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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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세리나 프룸이고, 사십여 년 전 영국 보안정보국의 비밀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되었다. 나는 무사히 복귀하지 못했다. 보안정보국에 들어간 지 십팔 개월 만에 망신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시키고서 해고되었다. (11페이지)


얼마나 호기심 일으키는 첫 문장인가. 직설적으로 자기 이름을 밝히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말하면서, 그 일의 최후까지 세 문장으로 독자의 눈을 붙잡는다. 소설은 주인공 세리나 프룸의 회고로 시작하면서, 1970년대 초 암호명 '스위트 투스'로 그들만의 문화 전쟁을 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으로도 경쟁했지만, 문화 전쟁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문화로 대중 의식을 장악하려고 애썼다. 그동안의 사실로 보면 문화를 장악하는 쪽이 이긴다는 건 역사에서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목적으로 문화예술 사업에 몰래 돈을 대고, 그들의 후원을 입은 예술가들로 문화 선동 사업을 일으켰다. 물론 이 소설에서처럼 예술가는 그 후원의 정체를 모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MI5, MI6은 이러한 문화 선동 사업의 선봉에 서서 반사회주의 성향의 작품들이 태어나도록 했다.


이 전쟁의 용맹한 전사로 투입된 미녀 첩보원 세리나 프롬. 소설을 좋아했지만, 그녀는 수학을 전공했다. 좋아하는 것과 상관없는 것의 학업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케임브리지대학 시절 역사학과 교수 토니 캐닝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점점 문학적 재능을 찾아간다. 단순히 역사학자로 알던 토니는 사실 전직 보안정보국 요원이다. 세리나는 그에게 알게 모르게 훈련받았던 셈이다. 어쩌면 토니는 그녀의 인생의 다른 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영국 정보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이름에 무색하게 말단 여직원의 일을 하던 어느 날 첫 임무를 부여받는다. 소설가 톰 헤일리에게 접근하여 그를 후원하고 그가 반공주의 작품을 쓰게 하는 것. 정보국에서는 이 작전을 스위트 투스(단 것을 좋아하는 취향, 마약이나 해로운 것에 빠져드는 중독)라고 부르며, 지식인과 문학인이 자유주의적 사고를 작품으로 퍼트리는 일을 목표로 한다. 세리나에게는 소설가가 주어졌으며, 내부 회의에서는 과거 토니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던 그녀의 독자 생활을 바탕으로 톰 헤일리에게 붙여질 적격자라고 판단한다.


그런 그녀가 작전 대상과 사랑에 빠졌으니... 어쩌면 독자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떠올려보라. 비밀 임무 수행하는 이와 그 임무의 대상이 된 이가 사랑에 빠지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에서 힘을 발휘하기에 가능한 일. 세리나 역시 이 일에 성공하고 싶었다.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임무 역시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그녀의 프로젝트이며, 일이며, 임무였다. 더불어 그의 예술, 그의 작품, 그들의 연애가 하나였다고 말하며 무게감을 느낀다. 그가 실패하면 그녀도 실패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성공해야만 했다. 그녀가 성공하는 게 그가 성공하는 일이며, '우리'가 성공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더 혼란에 빠지고 감정에 죄책감을 가지는 이유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거짓말을 배경에 두고 시작했다는 게 언제나 가슴 한구석을 눌렀다. 그 죄책감은 그녀가 그를 사랑할수록 더 커져만 갔다.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건 사실이고 진심이지만, 그 사랑이 시작된 배경에는 그녀가 숨긴 정체와 그에게 접근한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민, 언제까지 이 거짓을 숨길 수 없으며 언젠가는 그에게 다 말해야 한다는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의 사랑은 끝날 것이라고 여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말할 수 없지만, 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말해야 한다는 모순 같은 진실의 혼란에 빠져든다.


