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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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간다. 유년 시절도, 사랑도, 삶도. 머무는 것은 당신이 남기는 흔적뿐이다. 그 흔적은 당신의 아이들 내부에 살아 있거나 담의 돌로 남는다. (430페이지, 요쉬카 브라이트너 귀한 내면아이)


잔인했다. 전편을 읽은 많은 독자가, 살인 사건은 잔인했는데 그 사건을 둘러싼 비요른의 대사나 태도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면서, 이게 살인인데 왜 웃음이 나는 건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니, 이 시리즈는 사실 소재 자체가 독특해서 누구라도 궁금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혀 다른 지점에 있다고 여겼던 명상살인이라니.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살인마 비요른에 빠지게 될 줄 몰랐던 게 함정이다. 이 남자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그의 살인이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변명이 와 닿기도 하는 걸 보면 그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살인 사건이, 살인마가 이럴 수 있는 거야?


오픈된 결말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한껏 고조시켰던 1권 이후에 제법 빠르게 출간된 두 번째 이야기다.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비요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을 거다. 앞서 그가 찾아갔던 명상 선생의 가르침은 실제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면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비요른은 이 명상 요법으로 자기 마음을 안정시키고 불안을 잠재우면서, 그의 또 다른 살인으로 연결한다. 비요른과 사샤는 결심했다. 다시는, 더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그럴 만도 하지. 그렇게 계속된 살인이 이제는 좀 지겨워지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아내도 있고 딸도 있지 않은가. 나름 정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40대 초반의 한 남자일 뿐이다. 그런 그의 살인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멈추지 못하고 계속되는지 알 수 없다.


마피아를 변호하며 손잡은 그는 이미 마피아의 머리 위에 있다. 딸의 유치원 자리로 마련한 건물에 자기 변호사 사무실도 열었고, 그 건물에서 살기도 한다. 유치원 원장은 그의 동료(?)가 된 사샤. 하하. 웃음이 나는군. 우리나라 유치원만 생각하면 사샤의 이미지로 유치원 원장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 듯하다. 암튼 그는 조직의 보스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 보스의 원수 같은 조직의 보스 보리스를 납치했다. 그러면서 두 조직 사이를 왔다 갔다, 마치 두 사람이 그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자리를 비운 것처럼 행동했다. 그때마다 그의 명상은 계속되었다. 그의 안에 있던 내면 아이의 목소리에 휘둘리며 여전히 그가 머문 자리, 그가 만났던 사람 중 일부는 사라지거나 죽었다.


나는 살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쿠르트와 보리스가 죽는다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내면아이는 죽음을 원한다.

그러나 보리스를 죽이는 건 원치 않는다.

이건 정말 양립할 수 없는 대립 관계일까? (350페이지)


언젠가 접했던 심리 관련 도서에서나 매체를 통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면, 우리 안의 내면 아이는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마주하는 대상이었다. 현재 나의 상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찾으면서, 그 시간을 거슬러 찾아낸 것은 아주 오래전 우리가 상처받았던 그때로 돌아간다. 이 고통의 시작점을 찾아내어 제대로 위로하고 다시 마주하면서 현재의 나를 다독인다. 있었던 일이 없던 일로 되지 않고 상처가 아무리 나아도 흉터는 남겠지. 그런데도 이 치유 과정조차 없다면 고통은 더 심해지고 영영 나아지지 않을 테니, 우리는 이 노력으로 내면 아이와 마주하는 기회를 얻곤 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마주했던 내면 아이가 비요른에게는 계속된 살인을 만든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의 목소리를 따르면서, 그는 스스로 멈추고 싶던 살인 행위에 점점 더 깊게 빠져든다.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점잖게 말이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그와 사샤가 반년 동안 가둬놓았던 보리스의 행방을 아는 이가 나타나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협박을 받는다. 보리스를 죽여야만 해결되는 이 협박의 끝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더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누구의 죽음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얼마 전인데, 그 다짐을 깰 수는 없다. 더군다나 협박범이 누군지도 모른다. 한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이 협박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계속 끌려가야 한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의 거짓말, 소설 쓰기는 계속된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유치원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고, 자기를 오해한 아내의 의심을 풀어줘야 한다. 알프스에서 사고사당한 웨이터의 죽음의 목격자도 벗어나야 한다. 비요른이 예상하지 못한, 자기를 옭아맨 것들로부터 어떻게 벗어날지 정말 궁금했다. 그를 벌주고 싶으면서도, 매번 그가 위기를 벗어나는 걸 보면 혹시 비요른이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래도 되나? 살인자에게 이렇게 빠져들어도 되는 거냐고! 이번에도 비요른과 사샤 콤비의 위기 탈출은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활약한 사샤의 지구 구하는 유치원 만들기 대책은 이 살벌한 이야기 속에서 웃음 폭탄을 터트렸다. 매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한 소설임이 틀림없다.


비요른의 명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를 둘러싼 범죄와 살인도 계속된다. 중간중간 그의 명상은 여전하지만, 그 명상은 어느 순간 힘을 잃는 듯하다. 그를 지배하는 건 그의 내면 아이였으니까. 처음 명상으로 그 자신을 치유하려던 목적은 이제 내면 아이를 내세운 살인으로 변질되었고, 그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죽음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그 죽음의 범인을 찾는 일에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어라, 이거 타이밍 죽이게 되어버렸는데? 나는 그냥 생각만 했을 뿐이야. 소설을 쓰듯 이야기 한 편을 완성했을 뿐이라고.’ 정말 이상하다.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도는 것만 같다. 그가 계획하는 대로 유유히 흘러가는 모든 상황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 이러면 안 되는데. 그가 직접 살인을 하지 않았어도 그는 살인자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그를 미워하거나 붙잡고 싶기는커녕 순간순간 그의 모자란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웃음이 나기까지 하니. 이걸 어쩌면 좋나.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이보다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음을 치유하면서도 인간이 휘둘리는 무언가를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성인 비요른은 어린 내면 아이에게 빠져들어 살인의 재미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평범한 우리 인간은 사람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존재다. 그러니 언젠가는 비요른도 그의 살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그의 생각과 행동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의 어둑한 마음의 지하실을 열었더니 거기에 있던 천진한 살인 파트너가 있었다. 자기도 몰랐던 자아를 만나면서 그는 더 은밀한 살인자가 된다. 더 기묘한 살인의 중심에서 즐거워진다.


보통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화가 나면서 왜 이런 결말인 거냐고 투덜댔을 텐데, 곧 출간될 3권 소식에 너그러운 마음이 생긴다. 지하실, 그 안의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서 빨리, 닫혀버린 그 지하실 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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