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때로 법이 내리는 그 처벌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분명 법의 기준으로 판단했을 테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에 서서 충분히 변호했을 테고. 살아가면서 배운 인간의 자세가 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도 하다 보니,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촉법악법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건가.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긴 촉법소년은 촉법소년이 저지르는 범죄,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촉법소년법이 정말 실수(?)였다고 말하는 어린 인격을 잘 성장시키고 있는지 짚어보게 했다. 그렇다고 촉법소년법을 이용한 범죄가 반드시 이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기 이익을 위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눈감아주려는 계산하는 어른들의 욕심도 포함된다. 그게 내 자식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늦는다. 모든 것이 다 끝난 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레퍼토리에서는 침묵에 집착하는 소년 범죄자가, 이미 저지른 범죄로 처벌을 받고 나왔는데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살인을 저질렀어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소년원에서 2년 형을 살고 나왔다. 그러고 나서 또 저지르는 범죄. 사람을 죽이고 협박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시끄럽다는 게 전부다. 소년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여성 피해자는 오히려 덤덤하다. 자기를 괴롭히는 이들을 소년이 죽여주었는데, 그렇게 침묵을 외치던 소년은 점점 말이 많아진다. 여성은 개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 같은 법이라고 하지만, 소년은 교정교육을 비웃으며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다. 이 범죄가 소년의 마지막 범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당연하다. 무엇이 잘못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이 소년에게 주어진 처벌이 전혀 교정교육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촉법소년법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변호사 아버지를 둔 소년이 일부러 대상을 정하고 친 장난에 두 명이 죽는다. 이 녀석이 얼마나 영악한지, 아니면 변호사 아버지가 하는 짓을 보고 배운 건지 뭔지, 사고를 내고서도 자기 빠져나갈 궁리부터 한다.(네메시스의 역주) 원래 촉법소년이 무적이긴 한데 증거까지 없으니 완전히 최강 무적이 된 거지. 나를 누가, 어떻게 처벌하겠어. 안 그래?” (네메시스의 역주95페이지) 이 단편은 법의 판단을 인정할 수 없던 한 아버지의 질주로 시작된다. 감히 내 아들에게 회복될 수 없는 장애를 만들어? 그 분노를 비웃기라도 하듯 차분하게 그 질주의 현장을 지켜보는 소녀가 있다. 누군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죄하지 않는다면, 남은 건 복수뿐이라는 감정적인 판단만이 남을 뿐이다.


이제는 제대로 살고 있으니 과거 따위는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과거는, 진심 어린 뉘우침 없이 지나온 과거는 현재의 삶에 깊숙하게 파고들기도 한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의 이야기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은 채로 살아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족발 배달을 나갔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된 아들의 사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경찰조사 역시 이대로 흘러갈 것만 같았다. 법에 맡길 게 아니라 직접 이 사건을 판결하기로 마음먹은 아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역지사지. 같은 경험을 해봐야만 이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는 참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식을 지키려고 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되돌아왔을 때, 그때는 많은 것이 늦은 때다.


인상적인 작품이 정해연 작가의 징벌과 소향 작가의 OK목장의 혈투였다. OK목장의 혈투는 지역사회가 아이들의 성장에 얼마나 큰 개입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여기에서도 통용되는 것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좋게 좋게뭐를 좋게 좋게하라는 말인가. 흔히 말하는 같은 동네 사람끼리 이러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그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좋게 좋게했더니 더 심하게 되돌아온 경우도 많이 봤고, 가해자들은 전혀 개선의 의지가 없이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한 후로 다짐했다. 아는 사이라고 해서 판단의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 끈끈하게 연결된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끝도 없는 배려를 받는다. 그것도 공평하지 않다. 힘을 가진 이들이 이 사회를 흔들고 조정하며, 그 힘을 가진 이들의 자녀가 어른들의 축소판인 아이들 사회에서 똑같이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 하나 잘못을 지적하는 이가 없고, 그 잘못을 덮어주기에 급급하여 썩은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곳. 이런 곳에서 그 어른들의 손길로 키워지는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온 마을이 합심하여 키운 아이는 더는 아이라고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며, 아이 앞에서 우쭈쭈 재롱만 피우던 부모가 후회할 때가 머지않은 것만 같다.


요즘 자주 보는 <이혼 숙려 캠프>에서 역할극 시간을 가장 기다린다. 많은 부부가 그들만의 이유로 이혼을 고민하는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 그대로 마주 보게 하는 방식이 역할극 아닐까 싶다. 내가 저랬다고? 내가 할 때는 몰랐던 태도나 말투가, 다른 사람이 내 모습을 표현하는 걸 보고 그때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거다. 보통 거울 치료라고 하는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출연자들도 그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해연 작가의 징벌에서 보여주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위에서 말했지만, 역시나 역지사지가 답인가. 똑같은 경험을 해봐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똑같이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구나 싶었다.


