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여자
알레샤 디케마 지음, 김현수 옮김 / 북플라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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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일하는 로라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자기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엄마와 동생들, 집안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버지는 자기 편이 되어줄 수도 없다.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책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바라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긴 올까? 카페에서 일하는 게 유일한 생계 수단인 그녀에게, 어느 날 인생 전환을 맞을 기회가 온다.


설마 그게 기회일까 싶지만, 손님으로 온 테오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카페에 오는 손님 대부분은 그들이 원하는 메뉴를 얘기할 뿐, 그 외의 말을 걸어온 적이 없다. 그런데 테오는 달랐다. 그녀에게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그녀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누군가와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매일 같은 시간, 테오는 그녀가 일하는 카페에 와서 늘 같은 메뉴를 시킨다. 그리고 카페 문을 나서면서 윙크도 던진다. 어라. 지금 테오가 로라에게 작업 거는 거?


이제 그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온라인에서 테오를 찾아보고, 그의 집안, 배경, 그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고 놀란다. 넘사벽 신분의 차이,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인 그의 아내가 나타난다. 뭐야, 아내 있는 남자가 작업을 걸어온 거야? 윙크는 왜 날려? 이런 의문도 잠시, 고를 것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선택지는 하나였다. ‘괜찮아. 그에게 아내가 있지만, 나는 그를 유혹하고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야.’ 로라는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그와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로라는 이름을 바꾸고 SNS에서 그의 아내의 일상을 훔쳐보며 접근하며 친구가 된다. 점점 그들의 세상에 스며든 로라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거짓말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이제 로라의 가짜 인생은 진짜가 되어야만 했고, 유일한 목표를 이루는 것밖에 없다. 테오. 그만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길이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로라의 자신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외모가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럴 이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가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이런 자신감을 뿜어대는 여성을 볼 때 궁금하긴 했다. 누구라도 눈길을 한번 주지 않고 못 견딜 만큼 평소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살았나? 아니면 로라처럼 기를 쓰고 노력하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을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이게 아니면 죽음뿐이라는 각오로 덤비게 되는 건가. 뭐든 열심히 사는 건 좋지만, 이런 방법이 도덕적으로 욕을 먹는다고 해도 기어코 해야만 한다고 작정했다면, 해야지 뭐. 어쨌든, 로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테오에게 접근하고, 테오는 그의 아내에게 모른 척하면서 로라와의 관계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테오의 아내, 아스트리드는 이들의 관계를 알까, 모를까?


하도 책을 안 읽었더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좀 읽어야겠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끝이 어찌나 무거운지, 진짜 한 페이지 읽는 일조차 어렵더라. 좀 가벼운 이야기를 만나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비밀을 갖고 있다기에, 로라의 허무맹랑한(?) 자신감과 계획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읽어보긴 했지만. 가독성은 좋다.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간다. 아내를 끔찍하게 여기는 남편처럼 구는 테오를 볼 때면 가끔 어이가 없으면서, 테오와 로라의 긴장되는 장면에서는 <탐정들의 영업비밀> 보는 기분으로, 상류사회로 편입하려고 발버둥 치는 로라의 욕망을 걱정하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의심스러워서 언제쯤 그 비밀이 드러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진실이 있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다. 남의 비밀을 그렇게도 궁금하고 파헤쳐서 떠벌리고 싶어 하면서 말이다.