이쯤 되면 더 궁금해질 것이다. 세리나는 톰에게 말했을까, 하지 않았을까. 둘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낳았을까. 그 궁금증은 이미 소설의 첫 문장, 첫 단락에서 알려주었다. 그녀의 임무는 성공하지 못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으며, 그녀 역시 정보국에서 파면당했다. 한 사람의 단편 작품들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보니 그 작가에게 호감이 생기는 일. 결국 그 작가와 사랑에 빠져들어 버린 시간. 그게 삼십여 년 전 그녀의 인생이었다. 그럼 지금은?


이 사랑이 방향을 잡고 흘러가기 전에 그에게 나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 사랑은 끝날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나중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팔짱을 끼고 누워 우리의 비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나쁜 짓에 어린애처럼 키득거렸다. 그리고 우리가 나눈 엄청난 말에도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규칙에 묶여 있지만 우리는 자유로웠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사랑을 나눌 것이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412~413페이지)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투입된 여성 요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지만, 그 시대에 실제 일어난 사건(인 카운터)을 보면 소설로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작가는 그 사건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다는데, 그러한 관심은 그 시대의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에 더 깊이 파고들게 했으며, 결국 이 소설까지 이어졌다. 냉전 시대의 복잡 미묘했던 문화 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에 로맨스까지 더해진 이 소설이 재미와 호기심에 한 발짝 더 들여놓게 한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 세리나가 그녀의 스승(?)인 토니와 벌인 열띤 토론과 문학 작품들의 이야기는 소설에서 만나는 또 다른 문학의 목록을 쌓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문학 작품 이야기는 그녀의 작전 대상이자 연인이었던 톰과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학 작품 속에 녹아든 의미를 파악하고 시대를 읽으면서, 소설가의 현실을 동시에 본다. 쓰고 싶은 작품도 많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정작 그들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도구나 수단은 너무 적었다. 잘 안 팔리는 단편소설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알릴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21세기의 자유주의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까지 같이 담아냈다.


소설로의 재미도 넘쳤지만,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한 시대의 전쟁에 문화가 했던 역할을 알게 되기도 했고, 작품을 쓰고 싶은 한 소설가의 열정이 그대로 읽히기도 한다. 작전 타깃인 소설가와 작전 수행자인 독자가 공유하는 문학에 대한 애정 역시 엄청나다. 두 사람이 나누는 책 이야기는 어느 독서 토론 못지않게 치열하기까지 하다. 작품의 설명과 이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감상과 의도를 가지고 싸우기도 하고, 결국에는 상대의 진심을 읽어내며 감정적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이 된다. 특히 세리나가 톰의 단편들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독자 후기 같은 감상은 너무 익숙했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몇 마디 남기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이렇게 너무 잘 소통하고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그들 사이에 '거짓'이라는 게 존재하는 사랑은 너무 위태로웠으니...


소설의 첫 부분에 드러난 이 사랑의 결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거짓이 드러나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임무에 실패한 이들 사이에 어떤 게 남아 있을지 확인하길 바란다. 세상은, 사람은, 사랑은, 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선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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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가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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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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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되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은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54페이지)


가수 나훈아는 테스 형에게 물었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고, 먼저 가본 저세상은 어떠냐고, 가보니까 천국은 있더냐고. 나훈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테스 형에게 대답은 들었을까? 글쎄. 나도 궁금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저세상이, 천국이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이 대답을 다음 세상에서나 할 수 있을 듯한데, 전생의 기억을 완전 삭제하고 태어난다면 또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때 다시 궁금해질 것 같다. 천국은 있을까? 내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심판을 받으며 천국을 경험하고 있을까?



