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은 시골 주택에서 사시는 시어머니의 집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주방 싱크대 위는 빈 곳을 찾아볼 수 없고, 주방 옆 한쪽 구석에는 커다란 냄비가 쌓여 있다. 안방 침대 옆 옷걸이에는 옷이 가득 걸려 있어서 안쪽에는 어떤 옷이 걸려 있는지 감춰져 있을 정도이고, 냉장고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까만 봉지에 담긴 것들이 두서없이 쌓여있다. 봉지를 열어봐야 뭔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사정이 있어서 다른 동네에 있는 집과 왔다 갔다 하면서, 말 그대로 두 집 살림하시는 시어머니에게는 총 5대의 냉장고가 있다. 그 냉장고마다 가득한 것들은 언제 냉장고를 탈출하는 걸까. 다른 방이 하나 더 있지만, 누군가 와서 쉬거나 잠을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집의 크기에 비해 많은 짐으로 가득해 보인다. 남의 살림이니 굳이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훗날 이 집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올 걸 생각하면 걱정이 가득하다.


소설은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러 온 모토코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하아. 한숨부터 나오는 건, 나 역시 그녀의 시선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어서, 가끔 가는 시어머니 집을 보는 내 마음이 그녀와 같았기 때문이다. 월세가 계속 나가는 시어머니의 집 정리를 서둘러 하고 싶은 모토코는 암담했다. 업체에 맡겨서 처리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고, 본인이 직접 하려고 시작하니 끝도 없이 짐이 쏟아져 나온다. 도대체 이것들로 뭘 하고 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시어머니의 집에서는 한 번도 뜯지 않은 물건부터 오랫동안 입지 않았을 옷까지,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은 또 어떻고. 어쨌든 방법이 없으니 직접 해야만 했다. 빨리 처리하고자 짐을 꺼내고, 큰 가구나 가전은 수거 날짜에 맞춰 내놓아야 하니 차근차근 처리했다. 하지만, 정말 끝이 없었다. 종일 몸을 움직여 치우는데도 치워야 할 짐이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자기가 볼 때는 전혀 쓸모없는 물건들이지만, 이 집에서 나고 자란 남편에게는 다를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물건들의 처리를 물어보는데, 더 황당한 말이 돌아온다. 버릴 수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 집으로 들고 갈 수도 없고, 집으로 들고 간다고 하더라도 놓아둘 공간이 없는데 어쩌려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친어머니의 집이 생각나는 모토코.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어머니의 집은 꼭 주인을 닮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집안 모습, 딱 필요한 만큼만 갖고 있던 손수건처럼 집안의 모든 물건이나 자기 치장을 위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성정을 보고 자란 모토코가 시어머니의 생활 방식을 쉽게 이해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면서 한숨만 푹푹 나오는 거겠지. 그때 시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녀가 처리하기 힘들어하던 물건을 지혜롭게 같이 정리해 주기 시작한다. 기부하는 곳에 보낼 물건, 수량 제한이 있지만 사정을 봐주기도 하는 시청의 수거 담당의 일 처리,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는 이웃들까지. 평소 시어머니와 잘 지냈던 이웃들은 암담해하던 모토코의 일을 도와준다. 이런 걸 보면서 그녀는 문득 궁금해진다. 이웃들에게 시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남겨진 짐들을 정리하면서 이웃들이 전하는 시어머니와의 일화는 의외였다. 시어머니의 오지랖이 불편했던 그녀와는 달리, 이웃들은 시어머니의 오지랖으로 도움을 받은 일이 적지 않았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어쩌면 그들에게 베풀면서 본인도 주는 기쁨을 누렸던 건 아닐까. 시어머니의 소박한 일상은 나중에 발견한 일기를 통해 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 일기장 역시 자기 친어머니와 저절로 비교되는 모토코였다. 일기장까지 그 주인의 성격을 닮아있으니, 누군가 남긴 흔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보는 기분이었다. 타인과의 교류에 감정 기복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던 시어머니의 일기장과 단 두 줄로 그날의 기록을 마무리했던 친어머니의 일기장. 시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불쑥불쑥 끼어드는 친어머니와의 기억은 또 하나의 시간여행이었다. 죽은 후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의 삶을 읽는다.


물건이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영혼이 깃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영혼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264페이지)


시어머니가 남긴 물건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확인한 일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시어머니의 방에 있던 수많은 유품은 시어머니의 인생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392페이지)


평소 우리 삶의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로 익숙한 가키야 미우의 이번 작품 역시, 내가 걱정하던 그 순간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사람이 그 집을 정리해야 할 텐데, 시어머니의 유일한 자식인 나의 남편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나도 남편 대신 시어머니 집을 정리하던 모토코와 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다 버려야 할 것들이라 오히려 업체를 부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곳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남편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어찌 시어머니 집뿐일까. 혼자 계신 나의 엄마도 언젠가 떠날 테고, 그 집 역시 시어머니 집만큼은 아니어도 정리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답답하긴 한데, 막상 정리하면서 느끼는 마음은 사뭇 다를 것도 같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엄마의 공간이면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자라던 나의 공간이기도 하기에. 버려도 되는 건 바로바로 버리고 살자고, 언젠가 쓸 것 같다는 마음으로 쌓아두기엔 언젠가 쓰지 않고 버리게 될 게 너무 많다고 잔소리하는 나이지만,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건 역시 쉽지 않으리란 걸, 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토코가 알게 된 마음을 많은 독자가 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남겨진 물건들로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고부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기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가는 노력으로 또 한 번 인간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는 건 아닐까 싶다.



#시어머니유품정리 #가키야미우 #문예춘추사 #소설 #문학

##책추천 #책리뷰 #일본소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4-05-30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윽... 저는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요. 리뷰만 읽어도 몰입되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데요 ㅠㅠ

구단씨 2024-05-31 21:51   좋아요 2 | URL
아닙니다. ^^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일은 없는데요.
그래도, 언젠가 일어날 일을 미리 경험하는 기분은 들었어요.
그것도 제가 항상 걱정하던 일이어서 그런지,
가볍고 편하게 읽히는 문장과는 달리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