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여자들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일과 삶
정다정 지음 / 산지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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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밥 한 끼 차려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몇백인 분의 급식 준비를 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급식 노동자의 고됨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지만, 나의 상상 그 이상일 거다. 열심히 사는 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이미 알고 있기에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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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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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 위픽
김효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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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마다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그거 말고 지금 못마땅한 생을 원하는 대로 바꿀 방법을 모르겠다.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다 보면 달라지겠지, 기회를 잡으려고 애써봐야지,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용기를 갖게 하고 희망을 기다리는 말을 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사실 최선의 노력과 기다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거 다 해봤는데, 정말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건 어디에,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운명이 있다는 걸, 이 순간에 믿게 된다. 세상이 그렇더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스무 살 이태이의 삶에 문제가 생겼다. 아니, 문제는 이태이가 태어난 순간 붙박이처럼 몸에 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두에서 태어난 이태이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로 성장했다. 구경도 해본 적 없는 빚이 그녀의 하루를 옭아매는 일상을 버티는 중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인생.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대로라면 세상 구경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로 어딘가로 팔려 갈 것 같다. 그때 눈앞에 버튼 하나가 보였다. ‘새로고침어떤 인생으로 만들어줄지 궁금하면서도, 그걸 고민한 겨를이 없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테니까. 눌렀다.



인생을 새로고침 하고 싶나요?

지금 바로! 이 세상 아! ! ! 의 삶과

자신의 삶을 바꿀 의향이 있다면

이 버튼을 누르세요! (13페이지)


누구라도 누르지 않았을까? 눈앞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뭐라도 누르고 볼 일이다. 지금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지금 생이 끝난다고 해도 하나도 아쉬운 것 없는 시간을 살아왔는데 당장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운 것 없는 인생이라면 말이다. 그렇게 누른 새로고침버튼이 이태이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재밌는 건, 이태이뿐만 아니라 그 시각, 각각 다른 장소에서 새로고침버튼을 누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다.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던 유은희, 불법에 눈감아주던 부패 형사 표진노. 운명의 버튼을 누른 이들이 맞이하게 된 또 다른 운명. 이태이는 낯선 남자의 몸속에 들어와 살인 용의자가 되어 있었고, 유은희는 남편 표진노의 몸으로 깨어났다. 부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용의자를 쫓던 형사들로부터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유은희는 이태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다.


몸이 바뀌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 이태이와 유은희. 태어났으니까 살아왔다. 환경이 이랬으니까 하루하루 버티는 거 말고는 인생의 목표도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싶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뭔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더라도 그 방법을 몰라서 금방 또 잊으면서 살아왔을지도.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는 게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고, 한 번만 일어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여자의 몸은 침대에 묶어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살아갔겠지. 그런데 뜬금없이 새로고침이라니. 이거 뭐, 진짜 뭐가, , 바뀌려나?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발. 반으로 쪼개진 젓가락 하나의 틈만큼이라도 길이 벌어졌으면, 그렇게 작은 틈 하나가 점점 더 인생의 다른 궤적을 그리며 뻗어가기를. 그래야 이 소설이 의미 있을 것 같다. 인생의 최악을 경험한 이들의 앞날이 새로고침버튼을 누르기 전과 같다면, 그러면 안 되잖아.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각자 바라는 인생을 향해 가는 길을 열어준다면, 아니, 내가 바라는 인생이 무엇인지 그것만이라도 찾게 된다면 오늘의 삶이 꽉 찰 것 같은데.


이 소설 속에서 내가 상상한 새로고침버튼의 효과는, 새로 태어난 삶이었다. 이번 생은 완전히 끝나버리고, 다음 생이 새롭게 시작하면서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지난 생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 그게 아니라면 새로고쳐지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태이의 스무 해 생을 듣고 있자면, 애써 버리고 싶은 삶이었으니까. 일부러라도 지우고 싶은 시간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주인공들이 누른 새로고침버튼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누군가와 인생을 바꾸는 선택이었다. , 그렇구나. 그럼 나는 누구의 인생으로 바뀌고 싶은 건가 잠깐 생각해봤는데, 또 잘못 읽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누군가의 인생과 바꾸고 싶은지 아닌지였지, 그 대상을 지정할 수 없는 거였다. 말 그대로 아무나, 랜덤. 하아. 그래도 눌러야겠지?


