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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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온몸으로 맞고 있다가, 개운하게 씻고 한 모금 넘긴 맥주로 구원받았다. , 간사한 인간이여.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위로하다가 욕심을 부려본다. 이 기분에 딱 좋은 가독성 짙은 추리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군. 그렇게 손에 들게 된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를 한참 읽다가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읽었다. 탐정 사와자키가 의뢰(?)받고 간 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시작된 이야기는,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알게 된 후 새삼스럽게 어떤 인간이든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 내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을 먼저 본다. 그 신념과 같은 것을 지키느라, 다른 사람 하나쯤 피해를 보고 고통받더라도 무시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와자키는 유괴사건이 일어난 소녀의 집으로 간다. 바이올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가 유괴되었고, 유괴범은 사와자키를 지정해서 요구한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 소녀의 집에서는 사와자키가 유괴범과 공범이라고 여기기에 이르고, 사와자키는 경찰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유괴범을 잡고 소녀도 찾기 위해서는 사와자키가 범인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움직이던 사와자키는 용의자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다닌다. 그러던 중 소녀의 외삼촌에게 또 다른 의뢰를 받고 이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여전히 사와자키 주변에는 그를 돕는 듯 보이면서도 이상한 관계를 형성하는 야쿠자가 있다. 사와자키의 탐정 업무를 인정하면서도 사건 해결에 끼워주지 않으면서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는 경찰도 있다. 이들의 협조와 견제를 이겨내면서 이번 사건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난다. 때로는 자기 방식대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든든하지만, 걱정도 된다. 왜 범인은 그를 돈의 운반에 참여하게 했을까. 혹시 범인은 그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 유괴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개 유괴의 목적은 돈인 경우일 텐데, 그 돈의 운반을 굳이 사와자키에게 지시한 이유는 뭘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범인을 잡아야만 했다. 물론 유괴된 소녀도 찾아야 하고. 피해자 가족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사와자키마저 의심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게 이 유괴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사와자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이번 사건 역시 그가 잘 해결해내리라 믿고 있지만, 유괴범의 장난 같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어서 마치 사와자키가 끌려가는 모양새를 지켜보자니 답답하기만 했다. 조금씩 찾아가는 단서를 모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그 자신만이 이 유괴사건을 바라보면서 차곡차곡 실마리를 쌓아가는 것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그의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는 소녀의 죽음이 마치 자기 때문인 것처럼 여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그가 범인의 장난질에 놀아나느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공격당하느라 소녀를 지키지 못했다고 여긴다. 사실일까. 물론 타이밍은 중요하다. 간발의 차이로 누군가의 생사는 달라진다. 하지만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뛰었던 건 사실이고, 누구보다 이 사건이 해결되어 소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건 분명하다.


사건이 해결되면서 진상을 듣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가족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설령 지키기 위한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 범죄를 감추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 비밀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진실을 품고 사는 인생이 온전할 수 있을까. 사와자키가 동분서주하며 만난 사람들과 단서들은 결국, 이 사건을 풀어내고야 말았다. 때로는 묻어두어도 좋은 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 이유도 있는 법이다. 사와자키가 밝혀낸 이 유괴사건의 진실은, 어이없고 안타깝고 애틋했다. 계획하지 않았더라도, 실수였더라도, 이 사건이 범죄라는 건 분명하다. 깊은 슬픔을 감당하면서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감정이 없는 듯 풀어내는 문장이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사건은 벌어졌고, 누군가는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도 있기 마련이지만, 사와자키가 보는 시선과 묘사를 보면 참 건조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탐정은 이렇게 감정 없이 생각하고 말해야만 일할 수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담백하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의 가슴에 감정은 존재하니, 때로는 이해하고 피해자의 슬픔에 분노하면서 읽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굉장한 속도감으로 사건에 빠져들게 하면서, 중간에 감질나게 단서를 심어놓으면서 보물찾기하듯 읽게 한다. 처음부터 들려왔던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목소리 유괴범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으니까. 그 어떤 단서도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반전이 흥미롭다. 충격적이면서, 처음부터 잘 짜 맞춰있던 퍼즐을 비로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심하게 가다듬은 번역으로 13년 만에 만나는 개정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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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은둔의 역사 -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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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게 좋은데 혼자여서 외로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늘 적당한 선 안에서 그 마음을 충족했으면 싶은데, 언제나 그 적당한 선은 지켜지지 않아서 괴로웠다. 그러니 은둔을 혼자인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면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 없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자는 제목에 낭만은둔을 같이 올려놓고 독자를 홀린다. 우리가 즐기고 원하는 혼자인 시간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모든 은둔의 시간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혼자인 시간의 양면성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혼자여서 만족스럽지만 외롭기도 한,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일의 양면성 말이다.


