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연
청예 지음 / 래빗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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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를 받으리.

무당이 내게 물었지. 사랑이 이뤄지는 날인데 왜 웃지 않느냐고. 가슴 아래에 숨긴 대답은 간단했다. 사랑이 아니니 웃질 않아요. 아랫입술을 깨물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옥상 난간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팔을 펼쳤다. 저녁 하늘을 활주로 삼아 비행했다. 추락에 필요한 시간은 단 5. 곤두박질친 머리가 땅과 부딪을 때 수박이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뼈가 부서지는 통증과 질금질금 새어 나오는 뻘건 핏물이 내게 물었다. 이제 무어승로 다시 태어나고 싶니. (17페이지)


이런 복수. 정말 재밌겠구나 싶었다. 어설픈 용서가 의미 없다고 믿는, 용서한다고 고통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나는 한 사람으로, 괜히 좋은 사람인 척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내 상처는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왜 자꾸 용서하고 화해하래, 왜 자꾸 잊고 지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이런 감정 역시 여러 가지로 좋을 리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럼 용서할지 말지, 복수할지 말지, 이 고통의 소멸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던 자기 마음 아닌가? 자신과 엄마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바람난 아버지, 그 아버지가 새로 꾸린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서 그들에게 고통을 선사하리라.


무당의 부적 한 장으로, 오주희는 계모의 딸 오연린으로 다시 태어난다. 17년간 살아온 전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던 건 아니다. 오주희에게는 아버지에게 똑같이 버림받은 엄마가 있었으니까. 엄마를 생각하며 선택했다. 아버지와 계모에게 철저하게 복수할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오연린으로 환생한 두 번째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 오주희 모녀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모두 벌하겠다는 거였다. 아버지, 계모, 무당인 계모의 어머니. 이미 한번 살아본 17년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다시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영재 대접받았다. 남들이 처음 배우는 것을 이미 습득한 채였으니 이번 생의 처음이 얼마나 쉬웠을까. 사실 오연린이 살아갈 시간은 17년 플러스이기도 하지 않은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장하여 교묘하게 계모와 외할머니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한눈팔았던, 계모가 기억하는 여자의 이름을 언급하고, 외할머니의 품 안에서 마냥 아이처럼 굴었으나 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법을 정확하게 알았다. 어른들은 아버지의 과거, 계모가 깨부순 남의 가정사를 비밀에 부쳤으나 아이는 모르는 척 언급하면서 이들의 평온한 삶에 풍파를 일으킨다.


복수는 말이야, 당했다는 사실을 평생 못 잊게 만들어야지. 복수는 사건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95페이지)


이런 설정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흥미롭긴 했다. 너무 궁금했다.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대상의 아이로 태어나다니. 두 사람은 자기 자식이 마냥 예뻐서 물고 빨고 할 것이고, 이 아이의 영특함에 천재가 태어났나 싶을 기쁨에 찬물을 끼얹을 타이밍을 재고 있다는 것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아니면 아이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괴롭힐 때 받는 고통의 순간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오연린이 언제쯤 이 모든 사실을 밝힐 것인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읽다가 생각해 보니, 보나 마나 이 부부가 삶의 안정과 풍요로움을 느끼며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을 때 터트리지 않을까 싶었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이 미세한 틈을 무시하고 모른 척하며 넘어가곤 하면서 잊을 때, 애써 무시하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눈앞에서 펼쳐졌을 때. 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좌절과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복수를 다짐하고 목숨을 버렸던 의미가 새겨지는 거 아닐까. 현실 나이에 17년을 더해 살아간다고 해도 아이다. 이 아이가 계획한 복수를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할 무렵, 오연린과 비슷한 복수심을 가진 박은정이 등장한다.