나의 예상과 다른 전개였지만, 싫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타인의 삶을 경험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의 생이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보면서 겪는 온갖 감정과 생각들이 오늘의 나를 어떻게 변화하게 해줄지 기대되기도 해서다. 나의 오늘이 그랬다. 뭔가 불안함이 스멀스멀. 낌새는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데, 결국 듣고야 말았다. , 금방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지만, 모른 척할 일도 아니었을 뿐 나의 선택지는 없었다. 오후 내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이었는데, 빚쟁이에 쫓겨 팔려 갈 운명의 스무 살 청춘도, 억울하고 분해도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네. 시간은 흐를 거고, 이 상황도 이대로 머물러 있지만은 않겠지 싶은 바람만이 남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상황은 새로고침 되어 또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



#새로고침 #김효인 #위즈덤하우스 #위픽 #소설 #한국소설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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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타자기 위픽
박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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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와 66. 살면서 두 번의 생애전환기를 맞이하는 법이 있다. 첫 번째 생애전환기에는 이대로 평생을 태어난 그대로, 타고난 조건을 유지한 채로 살다 죽을 것인지 아니면 전환할 것인지 결정한다. 그리고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충분한 준비와 숙고를 거친 끝에 두 번째 생애전환기에 최종 선택한 형태의 삶으로 전환하게 된다. 승혜도 40세에 생애 전환 여부만 결정하고, 66세에 결정된 형태로 살아가야 한다.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생애 전환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였다. 승혜는 자갈이 되고 싶었고, 3지망까지 쓸 수 있었지만 더 적어내지 않았다. 자갈이 될 터였으니까. 하지만 사는 동안 승혜가 사회에 보탬이 된 것보다 사회가 승혜에게 도움을 준 게 더 많았다면서, 승혜는 사회에 갚아야 할 빚이 생겼다. 빚이 없어야 자연 상태의 무생물로 전환할 수 있었기에, 승혜는 남은 시간 동안 살면서 그 빚을 갚아야 그렇게 되고 싶은 자갈이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그 빚을 갚는데 쓸모를 다해야 했다. 그렇구나.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도움을, 지원을 받은 게 있다면 그게 다 빚이었구나.


승혜가 자갈이 되지 못한, 유보된 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갑자기 무서웠다. 소설 속 단순한 설정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게 이상하게도 공포심으로 다가오더라. 우리나라의 국가건강검진 제도에서 이와 비슷하게 생애전환기 연령별 맞춤 혜택이 있다. 보통 40, 50, 56세 등 그 나이대에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간인 듯하다. 그냥 내 몸이 이렇게 나이 들어가고 있구나, 아직은 괜찮구나, 조금 더 신경 써야겠다, 이 정도로만 여겼는데, 소설 속에서 승혜에게 닥친 생애전환기 결정 여부는 단순히 관리 차원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바뀌는 결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었다. 거기에, 승혜가 그냥 무생물, 자갈이 되고 싶다는데도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보니, 살면서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나도 궁금해졌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사회에 진 빚은 얼마나 될까.


바람처럼 바로 자갈이 되지 못한 승혜의 생이 머물게 된 곳은 타자기. 오래된 타자기로 살아가는 승혜는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빈티지 숍의 인기 상품처럼, 진열된 상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역할로 머문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타자기를 쳐보는, 미처 다하지 못한 얘기를 쏟아내는 소리로, 그러다 기어코 활자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태에 이르자 타자기의 생애도 끝나가는 듯하다. 빚을 갚지 못해 유보된 생으로 타자기가 되었건만, 그마저도 쓸모를 다하지 못하자 어느 바닷가에 버려진 신세가 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씩, 점점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는 타자기의 운명이 바닷가에서 쓰레기로 끝나게 될지 어떨지. 누군가의 손에 들어 올려져 따라간다고 해도, 바닷가 모래밭에 그대로 파묻히게 된다고 해도, 이상하게 서글퍼진다. 그 쓸모를 다한 모든 것의 운명처럼 보여서 말이다.


