어서다. 이 책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연명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결정해두는 것도 좋다. 유언이나 임종 과정의 법적인 절차도 잘 설명되어 있다. 그 후에 이어지는 죽음의 선고까지. 혹시 사고사나 고인의 죽음에 의문이 생긴다면 부검을 의뢰해도 좋다. 이제 남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장례식이다.


동생이 상조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상조 서비스를 이용해도 되지만, 우리가 이용한 장례식장에서는 상조보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대부분 제공하고 있어서 굳이 상조보험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러 사건으로 상조 회사의 문제가 드러났다. 매달 일정하게 돈을 내면서 선불제 후불제 상조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았는데, 나도 상조 서비스는 무조건 선지급제인 줄 알았다. 후불제 상조 회사도 있다고 하니 이 부분은 확인해서 가입하는 게 좋겠다. 국내에서는 1982년 처음 전문 상조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그사이 수많은 상조회사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가입자의 피해도 컸다. 이 책이 나온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러한 상조 회사의 문제도 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고인을 보내주는 일에 절차를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기도 하는 이때, 이러한 슬픔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술에만 집착하는 관련 업체들도 있기에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이 책의 출간 배경이라고 한다. 나 역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굳이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한번 경험하고 나니, 법적인 절차를 비롯한 장례식장에서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미리 확인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애써 화려하고 비싼 것만 좇는 장례식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좀 더 잘, 실속 있는 장례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장례식장에서 선택해야 할 품목이나 과정, 장례의 마지막 절차까지 쉽게 설명되어 있다. 일자별 장례 절차, 주변에 부고를 알리는 방식, 개인의 종교별 장례 절차, 안치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고 가족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장례비용 줄이는 방법으로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활용, 각 지자체의 지원도 있으니 해당하는 지역의 지자체 서비스를 미리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장례 후 답례 인사부터, 사망신고, 사망자의 재산조회와 상속에 관련된 부분도 이해하기 쉽게 말하고 있다. 사실 나도 경험해보니 고인이 떠난 후 이런 행정적인 절차가 어렵게 느껴졌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해당하는 가족의 확인 서류까지 챙겨야 해서 좀 번거로운 부분이 많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고인이 되기 전에 미리 확인하고 가족이 모여 이 부분을 의논하고 필요한 서류를 미리 준비하는 게 가장 시간 절약도 되고 그나마 번거롭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유용했던 건, 부록에 담긴 화장 과정이었다. 전국의 화장시설, 전국 공설자연장지 현황, 지역별로 다르겠지만 화장장려금이 있는 곳도 있다. 각자 해당하는 지자체의 여러 가지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내가 관심 두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무빈소 장례다. 장례 기간을 꼭 3일 이상으로 할 필요가 없고, 조문객으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덜어주고, 정말 이 죽음을 애도하는 최소한의 사람의 애도로 고인을 보내주는 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간소하게 가족장 형태로 하거나, 아예 빈소가 없어도 되는 방식 말이다. 우연히 숏폼에서 보다가 관심이 생겨서 찾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빈소 장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결혼하는데 결혼식이 굳이 필요한가 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왔던 사람으로 기존의 장례식이 꼭 필요한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물론 결혼식을 생략하든 무빈소 장례를 하든 당사자의 결정이 우선이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받는 시간과 경제적인 문제는 장례식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기에 그 피로감을 경험해본 사람은 무빈소 장례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하다.