너희 이거 범죄야, 불법이라고!”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여자애가 히죽 웃었다. 뒤에선 다른 아이들도 진솔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서로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긴 머리 여자애가 말했다.

우린 촉법소년인데?” (징벌46페이지)


징벌의 주인공 진솔은 배우다. 정체 모를 이들에게 납치되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가학적인 폭행을 당한다. 처음에는 무슨 스토커 범죄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배우라는 신분을 이용해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진솔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었다. 이 지랄 같은 성격은 지금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학교 폭력을 일삼았던 진솔이, 가해자는 잊었던 그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가 있다. 소설은 촉법소년 범죄가 한 편 더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고민했던 촉법소년 문제의 답을 확인한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이야기였다. ‘2045, 청소년들의 비행이 도를 넘기 시작하자 촉법소년에 대한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결과 제11호 처분, ‘정신 징벌이 제정(65페이지)되기에 이른 거다. 정신 징벌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한다. 그 충격은 실제 당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 때문에 정신을 놓는 경우도 있고, 극도의 불안 장애를 얻거나 사회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되기도 한다. 거울 치료만큼 확실한 치료 방법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들이 처벌받는 장면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하다. 여전히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으나, 어떤 식으로든 한 가지 의견을 선택해야 한다면 징벌 연구소장의 한마디가 더 와 닿는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징벌65페이지) 여전히 우리에게 범죄 처벌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어렵다. 법으로만 판단해도 만족스럽지 못할 거고, 우리 안에 남은 많은 감정, 특히 분노와 억울함은 쉽게 해결되지도 않을 거다. 많은 부분이 소설이니까 가능한 상황이겠지만,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판결에 직접 응징하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한 인격으로, 아직 책임능력이 부족해서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하는, 보호처분으로 대신하여 한 인간의 올바른 성장을 바라는 처벌을 내리는 일. 취지도 이해하고,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만든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이 법을 이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매체에서 보도되는 많은 사건, 이슈화되지 않았어도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살피면서, 정말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고민할 일이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중학교 두 곳, 초등학교 한 곳이 있다. 이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몰려나오면서 보이는 말과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많다. 아파트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니 한밤중이나 새벽에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든 아이들의 고성도 들리곤 한다. 근처 골목에서 또래 아이를 폭행하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다. 내가 보고 느낀 많은 장면을 다 옮길 수는 없으나, 한 가지 생각은 계속된다. 이 아이들이 정말, ‘아이들일까.










#촉법소년 #정해연 #소향 #윤자영 #김선미 #홍성호 #네오픽션

#소설 #한국문학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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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서 책장을 넘기지 말고, 손톱으로 줄을 긁지도 말며, 책장을 접어서 읽던 곳을 표시하지도 말라. 책머리를 말지 말고, 책을 베지도 말며, 팔꿈치로 책을 괴지도 말고, 책으로 술 항아리를 덮지도 말라. 먼지 터는 곳에서는 책을 펴지도 말고, 책을 보면서 졸아 어깨 밑에나 다리 사이에 떨어져서 접히게 하지도 말고, 던지지도 말라.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를 긁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지 말고, 힘차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며, 책을 창이나 벽에 휘둘러서 먼지를 떨지도 말라.”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이덕무, 솔출판사 1996)


책을 이렇게 여겨야 하는데, 읽고 싶을 때 펼치는 건 좋고, 책을 두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애물단지 같고, 그렇다고 막 내다 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진짜 아껴주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이 환경이 가끔 원망스럽기도 하더라는...


지난달에 조경국의 책 정리하는 법을 읽고 있었는데, 신간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런 책(솔직히 책 정리는 포기한 상태라서 이런 책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 없다는?)을 읽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고, 그래도 이 작은 공간에 쌓아둔 책을 조금이라도 숨 쉬게 해주기 위한 뭔가 기발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읽기 시작했던 건 아닐지 추측해본다. 이제 와서 말이다. 제목부터 기대하게 만들지 않은가. 이 책에서 제시해 줄 책 정리 방법을 따라 하다 보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정리법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만 하는 건 아니겠지. 암튼, 그러다가 이 책을 읽는 중에, 이 책을 언급하는 다른 분들의 글이 이상하게 자꾸만 보이게 되는 터라(일부러 검색하지도 않았는데 자꾸 눈에 띄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책을 완독하고 할 말을 찾아야겠다 싶었다는 게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은 목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 전자책으로 책장의 책을 바꿀 게 아니라면, 역시나 종이책은 보관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긴 하다. 예전보다 종이책 사는 비중이 줄기는 했으나, 지금도 꾸준히 종이책을 사고 있고, 작은 책장에 꽂아둔 책은 늘 포화상태이다. 거기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까지 여기저기 쌓여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오는데, 또 이런 습관(책 사고 책 빌려오고)이 고쳐지지도 않는 터라 다른 변화를 꿈꾸지는 않는다. 이런 패턴 안에서 집안을 조금 덜 어지럽히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이 그냥 또 한쪽에 잘(?) 쌓아두는 거라는 건 안 비밀이지만, 하아, 또 한숨만 나온다. 그나마 책을 들여오는 것만큼 이 집에서 내보내는 비율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가 추가되는 부분인 듯하다.