저자는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연구한 결과로,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왔는지 말한다. 과거에서 이어져 온 혼자 있는 시간의 역사라니, 새롭고 의아하다. 그러면서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많은 이가 겪었을 감정을, 그 근원을 파헤치듯 역사를 풀어놓는다. 뜻밖의 시작은 걷기의 도박이었다. 판돈을 걸고 정해진 시간과 거리를 걸으며 기록을 경신하는 도박이었다니 놀랍다. 이어지는 산책의 미학은 점점 혼자인 시간의 즐거움을 알게 한다. 하지만 과거의 혼자인 시간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상한 법으로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고, 혼자서 걷는 일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보기도 했다. 계급이 있던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 혼자 걷는 일은 불온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 산책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던 시절이었다니, 이 시대는 어떤 사람들이 마음대로 걸을 수 있었던 건지.


조용한 가정 여가활동은 다양하고 역사도 길었지만, 19세기에 그 양과 종류가 급증했다. 이 시기에 근대화가 반영된 실용적인 여가활동들이 생겼다. 전례 없는 가정 경제의 번영,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변화, 활기차게 반응하는 소비 경제, 무엇보다 활발한 대중매체의 활용이 요인이었다. 무료한 일상의 여백을 메우는데 그친 게 아니라 그런 활동들이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수립했다고 볼 만했다. 빅토리아시대 중류층 가족은 조화를 이루기 위해 폭넓은 단독 활동을 했다. 개인 활동의 다양성, 개인과 집단 활동 간의 자연스러운 이동은 의견상 사교적인 부르주아 가정생활에 중요했다. 더욱이 풍성한 인쇄물과 서신 교환은 실질적인 공동체의 영역을 넓혔다. (89~90페이지)


혼자인 시간은 무엇으로 채우고 즐길 수 있었을까. 예상했겠지만, 혼자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하거나. 어떤 도구라도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고독이고 낭만적 은둔이다. 하지만 고독이 좋은 것만은 아닌 적도 있다. 감옥의 독방, 수도원의 닫힌 생활 같은 시간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다. 처벌로 갇힌 독방도 교화의 목적을 다 이루지는 못하고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종교의 영향이 짙었던 시절, 종교는 법의 영역까지 담당하며 독방의 효과를 피력했다. 고독의 공포가 마음을 열어준다며 갱생을 기대했으나, 정신적인 문제만 일으키는 정도였다. 고립은 본인이 원하는 고독이 아니었으며, 타인에 의해 혼자됨은 고독과 같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고독의 즐거움은 취미로 이어진다. 바느질이나 농작물 키우기는 노동의 시간이면서도 본인의 재미를 찾는 시간이다. 누군가 잘하는 일을 계속하고,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에서 펼쳐졌다. 열정적인 수집은 물론이고 여행하는 일상은 항해까지 하게 한다. 혼자서 누비는 항해라니, 멋지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망망대해 위에서 혼자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서가 아니라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만 같은 이 배를 어쩌나 싶은 걱정. 저자가 소개하는 혼자 항해하는 이들은 앞서 항해한 이들을 따라 하거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항해를 한다. 그러다가 곧 읽을거리가 그 고독을 즐기는 자리를 차지한다. 많은 간행물, 출간 서적은 혼자를 즐기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템이 된다.


