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눈앞의 현실은 당장 무너져 내릴 것 같은데, 마음만 긍정으로 채운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돈 때문에 생긴 위기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문제 앞에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은 매번 다를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긍정마인드를 옆에 두고 싶은 이 이상한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하게 되는, 이게 답은 아닌 것 같은데 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 확신은 없는데 이 긍정이 나에게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될 것만 같은. 자꾸 말이 두서없이 나와서 나도 당황스러운데, 이 말 뭔지 알지? 어쩌자고, 작가는 이렇게 대책 없이 용기 내고 싶은 이야기를 또 내놓았는가 싶다.


오랜만에 고향 대전으로 내려간 솔은, 오래전 그 시절의 비디오 대여점 <돈키호테 비디오>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지금이 어느 시대냐.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을 검색하고 필요한 것을 보고 듣고 하는 시대에 비디오 대여점이라니. 비디오 플레이어도 구경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면서, 비디오 대여점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하지만 솔이에게 <돈키호테 비디오>는 그냥 비디오 대여점이 아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라만차 클럽으로 뭉쳐 놀던 곳, <돈키호테 비디오>의 주인장 돈 아저씨가 항상 이야기를 들어주던 곳, 엉뚱한 이야기조차 실현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바꾸어주던 곳 아니었던가. 그곳이 이제는 사라졌다. 그 시절의 친구들은 물론 돈 아저씨조차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아무도 돈 아저씨의 행방을 모르고 있던 그때, 솔이는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을 만나고, <돈키호테 비디오>가 있던 건물의 건물주 성민을 만난 후 결심한다. 아저씨를 찾아야겠다고. 그 시절,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아저씨의 그 말이 필요한 솔이에게 운명은 말한다. 아저씨를 찾으라고, 무엇이 되었든 아저씨를 찾아야만 변하게 될 것 같은, 지금의 절망을 뒤바꿔놓을 인생을 품어보라고.


소설은 방송국 PD로 일했던 솔이의 경력을 배경으로, 솔이의 유튜브 방송이 시작된다. 아저씨를 찾기 위해 <돈키호테 비디오>의 역사, 주인공들, 아저씨가 필사하던 소설을 낭독하며, 방송을 보는 모든 이들이 그 시절의 자신들을 찾아 나선다. 물론, 사라진 아저씨를 찾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아저씨가 남겨놓은 공간에서 아저씨의 흔적을 찾으며, 대한민국 방방곡곡 아저씨를 알 만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로, 과거의 아저씨를 만나고 아저씨의 역사를 듣는다. ,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인생을 살아왔구나, 항상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아저씨의 마음은 이런 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아저씨라는 사람을 점점 더 알게 된다. 그러면서 궁금해진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온 아저씨는 무엇을 찾아간 걸까. 지금 어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로 쓰고 있을까.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 134~135페이지)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인생의 절망을 가득 안고 있던 솔이가, 어릴 적 자신에게 꿈을 심어주던 돈 아저씨를 찾아다니면서 찾아가는 새로운 꿈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 시절의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 그들 역시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디 한 구석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을 이 기회에 찾아가고 있는, 이 모험에 참여한 누구라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을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이들의 모험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어차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꿈과 용기를 다시 찾게 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될 것을 알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이미 많은 독자가 읽었을 불편한 편의점시리즈 역시 누군가의 꿈과 다시 일어설 의지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이전의 작품들도, 이후의 작품들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만족스럽기는 했다. 그런데도 이번 작품이, 뻔한 결말과 감동일 것을 알면서도 읽게 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여전히 우리는,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헤매는 인생을 살고 있기에, 이렇게 누군가가 용기를 붙잡고 달려가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어쩌면 지금 나에게 수시로 찾아와 주어야 할 이야기가 여기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는지 모르겠다며 짜증만 늘어가는 요즘이었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고 지금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아직 밥을 굶지는 않으니 괜찮겠지 싶다가도, 다시 병원 생활이 시작될 것 같으니 번잡스러운 마음으로 갈등하지 말고 차라리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게 머리가 덜 아프겠지 하다가도,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꾸만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대로 있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이 나이에도 이런 고민과 갈등으로 내 속을 긁어대고 있는 게 나잇값 못하는 것만 같고. 한숨만 푹푹 나오던 때 저자의 마법 같은 주문에 또 한 번 걸려들었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가 누구나 흔하게 마음먹을 수 있는 용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걸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이러니 쉽게 용기 내기가 어렵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냐고 화를 낼 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놓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이미 알겠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바닥을 치는 마음을 끌어올리고, 사라져 버린 꿈과 용기를 찾아와야만 하는 인간이기에.


……여기 꼭 와보고 싶었단다. 돈키호테가 잉태된 이곳, 세르반테스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보낸 이곳이 내게 용기를 줄 수 있겠더라고.”

어떤 용기요?”

네가 말한 그 돈키호테의 열정. 어쩌면 광기. 그러니까 싸울 수 있다는 용기. 정의와 자유를 위해 거악에 맞서는 선한 힘이라는 용기.” (나의 돈키호테 384~385페이지)


솔이는 돈 아저씨를 찾아다니며 일상의 회복까지 찾아냈다. 아마 솔이 자신이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닐 테다. 해야만 했으니까, 지금 이 아저씨를 찾아내지 않는다면, 다시는 용기 내고 꿈을 이뤄가는 일이 두렵기만 할 테니까. 지금 무엇이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되어 있겠지 하는 막연함과 막무가내 도전이 아니었을까. 솔이 옆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의미의 여정이었을 것 같다. 그들 각자의 일상에서 하나쯤 더 채워갈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읽으면서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씨가 많이 생각났다. 노숙자 행색으로 편의점 사장님의 손길을 받는다는 게 기적 같았다. 우리 사는 세상 속에 그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기적으로 다시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사람도 생겼으니, 누군가의 손길 하나는 기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 기억하곤 했다. 이제 그 기적 리스트에 작가의 작품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된다. 그 시절의 우리에게 돈키호테가 되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세월이 흘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고 믿으며, 어쩌면 나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어 세상과 맞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솔이의 말처럼, 그 긴 이야기에 돈키호테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로시난테와 둘시네아, 목동들과 여관 주인, 이발사와 신부, 하녀와 공작부인처럼, 많은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 우리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언제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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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5-13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 님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셨군요. 계속 버티시다보면 좋은 날이 올거라 믿습니다. 저도 그래야만 하고요. 나잇값 못하는것만 같다는 표현에 울컥했네요ㅠㅠ 부디 힘내시고 저와 함께 정신승리하시죠🙂

구단씨 2024-05-21 18:10   좋아요 1 | URL
별일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이 바빠져서 그런지 더 조급하고 일이 겹쳐서 오는 것 같고, 뭐 그러네요. ^^
날씨까지 더워지니 더 답답한 느낌인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뭐, 다 지나가려니 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중입니다.
여름이 가면 가을도 오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