저자는 책을 둘 공간이 부족해서 급기야 돈을 주고 사무실을 빌려 책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던데, 이 방법은 정말 괜찮은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공간이 협소하다면, 내가 가진 책을 도저히 줄일 수가 없다면, 이 책들을 보관할 장소가 따로 마련될 수도 있다면, 그래, 나만의 공간을 꼭 내 집안에 마련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저자의 방법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주 잠깐. 지난번에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집 외의 다른 공간을 마련하자면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하고, 또 어느 분의 말씀처럼 같은 뜻을 가진 여러 명이 모여 얼마씩 갹출하여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소유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을 테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만 볼 수 없는 게 또 다른 문제들이 남겨져 있었으니, 그분의 말씀처럼 각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의미가 있을 거고, 공동으로 이용하자니 각자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소유하지 못할 수도 있고, , ... 내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나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도 잘 안 갈 것 같다는 거다. 이 작은 집 안의 작은 방에 만들어둔 서재도 하루에 한 번도 안 들어갈 때가 있고, 내가 읽은 책도 그 자리에 정리 잘 안 하고 아무 데나 던져둘 때도 있는데, 내가 마련하고도 이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 돈 낭비에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 될 것이고, 내가 정리하지 않은 습관 때문에 다른 이용자에게도 민폐가 될 게 분명하여, 나는 저자처럼 따로 사무실 따위 마련하여 내 책을 보관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겠다. . 나 같은 인간에게는 이게 맞아.


다시 이 책 얘기를 좀 해보자면, 저자는 이렇게 책을 자꾸만 들여오니 장소 부족, 집 안 구석구석 책으로 채워 넣느라 거실도 이용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욕을 먹는 건 당연했고,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에도 책이 쌓여 있다니, , 이분은 어떤 대책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헌책방까지 열게 되었다니, 놀랍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책이 너무 많아 포화상태이고, 그 책을 팔기도 하면서 정리하고, 책이 많은 공간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헌책방도 책 정리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거였네. (저자의 말대로라면, 헌책방으로 큰 수입을 얻는 건 기대하지 마시고~) 하지만, 이 방법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헌책방은커녕 여기에서 벗어나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기에, 아직은, 그래 아직은 이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깔끔하게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저자는 보통 많이 구매하는 책장 대신 경량랙과 이케아의 빌리 책장을(경량랙은 지금 집 안 정리에 활용하느라 몇 번 구입했는데, 추가로 책장이 필요해지면 이것도 생각해 봐야겠다), 소장한 책 목록 정리할 수 있는 비블리(https://bibly.ai/) 앱도 추천해 주었다. 내가 가진 책 목록을 정리해 주는 것도 좋은데, 사실 나에게는 내가 찾는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이 공간 안에서 책을 바로 찾을 방법이 시급하다.


이 책 안에서 뭔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책 정리하는 법을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지만, 책에 관한 다른 부분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을 옮길 때 박스보다는 보자기를 이용하는 게 낫고, 책 커버를 씌우는 것도 책을 잘 보관하는 방법이며,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도 언급한다. 손상된 책을 손보는 방법 보다 보니, 나도 종종 이용하는 목공풀 바르는 방법도 있었고,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스테이플러 박는 방법도 있었다. 가정용은 종이 몇 장 박히는 스테이플러인데, 예전에는 페이지 벌어져서 페이지가 뚝뚝 떨어지는 책을 도서관으로 가지고 가서 큰 스테이플러 박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오래된 양장본은 세워서 꽂아두는 것보다 누워서 놓는 게 덜 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니, 책장 맨 아래 칸에 꽂아둔 두툼한 양장본을 편히 누워서 자게 해 둘 마땅한 자리를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서재의 책을 정리하는 방법을 조언하는데, 작가별, 장르별, 출판사별, 시리즈별, 색깔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방법은 새삼스럽지도 않기에 그냥 자기가 내키는 대로 정리하는 게 방법이지 않을까. 나는 딱히 어느 기준으로도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이 작은 방에 있는 책장에 거의 세 부분으로 분류하여 꽂아두기는 했다. 맨 왼쪽(방의 안쪽)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장해 두고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 가운데는 세계문학을 꽂아두고 이 책들 역시 언젠가는 다 읽지 않을까 기대하며 남겨두었다. 그리고 가장 오른쪽(방문 쪽)에는 최근에 산 책 위주들로 꽂아 두었는데, 이 녀석들은 빨리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고,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여 빨리 이 방에서 내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꽂아두었다. 그럼 이렇게 책을 막 내보내면, 언젠가 또 이렇게 내보낸 책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이 생기는데, 그때 또 한 번 방출 여부를 확인하고 고민한다. 먼저 도서관 비치 자료인지 검색해 보고, 도서관에 있는 책이면 바로 방출 상자로 넣어두고, 도서관에 없는 책이면 일단 다 읽어보고 내보낼지 말지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일단 보류. 그럼 이렇게 내보내는 책은 또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여기서도 세 가지로 정하게 되는데, 중고 도서로 판매하거나, 도서 기증으로 보내거나, 너무 오래되고 중고 판매나 기증으로 보내기에도 애매한 것들은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보낸다. 이 책의 저자도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선물하거나 중고로 팔거나 기증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그러고 보면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정녕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정리하지 않는 게 방법일지도. ㅎㅎ


