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엄마 오늘의 젊은 작가 25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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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엄마의 꿈을 듣고서야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이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아는 언제나 엄마에게 요구하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키워 주고 먹여 주고 들어주고 챙겨 주는 사람이니까. 이토록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정아를 찌른다. (253페이지)

 

누구나 이별한다. 세상 인연이 다 그렇다. 하지만 그 죽음을 생각하고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현실에서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의 문제가 있다. 내 의지대로 명확하게 가를 수 없는 마음이 죽음에서 파생한 생각의 꼬리를 이어간다. 언젠가 이별을 마주해야 할 모든 인연이지만 그 타이밍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온도마저 다르다. 3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애인을 잃은 정아에게 엄마의 암 소식은 달랐다. 애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너무 아팠고, 3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녀는 과거의 기억에 몰두하며 산다. 그러다가 닥친 엄마의 폐암 말기 판정 소식은 그녀가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느리게 흘러간다. 애인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가 이제는 엄마를 '잃어가는' 이별을 걷고 있다.

 

누군가와의 이별은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아가 기억하는 엄마의 세월은 억척스럽게 두 자매를 키워낸 엄마의 모습이었다. 식당에서 일하거나 건물의 청소를 하거나,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며 자매를 키운 엄마의 현재는 폐암 말기의 환자다. 자매의 보호자였던 엄마를 이제는 자매가 보호자가 되어 돌본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닥칠 일이다. 고생하며 나를 키우고 돌봤던 엄마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순간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마를 잘 돌보고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간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테지. 자매 역시 엄마의 진심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채로 기한 없는 간병인이 된다. 서울과 부산, 경주를 오가며 이어지는 간병기는, 막연하게 이별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면서 잘 마무리하고 싶은 목표가 되어간다.

 

매번 겪는 이별이라고 해서 익숙해질 수 있을 텐가? 그냥 횟수가 늘어가고 거듭 리셋될 뿐 언제나 그 이별 앞에서 우리는 낯선 감정에 휩싸인다. 이별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겪어내야만 한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이별과 익숙한 우리의 자세다. 정아는 아픈 엄마 곁을 지키며 일상을 유지해나간다. 긴장했다가, 익숙했다가, 짜증 내고 투정하기도 했다가... 인간이기에 간병 앞에서 겪는 마음의 고충까지 이해해야 하지만, 바로 뒤돌아서서 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다시 또 서로에게 접근하며 환자와 보호자로, 엄마와 딸로, 이 이별을 함께 준비해야 하는 자매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의 사랑을 느낀다.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엄마라는 존재를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동백도 안 졌더만 찔레꽃이 폈어요?"

"네, 올해는 나란히 폈더라고요."

"보고 싶네요."

엄마는 볼에 홍조까지 띠고 신이 났다. 그때 한의사가 질문을 바꾼다.

"누구 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

단순히 말을 받아 묻는 것도 같고 치밀하게 의도한 것도 같아서 정아는 조금 놀란다. 엄마는 입을 닫고 시선을 떨어뜨린다. 한의사가 단호한 말투로 거듭 묻는다.

"만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엄마요."

"그래요? 엄마가 보고 싶으세요?"

"네." (134~135페이지)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신의 엄마에 대해서? 소설 속 자매는 엄마가 아픈 후로 엄마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엄마가 좋아하는 들판의 야생화는 꺾지 않을 때 가장 예쁘다는 것. 꽃이 예쁘다는 말에 당장 꺾어 와서 꽂아두고 싶은 마음이 다 표현되기도 전에 엄마의 속내를 듣는다. 그냥 두고 봤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게 꽃이라고. 하나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에 관해 더 알고 싶다. 엄마가 궁금하고,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은 공통된 관심사를 위한 게 아니다. 처음에는 '엄마'라는 한 사람의 취향이나 생각에 관해 궁금하던 것이 어느 순간 그 의미를 점점 옮겨간다. 이미 한번 누군가를 잃어본 정아가, 이별 후의 시간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는 아니었는지 묻고 싶어진다. 줄곧 죽은 애인을 놓고 살지 못했던 그녀의 시간에 이제는 엄마까지 더해질 것이기에, 그 기억에 붙들려 사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기억으로 머물게 하는 담담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보일 그 상실의 슬픔이 누군가에게 강제한 슬픔이 아니라, 그냥 내가 느끼는 슬픔 그대로 머물게 하려는 마음.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 계속 당신을 기억하고 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멈추지 않는 것. 엄마가 아픈 후에야 알게 된, 엄마와의 이별을 느리게 준비하면서 겪은 상실의 진정한 의미였다.

