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고전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한 가지. 너무 유명해서, 여러 버전으로 접해서 내가 이미 그 작품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 착각 속에는 고전을 많이 읽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다.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고전 거의 안 읽었다. 이상하게 상 받은 작품들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고전이 재미가 없더라는 거다. 물론 모든 고전이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니, 그저 그 작품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거나 아니거나, 뭐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렇게 고전을 두고 몇 가지 고민을 하던 차에 새롭게 만나는 고전의 버전이 일러스트였다. 그리하여 이번에 읽게 된 제인제인 에어를 현대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제인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고, 이모의 집에서 길러진다. 평소 왕래가 없던 이모 집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객식구 한 명이 늘었지만, 아무도 관심 두는 이가 없다. 이모의 집은 분위기가 살벌하다. 폭력적이고 매일 싸운다. 제인은 이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만 지내자고 혼자 마음먹는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야 했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그렇게 제인은 부모님이 바다에 나갔던 것처럼 뱃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을 때 제인은 뉴욕으로 떠난다. 아마 그 집 식구들 누구도 제인이 떠나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티격태격에 바쁜 나머지 제인이 그 집에서 살았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제인은 뉴욕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작은 방을 구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일자리를 또 구해야 했는데, 용모단정한 이를 뽑는다고 해서 간 일자리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라는 대로 갔더니 저택이었고, 집주인 이름은 로체스터. ㅋㅋㅋ 제인이 할 일은 로체스터의 딸 아델을 돌보는 유모였던 것. 유모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는 말에 생각했다. , 고된 직업이겠군. 진상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기 힘들었으니, 가장 오래 버틴 유모가 일주일이겠지. 바로 뒤돌아서서 나갈 줄 알았던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 사실 제인은 어릴 적 혼자 지내며 외로웠던 시절을 아델에게서 다시 본 거였다. 엄마가 없이 아빠와 살지만, 아빠는 바빠서 아델을 볼 시간도 없는 게 현실. 제인이 지금 아델을 보는 게 동정은 아니겠지만, 안쓰러운 어린 시절을 지내는 건 맞지. 어쨌든 제인은 아델과 친해지고, 점점 아델을 보러 가는 일이 즐겁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아델의 아빠, 로체스터!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델의 상황을 아는 제인은 이때다 싶어 로체스터에게 아델의 상황을 말한다. 아이가 유치원에서도 혼자 지낸다고, 친구가 없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고, 학습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로체스터는 과외 선생을 들이라고 했던가? , 뭐든 돈으로 해결하면 되는 거였군. 하지만 우리의 제인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지. 로체스터에게 유치원의 상담에 참여하라고, 아델을 좀 더 잘 돌보라는 조언을 건넨다. 그러다가 점점, 제인은 심장이 없는 듯 살아가는 로체스터에게 반하고, 로체스터 역시 제인에게 마음이 가는데...


원작에서도 아이가 있었던가? 그게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반전같이 존재했던 비밀의 방은 이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난다, 누구라도 그 방에 접근하려고 하는 순간 저택에서 쫓겨난다고. 제인은 이 약속을 잘 지키지만, 설마 아델의 아빠에게 마음에 뺏길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저택은 어디든 수상한 기운이 풍기고, 로체스터를 바라보는 마음을 자꾸만 심쿵하다. 이상하게 원작보다 뭔가 더 스릴 있고 더 로맨틱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밤에 계단을 오르던 그 남자는 누구일지, 로체스터가 강렬하게 제인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뭔지. , 이거 정말 사랑인가요? ?


