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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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시리즈 2019 여름 편.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이다.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걸려온 선애 누나의 전화에 주거지가 변한다. 선애 누나는 엄마 친구 딸인데, 이번에 이혼하면서 신혼집을 비우게 되었다. 집은 매매로 내놓았지만 빨리 팔리지 않았고, 선애 누나는 집이 팔릴 때까지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선애 누나는 ‘나’를 생각해내고, 집의 관리를 맡기게 된다. ‘나’가 선애 누나의 집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선애 누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학교 다니는 거리가 짧아졌고, 마침 지원과 연애를 시작한 ‘나’는 선애 누나의 집이 데이트 장소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생각했다.

 

처음 선애 누나의 집으로 들어간 순간은 마치 낯선 집의 방문객이 된 것 같았다. 당연하다. 오랜 세월 연락도 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맡긴 집 관리 때문이라고 해도 남의 집이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 친근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낯선 감정도 잠깐이다. 어느 순간 그 집에 ‘나’는 익숙해졌고, 처음 조심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던 지원도 이제는 편하게 드나든다. 그 집에서 지원과 ‘나’는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사랑을 접고 헤어지면서 떠나온 집일 텐데, 누군가는 그 집에서 새로운 사랑을 싹틔운다. 하긴, 아무리 친해도 남은 남이다. 각자의 인생과 사랑이 있다. 한 사람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같은 경험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우리들의 인생이어도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지원과 ‘나’는 뜨겁게 사랑했다. 설레면서도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치고 제법 다정한 연인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지원은 묻는다. 그 집의 주인은 왜 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결혼하고 더 행복해지고 싶었을 텐데 헤어졌다. 그런 집에 들어와 있는 애인을 만나러 지원은 찾아오곤 했고, 두 사람은 그 집에서 관계를 쌓아나갔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자기 둘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을 텐데, 그렇다면 언젠가 그 집의 부부처럼 헤어질 수도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하고 완전해 보였던 사랑만큼 이별의 징후가 찾아온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당장 이별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 눈앞의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생각한다. 상상한다.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지금 하는 연애가 너무 아름다운데도 그 사랑에 푹 빠져있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헤어짐을 상상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사랑에 젖어있기보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별을 먼저 상상하는 게 잘못된 생각은 아닌 듯해서다. 사랑의 끝이 두 가지 중의 하나 아니었던가. 계속 사랑을 이어가거나 이별하거나. 그런 두 가지 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을 같이 고민하며 살아가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끝까지 지키지 못할 때, 이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미리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을 잠재우는 노력도 해야 한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던 두 사람, 점점 침대의 양 끝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등을 돌리면서, 각자의 사색에 잠겨 있는... 그 모습이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사랑에도 편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어서다. 조금 떨어져서 누워 있는 게,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게 편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느냐고. 그게 꼭 사랑이 끝나서만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그러다가 언젠가 사랑이 떠나가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인정하게 되더라도.

 

생각해보면 불안하지 않은 관계가 없고, 불안하지 않은 현실이 없다. 내일은 좀 괜찮을까 싶은 긍정적인 마음을 품다가도 금방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때로는 경험으로 때로는 직감으로 그 불안과 불행을 알아차린다. 이들의 연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이었지만 사랑이 아닌 것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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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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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언제나, 모든 일이 지나간 후에 다시 되짚으며 그날을 떠올린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후회하며,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직접 나서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때로는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더욱 간절히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끝난다. 뭐든.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1-42)

 

성경의 어느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을 생각하면 또 한 번 강렬한 느낌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시대를 건너 21세기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좀 놀라웠다. 처음 듣는 성경 구절이 만들어낼 이야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더 긴장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아에게는 SNS 셀럽인 동생 리아(개명 전 이름은 경아다)가 있다. 일명 ‘봉사녀’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많은 봉사활동으로 그 이미지가 굳어졌다. 언니보다 예쁘고 날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어느 날부터인가 봉사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리아가 치르는 유명세는 톡톡했다. 그러던 중 수아에게 걸려온 경찰의 전화는 동생 리아의 죽음 소식이었다. 리아의 사망은 자살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생각한다. 리아가 자살을 할 사람인지를. 뭔가 자꾸 어긋나듯 리아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경찰에게 건네받은 리아의 휴대폰. 수아는 리아의 휴대폰 속 세상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미처 몰랐던 리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 상황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

 

동생의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온 한 문장은 고요했던 수아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는 시간이 없다. 임용고시 통과를 위해 현재의 모든 시간과 인생을 걸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그동안 겪어온 감정의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 와중에 리아의 죽음까지 파헤쳐야 하는 돌발 상황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그녀는 고시원의 한구석에서 이어가는 시험공부와 리아의 사망 사건을 파헤친다.