오연린은 박은정을 동정하기도 하면서, 자기 복수의 조력자로 옆에 둔다. 은정을 보면서 마치 자기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은정이 가진 복수심에 자기도 조력자로 함께 한다. 영악한 아이 둘이 함께하니 어설프게만 보였던 복수가 점점 완전해져 가는 게 보인다. 아이의 공격으로도 인간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고, 자기 스스로 파멸할 수 있구나 싶어서 새삼 놀라웠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이렇게 때려 맞을 수 있다는 게,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이 되어 스스로 무너뜨리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비슷한 복수심을 가진 두 사람이 한편을 넘어서서 한 몸이 되려고 애쓰는 힘이 굉장했다. 복수가 완벽해지는구나 싶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떤 균형이 깨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서로가 가진 복수심을 해결하려고 뭉친 사람들 같았는데, 한쪽이 밀고 들어오는 힘이 너무 셌다. 오연린은 한편이 되는 것으로, 박은정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이들이 향해 가는 목표가 달랐던 거다.


간단하지 않았다. 복수가 쉽지도 않았다. 처음 계획대로 가지도 않았다. 사랑과 애정이 상처받아 탄탄하게 새겨진 복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로 무너질 거였으면 죽음을 불사하고 다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도 복수가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묻게 된다. 이 선택이 맞는 건가? 이대로 끝까지 가도 되는 걸까? 박은정의 맹목적인 사랑이 점점 오연린의 숨통을 조이게 될 때, 또 다른 인연 이현이 다가온다. 오연린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다. 이현의 사랑 방식에 경험하지 못한 편안함을 느낀 오연린은 박은정과의 관계, 그동안 해온 복수, 앞으로 더 미워할 사람들, 많은 것을 향한 생각이 변해간다. 또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지금 이 상황이 온전하게 맞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또다른 선택과 답을 찾아야만 했다.


사랑이 문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의 기준이 달랐고, 계모가 아버지를 선택한 것도 사랑이었다. 딸의 행실을 바로잡아주지 않고 그대로 결혼을 진행하게 한 계모의 어머니가 선택한 것도 딸을 향한 사랑이었으리라. 오주희가 엄마를 위해 복수를 다짐하며 죽음을 선택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는데, 정말 이 모든 게 사랑이 맞긴 한 건가. 각자가 믿는 사랑을 위해 선택하고 다시 태어났음에도, 그 누구도 사랑을 완성하거나 행복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마치 형벌을 받는 것처럼 고단하고 힘들었다. 복수를 선택해서 다시 태어난 삶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굴레를 또 촘촘히 엮고 있었다. 읽으면서 복수의 통쾌함을 다 즐기기도 전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름 모를 불안감은 소설의 결말에서 확인하게 되면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내 맘대로 복수를 꿈꾸며 다시 태어났고, 그대로 착착 이뤄질 것 같았던 복수의 끝이 이렇게 두려울 수가. 역시 거울 치료가 답이었던가. 아니면 복수하면서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자신을 조금씩 파먹고 있다가 이렇게 눈앞에 나타난 건가. 복수하겠다고 맺은 인연들은 때로 저주가 되어 되돌아온다.


살면서 내내 경험하게 될 사랑, 용서, 복수의 끝은 우리 생에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 묻는다. 피폐해져도 복수를 완성하고 뒤돌아보지 않을 것인지, 상대가 고통스러워하는 게 그대로 보이는 데도 내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지, 그런데도 다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주와연 #청예 #래빗홀 #한국문학 #한국소설 #추리소설 #복수의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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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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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모르지 않은 감정이었다. 폭발할 것 같은 분노, 죽이고 싶을 정도의 미움,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상처받은 내 감정을 이렇게도 무시하는지.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받아들일 수조차 없다고 여길 때.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데, 내가 믿었던 사실에서 벗어날 이야기가 없는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열 받는다. 다 부숴버려야지.


위니프레드 노티를 엔저 저택에 새 가정교사로 고용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저택에 도착한 그녀는 호기심 충만한 눈빛이지만, 저택의 고용주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프랑스어와 바느질도 가르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미소 띤 표정을 장착하는 것. 뭐 빅토리아 시대의 숙녀다운 품위 유지 그런 걸 가르치라고 하는데, 이 저택의 아이들은 도통 관심이 없다. 좀 멍청하고 버릇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업무의 어려움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노티는 이 저택에서 그녀의 숨겨둔 내면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아이들의 귓가에 공포를 속삭인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잠이 든 밤에 혼자 저택을, 저택 주변을 서성이며 어둠을 즐긴다. 저택의 초상화에 흔적을 남기고, 불편한 눈빛을 보내는 저택의 주인을 무시하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거리낌 없이 피가 낭자한 잔인함을 표출한다. 이름 그대로 가정교사인데, 아이들이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자라는데 필요한 품위를 가르치라는데, 이런 임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아이들을 제압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노티의 가르침을 존중하지도 않은 채로 자기 멋대로 구니, 뭐 이것도 크게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는 일인가 싶기도 하다.