인상적이면서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 책의 후반부였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서 고독은 과거와 양상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늘날 혼자인 시간의 문제가 무엇인지 짚어가면서 말하는데, 노년을 향해 가는 우리 삶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우리의 고독을 즐겁게 해주었던 종이로 된 읽을거리는 곧 모바일 기기로 빠져드는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이든 걸어가면서든 작은 기기에 눈을 모으고 집중하는 모습은 디지털시대의 관계가 어떤지 바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정보의 획득과 좀 더 편하게 사는 일상을 누리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지만, 비대면의 시대에 너무 빠르게 흡수되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낭만적 은둔의 시간이 되기까지 우리의 혼자인 시간이 그려야 할 장면을 조금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언어는 인간이 혼자인 것의 양면을 현명하게 포착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나타내가 위해 생긴 표현이다. 또 그것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어휘를 만들었다. (281페이지)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고 이제 1인 가구의 증가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노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이도 많고, 나이 상관없이 혼밥이 익숙한 이도 많다. 혼자 살아가는 일은 소통하지 못하고 현대의 삶이 실패한 게 아니라, 때로는 이 사회를 배우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한다. 간혹 외로움이 일상을 파고들어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고독과 외로움의 균형을 맞춰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저자는 여러 작가의 책과 역사의 한 장면들을 열거하면서 고독의 기쁨을 발견하게 한다.


집단의 재미없는 산만함에서 물러나 자기 생각을 성숙시킬 장소를 찾아야 한다라는 철학자의 말을 대신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만들어낸 충전의 기회를 소개한다. 사실 제목만 보고 은둔의 즐거움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는데, 의외의 역사를 알게 된 기분에 혼자인 시간의 가치를 배운 듯하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 많은 공간과 시간도 필요하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저자는 혼자였던 많은 사례를 들려주면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고 혼자인 게 삶의 실패도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했다.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일은 낭만적 은둔의 핵심을 이루며, 고독의 오랜 역사를 이어왔다. 생각해보면 산책하는 것만큼 혼자인 즐거움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양하지만, 고요한 자연 속에서 걷는 것만큼 여유롭고 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


우리는 의외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혼자 즐겁게 지낼 수 있고, 그 즐거움을 위한 많은 도구도 존재한다. 외로움과 고독을 잘 구분하면서, 혼자인 순간을 잘 보내는 법을 배우며 은둔을 즐기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낭만적 은둔의 세계로 빠져들어 혼자의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낭만적은둔의역사 #데이비드빈센트 #인문 #은둔의역사 #고독 #외로움

##책추천 #혼자의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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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서양철학 : 날아라 칸트 노마의 발견 6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지음 / 해냄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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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배우기 주저하는 철학을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으로 접하게 하는 노마의 발견 시리즈. 일상의 궁금증을 철학자들에게 물어보려고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에게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노마가 만난 철학자들과 풀어가는 철학 이론과 삶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논리를 동시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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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 마음이 자라는 나무 11
타라 설리번 지음, 이보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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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초콜릿 뒤에 어린이 청소년 노동의 민낯이 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과 향기에 가려진 진실을 듣는다. 우리, 같은 지구에 사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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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마음
김유담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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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의 세월을 돌아보니, 돌봄의 역할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했던 게 엄마와 나의 일이 되었던 건, 다른 가족의 강요는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랬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함께 사는 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상황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옆에 있던 엄마와 내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엄마와 나는 그 일을 다른 가족에게 떠넘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여겼다. 후에 비용적인 문제까지 발생했을 때는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해결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함께하지 못했다. 오롯이 함께 사는 이의 몫이었다. 그게 당연한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게 왜 당연히 엄마와 나의 몫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나이 들어가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몸이었다. 아내라는,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 돌봄도 어려운 사람이 다른 이를 돌봐야 한다는 당연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다른 돌봄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의 전작 이완의 자세로 여탕에 드나드는 여성의 삶과 내밀한 속내를 들었는데, 이번에는 여성이 감당해왔던 돌봄을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돌봄이 왜 여성의 몫이 되었는지, 혹은 돌봄을 준비하는 것조차 여성의 책임이 되었는지 묻는다. 이 소설집에 담긴 열 편의 이야기는 한 집안의 여자가 책임지는 돌봄, 오늘을 사는 엄마의 역할이 만들어낸 돌봄, 고령화 시대에 감당해야 할 노인의 돌봄을 말한다. 그 어느 것도 우리 삶을 피해갈 수 없다. 집안의 문제는 해결해야 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나이 들어가는 당연함을 비껴갈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돌봄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첫 작품 대추에서부터 마음이 쓰려왔다. 할머니를 돌보는 외숙모는 묵묵히 돌봄을 행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집의 대추 맛을 바라던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외숙모의 아들이자 할머니의 손자인 영석뿐이다. 남의 집 담을 넘어서까지 구해온 대추의 의미를 할머니는 모르리라. 엄마의 힘듦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할머니가 당연하게 여기는 며느리의 돌봄이, 손주에게는 엄마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당연했을 테다. 경자에서 경자가 시대와 다른 여성의 인생이었다고 함부로 여기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욕하던 경자의 삶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거다. 경자의 삶을 욕하던 이들은 집안의 남자였는데,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살지 않는 집안의 여자를 욕하고, 그들이 저지른 문제를 해결하라고 등 떠미는 것 역시 집안의 여자들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그 마음은 ()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흐르는데, 평생 식구들의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친 큰엄마의 부고에 주인공은 올케언니를 원망하는 듯 말한다. 큰엄마의 희생으로 이 가족은 평안했으며,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 큰엄마는 주인공이 겪는 시집살이를 오히려 두둔했다.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65페이지, ())