 

소설은 두 자매의 과거 시간과 현재 수아가 찾아내야 하는 리아의 시간을 들려준다. 연년생 자매의 성장기, 성격과 취향까지 달라서 티격태격했던 시간, 주변 사람들의 비교 아닌 비교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수아, 공부는 못했지만 봉사와 예쁜 외모로 언니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리아. 언니를 걱정하지만 언니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상처받는 동생, 동생에게 쏟아진 부모의 관심에 외면당했던 언니. 차근차근 돌이키다 보니 알게 모르게 두 자매 사이에는 벽이 생기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의 염려를 귀찮아하면서 보낸 언니의 답장, 묘하게 생긴 거리로 마음의 말들을 언니에게 할 수 없었던 동생.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 그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까?

 

리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수아는 진짜 범인을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로 리아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했다. 그걸로 됐다. 그녀도 리아도 이제 자기만의 일상으로 돌아가, 서로를 염려하면서도 거리를 만들었던 그때는 잊은 채로 살아가겠지.

 

성경 속의 자매 마리아와 마리다. 어느 날 예수가 그 자매의 집에 방문했는데, 언니인 마르타가 예수와 다른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동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 앞에 앉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이리 와서 언니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예수는 오히려 마르타를 나무라며, 마리아가 지금 하는 일이 마르타 당신의 일보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130페이지)는 내용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지에 따라 자매의 입장과 마음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예수의 옆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게 진정한 받듦인지, 아무리 자매여도 그 사람의 그릇이 다르므로 마르타와 마리아의 일이 다르다는 걸 나무라는 것인지, 아니면 동생 마리아를 질투하면서 불러내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수아가 받아들이는 성경 구절의 의미는 부정적이었다. 신데렐라의, 콩쥐의, 마리아의 자매는 나쁜 사람으로 기록된다고. 선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르고 시샘이 많은 자매가 있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성경 구절의 의미를 비튼 것처럼, 조금 다른 의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선하고 지혜로운 여자가 세상의 가십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기 쉽다는, 보이는 것 이면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면서 사회의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알게 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낯설면서도 안타깝게 들린다. 언젠가 수아가 했을 말에 상처받았음에도 수아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사회적인 이미지를 쌓으며 나름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던 동생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동생의 죽음의 실체에 한발씩 다가갈 때마다, 혹시 자기가 동생에 관해 착각하고 오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외면받고 비교당하던 입장에서 마르타라고 생각했던 수아의 마음이 변한다. 그동안 못 봤던 리아의 시간을 보게 되면서 알게 된다. 마리아와 마리타는 너무 다른 자매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며 사랑하는 자매였다는 것을. 두 자매를 보면서 비교하고 많은 말을 쏟아냈던 사람들 때문에 생긴 착각을 하나씩 정리해간다. 소설 속에서 수아에게 리아의 죽음을 직접 전달한 ‘익명’의 말이 내내 걸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의 옆에서 경청하던 제자들과 사람들은 남자였고 그 안에 마리아가 있었다는 게 어떻게 보였을지, 성경을 기록한 사람 역시 남자였다는 것에서 마리아와 마리타의 모습에 부정적인 시선의 해석이 있었다는 것을. 사랑받는다고 믿었던 모습 뒤에 있던 악몽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왜 비교 없는 삶은 없을까? 나부터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비교하는 게 익숙하다. 누구는 이랬는데 누구는 저랬다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비교하는 삶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남들보다 먼저, 많이, 크게, 좋은 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비교인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행복하고 선한 삶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마치 추리소설처럼 리아의 죽음을 밝혀가는 수아의 준비와 행동이 긴장감을 만든다. 그 사이사이 수아의 일상과 부모님의 몇 마디, ‘익명’으로 등장한 남자의 심리 파악하기, SNS 메시지가 밝혀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묻고 싶을 때마다 온라인 속이 아닌 현실에서 답을 찾아내는 수아의 추리력은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같은 면모도 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던 그 진실에서 하나씩 꺼내어가는, 우리가 보고도 못 본척했던 많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살아가는 어느 순간 또 위기가 찾아오겠지만, 마침내 답을 찾은 수아의 내일이 조금은 달라질 것을 믿는다. 동생의 죽음으로 찾아낸, 비극을 이겨내는 법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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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 시즌 1
이홍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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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22살에 결혼하고 25살에 이혼녀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겨우 3년 살고 이혼할 거 그렇게 요란하게 결혼했느냐고 사람들 입에 올랐다. 여러 가지 이유로 독립할 수 없던 친구는 이혼 후 친정에 와서 지냈다.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냈고, 혹시라도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어두워진 후에 나갔다.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근처 마트에 가는데 차를 가지고 가자고 하더라. 왜? 걸어서 5분이면 가는 거리를? 그때 친구의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혹시 자기가 지나가면 저기 누구네 첫째 딸 지나간다고, 이혼하고 와서 친정에서 지낸다고 수군거릴까봐 아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무슨 피해의식인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왜 그런가 싶었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는지 다른 사람들 말에 신경 쓰고 살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세월이 흐른 후에 알았다.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참 관심이 많고, 남의 사정 다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 하는 거 좋아한다. 특히 여자의 이혼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여자라서 받는 차별에 이혼이라는 차별을 더한다.