아예 정리하지 않는 것도 저리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잡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다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정리하면 됩니다. 세상에 급한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도저히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아 포기한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애서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책 정리하는 법, 117페이지, 조경국, 유유출판사)


이 방 안에 쌓아둔 책들이 그 양을 늘리지 않도록 신경 쓰자고 다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 같기는 한데 항상 불안하다. 책을 계속 사고 있는데, 여기서 나가는 책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결혼하면서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이 방은 오롯이 내가 가진 책들로 채워져 있는데, 사실은 아직 엄마 집에도 내 책이 남아 있다. ㅠㅠ 한 번씩 엄마한테 갈 때마다 필요한 책을 몇 권씩 들고 오기는 하는데, 그걸로 정리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엄마가 이사를 하시거나 돌아가실 수도 있는데, 그날이 오기 전에 내 몫의 정리는 마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다. 엄마 집에 남겨두고 온 책의 대부분은 버려질 운명일 것 같지만, 그것도 진짜 이삿짐 싸는 수준의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결론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 얼마나 많은 책을 남겨두고 잘 정리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보다 더 적게 소장하는 법을 찾고 싶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살아갈 것 같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남긴 책을 정리해 줄 사람도 없을 테니.


나는 애서가도 아니고 장서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의 책(대충 눈짐작으로 세어보니 이 방안의 책은 5백 권 안팎일 것 같다)으로도 버거워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진짜 이것보다 더 많은 책을 옆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책을 많이 소장하는 사람, 책을 아끼고 보듬어주는 사람, 책에 마음을 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다들 그 책들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아껴주고 있나요?










#책정리하는법 #조경국 #유유출판 #장서의괴로움 #다치바나다카시의서재 #서가에꽂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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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0-09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난 것 같아요.
요즘은 구매를 줄이고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이나 전자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어요
책이 쌓이지 않아야 집 정리가 되더라고요^^

구단씨 2024-10-13 22:53   좋아요 1 | URL
저도요. 한때 책에 집착해서, 읽기 위함이 아닌 눈앞에 두기 위한 마음으로 마구 사들였던 적이 있네요.
지금은 책 구매 욕심보다는, 님처럼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으로 읽거나 소장하고 싶은 책은 매달 한두권씩 구매하는 정도네요.
지금도 책 정리중이에요. 내보낼 것들 박스 하나 구해다가 차곡차곡 채워 넣는 중입니다. ^^
 


 

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돌아가시기 석 달 전부터 계속 말했어. 죽음의 문턱에서도 내 손을 잡고 말이야. 두 손으로 꼭 잡았다고, 꽉 말이지. 마지막 힘을 쥐어짠 거야. 쉰 목소리로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묘에 넣지 않겠다고 약속해줘하고 말이지.” (파묘 대소동, 51페이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우리 엄마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신 건가? 평소에 절대 아버지와 같은 무덤에 넣지 말라고 엄마가 그렇게 간곡히 말씀하셨는데, 우리 엄마와 같은 바람을 외치는 사람이 이 소설 속에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가다.


가키야 미우의 출간작을 꾸준히 읽어왔다. 그동안 만났던 작품도 마음에 쏙쏙 들어왔는데, 이번 신간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주고 싶은 딸과 어머니가 왜 그런 유언을 남기셨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들과 그 가운데서 현명하게 판단하여 파묘를 언급하는 며느리. 그 과정에서 결혼을 앞두고 성별 결정 때문에 파혼한 여성, 아버지의 조상 묘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의무감을 외치는 남성, 약혼자가 이어받고자 하는 조상 묘 관리의 어려움에 겁을 내는 여성, 그래도 역시 아내의 성을 따르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남성, 조상의 묘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노후 준비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 그런 남편의 생각에 파묘를 답으로 내놓는 여성 등 묫자리를 둘러싸고 많은 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이 소설 속에서 어떤 인물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 소설의 인물들 대부분은 연령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 시대에 주입하듯 배워왔던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테다.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의미는 묫자리를 잘 돌보고 계속 관리하면서 이어가야 하고, 그 정성을 자식의 자식에게까지도 이어지게 하는 어떤 의무감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 의무감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건 변해가는 세상이었다. 나부터도 할아버지의 묘지에 가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선산은 가까운 곳에 있다지만 그곳도 가본 적이 없고, 할아버지는 현충원에 계시니 그것도 멀어서 안 간다. 이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사촌 오빠도 선산에는 안 가는 걸로 안다. 선산에서 가까이 사시는 작은어머니가 한 번씩 관리하신다는데, 그것도 힘들다고 이제 안 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 그곳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한 번씩 정리해 주거나, 아니면 폐허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겠지.