이미 돌봄의 문제는 첫 번째 장에서 그 시작과 불평등을 확인됐다. ‘한 사람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한 문제였던 거다. 그때와 지금, 시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돌봄의 영역에서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장에서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돌봄의 속내를 보여 준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화려했던 여성의 삶이 돌봄의 실패로 가해자(?)처럼 살아가게 하는 연주의 절반. 잠깐 사이에 아이가 발코니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시모는 그 탓을 며느리의 죄로 여겼다. 만만한 게 애 엄마라면서. 이혼 후에도 연주는 아이를 잃은 슬픔과 스스로 죄인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로 위로받곤 했다. 화자인 는 육아의 고충과 위험에서 긴장하고 살지만, 연주는 자기 삶을 찾아간다. ‘만만한 애 엄마의 돌봄 세상을 자기 삶을 찾아가는 돌봄으로 채우는 것만 같다. 비슷하게 조리원 천국은 여성의 삶이 모유 수유를 잘하는 경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세계를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다른 경쟁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돌보는 마음은 출산 이후의 아이 돌봄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보모를 구하는 어려움에서부터 아이를 맡긴다는 이유로 저절로 이 되어 고개를 숙여야 하고, 경력단절이 될까 봐 스스로 아이를 돌보겠다고 마음먹기도 어려운 순간이 절망적이다. 보모의 소소한(?) 절도 행각까지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도 안심하거나 만족할 수 없는 육아 문제는 엄마 혼자 전전긍긍해야 하는 돌봄의 세계였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은 내 이웃과의 거리로 절망까지 심어준다. 쇼핑몰 핫딜을 찾아다니는 이웃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자기의 배려가 자신에게 박탈감을 심어준 것을 느낀다. 100원을 아껴서 생활하는 이가 10억짜리 집의 소유주라니, 4천 원짜리 마스크 한 장이 별거인가 싶어서 나눠줬던 게 전세살이의 이유가 되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이렇게 쏟아지는 불안과 불편의 감정은 오롯이 여성, 엄마의 몫이 된다.


당신은 대한민국에 눈치 안 보고 육아휴직 2년 쓸 수 있는 조식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 도합 9개월밖에 못 쉬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른 직원들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 줄 알아? 기훈 씨 말대로 2년 쉬다 오면 기존 팀으로 복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까지 못마땅하면 당신이 육아휴직 해.” (151페이지, 돌보는 마음)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육아 휴직이 끝나갈 무렵 언니는 복귀를 고민했다. 당연히 다시 회사에 나가겠다고 했던 처음의 마음은 점점 어려워졌다. 보모를 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고, 비용이 상당했다. 언니가 받는 급여의 거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흔히 말하는 가성비를 생각했고, 이렇게 어린아이를 두고 나가야 하는 마음을 걱정했다. 결국, 언니는 복귀를 앞두고 퇴직했다. 2년쯤 후에는 둘째 아이까지 태어났기에 당분간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기는 더 어려워졌다.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었다. 형부는 일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하게 언니 몫이 되어 두 아이를 돌보는 생활이었다. 외출은 물론이고 가끔 우리가 가면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크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언니는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아이 돌봄에서 벗어나도 된다고 여겼기에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고, 언니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느라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일하기 시작한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육아의 문제는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건 선택이었지만, 육아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경제적 능력까지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까지 생긴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살피게 되고, 무능력한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냔 말이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이제 새롭지 않다. 입원의 분례는 치매에 걸린 남편에게 맞아가면서도 자신이 돌봐야 한다고 믿는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관처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요양 시설에 입원시키고 오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특별재난지역의 주인공 역시 요양 시설의 아버지를 돌보고, 미혼부 아들이 놓고 간 손녀를 돌보느라 고단하다. 딸은 아들과 차별하며 키웠다고 엄마를 원망하고 엄마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배우고 살아온 대로 아이를 키웠을 엄마에게 돌아온 건 원망이라니. 하지만 그건 엄마의 마음이다. 딸이 느꼈을 서러움은 엄마가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할 테다. 독신주의였던 여자가 불쌍한 남자를 만나서 돌봐야겠다고 여긴 태풍주의보, 이상하게도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나 싶으면서도, 이런 돌봄을 선택한 여자의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오빠 부부처럼 잘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얼마나 많이 희생했을지 당신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 부부가 지금은 각자의 삶을 바란다고.