2년 간격으로, 새해가 시작되면서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2년 전에 떠난 사람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번에 떠난 사람은 반년 정도 병원에 있다가 떠났다. 갑작스럽든 미리 알고 있었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례 과정에서 또 한 번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 떠난 사람은 이혼 후 혼자 살았고, 가끔 친구들 만나면서 술 한잔 기울이는 게 인생의 낙이었던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하던 사업을 접고 일용직을 전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병이 생겼다. 그의 죽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빈소에는 그의 부모, 형제들, 몇 명의 친구가 전부였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썰렁하다였다. 그 썰렁함을 뒤로 하고 장례식이 끝나고 정산하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보내는 방식이 꼭 이래야만 하는 건가 싶더라. 빈소를 차리지 않아도 일정의 변화가 크게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4시간 이내에 화장이 불가하다고 알고 있으니 보통 2일 정도가 소요되는 장례에서, 빈소를 마련하면서 3일을 채워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며칠 전에는 엄마와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무빈소 장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가족과 의논해야 하겠지만, 무빈소 장례를 하려는 이유가 엄마와의 이별이 하찮아서가 아니라고. 엄마가 바로 확답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남은 사람이 본인을 보내주는 방식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건 사실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정도만 기일을 챙기자고 얘기했고, 지금은 명절이나 아버지가 생각나는 사람만 보러 간다. 누군가를 보내는,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식이 남겨진 이들에게 부담된다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하고 비싼 것만 골라야 하는 게 고인을 보내는 방식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살아있는 동안 맛있는 거 같이 먹으면서 서로 얼굴 한 번 더 보며 안부 나누는 일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두 달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몸은 바빴고, 마음은 더 바빴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최근에 손에 닿은 책이 대부분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이 들고 아프고, 예상하지 못한 사고도 생기고, 감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고.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잘 안되더라.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더 그랬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하고 어느 정도 결정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을 보내는 방식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그보다는 그 방식에 어떤 마음을 담는 게 더 중요한지 간직해야겠다고 말이다.












#슬기로운장례문화 #죽은다음 #죽음에관하여 #죽음의책 #단계별장례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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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2-2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친의 명복을 빕니다....

yamoo 2026-02-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선친의 명복을 빕니다..
 


가끔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몸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어떤 일을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서, 일장일단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했다. 몸을 쓰면서 일하다 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더라. 심지어 손가락이 부어서 잘 굽어지지 않고, 젓가락질이 힘든 적도 있다. 그것도 며칠 지나면 그나마 적응되어 그냥 힘들다고 하면서 일하게 되더라는. 하지만 그런 일의 장점도 나름 있었다. 밤새 잠이 안 와서 짜증 났던 순간이 많았는데, 잠은 잘 오더라. 저녁 먹고 나면 초저녁부터 잠이 슬슬 온다. 엄마가 매일 저녁 일일 드라마를 보고 일찍 잠드실 때 왜 그런가 했는데, 이제야 좀 이해가 된다.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일 하다가 몸이 쉬는 시간이 되니 잠이 오는 거다. 근데 잠이 일찍 온다고 다 좋은 건 또 아니었다. 책을 못 읽었다. 책 펴놓고 몇 분 지나면 고개가 꾸벅꾸벅 쏟아진다.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하면 교재 펴놓고 바로 잠들어버리는 걸, 이제 뭐라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반성도 해 본다.