결말이 좀 의외이긴 했다. 어떤 수단으로 부를 축적하며 가문을 완성하고, 각자의 이익에 맞게 살아가는 게 인간의 민낯이겠지만, 이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끝이 보이기에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죄책감 없이 뻔뻔했던 테오도, 남편을 너무 믿었던 아스트리드도, 남의 남편을 빼앗아 나의 행복으로 만들고 싶었던 로라도, 인간이기를 포기하면서 살아갈 때 벌 받을 거라는 걸 알았으려나. 무엇보다 위험의 시작은 남의 것을 탐냈던 로라였으니, 내 것이 아니면 욕심내지 말고, 착하게 살자. 괜히 욕심부리다가 위험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훔친여자 #알레샤디케마 #북플라자 #추리소설 #소설 #외국소설 #스릴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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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곱명의 아버지들 -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독하게 끔찍한
안드레브 발덴 지음, 이민희 옮김 / 마인드큐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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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은 성장의 시간 내내 긍정의 사고를 부른다. 언젠가 진짜 아빠가, 지금 가짜 아빠들의 나쁜 기억을 소멸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은 삶의 희망이 된다. 그게 전부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어른이 된 나의 눈에 이 이야기는 순수하거나 즐겁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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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 - 소비 경쟁 시대의 K-웨딩 르포르타주
이소연 지음 / 돌고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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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해 꼭 한마디는 하고 싶어서 100자 평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글자 수가 잘렸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 꽉꽉 채워서 리뷰로 작성하기에는 내 생각이 다 정리되지도 않아서 어렵더라. 그런데도 한마디는 하고 싶은 마음으로, 굳이 이야기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예비부부가 결혼식을 준비하기 전에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해서 말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무슨 이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배출의 심각성과 결혼식을 이야기하기에 뭔가 싶었는데, 내가 이렇게 무지했다. 결혼식을 완성하기 위해 그 장소에서 소비되는 모든 것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있었다. 화려한 꽃장식부터 신부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드레스까지. 30분 정도의 결혼식을 이뤄내는데 지구가 겪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면서 연신 감탄한다. 너무 아름답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조명, 버진로드를 채운 꽃, 이 모든 과정을 열심히 보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하객들, 화려한 조명 아래 눈부시게 아름다운 주인공 부부. 그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겪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모든 순간을 돈 계산하면서 지내 온 날들이 스쳐 간다. 그 과정 틈틈이 떠오르는 의문점은 누구를 위한 결혼식인가 하는 거였다. 휘몰아치듯 바쁘게 준비하면서 이런 의문도 그냥 스쳐 지나가곤 하겠지만, 결혼식이 다 끝나도 종종 떠오를 거다. 이렇게까지 결혼식을 해야 하는가.


먼저 고백하자면, 내가 경험한 결혼식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다. 최근 10년 가까이 결혼식에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사이에는 장례식에 간 일이 더 많았다. 그러니 요즘 결혼식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예비 신부들 사이에서 어떤 결혼식이 이슈인지, 무엇을 준비하는 게 추세인지 정확히 모른다. 한 가지, 유명인들이 결혼식을 생략한 결혼을 결정하는 걸 보면서 이런 방식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더 짙어졌다는 건 분명하다. 어쨌든 결혼식을 하느냐 안 하느냐,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기에 뭐라고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본인이 결정하고 준비하는 결혼식에서 생각해야 할 거,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은가 하는 거다. 아끼는 사람들 초대해서 조촐한 파티처럼 하고 싶은지, 주인공 둘이서 기념으로 남길만한 이벤트로 할 것인지, 어른들의 손님까지 완벽하게 접대하고 싶은지. 근데, 이상하게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동안 봐온 많은 결혼식이, 그 결혼식을 볼 때마다 만약 내가 이런 결혼식을 한다면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계속했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책 한 권을 다 옮겨놓고 싶을 정도로 저자가 하는 모든 말이 충격적이었다. 결혼 준비가 이렇게나 어려웠던 건가 싶었다. 어렵다는 말이 맞나. 고통스럽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결혼 준비는 힘들었다. 1년 전에 예약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다는 예식장, 내가 얼마를 내는지도 모르게 결혼박람회에서 급하게 계약금을 내게 되는 스드메 예약, 금액에 따라 다른 옵션을 수시로 추가하게 되는 선택들, 예약 금액을 더 내더라도 한 벌이라도 더 입어보고 싶은 웨딩드레스, 얼마짜리 식사를 대접하면 욕먹지 않을까 싶은 청첩장 모임, 어떻게 해야 남들 정도의 결혼식을 하게 될까 걱정한다. 결혼 당사자들만 걱정이 많은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은 또 어떻고. 신부가 서운해하지 않을 브라이덜 샤워는 어느 정도로 해줘야 하나,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섭섭하다고 하지 않을까, 신랑 신부보다 많이 돋보이지 않으면서 나름 신경 쓰고 왔다고 보여야 하는 하객룩을 고민해야 한다. 가방순이 역할을 잘 해야 하고, 부케순이 하면서 또 챙겨야 할 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결혼식에 다녀와서 많은 말이 나오는 것 역시 새겨들어야 한다. 얼마짜리 식사였는지, 맛은 어땠는지, 그 결혼식장은 가격이 얼마인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그런 장소에서 결혼할 수 있는지 등등. 오직 축하만 있으면 좋을 자리에서 우리는 빠른 눈으로 스캔하며 여러 가지를 계산한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신부가 드레스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는지,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기 위해 어떤 시술까지 받고 있었는지. 이거,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인데 무슨 전시회에 올려진 작품처럼 보여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살면서 이런 단계는 또 얼마나 더 남아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결혼식이 끝나면 또 제2의 결혼 준비 같은 과정이 남아있다는 거다. 산후조리원, 돌잔치 등, 이제 육아와 연관된 비교 전쟁이 남아있었다. 처음 정보 공유로 시작된 관심은 넘쳐나는 정보로 다 흡수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고, 이 과정에서 엮어진 관계는 가까워지고, 비교는 더 쉬워진다. 예쁘게 잘 꾸며진 장면들을 연출하며 만족하고, 남들보다 내가, 내 아이가 더 잘나 보였으면 하는 욕심이 더해지면서 이 경쟁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소비 경쟁은 심화한다고 한다. 틀린 말 같지 않아서 무섭다.