엔저 저택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노티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손님들이 다 가고 나면 해고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저택의 파운즈 부인의 눈 밖에 나버려서, 이 저택의 크리스마스 행사가 그녀의 마지막 임무가 될 터였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행복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이 소설 안에서는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공포가 된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축제 같은 이 기간을 즐기려고 모여드는 사람들, 엔저 저택의 우아함을 칭찬하며 헐뜯을 게 없나 찾는 교활한 눈빛들, 아내의 텅 빈 머리에서 나오는 말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남자들,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가문의 재산을 자랑하며 우월함을 뽐내고 싶은 여자들. 저택에 모인 그 많은 사람이 쏟아내는 말은 좀, 혐오스러웠다. 유모차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물려줄 재산 이야기 말고는 자랑할 얘기가 그렇게 없었나. 돈과 가문, 계급으로 나눈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벽에 고정된 장식처럼 아이들 옆이나 뒤에서 시중들며 서 있는 보모들을 하찮게 여기는 말에, 나도 읽으면서 상처받았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소설 속에서, 이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 환경은 아니지 않은가. 사회 불평등이나 약자를 혐오하는 태도는 지금도 너무 흔하고, 이런 부조리는 인간의 내면에 어둠을 키운다고.


얼마나 꼴 보기 싫었으면, 미운 인간들을 찌르고 부수고 때리고 하는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걸까. 생고기를 뜯어 먹으며 입으로 피가 줄줄 흘러도 민망함이 없고, 귀족이라고 같잖은 허세 부리는 인간들의 민낯을 보면서 그녀의 상상은 현실이 되어 행동에 옮겨진다. 머릿속으로 잠깐 상상하듯 생각한 거 같은데,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상상이 아니었다. 너무 잔혹했지만 춤을 추듯 아름다웠고, 올림픽 경기하듯 우아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으며, 허공을 휘젓는 내장이 장미의 꽃잎 같다는 말에 토할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 속의 문장이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황홀함이 이런 걸까. 오싹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는, 어쭙잖게 귀족의 권력을 내세웠던 인간들의 참혹한 최후에 이상한 쾌감까지 느껴지는 게 이상한 건가. 잔인하리만큼 소름 끼치지만, 그녀의 광기에 미친 듯이 웃음도 나는 내 마음을 또렷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무대 위 배우 같은 그들에게서 피 묻은 실크 스카프를 잡아당긴다. 그들의 내장이 한 줌의 장미 꽃잎처럼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248페이지)


설명하기 어려운 시원함에 죽을 것 같은 이 폭염이, 잠깐이지만 용서가 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위니프레드 노티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기에, 그런 환경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정서의 어둠도 이해가 되더라만, 그렇다고 다들 이렇게 성장하지는 않는다. 웃으면서 석궁을 당기고, 환한 미소를 뿌리며 상대의 가슴에 칼을 쑤셔 넣고, 아무 표정 없이 목을 가르는 일들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마지막 파티에서 그녀의 계속된 춤(?)이 이렇게 즐겁게 다가올 수 있다니 내가 이상한 인간인 건가 무섭기도 하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그녀 안의 악이 어떻게 커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 지금 그녀가 쏟아낸 광기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다. 너무 눌렀어. 여자라서 하지 말라는 금기와 규칙은 너무 많았네. 이 정도의 살인이 어느 시대에서 벌어졌어도 당연히 사형인데, 이상하게 시원해지는 독자의 마음은 뭘까. 말로 해도 안 들어주고 법이 해결해주지도 못할 거라서 그런 건가.


근데 궁금한 거 하나 남았는데, 그 아저씨는 진짜 아빠야, 아니야?