작년 말에 집에 있는 책을 200권 정도 기증에 보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세계문학이었고, 나머지는 베스트셀러 위주였다.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아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래, 아무리 오랜 시간 내 책장에 모셔놔도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확신에 미련 살짝 얹어서 보냈다. 어딘가에서 좋은 의미로 쓰일 것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죄책감은 어쩔 수가 없어서, 덜 미안해지고 싶어서 펼쳐 든 책이 조경국의 , 읽는 재미 말고 이다. 제목부터 죄책감 덜어주지 않나? ^^ 표지의 한 문장처럼,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김영하 작가의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는 말과 함께 큰 위로가 된다. 진짜.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는, 자기가 이 책을 쓴 단 하나의 목적은,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싶게 하는 많은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사장님(헌책방 운영하신다고 함), 이 책이 아니어도, 정말 읽지 않아도 사서 집에 쟁여 놓고 사는 독자(?)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요? 저자가 더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책을 쟁여 놓는 습관은 오래전에 생겨버렸고, 앞으로도 쉽게 놓지 못할 버릇인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뜨끔한 마음이 들면 또 한 번씩 기증에 보내기는 하겠지만, 읽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게 되는 이 몹쓸 습관은 어찌해야 할꼬. 어쨌든, 반복적으로 하는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는 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목차만 봐도 이유가 공감되긴 하는데, 그중 몇 가지만 봐도 괜히 흐뭇해진다. 특히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는 놓칠 수 없다. 내가 그 시리즈를 더는 읽지 않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책 선물하는 재미는 진짜 누군가에게 선물하면서, 내 돈 쓰고 기분 좋아지는 일이어서 행복했는데, 지금은 책을 선물하지 않는다. 처음에 뭘 모를 때, 내가 읽은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받는 사람도 당연히 좋아할 거란 착각을 하기 전까지는 종종 책을 선물했다. 하지만 받아보니 알겠다. 아무리 좋은 책도, 재밌는 책도,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받아도 미안한 선물이 된다. 꼭 책을 주고 싶다면, 차라리 받고 싶은 책을 골라서 말해 달라고 하는 게 서로에게 편하다. ‘책싸개 하는 재미는 좀 부지런해야 계속할 수 있는 습관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내 책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비닐 커버를 종종 씌우기도 했는데, 이것도 몇 번 하니 귀찮더라. 정말 애서가가 아니라면, 이 책에 애정이 없다면 계속하기 힘든 책사랑이 아닐까. ‘영화 속 책을 찾는 재미는 가끔 따라 하기도 한다. 영화나 책에서 소개된, 언급된 책이 궁금해서 찾아보곤 한다. 다 읽지 못할 걸 알면서도, 목록이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혹시 알아? 어느 날 문득 그 책에 스르륵 손이 가게 될지도. ‘망가진 책 고치는 재미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종종 하던 습관이다. 가장 흔한 건 찢어지거나 쩍벌이 책. 찢어진 책은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표시 덜 나게 붙여놓곤 했고, 쩍벌이 책은 목공풀로 섬세하게 발라서 뜯어지지 않게 만들어 놓고 반납하곤 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내가 빌린 책에 일정 페이지가 없다면, 찢어져서 문장이 잘려 나갔다면 화가 날 것 같아서. 그 외에도 책을 좋아하고 쟁여두고 싶은 이유를 많이 언급해주었는데, 책갈피나 사인본 수집하는 재미는 내가 아예 애정이 없는 부분이고, 필사는 게으름과 악필로 시도하지 않았고, 책 속 메모를 발견하면서 공감했던 경우는 거의 없고 낙서 때문에 화가 난 적이 많았고, 오탈자 찾아내는 재미도 없고 오히려 다른 독자보다 오탈자 잘 못 보는 인간이어서 많이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샀다. 200여 권의 책을 기증 보내고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또 샀다. 물론, 못 읽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 녀석들이 웃음이라도 주니 다행인가 싶어서 혼자 당당했다. , 읽는 재미 말고의 저자가 언급한 이유 중의 하나로,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차곡차곡 채우는 책이 있다. 그럼 이 시리즈를 왜 사기 시작했나 스스로 물어봤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예뻐서 샀다. 녹색광선 출판사의 책이다. 처음에는, 예쁘기도 했지만 읽어보려고 산 거였다. 하지만 당연히 읽지 못했고,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 중에서 완독한 것은 셰리한 권이다.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이런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디자인이 예쁘기만 하고 재미는 그에 미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셰리읽고 나서 다른 책도 서둘러서 읽고 싶어졌다. 예쁜 외모만큼이나 내용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다 읽었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 기증이나 다른 경로로 내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머지, 이 빠진 시리즈를 채워 넣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이 정도면 책을 사야 할 이유가 분명한 거지? 헤헤




그동안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의 소설 보다시리즈를 꾸준히 사긴 했으나, 띄엄띄엄 샀다. 그때그때 기분이 내켜서 읽어보고 싶을 때만 샀는데, 2025년의 시리즈는 알림 신청해 놓고 다 샀다. 표지가 너무 예뻐서, 제목에 맞는 계절감을 책에서 느낄 수 있어서 말이다. 봄의 딸기, 여름의 포도, 가을의 무화과, 겨울의 감귤. 이렇게 썼지만, 표지의 각 과일이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제철 과일이 아니어도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과일이든 채소든, 제철이 가장 맛있긴 하지. 맛있는 과일 옆에 두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 같은? 그동안 이 시리즈는 짧게 읽는 재미가 좋아서 사곤 했는데, 2025년의 이 시리즈는 그 짧은 호흡으로 읽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표지만 봐도 기분 좋아져서 더 펼쳐보고 싶게 한다. 올해는 어떤 표지로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잠깐 읽고 덮어둘 게 아니라, 그래도 좀 오래 갖고 있고 싶어지게 하는 요소를, 그게 비록 표지만 예쁜 책으로 남게 되더라도 좀 잘 만들어주었으면 싶다. 책방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책을 사게 하고 싶다는 조경국 저자의 말처럼, 책이라는 게 읽는 것도 좋지만, 일단 사야 읽는 거 아닌가. 그러니 더 팔리는 책이 되게 하려는 애정을 출간된 책으로 보여주기를. 아마 2025의 시리즈는 2026년인 올해에 제대로 읽게 될 것 같다. 늘 그래왔듯이. ㅠㅠ