오늘이 누구 생일이가?”

대수가 물었고, 식구들은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대답이 없었다.

식사나 하이소.”

분례가 대수의 컵에 물을 따라 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은 그곳에 가게 될 거라고, 그곳이 당신의 마지막 장소가 될 거라고, 그리고 아마 우리 모두 나중에는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대수에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구들 오랜만에 다 모이 가꼬, 오늘 기분이 윽수로 좋다.” (224페이지, 입원)


어떤 형태의 돌봄이든,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동안 그 돌봄은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집에서 보여 준 이야기도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처럼 돌보는 마음은 다양했다. 자기가 원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당연하게 해왔던 습관처럼... 그때마다 누군가의 희생은 필요하다. 육체의 노동으로 하든 돈으로 지급하든, 한 가정을 지탱하려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도 확인했듯이,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 세상의 모습 또한 다양했다. 인구 절감의 위기에 출산을 독려하면서도 경력단절의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엄마가 출산했으니 육아의 담당도 엄마의 몫이 되는 흐름이 당연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 듯이 이어져 왔다. 거기에 노년의 돌봄까지 아내와 엄마의 차지가 되어왔다. 여성의 의무와 책임은 왜 이렇게 거대해졌나. 특히 코로나 19 상황은 그 돌봄의 책임을 더 무겁고 크게 만들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마주하는 돌봄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당황할 지경이다. 누구나 감당해야 할 돌봄의 문제가 유독 여성의 삶에 가득해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흐름과 이유를 알게 되는 게 서글펐다. 세월을 거슬러 시작되었던, 여성의 돌봄 노동이 여전히 이어져 왔다는 게 아프기만 하다. 그 크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여성은 가족과 아이, 가정 내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 먼저 차출되듯 선택되는 묘한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애틋한 내 마음이 뭔지 궁금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돌본다는 기쁨, 이 돌봄으로 자기 인생의 변곡점이 생겼다는 원망, 같은 상황에 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서로 완전 다를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질투와 열등감, 본인 말고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절박함까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기에 이 돌봄의 세계에서 버티는 사람들이다. 힘껏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가, 내 가족이, 내가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들의, 나를 돌봐줄 이들의 이야기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공감하고, 너무 몰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듣는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무시를 견디는 엄마를 보며 살았던 내가,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무시하며 살았다. 결코, 당신의 삶에 나를 끼워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간병에 오랜 시간과 노동을 감당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족에 희생당하는 엄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엄마를 돌보면서 그 돌봄의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당연하게 다가온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을 치워버리고자, 엄마가 나를 돌봤듯이 이제는 내가 갚아야 할 일이 되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제 혼자 남은 엄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형제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돈이지만 갹출해서 저축하고, 엄마에게 생기는 문제를 같이 의논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내가 혼자 생각하는 돌봄의 순간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이 소설 속에서 많은 가족이, 여성이 맞닥뜨렸던 순간을 상상한다. 이미 겪기도 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다시 그 순간을 마주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여성의 삶 역시 달라졌다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근본적인 삶은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돌봄 노동에 참여하든 돈으로 해결하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문제 앞에서 생각해야 할 게 마음이라고. 나를 보살피고, 내가 돌봐야 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지금 내가 찾아야 할 돌봄의 이유는 바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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