세월이 야속한 건지 내가 늙은 건지, 이 책 읽으면서 어지간히 충격받은 게 아니다. 특히 청첩장 모임에서 눈치싸움 하듯 적절한 금액을 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고, 부케순이의 역할이 부케를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더 놀라웠다. 그 부케를 받고 심혈을 기울여 꽃을 살려내고, 그걸 굿즈로 만들어 되돌려줘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너무 숨이 막혔다. 언니와 동생의 결혼 준비를 같이했고, 여러 친구의 결혼도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모든 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남들이 어떻게 볼지 전전긍긍 고민하면서 선택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수시로 비교하면서 선택하게 되는 과정이 씁쓸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계속했다. 다 그렇게 결혼하고 살아가겠거니 싶었다. 뭐 그렇게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순간이 어디 결혼뿐이겠는가. 사는 동안 매 순간이 비교의 날들인 것을.


가볍게 읽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한숨이 나오면서 동시에 숨이 막혔다. 현대사회의 결혼식이 이렇게 계속되는 게 맞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무엇을 우선순위로 고민하면서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는지 계속 묻게 된다. 낭만적인 결혼식에 이런 방식이 계속되어도 괜찮다고 말하거나 이런 정신적 물리적 지출이 웃긴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정답은 없으니까. 그러면서도 이러한 소비가 맞는 건지,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나만의무언가를 지향하는 게 인간의 바람이겠지만, 남들과 다른 특별한 나의 날로 만들고 싶으면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걸 연출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이야기로 웨딩 시장의 구조와 민낯을 마주하면서, 결혼에 머무르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포괄적인 이야기에 생각할 게 많은 책으로 남았다.



#수상할만큼완벽한결혼식 #이소연 #돌고래출판사 #사회문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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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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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슴속에는 포악한 어둠 한 점이 산다. 그 어둠은 유독 가깝고 연약한 존재를 향해 인륜이라는 올가미로 그들을 옥죄고 만다.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은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다. 천륜이라는 굴레를 짊어진 채 각자의 지옥을 버텨내고 있을 이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을 읽을 때면, 보통 소설 한 편 다 읽은 후 마지막에 만나는 게 작가의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로 읽어가고, 마지막에 만나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에서 다 확인하지 못한 어떤 부분의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이 소설은 달랐다.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만나는 작가의 말에서, 이어서 만난 소설의 첫 문장에서, 이미 이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비슷하게 있기 마련인, 화려함 뒤의 초라한 그림자 같은 곳. 용궁장이 그랬다. 신도시 빌딩 숲의 깔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도심 한가운데 용궁장이 있다. 설마 이런 곳이 아직도 있을까 싶었겠지만, 우리 사는 모든 장면에 있을 법한 구도다. 그 용궁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투숙객 모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망한 투숙객 4명의 합동 장례식이 열렸지만, 그 어디에서도 곡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이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떠나간 이를 애도하는 마음이 없던가. 아니면, 그 슬픔을 속으로 꾸역꾸역 삼켜 넘기고 있는 것인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해졌다. (125페이지, 설계자의 고백)


누군가의 죽음이 남은 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사연이 궁금할 수밖에. 떠난 이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남겨진 이들에게 행복을 주었나.