세계문학을 정리하려고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책이라고 해도 내가 읽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에 좀 짧은 분량에, 재밌게 세계문학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꾸준히 사서 모았던 게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 명작시리즈다. 221*188mm 판형의 가로로 넓은 디자인에 삽화까지 담겨 있어서 좀 편하게 읽힌다. 최근에 출간된 시리즈는 153*224mm 판형의 세로로 긴 일반도서 사이즈인데, 아무래도 이야기의 분량이 좀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무튼 이 시리즈 한 권씩 읽으면서, 나도 미뤄두었던 세계문학, 고전 읽는 독자가 되었고, 이 책들이 왜 꾸준히 사랑받고 추천되는지 알 것 같다. 그래, 역시 책은 읽어야 맛이지. 아무리 좋은 책, 여기저기서 추천되는 책이라고 해도 내가 확인하지 못하면 그 재미와 의미를 영원히 알 수 없으니까. 이 시리즈도 이 빠진 시리즈 채워 넣는 재미로 이어질 것 같다. 아직은 읽은 목록보다 안 읽은 목록이 많다. 근데 이 시리즈로 프랑켄슈타인읽어보려고 샀는데,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2025년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봐버렸네. 재밌게 봤는데, 너무 미루지 않고 책으로 읽어볼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괴물의 간절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에게도 동반자를 만들어줘.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은 절대 완독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절대 쉽게 정리해서 내보낼 책 목록에도 넣지 못하겠다. 처음 출간된 게 2018년이니까, 출간된 지 8년이 다 되었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꼭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서 말이다. 1권 읽다가 말고, 또 몇 페이지 읽다가 멈추고, 어느 장면에서는 잔인해서 그만 덮고. 주인공 패트릭 멜로즈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와 상처를 받았다. 그 기억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는 그 시절의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학대로 그의 20대는 약물에 중독된 시간으로 보내고, 세월이 흘러 그가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어도 그의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나쁜 아버지가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게 더 충격적이었는데, 저자 역시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털어놓는 건 힘들었다고 하고, 약물 중독에 자살 시도까지 했던 그가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는 생존의 문제였다. 죽느냐, 아니면 이 책을 쓰느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다섯 살 때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의 극적인 그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세상에 이런 부모가 있을 수 있는지, 분노하지 않으면서 읽어야 한다는 건 독자에게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긴, 세상에 드러난 이런 사건들이 흔하게 들려오는 걸 보면, 이게 소설로 머물지 않을 이야기라는 건 이미 증명된 셈이다.



20대가 끝나가는 어느 날에, 지금 떠올려 보면 이런 철없는 말이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인데, 친구랑 둘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난다. 책방을 하자고, 커피도 팔고 간단한 음식도 파는 그런 책 카페를 하자고. 말은 쉬웠다. 우리는 모아둔 돈도 없었고,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보기 좋아서, 책이 쌓인 공간에 머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 거의 매일 찾던 여러 카페에 손님으로 앉아있었을 뿐인데, 아무 대책도 준비도 없이 막연하게 쏟아낸 그 말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이런 말을 다시 떠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로 확실히 알았다. 현실을 너무 몰랐던 망언이었다고. 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저자는 책방지기에 대한 로망을 1년 차에 바로 깨졌다고 한다. 현장을 경험하기 전에는 다 알 수 없는 일이 책방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진리.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덤벼든 작은 책방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그래도 저처럼, 또 다른 많은 독자가, 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실 테니, 힘을 내요, 사장님. ^^



이제 나는 뭘 사야 하느냐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이야기를 들려줘요를 사고 싶은데, 그러려면 앞서 출간된 또 다른 책 올리브 키터리지내 이름은 루시바턴이나 버지스 형제도 사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에이미와 이저벨은 갖고 있네. 하하.











#책읽는재미말고 #패트릭멜로즈 #소설보다 #셰리 #아름다운여름 #감정의혼란

#솔직히다읽으려고사는건아니잖아요 ##책추천 #안읽어도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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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19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ㅎㅎ
그래도 가끔은 저걸 다 언제 읽나 싶죠!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1 | URL
아, 죄책감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네요. ^^
그래도 삽니다. 살 수밖에 없었어요. ㅠㅠ
언젠가는 읽겠죠?