몸은 늙어가고, 기억도 잃어갈 것이다. 낡아지는 몸이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게 없는 생이라고 여긴 승혜였지만, 생의 끝을 향해가는 순간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사과일 수도 있는, 마음 쓰이는 일. 기억하고 싶은 게 없다면서도 기억되고 싶은 마음은 뭐란 말인가. 오래전 인연이 끊긴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할 마음을 적어가면서, 완전하지 못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상황이, 그저 아리기만 했다. 이번 생이 미련 없어서, 다른 무엇으로 다시 살아간다는 간절함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생이 끝나가는 순간에 비로소 찍히는 온점, 마침표 하나가 모든 생을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 인간은 쓸모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저절로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불안함은 당연한데, 그 불안함을 위로하는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쓸모를 걱정한다. 엄마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기도 하고, 나 역시 이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겪는 감정적 사회적 문제를 마주한 것만 같다.



#찰스부코스키타자기 #박지영 #위픽 #위즈덤하우스 #소설 #문학

#이책의여운을표현할방법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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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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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덕분에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라디오를 접했다. 언니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친구들이 구구단 외우면서 산수(그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였다) 숙제하고 있을 때, <두 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고, 어느 광고에 나오던 음악에 귀를 열었다. 마치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듯이, 친구들과 방과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심심한 일이라는 듯이, 라디오 이야기를 하면 TV 만화 프로그램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마치 아이들 같다는 듯이. 그때의 나는 아이였으니, 아이들의 세상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그 아이들 틈에서 나만 혼자 훌쩍 커버린 건방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그 후로도 여전히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랐고, 집안의 고요함이 싫을 때도 TV보다는 라디오를 켜 놓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은 그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훨씬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TV보다 라디오가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 한 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 책 속의 한 문장 같을 때가 있다. 라디오와 책, 느낌이 닮았다.

 

겨울밤라디오처럼 잘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으름에 미뤄둔 책이지만, 이 추위에 제법 잘 어울려서 며칠 밤 계속 읽은 책이다. 며칠 동안 읽어야 할 정도로 두꺼운 책이 아니었건만, 지독한 감기에 두꺼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식거리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건, 저자가 살아온 세월 속 라디오, 그 시절 속의 이야기를 모르지 않아서다. 저자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일찌감치 라디오를 접했고, 라디오를 좋아해서 겪은 에피소드에 안타까움과 웃음이 저절로 났다. 그때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아서 흠칫했다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까지 묻어났다. ‘그땐 그랬지같은 느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싶은 아쉬움까지, 괜히 오늘의 추위에 우울한 기분까지 밀려와서 옆에서 누가 꾹 찌르기라도 했다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일해온 사람이 전하는 라디오 이야기의 힘이 이런 건가.

 

라디오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라디오 공개방송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워크맨’(요즘 세대는 이걸 알려나?)이 소중했던 시절을 건너와 방송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라디오 때문에 행복했는데, 라디오가 좋아서 방송작가 되어보니 라디오 때문에 절망했던 순간이 따라오더라.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건 부러웠는데, 그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보니 고통스러운 순간이 또 생기더라는. 이러면 안 되는데, 좋아하는 건 계속 좋아하는 채로 남아주어야 하는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절망이 따라오는 건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이런 순간을 또 버텨내야 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괜히 또 서글퍼진다. 그래도 좋았다. 주파수를 열어놓고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고, 누군가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위로를 담은 답 문자를 보내고, 그 문자 한 통에 또 힘을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뻤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도 이런 안부를 묻는 게 가능하다는 건, 라디오가 가진 힘일 거다. 나 역시 그 힘을 나눠 받으며 살았으니, 그저 고마울 수밖에.