 

그러면서도 달라질 게 없는 일상과 습관, 성격까지 익숙하게 보이는 건 또 뭘까. 엄마를 잃어가면서도 엄마를 알고 싶은 마음, 그렇게 알아가는 엄마의 시간에 뭉클하고 애틋하면서도 지금 달라질 게 없다는 게 슬픈 거다. 그래서 투박하게 노력한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은 바람은 여전하지만, 매번 원래의 성격대로 무뚝뚝해지는 자신을 탓하기도 웃기다. 엄마가 아프고 엄마와의 이별이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유로 그녀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참거나 숨기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항상 엄마를 걱정시켰던 딸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모습을 정아에게 확인한다. 엄마의 아픔은 그녀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현실이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그녀의 삶이 존재하고 중요하니까.

 

슬픈 일을 겪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장할 수 없는 게 또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아의 솔직한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얼마나 더 많은 이별을 경험할 우리일지 모르지만, 소설 속 자매와 엄마가 서로에게 접근하는 이별의 방식은, 투덜대는 것 같으면서도 고요하게 마음을 읽게 한다. 우리에게 이별은 필연이고,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잘 이별해야 하는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저 자기만의 방식으로 상실의 고통을 감당하고 겪어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인지, 남은 시간 더 많이 알고 싶은 바람으로 계속 가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별하는 엄마를 궁금해하면서 정아가 알아낸 엄마의 시간은 엄마가 떠난 후에도 그녀의 기억에 남아 상실의 시간을 채워갈 거라는 것. 그 기억으로 슬픔을 감당하는 게 또 하나의 방식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보이던 작은 딸의 모습이 점점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너무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경험한 이들만이 공유하는 감정을 같았다. 엄마의 폐암 소식에 정아와 언니는 역할 분담하여 그 모든 일을 진행한다.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수술하고 항암을 하고, 재활을 위한 병원을 알아보고, 다시 또 반복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가족이 아프다는 건 그런 거다. 아픈 사람 본인도 힘들지만, 그 아픔을 대처해야 하는 가족에게도 똑같이 힘든 시간이 된다. 오랜 시간 중노동을 하는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일에 몇 년을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지나고 보니 알아두어서 나쁜 것 없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런 경험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행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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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5-28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는 것만으로도 슬프네요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언젠가 겪을지도 모르겠지요 제가 보기에는 뭐든 소설 속 사람이 더 잘 하는 듯해요 저는 제대로 하는 게 없네요 아프지 않고 부모가 나이 들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도 슬플 텐데, 아픈 엄마를 바라보는 건 더 마음 아프겠습니다