눈앞에 천국이 펼쳐져 있다. 그 천국을, 이제 막 천국에 입성한 아나톨만 모르고 있다. 하루에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워대던 아나톨은 폐암에 걸렸고, 수술하다가 사망했다. 눈을 떠보니 몸이 가뿐하다. 음,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되었군. 한참 착각에 빠진 그를 기다리는 건, 그를 천국에 머물게 할 것인지 다시 지상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재판이었다. 처음 그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자기 인생에서 이보다 더 고민에 빠진 선택과 몸부림이 있었던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아나톨은 이제 그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하는 물음에 답해야만 한다. 온 힘을 다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천국의 법정은 뭐가 다를까 싶지만, 지상의 재판과 같은 모습이다. 죽기 전 판사였던 아나톨은 피고인이 되어 천국의 판사 가브리엘 앞에 서 있다. 그는 지나온 자기 삶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판사의 물음에 그는 자기가 좋은 학생,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직업인이었다고 말한다. 정말? 검사인 베르트랑은 아나톨의 대답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대면서, 그에게 천국에 머물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에 반해 아나톨의 변호사인 카롤린은 그가 '삶의 형'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변호사와 검사 사이의 설전을 지켜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천국에서 죄를 논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거였다. 그들은 그동안 아나톨의 모든 생을 지켜본 이들이다. 검사는 그의 신호 위반, 속도위반, 음주운전, 욕설 등 모든 위반 사례를 들었고, 심지어 그가 제대로 판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언급했다. 심지어 그가 저지른 죄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가면서 아나톨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웃음이 나면서 동시에 심각해진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일상의 소소한(?) 위반들이 천국의 심판대에서는 굵직한 죄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것을 시작으로 점점 우리가 저지른 죄의 크기는 살을 찌운다. 왜 그가 자기 행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는지 저격한다. 아나톨은 지상에서 행복하지 않았을까? 판사라는 직업에 아내와 아이들, 크게 모자라지 않은 경제력이 일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나? 검사가 들춰내는 그의 죄목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뭔가 계속 콕콕 쑤시는 거 같았다. 행복을 누리지 않았다는, 행복한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죄. 그에게 행복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르고 놓친 채로 살아왔던가.


베르트랑 : 어떤 일이 어려워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거예요! (중략) 지나치게 평온하고 지나치게 틀에 박힌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등한시하고, 운명적 사랑에 실패함으로써 피숑 씨는 배신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엘리자베트 루냐크의 꿈을 배신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배신한 셈이죠. (133페이지)


아나톨은 학창 시절 연극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 판사로 살면서 우리가 아는 평범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연극으로 당시 밥벌이의 부족함을 알았고, 지금 아내와 만났으니 그냥 살았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그가 배우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재능을 죽였고, 그가 좋아했던 여성과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아이들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톨 자신도 몰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충격이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사는 콧방귀를 뀌면서 그의 말을 핑계로 치부하고 그의 죄명을 외친다. 불행하지 않으려는 인생을 선택한 죄, 행복하지 않은 죄. 천생배필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의 부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평생 아내와 권태롭게 살아온 죄, 자기와 맞는 배우자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차단한 채로 살아온 죄가 크다고 말이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고 몰아붙인다. 그가 타고난 대배우가 될 자질인데 그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느라 연극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그의 세월을 탓한다.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했다면서, 순응주의에 빠져서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운명을 무시했다고, 그의 죄가 무겁다고 외친다. 기억하지 못한 시간의 죄까지 한꺼번에 들춰내니 이건 뭐 빼도 박도 못 한 증거가 된다.