잠자냥 2026-01-20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렇게 모아놓으니까 참 예쁘네요?! 특히 보다 시리즈, 저는 한번도 구매한 적이 없어서... 저런 아름다움이? 하고 감탄.

구단씨 2026-01-25 15:06   좋아요 0 | URL
보다 시리즈 가끔 구매했는데요.
2025년은 표지가 예뻐서 저절로 사게 되더라고요. 표지에서 계절을 느끼게 되는... ^^

니르바나 2026-01-20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가지수 5000이 눈 앞에 보이는데 주식보다 책을 사시는 구단님이 멋있습니다.
책을 기부하는 손에 강복있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구단씨 2026-01-25 15:07   좋아요 1 | URL
하아... 주식을 몰라서 코스피 5천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순간에도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 ㅠㅠ
저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책들이 어딘가에서는 귀한 쓸모가 있기를 바라면서 보냈습니다.

살리에르 2026-01-25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보다 책 사는 속도가 빠른 탓으로 방 한 칸이 책으로 뒤덮여서 나 죽을 때 어쩌나 하는 한숨을 매일 쉬는 사람에게는 공감이 안 가는 제목입니다 ㅎㅎ 책은 읽으려고 사는 거죠^^ 그게 언제냐가 문제지만요^^ 내 취향 아닌 책은 아무리 표지가 이뻐도 그냥 내 공간을 차지하는 짐덩어리일 뿐입니다. ‘이 빠진 시리즈 채워넣는 재미‘ 는 제가 글을 썼나 했네요. 나만 이러고 사는게 아니구나 하는 자기 위안으로 삼아봅니다..^^

구단씨 2026-01-28 20: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맞습니다. 뭐, 언젠가는 읽을 거니까요. ^^

서노기 2026-01-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사는 제 마음을 대변해주시는 듯하여 솔깃, 해서 방문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취미도 ‘책 소장‘인 것 같아서;; 요즘은 자제하고 있어요. 비우는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구단씨 2026-01-28 20:33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책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나를 답답하게 하는 걸 찾아내어 조금씩, 더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버리나 했는데, 없어도 크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은 걸 보면, 뭐든 꽉 채우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살아가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벌써 몇 년째, 엄마 집을 정리하고 있다. 말은 정리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가끔 가서 오래된 것들을 몇 개씩 버리고 오는 게 전부다. 시간도 없고,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결정을 못 하기 일쑤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항상 마음이 급하다. 어제는 엄마 집에 남은 오래된 앨범을 들고 왔다. 무겁다고 낑낑대면서 정리하다 보니, 우리 남매가 자라면서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버리기 전에 읽어보는 것처럼, 앨범에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면서 그 시절을 소환했다. 항상 여유롭지 못했던 형편에 어려웠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는 게 좀 슬프기까지 했다. 혼자 울고 웃다가 마지막 앨범을 정리하면서 마주한 사진들을 아주 오래 보게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시절의 엄마였다. 오래전 엄마의 낡은 앨범을 버리면서 따로 챙겨둔, 엄마의 흑백사진.


사실 엄마 집에서 사진을 가져와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오래전이었다. 갈 때마다 깜빡 잊고 그냥 왔는데, 이번에 잊지 않고 챙겨올 수 있었던 건 이 책 엄마만 남은 김미자때문이었다. 김중미 작가가 들려준 미자를 잊은 김미자 씨 때문에,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아온 엄마의 시간을 보고 싶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진 엄마에게 남은 유일한 정체성이 엄마라는 것이, ‘엄마만 남은 김미자 씨가 슬펐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88페이지)