희선
 
꿈의 노벨레 문지 스펙트럼 개정판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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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어딘가에 감춰있다가 머리를 슬쩍 내밀듯 욕망이 꿈틀댄다. 그렇게 감추어진 욕망이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들춰졌을 때 우리의 감정은 꾹꾹 내리누르긴 하지만, 실제로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순수하고 도덕적 기준에 철저하게 반응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언제 어디서 불어올지 모를 위험한 바람에 항상 노출된 거 아닌가. 다만, 그 바람을 맞으면서 버티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남편 트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보통 가정의 일상처럼 보였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난 후의 저녁 식사 자리.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는 곧 보모의 손에 끌려 잠자리에 든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아이의 아빠와 엄마인 부부. 그 순간, 안정된 삶의 단란했던 부부에게 익숙한 일상을 조금 다르게 보내고 싶은 감정이 일었나 보다. 아니면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거나. 그래서 그들 각자 감춰왔던 욕망을 고백한다. 아내 알베르티네는 덴마크 휴양지에서 반한 장교를 언급한다. 그 장교가 전화를 받고 갑자기 떠난 게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를 그때의 감정에 대해 말했을 때 남편 프리돌린의 마음은 어땠을까. 솔직하게 말하자고 서로 다짐하고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아내에게 처음 발견한 욕망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아내가 경험한 그 욕망의 순간이 자기에게는 없었다는 게, 자기 아내가 그런 욕망을 경험하고 감춰왔다는 게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럴 수도 있다는 척하던 그는 내면의 혼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은, 소설 속 문장처럼 거리에는 창녀들이 그득했어도 자기 집안 여자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였다. 17살의 순결했던 아내에게 그런 환상이 있었다니 용서가 안 된다. 그 자신은 욕망의 순간을 끊임없이 탐닉하면서도 말이다. 지인의 임종 소식에 달려 나간 그는, 죽은 이의 딸에게 고백을 듣는다. 이미 알던 시선이다. 그 집에 방문할 때마다 자기를 바라보던 지인의 딸이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여겼다. 무슨 감정의 변화였을까, 그는 지인의 집에서 나와 거리를 헤매고,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나흐티갈로부터 은밀한 파티 이야기를 듣는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되어버린 파티장에서 그는 금기의 유혹을 한껏 즐기지만, 그 위험을 떨치지는 못한다.

 

그가 경험한, 금지된 환락의 세계는 실재했을까, 아니면 그에게 찾아온 욕망의 판타지였을까? 그가 그런 환상의 실재에 고민하던 때, 새벽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의 꿈은 지독하게 에로틱했다. 그가 환상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던 경험보다 더 생생했다. 아내의 꿈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어떤 꿈도 완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무슨 의미였을까? 당신이 경험한 그 꿈은 꿈에서만 머무는 욕망이라는 뜻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쯤에서 그만 넣어두라는 경고였을까?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그 욕망을 얼마나 표출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것만 같다. 실제로 소설 속의 비밀 장소에서는 가면을 쓰고 입장한다. 트리돌린이 선택한 가면은 수도사 복장이었다. 성스러운 종교에 바탕을 둔 이가 입는 옷이 그가 갈구하는 욕망과 대조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 비밀 장소에 모인 이들의 가면과 의상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는 거다. 여러 가지 위장술을 허용하는 장소였지만, 특히 고위층이나 도덕을 강조하는 이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옷이 많았다. 수도사는 물론이고 수녀 복장, 여왕이나 기사, 법률가를 나타내는 의상이 대부분이었다. 욕망이 춤을 추는 난잡한 그곳에서 가장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복장의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웃긴가. 그런데도 그들이 선택한 의상이 이해된다면 너무 과장일까. 가장 쉬운 예가 그런 거 아니던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반발심이 끓어오를 때. 아마 시대와 환경이 만든 욕망의 억누름은, 그들이 만든 비밀 장소에서 도덕을 외치는 의상을 선택하게 했을 것이다. 자꾸만 드러내지 말라고 하니 그 안에서 더 팔팔 끓어오를 수밖에, 그러다가 결국 뚜껑은 들썩거리고 끓다가 넘치게 되겠지. 살면서 금기도, 서로에게 갖춰야 할 도덕도 필요하지만 어쨌거나 욕망의 보편성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만 같다.