검사의 주장대로 아나톨은 행복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기가 했을까? 그의 변호사 카롤린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무죄로 만들어 천국에 남게 하고 싶다. 그의 선택이 왜 그래야 했는지, 그의 선택 이면의 감정들을 피력한다. 첫눈에 반한 아내와 저지른 실수를 책임지려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아버지로 살아가려고 배우보다는 판사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판사로 최고는 아니어도 직업인으로 나름 성실히 일해 왔다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삶을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을까. 그는 판사의 판결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재능을 망각한 것은 유죄, 사랑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도 유죄, 천국에 남을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것도 유죄. 그래서 아나톨 피숑은 유죄이며, '삶의 형'에 처했다. 천국에 남을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끝났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죄를 묻는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몰라서 당황할 것 같다. 특별히 나쁜 사람으로 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들, 항상 원하고 바라던 삶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떠오른다.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아쉬움은 있겠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하나를 선택하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할 선택이 가능하단 말인가. 아나톨의 변호사 카롤린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편안한 삶을 선택한 그의 죄를 논하는 검사하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피숑이 유죄라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관습 전체에 함께 죄를 물어야 한다'고. 카롤린은 아나톨의 수호천사였다. 그의 평생을 지켜본 이가 하는 말이니 어쩌면 그의 죄를 경감하고자 하는 주장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은 바라는 것과 가능한 것의 싸움이었으니...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꿈만 쫓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당장 눈앞의 오늘을 보면서 살아가기에 급급한 게 보편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일을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선택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나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내는 삶으로 그의 인생을 채웠다. 그랬는데 인제 와서 그 삶을 심판한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가 기억하지도 못한 시간까지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보다는, 그때 그 행동이나 선택의 마음이 저절로 읽힌다.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겠지. 이 심판의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무죄를 받아서 천국에 머물며 천사가 되거나, 유죄를 받아서 지상으로 내려가 다시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말 그대로 '삶의 형'.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유죄의 형벌이 내려진 게 꼭 나쁜 것이기만 할까? 별것 없이 고단한 인간 세상 다시 사는 게 힘들겠지만, 어쩌면 내가 놓친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기회는 아닐까? 아나톨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판사복을 벗어 던진 가브리엘의 선택은, 행복의 기회를 다시 잡은 이의 즐거운 비명이 될 것 같다. 진짜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아는 인생이 되겠지.



아나톨 : 지상으로 돌아가는 건 다시 인간이 된다는, 결국 다시 무지해진다는 뜻이잖아요. 그동안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음 생에서도 또 실수를 저지르게 될 거예요. (162페이지)

가브리엘 :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내려가면 자유 의지를 가지고 혼자가 될 거예요. (197페이지)


현실에 순응하며 선택한 삶이 잘못된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또 어떤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순응보다는 꿈을, 다가오는 파도를 피하기보다는 맞으면서, '적당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부딪히려는 바람 한 자락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의 선택 결과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 가본 천국에서, 자신의 행복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죄를 너무 잘 알게 되었지 않은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형벌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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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0-1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전 보관함에 있는 책입니다. ㅋ

구단씨 2020-10-19 18:21   좋아요 1 | URL
금방 읽히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ㅎㅎ
 
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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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런 성격인지, 왜 아버지답지 못한 존재감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지. 아마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호감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 서로에게 무관심인 채로 살아간다면 더는 고통스럽지는 않겠지. 그게 최선이겠구나 싶었다.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그 어떤 노력이나 고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참 오래다. 그래도 언제나 가슴 한구석 답답함은 있었다. 아무리 무관심하게 대한다고 해도 없는 존재는 아니었으므로. 이제 더는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포기가 아니라, 필요가 없어졌다. 그 대상이 이제 없으니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과 더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느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뭔가가 남아 있다.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 아버지에게 듣지 못한 사과를 저자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어 편지로 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1년이 흐른 후에야 소환한 거다. 저자의 성장에 아버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대로 들려오면서, 저자가 아버지를 다시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추적하는 것만 같다.