 

이혼이 무슨 범죄인가? 그 사람의 이혼이 자기에게 무슨 피해를 줬나? 평소에 이혼제도를 환영하던 나는 이혼이라는 화두에 차별을 두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였던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기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이혼녀들의 고통과 상처가 몇 컷의 만화로 다 전달될 수 없겠지만, 이 몇 컷의 만화가 보여주는 효과는 컸다. 주인공 '이홍녀'가 들려주는 이혼 후의 일들이 생생하게 들려와서 마치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우리 가족에게도 있는 '이혼'이라는 이력을 보편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까이서 듣는 기분이다.

 

 

스마트폰 앱 디자이너 이홍녀는 1년 전 이혼했다. 다시 일을 찾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일에 서투르거나 부족함 없이 열심이었다. 하지만 이혼 후 그녀의 일상은 이혼 전과 달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는 차별에 이혼으로 받는 차별까지 더해졌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둘이 되었는데,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혼자인 삶을 택했다는 게 차별받아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이혼 후 집안은 썰렁하다. 결혼 이후의 일상을 생각하면서 산 혼수들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게 차지한 자리만큼의 냉기를 뿜는다. 식구가 늘어날 것으로 여겨 마련한 커다란 아파트, 대용량 냉장고, 6인용 소파. 대식구를 기준으로 마련한 집안의 온갖 것들에 이홍녀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가족들의 대소사에서도 이혼을 숨겨야 하거나 사람들 앞에 함께 나타나지 않게 한다. 여동생의 상견례에 아직 싱글인 언니로 소개되거나, 여동생의 결혼식에 바쁘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는 언니가 되어야 했거나. 가족들에게 큰딸의 이혼은 감춰야 할 비밀이 된 거다. 어디 그것뿐인가. 회사의 동료들은 그녀에게 저급한 농담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갔다 온 사람'에게 이 정도의 농담(?)도 못 하냐는 식으로 받아친다. 친구는 또 어떻고. 마치 그녀를 위한다는 식으로 돌싱은 돌싱끼리 만나야 편하다면서 원하지도 않는 소개팅 자리를 주선한다.

 

왜 이혼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방식을 강요하려 하는지 궁금하다. 결혼이나 이혼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선택이며 행복의 기준이고 방식이 된다. 아이가 한 명이거나 여러 명이거나 하는 것처럼, 그 개인과 가정의 다른 사정일 뿐이다. 그런데 왜 개인의 삶이 깊이 들어오려고 하면서 남의 인생을 설계해주려고 하느냔 말이다.