 

그럼 일상으로 돌아온 남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는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이혼을 결심하면서 집을 나오지만, 막상 그에게는 신분을 들킬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밀 장소에서 그를 구해준 수녀 복장의 여자를 찾고 싶지만 찾을 수 없었고, 가명을 쓴 부인이 호텔에서 자살한다. 혹시 수녀 복장의 여자와 자살한 여자가 동일인일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알 수 없다. 그에게는 미스터리한 비밀 파티와 그의 신분이 노출되어 경고를 받은 일만 남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본다. 그리고 잠든 아내의 옆에는 그가 비밀 파티에서 썼던 가면이 놓여 있다. (앗, 들켰군!) 그는 아내에게 지난밤의 모든 일을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아내의 한 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어떠한 꿈도 순전히 꿈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결코 미래를 속단하지 마.”(158페이지) 화해를 했으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인지, 이미 있었던 서로의 비밀이 없었던 일로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인지. 결국, 진정한 화해도 아닐뿐더러, 결코 예전 같을 수 없다는 말이겠지. 그들이 각자 경험한 어떤 일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적이지 못하다는 모순에 얽매여 있을 테니까. 드러내지 말아야 할 욕망을 그렇게 드러내 버렸고, 꿈은 꿈으로만 머물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부부가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한 개인으로 느끼는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보는 듯하다. 엎치락뒤치락,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관계가 서로에게 책임을 부여하면서도 그 책임을 말하는 제도의 규범이 부부의 마음을 가르기도 한다. 한편이었다가 서로 죽여야만 하는 원수가 되기도 하는 양면성. 그 양면성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현실의 안정을 주는 직장, 집안에서 머물며 가정을 책임지는 아내의 역할, 서로가 잘 지키며 지내야 하는 규범적인 생활이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 가정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느끼는 건 오늘날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문이었다. 사랑으로 맺어지고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그게 부부 관계의 모든 것을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것. 프로톨린과 알베르티네가 닿을 그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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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심을 버리고 가면을 쓰는 거고. 그 가면을 벗기는 게우리 일이야. 거짓의 가면을 벗기면 진실한 얼굴이 나온다. 사람을 믿지 말고 원칙을 믿어라." (신데렐라 포장마차 2, 213페이지)

 

추리소설의 다양한 소재가 있겠지만, 음식이 추리에 끼어든다면 더 흥미진진해지는 건 왜일까.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음식은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한 것이고 그 익숙함 속에 녹아든 추리를 만나는 건 평범하면서도 흥미로운 사건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한 야간열차에 탄 것처럼, 이 소설은 밤에 한 시간 동안만 문을 여는 푸드 트럭이 장소가 된다. 그러니, 한 시간만 영업하는 그곳에서 무슨 음식이 등장하며 독자를 그들의 미스터리한 사건에 초대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1권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의 매력은 2권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는 듯하다. 이미 소개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장편 시리즈라고 한다. (사실 1권 먼저 읽어야 하는데, 신간이니까 이 책을 먼저 읽어보고 싶다는 간절함에...) 등장인물은 똑같고, 그들에게 던져진 사건이 조금 더 깊이를 더한다. 뭔가 더 파고들어야만 확인되는 결정적인 단서를 만났다고 해야 할까.

 

유치장에 갇힌 프랑수아. 그는 한국에서 프랑스 요리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셰프이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단서를 쥔 인물이다. 그가 왜 유치장에 들어갔는지는 모른 채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치장 밖에서 프랑수아를 기다리는 민간조사원 김 건과 프랑스식당의 수셰프 소주희. 그리고 이들의 기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수아를 가둔 채로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고 싶은 형사 신영규. 프랑수아는 김 건과 소주희에게 푸드 트럭에 있는 엽서 한 장으로 무언가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갇힌 몸이라 어쩔 수 없으니, 또 과거는 모두 잊은 김 건이 현재의 기억력은 최고로 달리고 있으니 소주희와 콤비가 되어 조금씩 사건에 다가간다. 그 사이 김성기 전 장관이 방송 인터뷰 중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전 국민이 보고 있던 상태라 이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신영규 형사 팀은 이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님을 느끼고 유력한 용의자이자 김성기 전 장관의 비서 같은 강하라를 취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김성기 전 장관의 자살로 사건은 마무리되고 강하라는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리고 프랑수아에게 단서를 얻은 김 건과 소주희는 하나씩 단서를 추적하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건의 윤곽을 좁혀나간다.