다섯 명의 화자가 이 소설을 이끌어간다. 칠십여 년의 세월을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온 그녀가 부모의 죽음을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가족의 의미를 바랐을 뿐인데, ‘서로가 함께하는 세월을 쌓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 가족은 폭력과 갈취, 부모의 부양을 당연하게만 여기는가(피해자의 고백). 나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인생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에게도 같을 거로 믿었다. 아니, 나만 생각했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살아왔던 모든 시간만큼, 그렇게 받아온 돈으로 살아온 만큼 다른 가족이 겪은 핍박과 고통은 생각한 적이 없다. 그동안 누리며 살아온 모든 것이 당연했으니까(가해자의 고백). 용궁장 투숙객 모두와 연결고리가 있는 그녀는 영원히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조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웃는다. 세상 구원을 바라는 이 약자들이, 피해자들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갈망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신을 부르면서 기도하는 그 마음, 하지만 현실에서는 신에게 용서받지 못할 방식으로 이뤄내는 간절함을(설계자의 고백). 가족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비뚤어진 방향으로 인생을 만들어가다가 결국 자신마저 무너뜨리는 삶. 자신을 구원해줄 것을 찾다가 엉망이 된 인생인데, 또다시 구원자를 찾아 나선다. 결국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인생은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생존자의 고백).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맞춰 살았다. 남들처럼 사는 게 부럽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온 세월을 형제들이 이해해줄 거로 여겼다. 함께 짊어져야 할 고통을 오롯이 혼자 받아내며 살아온 시간이 끝나자, 남은 건 복수의 다짐뿐이다(조력자의 고백).


가족인데, 부모인데, 마음껏 미워하기도 어렵게 만드는 저 이기적인 관계가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서로에게 어느 정도 비슷한 마음의 크기가 오고 가야 맞는 거 아닐까 싶은데, 이 이기적인 관계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때가 많다. 그걸 또 당연하게 여기는 일도 흔하다. 인륜이니 천륜이니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만 유지되는 게 가족관계라면, 당장 끊어낸다고 해도 잘못이 아니라는 걸 떠올리는 게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소설 속 피해자 같은 사람들이 생겨난다. 지독하게 힘들고 이 관계를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질질 끌다가 인생의 끝에 다다라서야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늦는다. 아니,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잘못된 방식을 버리지 못해서, 주변의 간섭과 강요로 이게 맞는다고 여기며 살아온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낸 믿음 때문에. 이게 한국의 문화인지, 그 가정이 가져온 오래된 방식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방식의 관계는, 틀린 거다.


다섯 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고백을 듣고 있자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해서 미칠 것 같다가, 답답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시원하게 사이다 한잔 들이켜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그들의 고백은 어느 한 사람의 지극의 개인적인 경험도 아니었고, 그 결과까지 오는 게 단순하지도 않았다. 이런 불행이 당연한 나의 운명처럼 여기며 살다가, 버티고 견디다가, 이건 아닌데 하는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복수심과 분노에 휩싸인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감정에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봐야 했다. 그렇게 각자의 간절함이 만든 결말들을 마주했을 때, 나 역시 독자로 그 결말을 다 읽어냈을 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거 뭔가 크게 터질 것 같은데 하는 순간을 마주하면서 느낀 답답함이 그때야 사라졌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은 집어치워라. 인륜이니 천륜이니 하는 말도 다시 꺼내지 마라. 이럴 때 쓰는 말이 오죽했으면이다.


사과 같은 소리 하네. 쓰레기 같은 놈……. 사정? 사정은 무슨, 변명이겠지! 장례식장에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뭔지 알아? 잘 죽었네, 잘 갔네 하는 산 자를 위한 위로였어. 왠지 알아? 그만큼 당한 거야. 죽이고 싶을 만큼 말이야!” (79페이지, 가해자의 고백)


각자의 이야기 끝에서 들려오는 문장에 속이 편안해진다. 신이 들어주지 못한 기도의 응답이 다른 방식으로 들려왔다. 지팡이로 바닥을 두들기며 자기 길을 가는, 장례식장에서 자꾸만 튀어나오는 웃음에, 한때 자살하려던 이의 웃음 섞인 인사에,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를 염색하겠다는 내일의 계획에, 내 마음도 흐뭇해졌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목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의 과정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친 많은 상황과 그 상황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기에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에게 소설이 아니다. 누구네 집 현관문 안쪽의 이야기 그 자체였다.



#용궁장의고백 #조승리 #한국문학 #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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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여자들 -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일과 삶, 2026년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도서
정다정 지음 / 산지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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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밥 한 끼 차려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몇백인 분의 급식 준비를 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급식 노동자의 고됨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보지만, 나의 상상 그 이상일 거다. 열심히 사는 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지 이미 알고 있기에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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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2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2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