(피가 낭자한 잔인한 장면쯤이야, 싶다면 추천)

 

 

#빅토리안사이코 #버지니아페이토 #현대문학 #소설 #공포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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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선인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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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작가의 문장은 쉬웠다. 잘 읽히는 데다, 착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니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 주인공이 잠시 내려놓았던 삶의 의미를 찾게 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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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둑 성장기 위픽
함윤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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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았으려나, 사소해 보여도 누군가의 소중한 무엇이 사라진다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지 못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결말 같았다. 차게 식은 커피를 들이켜며,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것’이 알려줄 때까지, 사미는 공항의 카페에 앉아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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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여자
알레샤 디케마 지음, 김현수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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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하는 로라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엄마와 동생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기 편이 되어줄 수도 없다.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바라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긴 올까? 카페에서 일하는 게 유일한 생계 수단인 그녀에게, 어느 날 인생 전환을 맞을 기회가 온다.


설마 그게 기회일까 싶지만, 손님으로 온 테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카페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얘기할 뿐, 그 외의 말을 걸어온 적이 없다. 그런데 테오는 달랐다. 그녀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누군가와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매일 같은 시간, 테오는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와서 늘 같은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 카페 문을 나서면서 윙크도 던진다. 어라. 지금 테오가 로라에게 작업 거는 거?


이제 그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테오를 찾아보고, 그의 집안, 배경,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고 놀란다. 넘사벽 신분의 차이,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인 그의 아내가 나타난다. 뭐야, 아내 있는 남자가 작업을 걸어온 거야? 윙크는 왜 날려? 이런 의문도 잠시, 고를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괜찮아. 그에게 아내가 있지만, 나는 그를 유혹하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야.’ 로라는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로라는 이름을 바꾸고 SNS에서 그의 아내의 일상을 훔쳐보며 접근하며 친구가 된다. 점점 그들의 세상에 스며든 로라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거짓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이제 로라의 가짜 인생은 진짜가 되어야만 했고, 유일한 목표를 이루는 것밖에 없다. 테오. 그만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길이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로라의 자신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외모가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이런 자신감을 뿜어대는 여성을 볼 때 궁금하긴 했다. 누구라도 눈길을 한번 주지 않고 못 견딜 만큼 평소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살았나? 아니면 로라처럼 기를 쓰고 노력하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이게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각오로 덤비게 되는 건가. 뭐든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이런 방법이 도덕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해도 기어코 해야만 한다고 작정했다면, 해야지 뭐. 어쨌든, 로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테오에게 접근하고, 테오는 그의 아내에게 모른 척하면서 로라와의 관계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테오의 아내, 아스트리드는 이들의 관계를 알까, 모를까?


하도 책을 안 읽었더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좀 읽어야겠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끝이 어찌나 무거운지, 진짜 한 페이지 읽는 일조차 어렵더라. 좀 가벼운 이야기를 만나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비밀을 갖고 있다기에, 로라의 허무맹랑한(?) 자신감과 계획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읽어보긴 했지만. 가독성은 좋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아내를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처럼 구는 테오를 볼 때면 가끔 어이가 없으면서, 테오와 로라의 긴장되는 장면에서는 <탐정들의 영업비밀> 보는 기분으로, 상류사회로 편입하려고 발버둥 치는 로라의 욕망을 걱정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의심스러워서 언제쯤 그 비밀이 드러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진실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다. 남의 비밀을 그렇게도 궁금하고 파헤쳐서 떠벌리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결말이 좀 의외이긴 했다. 어떤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며 가문을 완성하고, 각자의 이익에 맞게 살아가는 게 인간의 민낯이겠지만, 이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끝이 보이기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죄책감 없이 뻔뻔했던 테오도, 남편을 너무 믿었던 아스트리드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나의 행복으로 만들고 싶었던 로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때 벌 받을 거라는 걸 알았으려나. 무엇보다 위험의 시작은 남의 것을 탐냈던 로라였으니, 내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말고, 착하게 살자. 괜히 욕심부리다가 위험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훔친여자 #알레샤디케마 #북플라자 #추리소설 #소설 #외국소설 #스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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