 

제목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악에 계속 반복되는 구절이,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는데도 불쑥 튀어나와 자꾸 맴도는 음악. 평소에 중독성 있는 음악이나, ‘훅송(Hook Song)’으로 불리는, 때로는 수능 금지곡이라는 위험한 이름이 붙여진 정도로만 생각했던 음악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귀벌레. ‘마치 귀에 음악 소리를 내는 벌레라도 들어온 것처럼, 그 벌레가 귀에서 나가지 않는 것처럼 특정한 노래나 멜로디가 귓가에 맴도는 현상을 두고 귀벌레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이름은 좀 징그럽지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게 이해되기도 한다. 일부러 듣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귀에 머물러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게, 심지어 입으로 종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음악에 붙여진 이름. 아이러니하게도 이 귀벌레가 부르지 않아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웃기긴 하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사연 사이에 들어오는 음악과 함께였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따라올 때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귀벌레 증후군이라니. 계속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는데도 익숙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요즘 나의 귀벌레 노래는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이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음이 심했던 병원의 대기실에서도, 책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러 있어도 귀에서는 이 노래가 자꾸 들려온다. 심지어는 며칠 푹 빠져 있었던 OTT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보는데도 계속 들렸다. 이 정도면 좀 심한 거 아냐? 때가 되면 귓가에서 사라질 목소리겠지만, 들리는 동안에는 뭐,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지 뭐. 나중에 언젠가 이 노래가, 이 목소리가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일상의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는 라디오였다. 최근 경험했던 단순노동의 현장에서도 일정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가 계속 켜져 있었고, 어느 사연에 박장대소하다가 누군가의 슬픔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에 살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가 좋았고, 병원에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이어폰 속의 DJ 목소리가 반가웠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느낌을 전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본디 외로운 존재라고 했는데, 그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마다 라디오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 거기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외로움은 이 주파수에 맞춰 서로 통하고 있다는,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믿음에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순간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속이 터져나갈 것만 같을 때, 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줬으면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나무숲이 라디오였다. 지금은 익명 게시판을 비롯해 여기저기 마음을 토해낼 공간이 많이 있지만, 그 시절의 우리에게 라디오는 마음상담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

 

라디오 로맨스의 대표주자 같은 소설 속 로맨스는 현실에 없었다. 방송국이 배경이 된 드라마 속 로맨스도 없었다. 몰라서 기대하는 게 아니라,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다는 말처럼, 전쟁 같은 일터에서도 사랑을 있을 테니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절망은 따라오니 뭔가 설레는 일 하나쯤 같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살면서 때로 환상 같은 일도 생겨주면 좋잖아. 어쨌든, 나에게 라디오는 그 단어 자체로 포근해지고 정적인 분위기를 전하지만, 현실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낭만으로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는 거다. 어렸을 적 뭣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던 라디오는, 어른의 세상에서 그 두근거림이 계속 이어질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게 아쉽고, , 그렇다. 그래도 놓을 수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여전히 우리 곁에 라디오를 남겨 둔다. 저자의 말처럼 영원히 외롭지 않을 거라는 말보다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때론 어떤 존재와 온기로 생의 고독을 잊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더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울고 웃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고, 그 틈틈이 외로울 것이고, 그때마다 슬쩍 그 외로움을 토해내고 싶어질 거다. 누군가 부담 없이 그 마음 들어주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라디오가 되겠지...

 

 

 

#아무튼라디오 #이애월 #제철소 ##책추천 #문학 #에세이 #라디오 #아무튼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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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1-2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했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걸보니 글의 내력이 9단쯤 되시는군요...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6-02-03 20:48   좋아요 0 | URL
사실 지금은 라디오 듣는 시간이 훨씬 줄어서인지,
처음 라디오를 즐기며 푹 빠져있던 느낌을 그대로 느끼지는 못하는 듯해서 아쉬워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겨울밤에는 라디오죠. ^^
 
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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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또 하나의 ‘하영 시리즈‘로 이어지지 않을까 궁금해서 읽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추리 소설이라고 굳이 복잡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오히려 설화 ‘여우누이‘가 더 흥미진진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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