 

형사, 민간조사원, 셰프, 추리 소설가 등 이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알겠는데, 정작 무슨 사건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사건도 모른 채로 단서만으로 퍼즐을 풀듯이 맞춰가는 뭔가가 오히려 더 궁금해질 지경이다. 그러면서 제각각 개성이 뚜렷한 이들이 모이면 어떤 사건이라도 해결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는 기대감이 생기는데, 그들이 추적하는 단서에는 음식이 중심이 된다. 이번 2권에서는 1권에 이어 프랑스 음식이 등장한다. 서대기를 주재료로 하는 '솔 베로니크'와 빛나는 칵테일이라는 뜻의 '글로우 칵테일'이다. 단편처럼 두 가지 음식을 소재로 사건을 푸는 이야기 두 편이 담겼다. 처음에는 별도의 이야기로 짧고 굵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다른 메뉴가 등장하면서도 처음 사건과 연결이 되는 방식이다. '솔 베로니크'로 추적한 음식에 얽힌 사건을 가지고 가면서, 뒤이어 '글로우 칵테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따라간다. 물론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는 다르지만, 그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같다. 첫 번째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사건을 만난 독자에게는 아리아 변호사라는 새로운 인물이 합류하면서 이들에게 사건 해결 어벤져스라는 이름도 붙일 수 있게 된다.

 

특히 2권에서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곳곳에서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아마 1권에서 시원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그들의 배경이 2권에서 들려줌으로써 이들이 가진 상처와 인생을 사건 해결에 더 열정적으로 다가가게 한다. 마치 숨어 있는 비밀과 미스터리를 풀어가면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사건도 밝혀주고 등장인물들의 삶도 나아가게 하는 의미가 있을 듯하다. 아버지가 연루된 비밀조직 '레메게톤'의 사건을 밝히려는 프랑수아, 기억을 잃으면서도 그 재능을 뽐내는 김 건, 어머니의 후계자보다 프랑스 음식에 끌린 소주희, 그 누구도 끼어들 틈이 없이 완벽한 사건 해결을 위해 달리는 신영규,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여 그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아리아. 이들 앞에 닥칠 진짜 사건이 뭔지 알 수 없어서 그 기대감이 더 커지는 듯하다. 얽히고설키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이들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것처럼 하나씩 새로운 인물이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더 고조된다. 온갖 추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서, 지금 눈앞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어지게 한다.

 

프랑수아가 아버지의 친구를 찾아낸 순간 사건은 끝난 것 같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사건은 묘하게 그 끝이 보이지 않게 붙잡고 있다. 게다가 추방당할 뻔한 프랑수아가 위기를 모면하면서 다시 신포(신데렐라 포장마차)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한국을 구하기 위해 왔다는 프랑수아가 정면에서 마주할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페이지가 너무 잘 넘어가면서도, 도대체 이 사건은 언제 시작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자꾸 투덜거렸다. 전 장관이 방송 도중 죽어버리지를 않나, 살인자로 보이는 여자가 타이밍 좋게 빠져나가지를 않나, 추레한 남자 한 명이 비행기에서 묘하게 분위기를 바꾸지를 않나, 가면 하나 쓰고 인생 바꾸려는 여자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지를 않나. 무엇 하나 시선을 끌지 않는 게 없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방식이 추리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어쩌면 다른 분위기를 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더 탄탄하게 사건을 마주하게 되었으면 하는 성장의 시간 같기도 하고, 언젠가 이 사건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때는 이들이 가진 상처들 모두 깨끗이 나아서 그들이 처리한 사건처럼 깔끔해질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마지막에 숨어서 보고 있던 '독 예술가'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아리아 변호사의 합류가 소설을 어디로 끌고 갈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레메게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가장 궁금하겠지. 2권이 끝인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점점 열린 결말처럼 보여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3권이 이어진다는 갈증 나는 마침표로 끝난다. 아우~

 

빨리 1권 마무리 하고 3권 기다려야겠다. 작가님, 빨리 3권 내놔요. 롸잇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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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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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설정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꿈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들 말이다. 인생의 절묘한 순간에 나타나 나를 옳은 길로 이끌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나이에 미래에서 온 자식 같은 건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치기만 했던 소중한 순간과 기회를 지금이라도 알아차릴 수 있게.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으로 곧 세상과 이별할 아들이 눈앞에 있다. 다쿠미와 아내는 그 아들의 운명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가족이니까, 자식이니까. 그러다가 혼수상태처럼 빠져있는 아들 도키오의 모습을 보면서 다쿠미는 아내에게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다.