아무도 내게 이런 감정의 존재를 알려준 적이 없었기에, 어린 딸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 혼란스럽더구나. 나는 사랑을 몰랐어. 숭배를 받은 적은 있어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 우상처럼 떠받들어진 적도 있고 누군가의 구세주 역할도 해봤지. 하지만 영혼과 세포를 키워주고 채워주는 어머니의 가슴에 안겨 달콤한 젖을 맛본 적은 없었어. 나의 몸은 달콤한 행복감을 맏아들이거나 경험한 적이 없었단다. (59~60페이지)


너의 성격을 파괴하고 의지를 꺾기 위해 난 매일같이 노력했다. 너에게서 온갖 잘못과 실패와 실수를 찾아냈지. 이런 일에 뛰어난 나는 네가 지닌 약점을 금세 파고들었어. (104페이지)


저자는 5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묻고 싶기도 할 거다. 그것도 친부에게 5살 때부터 성폭력 당하는 딸이라니. 아버지는 딸에게 설렘을 느끼고, 젊은 시절 그가 즐기던 인생처럼 딸에게 그 두근거림을 찾는다. 누군가 아버지의 귓가에 계속 속삭이기도 한다. 몇 년 후 성폭력을 멈췄지만, 아버지는 자기 눈앞에서 딸의 존재감을 없애려고, 딸을 제대로 교육하겠다면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했다. 방에 가두기도 하고, 배고픔에 허덕이게 했다. 엄마와 오빠는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방관자였다. 모른 척 침묵하기도 했다. 어린 소녀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고, 아버지는 소녀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자랐을까. 어느 정도 상상이 되기도 한다. 가족에게 외면받고, 아버지에게 억압과 폭력으로 대해졌던 어린 소녀가 성장의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지 그려진다.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저자의 저항 앞에 더욱더 교묘한 폭력을 행사했으며,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했다. 스스로 학대하며 다리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술과 섹스에 빠져 살았고, 마치 그런 것들이 고통을 없애주는 것처럼 살았다.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은 온갖 좌절의 몸짓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인생을 돌보기 시작한 게 20대 중반이다. 희곡을 쓰고, 여성의 몸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질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세계의 여성들이 받는 고통을 말해왔다. 그렇게 쌓아온 경험과 성장으로 이제 저자는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이제 가해자인 아버지는 없지만,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현실에서 사과받을 수 없게 됐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던 사과는 가해자가 없다는 이유로 완성될 수 없던 거다. 아버지의 사과를 더는 기다릴 수 없었기에, 이제 저자 스스로 전해지지 못한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아버지의 사과로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온전한 삶을 만들고 싶은 거다.


피해자인 저자가 아니라, 가해자인 아버지의 시점으로 써내려간 편지는 과거를 소환한다. 처음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던 것부터, 아버지에게 외면받으며 괴롭게 성장했던 시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버지의 거절로 꿈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 제대로 아버지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본인의 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던 이야기가 현재의 저자를 만들기까지 생생하다.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인생을 추적하면서도 딸인 자신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화자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저자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녀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그 자신이 성장해온 환경에 영향을 받았던 게 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딸에게 준 상처에 대해 아버지가 사과하는데, 왜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한마디 대신에 그가 걸어온 시간과 겪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까? 무엇보다 아버지의 그 말을 피해자인 딸이 대신 적어가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었을 사람의 마음을 대신 전하면서 구구절절 그의 사연을 공유한 것처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던 게 아닌가. 어느 순간, 피해자인 저자보다 가해자인 아버지의 서사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성폭력 생존자가 되어 목소리에 힘을 낸 저자는 진실을 드러내고 아버지와 화해하려고 이 글을 썼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남김없이 들려주고, 폭력의 본질을 꺼낸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은근히 피력한다. 변명으로 여기면서도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미처 드러내지 못한 말들, 미안함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그래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딸에게 성폭력을 행사했고, 외면하고 거절했던 존재로 남아있다. 본인도 어쩌지 못한 순간들에 대해 그 근원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자기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아버지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딸에게 사과하려고 시작한 이야기에서, 아마도 아버지는 자기의 서사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삶이 왜 그렇게 흘러왔는지, 그 자신의 성장기간 동안 만들어진 인성이나 현재 자기 삶에서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 보고야 만 시간이었으리라. 이 시간은 딸도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이자 아픔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의 성폭력이나 저자의 상처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없었던 일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대화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던 건데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만들어지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한참 늦었지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던 마음으로 아버지의 사과 편지를 쓴 저자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심정으로 좌절하고 반항하고 거칠게 살아왔을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상처를 지우고 다시 걸어갈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건 맞다. 언제까지 가슴 속에 묻어둔 채로, 덜 아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피해자가 원하는 건 더는 불안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 자기가 겪은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것, 상처 입은 자신을 위해 법이 처벌해주어야 하는 것, 가해자에게 진심의 사과를 받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바람의 끝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나는 너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다. 나는 너에게서 가족에 대한 개념을 파괴해버렸다. 네가 네 엄마를 배신하도록 만들었다. 너를 영원한 자기 증오와 죄의식 속에서 살게 했다. 나는 형제자매 사이에 위계와 불신과 폭력적인 경쟁을 조장했다. 너희 중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회복될 수 없었다. (180페이지)