단순히 묫자리를 관리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소설에서 말하듯 줄어드는 인구, 묫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와의 소통, 아들에게만 지우는 대를 잇는다는 무게감, 딸이 모시고 싶어도 성별 결정의 문제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게 무슨 전쟁 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작가는 묫자리 유지하는 일을 두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 더 현명하게 조상을 기리고 지금 세대가 부담을 덜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듯하다. 소설 속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게 파묘를 외치는 사쓰키인 것 같지만. ^^


작가는 비단 이 소설에서 묫자리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사건의 발단은 남편과 같은 묫자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외침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전작들에서 이와 비슷한,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문화를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 이혼합니다에서는 50대 주부의 이혼 성공기를 다뤘다. 살림과 육아에 집중하느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남편은 아내의 역할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시부모를 돌보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아내가 단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여기는 걸까. 친구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에 부러워해야 할 만큼 지쳐있는 여성이 이제 이혼을 외친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나이에 무슨 이혼이냐면서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는데, 이제 그녀의 인생은 또 다른 시작점을 맞이해야 한다. 자기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세대도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적인 편견이 머문 세상에서 주인공이 찾아갈 자유와 새로운 삶이 기대되게 하는 이야기다. 행복의 주인공은 내가 이뤄낸 가족이나 그들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만족스러운 행복이라는 메시지가 강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준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이야기다. 정작 시어머니의 자식인 남편이 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며느리가 하게 된다. 바쁘고 시간도 없는데 굳이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나 싶지만, 역시 누군가에게 맡기자면 돈이 든다. 그 돈을 절약하고자 직접 나선 며느리가 여전히 시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시어머니가 남겨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시어머니가 살아온 시간을 유추하게 된다. 어떤 물건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되고, 내가 아는 시어머니와 그들이 기억하는 시어머니가 너무 달라서 당황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짐만 되는 쓸데없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에 도움이 되는 물건으로 변하기도 한다. 글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집 정리를 상상하느라 숨이 턱턱 막히곤 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그분들의 시간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죽은 후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의 삶을 읽게 되는 시간에 뭉클해지기도 했다.


시어머니가 남긴 물건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확인한 일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시어머니의 방에 있던 수많은 유품은 시어머니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시어머니 유품정리, 392페이지)


애써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생각되는 만약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후회병동, 이상하게 나이를 한 살 더 먹어갈수록 떠올리게 되는 소설이다. 연명 치료를 거부한 말기 암 환자 4명이 그들의 후회를 곱씹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타인의 마음을 잘 못 읽는 의사가 이러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게 뭔가 어색한 설정 같지만, 오히려 이 설정은 두 사람(의사와 환자)을 더 가깝고 애틋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연히 주운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니 환자의 마음이 들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후회되는 일들이 계속 떠오르는 환자의 힘든 마음을 듣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게 된다. , 가족, 결혼, 우정 등 살아가는 동안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일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어서 더 공감하게 되는 시간이다. 뭔가 간절히 바라지만 다 가능하지 않고, 지나고 보니 자꾸만 그때가 후회되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는 게 답인 걸까. 소설 속 어느 환자의 말처럼, 누구나 죽게 되어 있고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 딱 그 정도가 좋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러면 되는 걸까? 너무 과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는 게 삶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게 딱 좋은데, 왜 매번 그걸 잊으면서 후회를 반복하는지.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것만이 우리가 아는 인생의 답인 건지...


"선생님, 하루하루를 소중히 하세요. 누구나 죽게 되어 있고,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 정도가 딱 좋지 않나 싶어요." (후회병동, 210페이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문제로 이제 70세가 되면 사망해야 한다는 법이 가결되었다는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소개 글만 보면 무섭지만, 그 속내를 들어보면 우리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보인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문제 중의 하나인, 노동의 인구는 적어지고 고령화는 빨라진다. 노령의 사람을 돌볼 국가 정책이 시행되면서도 세금 문제는 해결이 잘 안된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이 노령의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가는 결정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70세가 되면 사망해야 한다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해결 방법이 다를 뿐이지 우리에게도 직면한 문제다. 일할 수 있는 인구는 줄어들고 고령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대책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듦을 거부할 수도 없다. 누구나 아플 수도 있고, 일하고 싶지만 일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노후를 보낼 수도 있다. 청년 실업자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경제활동을 못 하게 된다거나 고령화 시대에 살아가는 게 비단 나이 든 사람만의 고민은 아니라는 거다. 소설에서 제시하는 답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서로의 상황,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거다. 완벽한 답은 아니어도, 조금씩 완전해지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가 같이 나아가는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신과 나, 젊음과 늙음이 공존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야 하는 일, 그게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이라는 고민이 남았다.