줄거리는 거의 비슷하고, 배경이 현대로 바뀐 것만 좀 다른 듯하다. 제인이 당당하게 혼자서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마지막까지 로체스터와 관계가 더 진전되는지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 죽을뻔한 위기를 같이 탈출했으니, 사랑하는 마음에 전우애 비슷한 것까지 더해지지 않았을까? 중간에서 아델이 또 중재자 역할도 잘할 것 같고. 이 정도면 훈훈한 마무리 되시겠다. 읽으면서도 계속 쏠리는 이 소설의 장르는 역시 고전이라기보다는 로맨스 소설 아닌감? 근데 왜 열린 결말처럼 보여줬는지 모르겠군. 둘이 다시 만나서 잘 먹고 잘살았다, 이것까지 확인사살 해주면 안 되는 법칙이라고 있는 건지 뭔지. 문장 말고 그림이 보여 주는 장면들이 확실히 더 설레긴 하다. 막 뽀뽀하는 이런 장면도 넣어주고 말이야.


몇 년 전 언젠가,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키다리 아저씨를 읽은 적이 있다. 이미 내용도 알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눈을 호강하면서 봤던 작품인데, 이거 느낌이 다르다. 문장으로 장면을 그려가면서 읽는 그 느낌이 더 말캉하다고 해야 하나. 주디가 저비스 씨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밀당 잘하라고 중얼거렸다. 일상을 너무 오픈하는 거 아니냐고 주디를 구박하면서 읽었다니까. 나중에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혼자 안절부절.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이미 눈치챘는데, 주디만 몰라. 저비스 씨가 키다리 아저씨라니까!!! 뒹굴뒹굴하면서 읽다가 발차기를 여러 번, 혼자 얼마나 흥분을 했던지. 읽으면서 주디랑 저비스 씨 때문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주디가 너무 순진하게 보여서, 저비스 씨가 빨리 정체를 밝히지 않아서 말이야. 처음 뭣 모르고 펼쳤을 땐 동화를 읽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빠져들면서 이 소설의 장르를 확인했다지. 로맨스 소설이지 뭐야. 홍홍. 아무래도 내 고전(?) 취향은 이런 건가 보다. 읽고 보니 말랑말랑해지는 거? ^^ , 주인공에게 너무 이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읽다 보면 그게 잘 안 됨. 이제 막 변신펼쳤는데, 이 작품은 또 어떠려나. 기대 반 설렘 반. 뭔가 묵직한 여운까지 한꺼번에 와닿았으면 좋겠네.


두 작품 모두 어린 여자아이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도, 당당한 삶 속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세 역시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험난한 성장 과정이었어도, 고아 소녀였어도,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면서 자기 삶을 완성해가고 있었다는 것. 제인 에어의 원작이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여성의 삶이 남자의 보호 아래 있어야 안정적이라는 것과 그래서 결혼까지 닿아야 완성된 인생이라고 믿었을 때라고 하니, 현대판으로 각색된 제인에서는 로체스터의 보호나 선택이 아닌 제인 자신의 커리어와 당당함으로 인생을 완성해간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외면당한 자기 화풍이 인정받고 전시회까지 하는 것으로 그녀의 자리가 굳어진다. 그리고 사랑도 더 탄탄하게 이뤄가리라고 믿는다. 그게 인생이지.


혹시라도 나처럼, 고전 읽어보고 싶은데 선뜻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비슷한 분위기로 들려오는 여러 버전을 접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네그려. 활자로 빽빽한 이야기가 부담스럽다면, 일러스트나 동화 같은 이야기로 먼저 만나도 충분히 즐겁다. 뭐든, 읽는 게 먼저 아니겠음둥? 읽고 보니 재밌다. 그리고 더 재밌어질 이야기들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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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06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 키스씬은 캔디가 생각난다는.... 분위기 캔디와 테리우스의 키스씬과 분위기 너무 비슷합니다. 그러고보면 제인에어도 결국 캔디장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꺄아악~ 캔디와 테리우스.
이야기의 분위기가 약간 비슷하죠? 캔디형 주인공. ^^

다락방 2022-01-06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키스씬 때문에 보고싶네요 ㅋㅋㅋㅋㅋ

구단씨 2022-01-11 15:18   좋아요 0 | URL
까르르르르~
그림 스타일이 좀 투박(?)한 느낌이 있는데, 로맨스드라마 보는 느낌이 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