 

 

이홍녀는 퇴근 후 혼자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자주 가던 술집의 직원은 그녀에게 주문하지 않은 메뉴를 건네면서 거리를 좁힌다. 연하남이다. 군더더기 같은 많은 말 없이 조용히 그녀에게 건네는 위로 같았다.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호감을 키워가면서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자기의 이혼 사실을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상대에게 솔직하고 진지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정확한 자기 입장을 말해야 했겠지. 왜 이렇게 아프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호구 조사를 하고 경제력을 묻기도 하면서 불편했던 기억, 없는가? 나는 이런 거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 드러내야 하고, 설명하기 애매한데 상대를 이해시켜야 하는 일들. 왜 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내 뒤에 있는 것들을 먼저 밝혀야 하는 게 되어버렸는지... 솔직히 아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좀 더 진지한 미래를 바라보고 싶을 때, 우리는 그 사람 하나만을 보는 건 아니니까. 혹시 내가 만들고 싶은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을지 찾아보고 계산해보고 싶은 걸 안다. 하지만 한 개인의 아픔일 수도 있고, 행복을 설계하는 미래일 수도 있는 이혼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는 조건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지기도 한다.

 

 

28살에 다시 결혼을 생각하던 친구는 지금의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자기는 한번 이혼한 적이 있으며,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고. 당시 친구의 남편은 초혼이었으니까 당연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생각해볼 시간을 주었단다. 당신이 이런 나와 결혼해도 좋을 것 같으면 그때 다시 결혼을 이야기하자고. 기꺼이 친구를 선택한 그는, 한 사람을 보는데 그 사람이 이혼했다고 해서 그동안 봐왔던 그 사람의 인격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그러니 이 여자와 결혼하는데 이혼했다는 사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여럿이 모여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듣는데, 그 친구 남편이 참 선하게 보이기까지 하더라. 사람이 살아가는데 명예나 돈이나 다른 것들이 최우선의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데 무엇보다 인간적인 모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다시 배운 것 같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차별을 경험하며 산다. 싫다고 말하지 못해서 참고 견디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왜 참는지 생각해보면, 참고 있던 그 순간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막상 참아 보니 그 순간보다 더 나은 내일은 없었다. 이홍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이니까, 이혼했으니까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더는 없어야 했다. 이제는 혼자 걸어야 하는 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걷고 싶으니까. 이홍녀도 우리도, 그동안 끌려가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인생으로 쓰기 위해 고민한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말이다.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고, 누구나 자기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응원을 보내는 이야기에 괜히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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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9-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이 웹툰을 인스타에서 봤어요. 연하남이랑 헤어지는 부분까지 봤는데 정말 허탈했어요. 우리는 언제쯤 편견이나 왜곡없이 세상을, 사람들을, 현상을 볼 수 있을까요?

구단씨 2019-09-24 22:09   좋아요 0 | URL
주인공이 연하남과 헤어진 이유가, 단지 이혼했었다는 이유 한가지뿐일까 싶었어요.
어쩌면 연하남은 처음부터 주인공과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어쨌거나, 말씀하신 그 편견이나 왜곡 없는 세상을 만나는 건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네요.
안타깝게도...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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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하맨션'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장소가 아이러니했다. 작가는 '사하'라는 이름은 러시아 사하 공화국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연교차가 100도나 되는 곳, 가장 추운 그곳의 지하에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절반이 매장되어 있다고. 영하 70도의 추위에 사람이 견딜 수나 있을까 싶은 그곳에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는 얘기에 어떤 모순을 느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그곳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의 존재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사하맨션'은 홍콩의 구룡성채를 떠올리며 그렸다고 한다. 청나라 국경의 요새였다가 치외법권으로 남겨져, 홍콩의 옛 거주지로 무법지대였다고.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했던 장소라고 하는 그곳의 설명이 딱 사하맨션이었다. 이렇게 우울하고 아프게만 느껴지는 곳이 역사상 실제 존재했던 곳이라는 게 놀랍기도 하면서, 현실의 세상과 또 얼마나 다를까 싶은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업이 한 도시를 인수했다. 본국으로부터 독립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로 변모한다. 사람들이 타운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상당히 비밀스럽다. 타운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에서 인정하는 전문 능력을 갖추어 주민권을 가진 L, 주민의 자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로 체류권을 가진 L2. L2는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고, 타운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주민권과 체류권 밖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하'라고 불리며 사하맨션에서 산다.