이보다 더 많은 가키야 미우의 작품이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절판된 작품도 몇몇 보인다. 다양한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도저히 현실에서 동떨어진 문제가 하나도 안 보인다는 거다. 지금, 오늘을 살아가면서 몇 번씩 부딪히는 모든 문제가 작가의 소설 속에 다 있더라. 그래서 더 잘 읽히는 듯하다. 우리 집 이야기, 어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앞집 아줌마가 하소연하는 소리,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이야기 등 우리 사는 세상에서 매일 듣는 이야기가 이 안에 있었다. 우리나라 출간일 기준으로 보니 보통 1년에 한 권씩 나오는 거 같은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읽는 동안 너무 재미있고,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게 된다. 때로는 어떤 답을 얻기도 하고,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했던 일을 느슨하게 풀어주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많은 일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인지, 조금 더 엄숙하게 읽게 되는 부분도 있다. 앞으로도 많은 작품 속에서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 적나라하고 신랄하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키야미우 #파묘대소동 #이제이혼합니다 #시어머니유품정리 #여자들의피난소

#당신의살을빼드립니다 #후회병동 #결혼상대는추첨으로 #서른두살여자혼자살만합니다

#70세사망법안가결 #노후자금이없습니다 #당신의마음을정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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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저녁 7시경, 중고 거래 티켓 구매 사기를 당했다. 웬만해서는 지류로 직거래만 했는데, 이때는 뭔가 씐 것처럼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판매자가 기존 다른 거래를 한 흔적과 구매자 후기까지 있어서 안심했다. 혹시나 싶어 더치트에 계좌 확인까지 하고 입금했는데, 입금하고 나니 갑자기 싸한 느낌. 왜 이런 느낌은 꼭 돈을 보내고 난 후에 드는 건지...


당근 채팅으로 구매 물품을 보내달라고, 몇 시까지 보내줄 거냐고 물었지만 판매자는 채팅 확인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먹튀를 확신하고,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저녁 8시 반까지 물품을 보내던지, 답변을 하라고. 그 이후로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그러고 나서, 판매자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작성했다. 8시 반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고 물품을 보내주거나 환불에 관한 얘기가 없다면 바로 신고하려고. 역시나 판매자는 채팅 확인도 안 하고, 답변도 당연히 없었다. 바로 ECRM(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에 신고를 했고, 중고 거래 앱에 신고하고, 더치트에도 해당 계좌와 판매자 이름(그 이름이 진짜인지도 모르겠지만)도 등록했다. 그 후 바로 판매자에게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ECRM에 신고한 내용을 캡쳐하여 첨부하고, 내일 아침 바로 경찰서로 가겠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이쪽 관련 일을 하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당근 사기를 당했다고, ECRM 신고를 했고, 당근에도 신고를 했고, 내일 아침에 바로 경찰서로 가서 정식 접수할 건데, 그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동생 말로는, 담당 형사가 배정되면 수사가 진행되고,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힌다고, 금방 잡힌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이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그날 밤 10시 쯤, 옆지기가 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느낌에 그 놈일 것 같았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옆지기 모르게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다 틀렸다) 판매자는 자기가 퇴근할 때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채팅을 이제야 봤으며, 지금 병원에서 처리가 늦어져서,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사기꾼이 병원에 있다는 말은 100% 거짓말이다. 예전에 엄마 집 공사하다가 튄 사기꾼도 병원 핑계 대면서 잠수 탔다) 그러면서 자기가 내일 아침 9시 전까지 환불 해주겠다면서, 계좌번호를 남겨달란다. 내가 구매한 물품을 주면 되는데, 왜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정하느냐, 그리고 환불해줄 거면 지금 입금하라고 했더니, 또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그럼 내일 당신이 입금할 상황이 되면 연락해라, 그때 계좌를 주겠다고 말했더니, 알았다면서 끊더라. 판매자가 돈을 입금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구매한 물품이 아니라 다짜고짜 환불 얘기를 하니, 그냥 이 놈은 사기꾼이.


822. 다음 날 아침, 나는 9시가 되기 전에 경찰서 민원실 앞에 있었다. (경찰서 민원실은 진짜 9시 땡! 해야 문을 열더라) 그때까지도 판매자에게 연락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을 늦추며 기다려 달라고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850분쯤 판매자에게 문자가 왔다. 병원에서 어쩌고 저쩌고, 늦어도 오후 6시까지 입금하겠다면서 계좌를 알려 달라고 하더라. 읽고 씹었다. 그렇게 9시가 되었고, 민원실을 거쳐 수사팀으로 갔다.