상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이 글은, 저자가 오랫동안 묻어온 진실을 복원한다.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을 불러내어 이렇게 사과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할 테지. 하지만 피해자는 안다. 피해자는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환해서라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절대 사과하지 않을 아버지를 대신해서 상상했다. 상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을 일, 상상으로라도 나를 위로하고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야만 했던 일. 이제는 자유로워져서 행복해져야 하는 자신을 위해 기꺼이 상상하고 썼을 것이다. 힘들었겠지만 생생하게 적었다. 섬세하게 감정의 민낯을 보여줬다. 추하고 잔인한, 고통스럽고 아팠던, 때로는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순간들까지 모두 꺼내놓았다.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진 가해자의 진실을, 그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상처에서 회복될 자신을 또 상상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여전히 이곳에서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아니면 저자의 글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처럼 무언가 잔뜩 변명거리를 안고 말하고 싶은 표정일지. 나는 저자처럼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당신 딸로 살아가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당신의 존재로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고, 당신의 부재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당신을 떠올리면 고통스럽다고. 그러니 언젠가 나에게도 저자의 방식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가끔, 당신의 한 마디로 괴로운 내 마음이 위로받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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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9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준비해뒀는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구단씨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저는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 같기도 하네요. 읽기 전이라 모르겠지만 가해자 서사가 필요한건가, 의미있게 들어간건가 한편 걱정도 되고 말이죠 ㅠㅠ

2020-10-0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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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어느 부족에서는 사자의 장례를 치를 때 그의 영혼이 들고나는 통로를 마련해주고자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와 구실이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거라면, 자신을 수호하는 용도의 문신이 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29페이지)

 

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간절함의 순간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살면서 그런 간절함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건강을 위해서, 얻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서, 피하고 싶은 고통의 순간을 위해서 등등. 그 간절함에 또 무언가를 붙잡고 매달리기도 한다. 사람에, 종교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견디고자, 그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문신이다. 어떤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을 내 몸에 새기고, 나에게 와서 딱 달라붙어 있는 그 새겨진 것이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 아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는 것일 테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어쩌면 이들의 몸이 새겨진 문신은 그들의 목숨을 유지하게 하는 부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끝내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방법이 생을 놓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 10층. 그날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축구 중계에 열을 올리던 그 시간, 한 집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혹시 옆집이나 위아래 집으로 불이 번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화염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중년 남성이 창문 밖으로 떨어졌고,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사망했다.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 집에서 감금되었던 딸 말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딸이 용의자가 되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들이 딸을 향한 의심을 거두게 한다.

 

이상하게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와 죽음은 계속된다. 삼십 대의 한 남자는 혼자 살던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어떤 동물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집안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다. 한 회사 대표인 오십 대의 남자는 자기 집 거실에서 익사했다. 바닷물에 빠진 것처럼 죽은 남자는 외부 침입 흔적도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말 그대로 미스터리한 죽음이 계속 일어나고,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도 이들의 죽음에 많은 추측만 있을 뿐 진실을 알 수 없어서 난감하다.