 

스물 세 살의 다쿠미. 오래 일하지도 못하고, 남들과 타협하며 살아갈 줄도 모른다. 그러니 인생은 언제나 어긋난 것처럼 여기게 되고, 항상 세상을 탓했다. 언제나 '큰 거 한 방'을 노래하며 인생이 뒤바뀔 날만 기다린다. 하지만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일확천금은 말 그대로 우연히 찾아오는 어느 순간일 테다. 지금 다쿠미에게 필요한 건 인내심과 노력으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는 오늘도 홧김에 일을 그만둔다. 그때 그의 앞에 나타난 도키오. 어디에서 온 청년인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다쿠미에 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뿐. 자연스럽게 곁을 맴돌며 도키오는 다쿠미의 일상에 스며든다. 그러다가 다쿠미의 애인 지즈루가 사라지는 일이 생기고, 도키오와 다쿠미는 사라진 지즈루를 찾으러 다닌다.

 

두 젊은 남자가 한 여자를 찾아다니는 로드무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소설은 단순히 흥미로움만 전하지는 않는다. 다쿠미와 도키오와 다니는 그 길의 그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현재 그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져 왔는지 찾아다니는 여정이었으니까. 현재의 다쿠미는 그의 아내가 희귀병을 유전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들에게 아이가 태어난다면 또 그 병을 가지고 태어날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아내를 설득 시켜 결혼에 이르고,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낳기에 이른 건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에 도키오를 만났기 때문이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아들이 과거의 나에게 다녀간 적이 있다는 게 쉽게 믿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다쿠미 부부는 믿는다. 지금 뇌신경이 죽어가면서 누워있는 이 아이라면, 분명 아버지의 흐트러진 청춘을 바로 잡아줄 수도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렇게 과거에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바탕이 되어, 현재에 이른 이 가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혹시 나에게도 와줄 수 있는 기적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동시에 생긴다. 미래에서 온 나의 아이가, 지금의 내가 잘못 사는 것을 자꾸만 멈추게 하려고 애쓰는 일. 처음에는 왜 이러나 싶어서 거추장스럽고 귀찮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서서히 녹아들고 동화되어 이 아이가 하는 말들에 저절로 신뢰가 생길 때 어떤 마음일까 싶다. 자꾸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뭐가 이상한지는 모르겠고, 어떤 식으로든 내 인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때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방향이 나쁘지는 않다고 하는 마음이라면 더 믿어도 좋겠지. 상대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종종 이해하지 못할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아주 먼 훗날에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역시 눈앞의 시간을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 거겠지.

 

"내일만이 미래가 아냐. 그건 마음속에 있어. 그것만 있으면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 그걸 알았기에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낳은 거야." (396페이지)

 

읽다 보면 얼핏 장르가 궁금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걸 보면 판타지답기도 하고, 다쿠미와 도키오의 우연한(?) 만남이 만들어낸 결과를 보면 감동 드라마 같기도 하다. 자기를 떠난 애인을 찾아 헤매는 걸 보면 연애소설 같기도 하지만, 지즈루와 함께 떠난 오카베를 찾기까지의 과정과 이유를 보면 추리소설 같기도 하다. 결국은 이 모든 조각이 모여 완성해가는, 한 사람이 인간다움과 세상을 배우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별을 앞둔 아버지와 아들의 기적 같은 시간 여행에 독자가 편승해, 오늘을 사는 이유를 묻는 것 같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래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오늘 이 순간도 미래이면서, 우리가 만드는 삶의 한 조각이면서, 우리의 행복을 그리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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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이동기 영어 실전동형 모의고사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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