담당 부서 형사들이 회의 중이라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기다리면서, 나를 응대했던 다른 형사님에게 이 사건을 얘기하고 몇 가지 물었다. 어쨌든 담당자가 와야 내가 어제 온라인으로 신고 접수한 게 정식으로 사건 접수가 되어 진행되겠기에, 그 전에 다른 것을 좀 물어봤는데, 그분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 보니 전화를 안 받더라. 그러다가 그분이 문자로 현재 상황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더니, 판매자가 문자를 확인하고 그분께 전화를 했어. ㅎㅎ 나에게 댔던 핑계를 그분께 똑같이 하는데, 그 분 통화하는 내용이, 어쨌든 피해자가 지금 경찰서 수사팀 자기 앞에 있으며, 지금 전액 환불이 아니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이대로 사건 접수할 테니 당신은 해당 경찰서에 연락이 가면 나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주 단칼에...)


잠시 후, 해당 사건 담당해주는 부서의 형사들이 왔고, 나는 ECRM 접수한 내용을 정식으로 접수했으며, (지장을 겁나게 찍었다. 내가 등록한 자료들이 많더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분께 물었다, 담당 형사 배정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그분 말씀으로는 빨라야 1~2주라고 하더라. 온라인에서 찾아봤을 때 어떤 피해자는 담당 형사 배정까지 4달이 걸리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다가, (동생 말로는 더 자세한 얘기도 들었지만, 이건 나만 듣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분께 말했다. 동생이 이쪽 관련 일을 하는데,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는다고, 금방 잡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건 담당자 배정까지 1~2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는 듯하다고. 그랬더니 그분,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경찰서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 그 말 듣고 그냥 웃으면서 나왔다.


그날 오후 4시쯤, 판매자가 입금을 했다. ? 전화도 오고 문자도 왔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823. 오전에 경찰서 담당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오잉? 담당자 배정까지 빨라야 1~2주라고 했는데, 사건 접수하고 바로 다음 날 담당자가 전화를 한다고?) 그래서 어제 판매자가 돈을 입금했다고 했더니, 나에게 진정 취하서를 문자로 전송하라고 하더라.


사실 그 돈을 잃은 게 속이 쓰렸지만, 차라리 그놈이 돈을 안 주기를 바랐다.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그 놈을 벌 주고 싶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그 놈을 민사로 접수하여 괴롭혀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사건이 조사 진행되는 중에 돈을 돌려준다면 받아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돈을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건이 제대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 놈이 환불해 주었기에, 이제 이 사건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게 끝. 무슨 법이 이런가 싶은 마음만 남았다.


그 후, 중고 거래 앱은 그대로 그 놈이 이용 정지 상태로 있고, 더치트에는 내가 등록한 그 놈의 정보를 비공개 해놨다. (더치트는 피해 금액을 돌려받으면, 사기꾼 등록해 놓은 내용을 비공개로 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후에 사기꾼이 민사 사건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사기를 당하고, 신고 접수하고, 환불 받고, 사건이 제대로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끝나버리고. 이 모든 게 불과 하루 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번 일로 몇 가지 검색을 해보니, 많은 사람이 번거롭다고, 금액이 적다고, 또 다른 많은 이유로 신고를 안 하고 속만 끓이고 있더라. 어차피 속 끓일 거, 신고는 하고 속 끓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나쁜 사람들이 또 어디서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지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마음을 비참하게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돈도 잃고 멘붕이 오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이렇게 사기를 당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자괴감이었다. 내가 이렇게 왜 그랬을까 싶은 우울감에 정신줄을 놓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옆자리 동료가 보이스피싱 당할 뻔한 걸 겨우 말리면서 큰 돈 잃을 뻔한 걸 피해갔는데, 내가 사기 당하고 보니 이거 순식간이다. 요즘 라디오 듣다 보니 광고 나오던데. 보이스피싱 범죄, 아직 내 순서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쁜 놈들은, 피해자의 마음이 약하고 급할 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 기회를 놓지 않고 파고드는 것 같다. 조심, 또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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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odeb 2024-08-27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고나라 절판책 구매로 5만원 사기당했는데 나중에 잡혔다고 연락왔는데 돈은 못돌려받았죠. 노숙자라던가요;; 수십건을 했다네요.참 나..

구단씨 2024-08-28 21:09   좋아요 2 | URL
그 사람은 아마도 이 한 건 추가가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 사람이겠죠?
왜 이런 짓을 습관처럼 하는지 모르겠어요. 에효.