아동 청소년 문학을, 사회의 어둡고 낮은 자리를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하긴 했다.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지나왔을까 하고. 부유하고 여유가 넘치는 세월이 작가의 인생에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곤 했다. 작가가 그동안 작품에 담아낸 이야기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라면서 형편이 여유로웠던 적은 없으니 그러려니 하다가도, 주변 친구들의 환경과 비교될 때마다 한 번씩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런 철이 없는 말조차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던 엄마의 마음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철이 너무 늦게 들었던 거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분할된 화면처럼, 작가의 이야기와 나의 엄마 이야기를 같은 화면에 두고 듣고 있었다. 작가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이야기부터, 가족의 형편보다 이상을 좇아 살면서 자존심이 앞섰던 아버지, 그런 환경에서 자식들 키우느라 엄마의 역할에 온 인생을 담아낸 어머니가 각자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 자라면서, 마치 그 가난을 견디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여긴 작가의 마음에 미처 몰랐던, 엄마 김미자의 인생이 끼어든다. 어쩌면 김미자 씨의 인생은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여성, 엄마의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 대신, 친척들과 형제들의 이야기로 엄마의 새로운 시간을 보게 된다. 한 번도 이 가족을, 엄마 곁을 떠난 적이 없던 가난은 경제적 궁핍함만 주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가난하면 생활이 힘들고,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더 싼 집을 찾아다니느라 이사는 잦아지고 그러면서 이웃들도 자주 바뀌었다. 언제 또 형편이 더 나빠져서 이사해야 할지 모르니 이웃과의 교류가 깊어질 수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사회적 고립은 계속되고, 깊어지곤 했으니, 이 또한 가난이 낳은 피해였다. 그때마다 작가가 배운 것은 연대였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엄마이야기는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이면서, 이렇게 선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견뎌내야 할 게 더 많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더라. 동전 하나도 새로운 시절에 걸인에게 지폐를 내어주고, 어느 시인의 시구절을 읊는 마음도 알려주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여고생들의 상담사가 되기도 했던 엄마였다. 잦은 이사와 더 쪼그라들기만 하는 형편으로 그저 그런 김 씨와 밥집 아줌마가 되었을 때, 낡은 옷차림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울고 웃을 이웃이 없었을 때, 급변하는 주변 환경과 개발로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마을이 사라지면서 낯선 외로움이 엄마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다시 산동네로 이사하면서 이웃을 만들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의 요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식겁했다. 엄마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이번 달 초에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고, 지금 그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싶어서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다. 삼십만 원 남짓의 급여 때문만이 아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아침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게 일상의 낙이었다. 동네에 엄마가 아는 사람은 있지만, 대부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동네에 오래 살았는데,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또 다른 분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그 사업에 참여해야 그나마 얼굴 볼 수 있다. 엄마는 일자리에 갈 때마다 내가 시골에서 가져온 감을 가져가서 나눠 먹고, 그래봤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몸의 신호를 전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서 만난 분들에게 매일 안부를 묻는다. 그 시간이, 자기가 쓸모 있음을 느끼며 사람들과 얼굴 보며 얘기하는 그 순간이 나도 모르게 일상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달래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외로움의 시간을 치유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더 큰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엄마가 인지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을 때, 두려움만큼이나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을 텐데, 그때마다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했을 텐데, 이제는 가까운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작가는 엄마의 중증 인지장애의 원인을 더듬으면서, 외할머니와 이모의 치매까지 생각해보면서 찾은 답은 다른 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들의 병은 유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겪어온 삶의 여정에서 이어져 온 유산 같다고 말한다. 엄마 김미자, 김미자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의 삶까지 추적하며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았던 시절을 견뎌내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내어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부족해도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경험을, 이런 믿음과 행복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기억할 일이다.


단순하게 작가의 엄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과거를 되짚으며 엄마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에 김미자로 살아가면서 품었던 모든 것을 듣는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시절의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고 나니, 엄마만 남게 되었는지 이해되는 것조차 슬펐다. 낯설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모두 보고 겪을 김미자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인지장애가 있는 구십 노인인 엄마가 얼떨결에 딸의 허벅지를 쓰다듬고는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의 김미자라서 좋았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 307페이지)



낡은 사진 속 십 대의 엄마는 검정 교복 차림이었다. 처음 봤다. 1960년대 초반, 엄마의 십 대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어느 시절에나 볼 수 있는 여고생의 분위기였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교복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엄마의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을 들고 아침 등굣길에 나서는 엄마를 상상했다. 밥 굶어본 적 없이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니, 아마 엄마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하고 즐거웠던 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스물을 넘긴 엄마는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빴다고 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 엄마의 청춘을 담아보기도 했다. 사진 속 옷차림이 왜 이렇게 촌스럽냐고 했더니, 엄마는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였다고. ^^ 부릴 수 있는 멋은 다 부리고 다녔다던 그때, 그다지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다고 하니 외할머니 속을 좀 태우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집안의 농사를 돕고 외할머니 살림을 도우면서 이십 대 초반을 지내고 있었다고 하니, 아주 철이 없는 딸도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빠를 만나 결혼했다. (, 이때 아빠가 아니라 여러 남자를 더 만나보고 결혼했어야 했는데... ㅠㅠ)