 

사하맨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비밀스럽고, 드러내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 주민권과 체류권을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앞으로도 타운에 소속되는 존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피신하듯 모여든 사하맨션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예의를 지키며 살아간다. 고립된 사하맨션은 타운 안에서도 독립된 공간처럼 보였지만, 타운의 분위기를 해친다면 바로 조치가 취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타운에 살던 한 여자의 죽음에 사하맨션에 사는 도경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한차례 소란스러워진다. 예상했던 것만큼 길게 끌지 않은 사하맨션의 감시와 경계가 오히려 수상할 지경이다. 그리고 사하맨션의 사람들은 고요하게 자기 몫의 하루를 견디듯이 지낸다.

 

인도를 따라 심긴 벚나무 가지가 자연스럽게 늘어지며 초록 잎들이 터널을 만들었다.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잎들은 초록색으로도, 연두색으로도, 때로는 흰색이나 황금색으로도 보였다. 빛나는 벚나무 터널을 지나는 어린 연인. 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진 여름의 벚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봄이 아련한 줄 몰랐고 여름이 반짝이는 줄 몰랐다. 가을이 따사로운 줄 몰랐고 겨울이 은은한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는,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겠지. 진경은 혼자 중얼거렸다. (325페이지, 701호 진경)

 

가상의 도시국가라는 데에서 SF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상 속의 국가에서마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대로 비춘다. 최근 여러 작품으로 만난 작가의 글에서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고발하듯 적어간 이 소설에서 마주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편하지는 않았다. 본국에서 떨어진 작은 타운에서마저 등급이 나뉘듯 사람을 나누는 세상의 방식에 울컥하기가 여러 번, 그 계급의 격차를 줄일 수도 없다는 불행은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다. 애초에 왜 그런 계급이 존재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던 답답함은 이 소설에서 더 심각해지는 것만 같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장 논리를 거부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나뉘어가는 차이가 점점 커진다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서글픔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달려가도 안 되는 목적지를 오늘도 의미 없이 계속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애초에, 살면서 주어져야 할 어떤 기회도 만나지 못하는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가 싶은 마음에, 소설이 소설로만 보이지 않은 까닭에...

 

현실에서 마주치는 너무나 닮은 이야기에 마치 지금 내가 사하맨션에 사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두렵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오늘을 간신히 견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는 건 사하맨션의 사람들 때문이다. 주류에서 밀려나고, 사회적 약자들의 집합소 같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음은, 한 번씩 끝에 다다르려는 마음을 붙잡는 힘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꾸려온 사하맨션의 40여 년 세월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만든 인간적인 방식들 말이다. 꽃님이 할머니가 사하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받아주고, 관리실의 영감님은 은근하게 사하맨션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힘이 된다.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일을 바꿀지 기대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견디는 것 이상의 오늘의 살아가고 있다. 상처받으면서 사하맨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을 차별하는 시스템에 맞선다는 것, 그들이 이룰 수 있는 공동체의 연대를 만들어가는 희미한 모습들이 긴장된다. 마치, 내일 있을 시험을 잘 통과하고 싶어서 오늘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게 밀려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간절한 마음들이 묶이면서, 더 단단해지는 구성원으로 조금씩 거듭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언젠가 다시 일으킬 나비 혁명을 기대한다.