꼬마요정 2024-08-28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속이 많이 상하셨겠어요ㅠㅠ 저는 15년 전에 외장하드 사기 사건으로 경찰서에 간 적 있어요. 정확히는 남자친구가 사기 당한 건데 그 때 본인이 시간이 안 나서 제가 호기롭게 내가 갈게 하고 갔더랬죠. 어차피 그 때 제 계좌로 돈을 준 거라서 제가 가도 되고, 경찰서 구경도 하고 싶었거든요. 동생이랑 같이 갔는데, 훈남 형사님이 이야기를 듣더니 그 놈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요. 그 놈 받아요. 주민번호까지 형사님께 불러주더라구요.(저보다 한 살 어리더군요) 그리고 여차저차 신고 접수가 되었으니 돈 안 돌려주면 저 서울 어디 경찰서에 가서 조사 받아야 된다 이러니까 그 놈이 막 징징거리더군요. 형사님이 전화 끊고 사건은 접수 되었고 돈은 돌려줄 것 같은데 기다려 보라면서 그 놈 전적이 있다면서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돈이 들어왔어요. 저는 다음 날인가 동사무소 가서 그 놈 관할 경찰서로 취하서를 팩스로 보냈죠.

한 번은 남편이 데스크탑을 켰는데 화면이 파랗게 되고 작동이 안 되더니 쪽지가 왔대요. 니 컴퓨터 자료를 돌려받고 싶으면 문화상품권을.... 하아.... 안 줘 이랬더니 진짜 다 지운다 그러더래요. 그래서 필요한 거 없다 이랬더니 진짜 지우고 사라졌대요ㅠㅠ 강제 포맷 당한거죠. 그 안에 저희 집 냥이들 사진 다 있었는데...ㅠㅠㅠㅠㅠ 경찰서 갔더니 형사님이 돈을 안 줘서 그 놈을 못 잡는대요. 그래서 남편이 아, 제가 문화상품권을 줬어야 했나요? 하니까 또 그건 아니죠.. 그러고... 결국 못 잡았습니다. 나쁜 놈!!!!!!!

말씀처럼 제가 사기를 당한 게 아니었음에도 경찰서에 앉아 있으니 뭔가 제가 멍청한 것 같고 제가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구요. 진짜 사기 당하신 분들 마음 고생 심하시겠더라구요. 사기꾼이 잘못한 건데 왜 피해자 마음이 그런건지... 조심 또 조심해야 그나마 덜 당하겠죠ㅠㅠ 고생 하셨어요 구단씨 님.

구단씨 2024-08-28 21:14   좋아요 3 | URL
세상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아요. ㅠㅠ
그리고 신고 접수된 후에 그놈이 돈을 돌려주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은 거고, 나쁜 짓을 신고한 거는 신고한 그대로 처리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왜 취하를 하라는 건지... 그러니까 이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돈 돌려 달라고 신고하면 돌려주고, 그냥 포기하면 먹튀 하고. 에잇~

봄날의 언어 2024-08-28 2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이 부지런한 만큼, 똑같이 성실하고 집요해야 ‘겨우‘ 본전이네요. 저로서는 엄두가 안나는데 배우고 갑니다. 고생하셨어요.

구단씨 2024-09-02 21:2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그런 게 억울해서 병이 날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또 어딘가에서 사기 치고 다닐 것 같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덥다, 더워...

입추매직도 처서매직도 이제는 의미 없는 말인가 보다.

그제 밤에는 에어컨 없이 잠들 수 있구나 싶어서 곧 사라질 더위를 기대했는데,

어젯밤에는 다시 에어컨 리모컨을 들었고,

오늘은 몸을 계속 움직여서 그런 건지 뭔지, 와아, 잠깐 사이에 온몸이 다 젖었다.


사실 작년과 다른 것을 분명 느끼긴 했다.

에어컨을 같은 설정으로 켰는데 하나도 시원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에어컨 사용 후 끌 때마다 전기를 얼마나 썼는지, 친절하게 에어컨이 알려주는 숫자에 놀라고 있었고,

한전 실시간 요금 조회를 봐도 작년보다 거의 두 배의 전기를 쓰는 요즘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ㅠㅠ

아무리 여름 한 계절이라고 해도, 전기 요금 걱정이 안 될 수는 없다. (이놈의 누진세 너무 무섭다)


게다가, 정말 아쉬운 경우가 아니면 생수보다는 끓인 보리차를 먹는 우리 집 요즘 모습은,

이틀에 한번 꼴로 가스렌지(혹은 전기주전자) 앞에서 열불 내고 있는 거다. 

덥다고 물도 더 마셔. 하아.


이 날씨에 밖에서 현장 일 하시는 많은 분들도 힘드시겠다.

이러다가 이번 겨울에 지독한 한파가 오는 건 아닌지 몰라. ㅠㅠ


(자꾸 손에 땀이 차서, 책을 들고 있기가 힘들다...)




- 읽는 중, 예약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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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4-08-20 23: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정말정말 덥다는 걸 느껴요 ´・_・`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면 집이 더 찜통일 때가 많아 이번 여름은 내내 에어컨 틀고 사는 것 같아요ㅠ;

구단씨 2024-08-23 19:34   좋아요 2 | URL
정말, 너무 더워요.
아직도 에어컨을 껴안고 살아요.
내년 여름도 이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