작가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평범해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삶의 궤적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피식 웃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시절의 엄마들이 이렇게 살아왔겠구나 싶어서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게 다 그런 건지, 자식 키우는 책임감이 이렇게 무거웠던 건지, 그래서 미자가 아닌 엄마만 남게 된 건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도 좋은 분명히 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이 책으로 나도 같이 배웠다. 그리고 평소에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 준 많은 것(물론 좋은 것만)을 기억하면서, 또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사라져가는 기억을 오래 붙잡을 수 있도록, 내가 엄마에 대해 기억하는 게 지금보다 더 많아지도록, 더 자주 보면서 함께하는 시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뻔한 말을, 습관처럼 하는 다짐을 또 하면서 올해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나저나, 엄마의 저 사진 속 포즈는 정말 시대물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엄마만남은김미자 #김중미 #사계절출판사 #에세이 ##책추천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어느날엄마에관해쓰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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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 신간 출간 소식을 듣고 찾아보다가.


<차일드 호더>


어느 순간 일상화된 가정 폭력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는데,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지 모르겠지만,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구마 같은 상황에 시원한 사이다 들이켜게 해주기를.


그런 의미로, 오늘 <모범택시3> 하는 날이다. 시즌제 계속 쭈욱, 가주세요.




<재소자>


브룩은 셰인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은 뭘까.







제목이 <잠겨진 문>이라고 해서,

참 한꺼번에 신간이 많이 나오는구먼, 했는데,

소개 글 보다가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찾아보니까, <핸디맨>이었다.

제목 바꾸고 새로 출간되었는데,

출판사도 같던데, 제목 바꾸고 나왔다는 얘기 좀 써주면 안 되나요?

하마터면 읽은 책 또 살 뻔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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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제목 바꾸고 나왔다는 얘기 좀 꼭 좀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핸디맨은 저도 읽었단 말이에요. -.-

그나저나 프리다 맥파든 책 많이 나왔네요? 오호라~

구단씨 2025-12-09 23:06   좋아요 0 | URL

대충 소개 글도 안 보다가, 제목만 보고 신간인 줄 알았는데, 하마터면 살 뻔 했어요.
이분이 참 다작을 하시나 봅니다. ^^
 



책을 거의 읽지 않은 가을을 보냈는데, 12월의 시작도 비슷할 것 같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알라딘 기웃거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추천마법사가 궁금해지는 건 왜인지.

예전에는 가끔 한 번씩 클릭해보곤 했는데, 이게 여전히 내 취향이나 선택과는 맞지 않는 듯해서 멀리한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궁금해서 클릭해봤다.


여전했다.

추천마법사는 딱히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추천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다른 이유로 검색해본 책이나, 우연히 배너를 잘못 눌러서 들어가 본 책까지 다 아울러서 추천해주는 듯했다.

그래도 그냥 나갈 수는 없어서 추천마법사가 안내해준 몇 권의 책을 살펴보는데,

아, 이 방식으로 완전히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를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권은 끌리게 되더라는 또 이상한 결과가 만들어지네.

그렇게 최은미의 짧은 소설이 장바구니에 담겼다.

아무래도, 아직은 추천마법사를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도, 

추천마법사 보다는, 서재 이웃님들의 책 이야기로 보관함이나 장바구니에 담기는 책들이 훨씬 좋다. ^^











나이 오십에 청소 노동자. 괜히 울컥한 마음에 소개 글 보자마자 북펀드에 참여했고,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내 안에서 완전 사라진 듯한 감정 하나 다시 기억하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기차의 꿈. 북펀드에 참여할지 출간에 맞춰 구매할지 조금만 더 고민해 보고,









모순.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혼자 착각한 책을 이제 막 펼쳤다.



11월이 이렇게 갈 줄 몰랐는데, 벌써 올해의 한 달을 남겨둔 상태라니,

작년에도 그 전에도,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네.

여기저기, 이런저런 일들로 펼쳐 놓은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마음.

후회 없이 살기는 어렵다는 걸 이미 알았으니,

그나마 덜 후회하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도 의미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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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 2025-12-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며 공감되어 울곰웃고 힐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