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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사투리 - 서울 사람들은 이거 어떻게 읽어요? ㅣ 아무튼 시리즈 70
다드래기 지음 / 위고 / 2024년 9월
평점 :
결혼하고 처음 김장 시즌이 왔을 때, 시어머니가 ‘배차’가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배차? 내가 김장배추를 얼마나 많이 가져간다고 차량 배차를 할 정도인가 싶었다. 안 줘도 된다고, 남으면 10포기정도 가져간다고 말했다.(시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하시고, 해마다 김장철에는 김장김치를 판매하기도 한다) 그런데 자꾸 배차를 그 정도로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그 말에 또 나는 배차를 안 해도 된다고, 그냥 차에 10개 정도만 싣고 가면 된다고 말했는데, 옆에서 남편이 웃는다. 시어머니의 ‘배차’는 배추를 말하는 거였고,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본 ‘배차’의 의미를 여기서 확인했다.
지난달에 시댁에 갔었는데, 시어머니가 감자를 캤다면서 가져가라고 했다. 감자? 10월에? 아, 벼농사 이모작처럼 감자도 일 년에 두 번 수확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가져갈 만큼 감자를 담아오라고 해서 창고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봐도 감자가 없는 거다. 더군다나 새로 뭔가를 수확해서 정리해 놓은 농산물도 없더라. 감자가 없다고, 어디쯤에 둔 건지 물었더니, 거기, 문 앞에 큰 통에 있지 않느냐고 하시더라. 아, 나 진짜, 아무리 봐도 감자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아무리 봐도 감자가 없다고 그냥 안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시어머니 직접 창고로 오셔서 ‘이게 감자가 아니고 뭐냐고’ 막 소리를 지르시는데, ‘어머니, 이건 고구마잖아요?’
그랬다. 시어머니에게는 감자도 감자고 고구마도 감자였다. (기억이 다 나지 않아서 이 정도만 적어보는데)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고 사실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결혼하고 시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나는 국어사전 검색하듯 단어를 한 번 더 해석해야 할 상황에 종종 놓이곤 했다. 같은 단어를 두고 시어머니와 다른 서로 다른 의미로 대화해야 하다니. 같은 전라도 땅에서, 그것도 같은 시에서 살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근데, 배추를 배차라고 하는 게, 고구마를 감자라고 하는 게 사투리인가? 단어 검색 해봐도 그건 못 찾겠던데...
전라도 토박이로 살면서 사투리를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데,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머릿속을 굴려가면서 표준어를 쓰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저 나고 자라면서 습득한 언어로 말해왔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다양한 사투리를 직접 목격한 적은 대학에 다니면서부터였다. (그 전에도 다양한 사투리를 간혹 들은 적은 있지만, 가끔이었다) 전라도의 작은 지방대학에 다니면서 놀란 건, 서울 경기 지역부터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까지, 전국의 모든 사람이 모두 모여 있다는 거였다. 물론, 학교를 중심으로 가까운 지역 학생들이 더 많았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말을 쓰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였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처음에는 낯선 억양에 놀라고, 나중에는 그들이 쓰는 단어를 한 번씩 더 물어보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맞는데, 서로 사용하는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할 판이었다니까. 잘못 해석하고 그렇게 해석한 말대로 행동했다가, 서로 오해하거나 큰 실례를 하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더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곧 그 낯섦은 친근함으로, 한 번 더 물어봐야 했던 말은 새로운 말을 배우는 시간으로 변했다.
저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의 축적으로 저자는 그만두려고 했던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되었고, 이런 책까지 내게 되었다는 게 또 큰 수확이 아닐까. 부산에서 자라서, 순천의 대학에 가게 되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의 말투를 습득하면서 저절로 그 지역의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나는 잘 몰랐는데, 저자의 말을 들으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순천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전라남도 사투리를 쓰게 되는데,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어디쯤에 있다 보니, 전라도와 경상도의 많은 학생이 모이는 곳에 되었고, 말투 또한 한곳의 사투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 상상이 되는가? 나는 막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해서 말하는데, 전라도에 살게 되면서 이 지역 말을 듣게 되고, 귀에 익숙한 말을 들으면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종종 사용하게 되다 보니, 어라? 내 말은 전라도 말, 경상도 말, 전라도와 경상도가 섞인 말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고향 사람이 들을 때는 말이 요상하게 들리기도 했다는데, 생각만 해도 재밌다.