 

"괜찮아?"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미안하지만 언니, 오늘은 나 괜찮지 않아." (112페이지, 214호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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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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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집 안에서 창문 밖 세상을 보는 것뿐이었다. 자기가 절대 발 디딜 수 없는 공간에 오가는 사람들, 작은 공원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나가는 이웃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 마치 갇힌 공간처럼 집 안에서 혼자 하루를 보내는 여자의 일상이었다.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애나의 유일한 세상은 집안이다. 밖이 보이지 않게 커튼으로 집안의 밝기를 차단한다. 필요하면 실내의 불을 켜기도 하겠지만, 그녀에게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가끔 컴퓨터로 접속해서 다른 이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그녀는, 지금은 쉬고 있지만, 소아정신과 상담의였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상담하고 아이들이 정상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애나가 마음의 병을 앓고,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게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애나의 현실이 그렇다. 남편과 아이는 떠났고, 애나는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을 언제나 와인과 함께 먹는다. 늘 술에 취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는 그녀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다.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은, 아래층의 세입자와 정기적으로 찾아와 몸을 단련해주는 치료사와 주치의뿐이다. 그런 그녀가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그녀의 일상 중 하나인 밖을 지켜보는 일에 고성능 카메라가 필요했다. 평소 자주 사용하던 카메라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이웃집의 거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본다. 애나와도 안면이 있던, 이웃집 소년 이선의 엄마인 제인 러셀이 누군가가 휘두른 칼에 찔려 쓰러졌다. 누가 찔렀는지까지는 보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제인의 모습만 봤다. 당장에 이웃집으로 달려갈 수 없던 애나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웃집에 사는 제인 러셀은 다른 외모의 여자였다. 물론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이웃들과 경찰은 애나가 본 것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겠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 온종일 와인을 들이켜며 사는 여자, 더군다나 애나가 봤던 장면의 주인공들이 증명해주지 못하는 살인의 현장. 누가 애나의 말을 믿어줄 수 있겠는가. 읽으면서 나도 착각할 정도였다. 애나가 계속 지켜보는 이웃집 사람들의 행동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종일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애나의 눈에 목격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지? 그녀가 술에 취해 생각한 것을 직접 본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애나는 외친다. 봤다고, 자기가 살인사건의 목격자라고, 자기가 상상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라고,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애나가 본 것은 분명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자기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말이다. 그게 범죄 현장인데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거다. 게다가 형사부터 이웃 사람들, 그녀의 주치의까지 그녀가 하는 말을 정신이상자의 헛소리로 여겼다. 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했을까? 그건 그녀가 보낸 1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계속되는 심리 상담과 매일 복용하는 약, 끊이지 않는 술,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남편과 딸 이야기.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로 한 번도 밖에 나가지 못했던 1년의 세월이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안으로 숨어든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겠지. 직접 목격한 살인사건조차 그녀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게, 더는 살아갈 의미를 잃은 것 아닐까? 이제는 그녀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가 본 것이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라고 믿는다. 누구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녀 역시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혼자다. 그렇게, 혼자인 그대로 그녀는 삶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타인을, 세상을 보는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본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일까? 진실일까? 전부일까?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진실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진실을 찾는다. 내가 본 것이 맞는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 삶은 보는 그대로를 믿음으로써 흘러간다. 믿지 않으면 어쩔 텐가?

 

소설은 결말 부분에 이르러 이제껏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꺼내놓으며 더 깊은 의문에 빠지게 한다. 애나가 본 것이 정말일까 싶은 궁금증에 살인사건의 장면을 되돌려보고 싶게 만든다. 이대로 애나의 착각으로 머물 것인지, 애가 본 것이 사실일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하게 한다. 특히 이야기 틈틈이 애나가 즐겨보는 흑백 영화들, 추리 미스터리 영화들, 대부분 히치콕의 영화이거나 히치콕을 모방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현재 애나의 상태나 숨겨진 진실들에 관한 힌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소설 속 영화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애나의 말을 더 믿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영화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 즐기던 추리 미스터리한 이런 영화들이 애나의 착각을 더 심각하게 했겠지. 사실 처음부터 애나의 말을 믿을 수 없게 설정한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애나가 본 것이 진실인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독자가 찾아가게 하는 길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창문을 통해, 온라인을 통해 애나가 만났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사건과 진실들이 무슨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채워지는 느낌이다. 이미 에이미 아담스와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더 흥미로운 이야기다. 소설의 끝부분에 애나가 봤던 영화들의 목록도 있으니 참고해서 소설에 푹 빠져들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이 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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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유책방 2019-09-18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네요

구단씨 2019-09-18 20:44   좋아요 0 | URL
푹 빠져들어서 읽기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