 

마치 무슨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죽은 이들의 진상을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완벽한(?) 완전범죄가 가능해지는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죽은 이유나 과정을 밝혀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의심과 진실 사이를 오가던 '시미'의 추적은 그녀만의 간절함을 채울 수 있는 곳을 향한다. 회사 후배인 '화인'의 권유로 그녀는 문신하러 간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문신 가게, 겉으로 봐서는 전혀 문신하는 곳처럼 생기지 않은 그곳, 문신할 것처럼 생기지 않은 가게의 주인장,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문신의 두려움 없이 편하게 누워있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문신을, 왜 새기고 싶어 하는 걸까?

 

화인이 목에 새긴 샐러맨더 한 마리는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았다. 마음에 의지가 되고, 지금 자기가 겪는 고통이나 위험을 견디게 해주는 용기를 갖게 했다.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공감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읽게 되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부분은 나중에 화인이 시달려왔던 고통이 끝난 순간에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데, 아마 그 작은 샐러맨더 한 마리가 그녀를 구해주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녀도 느낀다. 그 작은 문신 하나가, 가장 절박했던 순간에 자기를 지켜줬다는 것을. 그렇게 화인을 지켜준 샐러맨더는 떠나갔다. 마치 자기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희미한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간절함을 해결해주었으니 더는 그녀의 몸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에 연루된 작은 공통점 하나를 발견한 시미는 조금씩 알게 된다. 그 사건들에 관계된 사람들이 가졌을 간절함, 그 간절함을 읽어주던 이상한 문신업자, 그들이 몸에 수놓은 것들이 일으키는 작은 기적(?)들을.

 

그렇다면 시미가 만나고 싶은 기적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는 시미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들려온다. 곧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시미는 서른 살에 남편과 이혼하면서 아들을 두고 나왔다. 시미는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혼자 견디면서, 사회를 경험하면서 온갖 불합리와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왔다.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삶을 지키려고 애쓰던 시미의 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연결된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이혼했지만, 그래도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까지 잘라내지는 못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건과 비밀 앞에서 시미는 그녀만의 간절함을 키운다. 그녀가 살아온 현재의 모습이 달라지기를, 그녀를 둘러싼 나쁜 상황들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그런 바람으로 몸에 새기는 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누구나 가진 말 못 할 고통을 자기만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싶지만, 그 노력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미신 같은 바람을 몸에 불어넣게 된다.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기를,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기를. 실제로 그 바람이 이루어주지는 않더라도 나를 살게 해주는 의미가 되어간다. 나를 지켜줄 것으로 믿으며 앞으로 나아갈 나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나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게 한다. 내 몸에 새긴 하나의 작은 기도로.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138페이지)

 

사람들이 종교를 찾고, 점집에 다니고, 남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들로 마음을 의지하게 되는 일들을 생각한다. 삶이 잔혹해지는 순간에 무언가에 자꾸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게 종교일 수도 있고, 상상에 의지하는 어떤 바람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간절함을 이루기 위한 것임은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들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문신으로 표현했다. 몸에 새긴 이 작은 그림 하나가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랐다. 문신업자의 말처럼, 이렇게 피부에 새겨진 것은 정말 자기 심장에도 새겨지는 걸까?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작게 새겨진 이 그림 하나는 심장으로 연결되어, 가슴속에 머물면서 그들의 기도에 동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슴에 붙이는 부적, 심장이 읊조리는 기도의 의미로 새기고 싶은. 나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을 지탱해주는 바람 하나를 갖는 게 문신이라면, 그 문신 하나쯤 새겨 보고 싶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슬픔과 고통이 있으니까. 그런 순간 이겨내면 자기 역할 다하듯 사라지는 문신을 보면서, 내 삶을 힘들게 했던 것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판타지 같은 결말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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