특히 서로 같은 말을 하는데 다른 단어를 선택하게 되면서 분위기가 싸해지고 오해할 수도 있었는데, 슬리퍼를 딸딸이라고 하는 일, 땡땡이친다는 말을 빠구리친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니, 어찌 오해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만이 아니다. 저자는 타 지역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1단계
경상도 : 가시나 진짜 사진 잘 나왔데이. 윽수로 예쁘다. 잘 찍읏네. (칭찬)
전라도 : 오메, 가시내 뭘 이런 걸 다 사 와야? 들고 오는 것도 힘든디. (고마움)
2단계
경상도 : 아이고 가시나야, 니 윽수로 빼입고 나왔네. 그래 신나드나? (샘을 내는 듯한 가벼운 칭찬)
전라도 : 아따, 가시내 겁나 찍어 발랐구먼. 훨훨 날아부러. (놀리는 듯한 가벼운 칭찬)
3단계
경상도 : 저 가시나 말하는 꼬라지 바라. 싸가지가 바가지다. (확실한 욕)
전라도 : 흐미, 저 가시내 철딱서니를 간식으로 처먹었나 부네. (확실한 욕)
(79~80페이지)
웃으면서 읽다 보니 저자가 예로 들어준 말들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기는 하다. 특히 욕할 때 그 찰진 억양과 단어 선택에 놀라울 지경이다. 신체의 일부를 꺼내어 줄넘기를 한다는 둥, 무덤 앞에서 12첩 반상을 차려준다는 둥. 얼핏 돌려까기 같은데 해석해보면 살벌하고 잔인하기만 하다. 그래서 무섭냐고? 아니, 상황에 따라 무섭게 들리기도 할 텐데, 읽다 보니 그냥 웃겨. 거기에 고객센터의 이야기가 재밌고도 슬프게 들려서 안타까웠다.
자, 상상해 봐. 내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이 사투리를 써. 내가 하는 질문을 잘 알아듣고 정확한 응대도 해줘서 별 문제 없었다. 사실 나는 상담원이 사투리를 쓰거나 표준어를 쓰거나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데, 상담원의 고객 응대에는 표준어가 원칙이라고 한다. 그들은 분명 표준어를 쓴다고 하는데 이미 억양에서 사투리가 느껴지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저자가 일했던 곳이 지방이기도 하고,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고객센터에 접근하기 어려운 나이 드신 분들이 고객센터로 전화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다. 이 고객님들이 진득한 사투리로 물어보시고, 상담원은 표준어와 법적 용어로 응대하는데, 또 고객님들이 잘 못 알아들으시니, 몇 번을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시고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시면, 직접 가서 해결해줄 수도 없고. 그러다가 어느 상담원이 정말 고객님의 눈높이에 맞는 찐 사투리로 응대해 드렸단다. 그렇게 설명해드리니 고객님은 바로 알아들으셨을 수도 있겠지만, 상담원 평가 점수에서는 마이너스가 기록된다고 하니, 이 무슨 아이러니야. 고객 응대는 최고점, 평가 점수는 마이너스. 이 예를 듣고 진짜, 융통성을 이럴 때 발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업무 평가에서는 잔혹하기만 했다.
표준말이 단정해 보이기는 하다. 같은 말을 전달해도 더 전문적으로 들리게 하는 효과도 있을 거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다른 단어로 생길 오해도 없을 거다. 하지만 애틋하게 들리는 정감 있는 말투는 역시 사투리가 아닐까. 듣는 사람에게는 내가 못 느끼는 전라도 억양이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말하려고 사투리를 섞어 쓰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표준어를 쓰게 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투로 지역을 추측하기도 하지만, 그런 추측은 차별이나 배척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동네와 사람들을 연상하게 하는 즐거움이다. 과거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말의 어원을 따라가 보기도 하고, 그 시대를 걸어온 이들의 인생을 알게 되기도 한다. 나의 엄마가 TV를 보다가 어느 요리사의 레시피를 따라 적고 있는 걸 봤다. 노트가 있는데도 굳이 뜯어낸 지난달의 달력 뒷면에, 거품이 아닌 ‘버끔’이라고 적는 걸 보고 웃기도 했다. 엄마가 살아왔던 시절의 ‘버끔’은 누구나 사용하는 그냥 평범한 ‘말’이었을 테니까. 날씨 서늘해졌으니 대문에 ‘뺑끼’칠을 해야겠다는 말을 페인트칠 하자는 말로 찰떡같이 알아듣는 내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살아온 세월의 그림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가 대화로 들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게 비록 서로 다른 단어로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사투리라도 말이다.
말이, 각 지역의 사투리가 걸어온 길이 대한민국 현대사와 아주 가깝게 닿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반갑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역사를 이렇게 즐겁고 재밌게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너무 유쾌하게 읽어서 ‘아무튼 시리즈’를 더 애정하게 될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작품 『혼자 입원했습니다』를 읽으면서 1인 가구, 비혼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을 배웠는데, 이번 작품 『아무튼, 사투리』를 읽다 보니 미뤄두었던 『안녕 커뮤니티』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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