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름답게 이별하기 - 네 편의 소설로 읽는 여성심리학
김영신 지음 / 어나더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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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엄마를 떠나고 고향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관계 매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는 엄마와 나를 잇는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다. 장차 맞이할 생물학적 이별을 의연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12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와 불편한 관계로 지낸 적이 있다. 아마 세상의 모든 딸이 비슷한 경험 한 번씩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고맙고 든든한 지지자이지만, 한번 어긋나면 그 감정의 골이 누구보다 더 깊어지는 관계였다. 이해하면서도 밉고, 미워하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대상이 바로 엄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그 관계의 모양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바탕에는 비슷한 마음이 자리한다고 믿는다. 많은 엄마와 딸이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걸 저자는 진즉에 알았나 보다. 저자가 심리상담사로 일하면서 만난 내담자의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소설 형식으로 네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묻는다. 당신은 어떤 딸이냐고.


네 편의 이야기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저항형, 순응형, 경쟁형, 동화형 네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네 명이 딸이 들려주는 네 가지 유형의 모녀 관계는 누군가의 고민이면서 우리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엄마와의 갈등이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딸은 오랜 세월 엄마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알면서도 그 관계를 바꾸거나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으며 알게 모르게 가슴에 박힌 상처 치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저항형. 엄마와 애인이 만난 자리 이후로 관계가 악화하였다. 애인은 헤어지자고 했고,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만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딸은 엄마와의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부터 독립을 꿈꿨던 딸. 엄마를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게 온전한 바람이었을까. 엄마를 떠나와 외로움과 불안감이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순응형. 좋은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었고, 그 능력은 그녀의 업무량을 증가시켰다.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만 하는 게 익숙했던 걸까. 그녀에게 쌓인 피로감과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경쟁형. 서로 할퀴듯 함부로 대하면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모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엄마는 없었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주변 사람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엄마. 가장 가까울 것 같은 관계가 가장 멀고 다툼의 대상이 된다. 갈등은 극에 달하고 독립을 얘기하지만, 결국에는 엄마와의 화해로 자기의 문제를 바로 본다.

동화형. 자기가 모두를 돌봐야 한다고 여기는 주인공은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선을 넘어서면서까지 주변을 챙긴다.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주변에 말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문제를 안으로만 감싸 안다가 둑이 터지고야 마는 것처럼 큰 문제가 된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세상에 보이는 모녀의 모습은 보통 한 가지로 다 비슷하다고 여겼는데, 내밀한 속내를 들어보면 그 관계가 다 달랐다.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추려보면 몇 가지로 정의되는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네 가지 유형은 우리가 겪는 모녀 관계 갈등의 대표적인 모습이었고, 그 유형 곳곳에 내 모습도 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내가 사는 모습의 중심에 엄마가 있더라. 엄마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지 하면서 나의 바람을 일부러 잊고 지낸 적도 있다. 가장 다정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삶을 부러워하며 질투하기도 했다. 무슨 관계가 이런가 싶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융이 분석하고 저자가 설명해준 이 유형들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던 거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오해할 수도 있다. 생물학적 이별을 앞에 둔 마음 자세처럼 들리지만, 그에 앞서 정신적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상담서에 가깝다. 언젠가 우리가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겠지만, 그 전에 우리가 완성해야 할 것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동안 겪었을지도 모를 혼란을 마주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관계의 거리감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이 관계를 다시 보는 시간은 엄마뿐만 아니라 내가 겪는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가 있으면 그 시작점을 찾아봐야 하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 저자의 말도 비슷하다.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내 옆에서 실재하는 엄마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정신적인 이별을 준비하라고.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다. 그리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갇혀 있게 된다.


세상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이때 엄마의 반응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수정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발전해간다. 추후 이렇게 강화된 특징은 인간관계에서 기질처럼 발휘된다. (105페이지)


엄마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 말 그대로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너무 친밀한 관계, 엄마니까 무조건 해줘야 하는 일들, 그러다가 싸우고 원망하며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상황의 반복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완벽하게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네 딸의 사례로 살펴보면 나에게도 이들과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겪는, 자리한 줄도 모르고 가지고 있던, 절대화된 엄마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딸의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딸의 모성 콤플렉스에 기반한 심리 특성은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개인의 유형 변화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 문제는 모녀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거다.


그 답은 홀로서기였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엄마와 울면 바로 달려와 해결해주었던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외로움을 이기고 혼자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걷는 것. 그러니 엄마와 정신적으로 이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함께하되 상처 주지 않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기대지 않는,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존재로 머물러야 한다. 혹시나 어떤 매듭으로 얽혀 괴로워하고 있다면, 감당하지 못해 꾹꾹 누르고만 있었다면, 엄마는 물론이고 많은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한 번쯤 만나도 좋겠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한구석을 짚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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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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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사이에 질투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엄마가 딸을 질투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엄마란 원래 자식의 아름다움이나 지혜로움 같은, 내 자식을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에 자부심이 생기기 마련 아닌가? 어쩌면 표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식을 향한 그 묘한 질투심도 드러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뭘까? 아멜리 노통브가 모녀 사이의 정의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소설로 풀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감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모녀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여자와 여자 사이의 질투였다고 말하면 오히려 더 쉽게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대했던 게 아닐까 싶은. 그랬기에 딸은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에게 받는 사랑 그대로를 바랐다. 평범하게.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자기 외모가 얼마나 잘났는지 아는 그녀는 그 아름다움을 한껏 이용한다. 주변 여자들의 질투가 어린 시선을 즐기고, 그녀 주변을 서성이는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차지하지 못하게 했고, 그 순간을 영원히 누리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마리에게 근방의 잘생기고 착한 젊은 약사 올리비에가 반한다. 그는 누구라도 원하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마리는 올리비에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여자들의 질투 유발을 목적으로 올리비에와 사귄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까. 마리는 올리비에의 아이를 가지면서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딸 디안을 낳는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젊은 남녀가 사귀면서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부모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책임을 지려고 선택한 결혼 이후에 마리가 어떤 엄마가 되었느냐 하는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웠던 아이 디안. 디안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그때마다 마리는 괴롭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찬란한 인생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의 주인공은 그녀의 딸 디안이 되었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예상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시작과 육아는 그녀에게 딸을 질투하는 엄마로 만든다. 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육아에 관심도 없는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사랑을 자연스러운 거니까. 마음이 가는 곳으로 사랑도 향하니까 말이다.


그럼 마리의 딸 디안은 어땠을까. 엄마가 자기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읽는 나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 질투를 고스란히 받고 자란 딸은 어떻겠는가. 어느 날 밤 딱 한 번 보여 준 엄마의 포옹이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디안은 알게 되었다. 엄마가 자기에게 주지 않는 사랑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따스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자라온 시간에 절망했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디안을 괴롭힐 그 감정을 잊으려고 공부에 집중했다. 어렸을 적 어떤 날의 기억으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디안은 심장내과 의사가 되고,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교수 올리비아를 따르고 존경하며 그녀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올리비아가 그녀의 딸 마리엘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오래전의 자기 엄마를 보는 듯한 감정에, 디안은 마리엘에 더 시선을 두게 된다.


딸을 질투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를 피해 달아난 곳에서 엄마와 같은 사람을 발견한 순간 디안의 마음은 순간 과거로 속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작가가 올리비아에게서 마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하듯 묘사한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반전을 보여 주는 건가? 엄마에게서 엿본 그 차가운 감정을 겨우 잊고 살아가는 디안에게 어떻게 올리비아에게서 마리를 보여 줄 수 있느냔 말이지. 결국, 세상 모든 여자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잠깐 생각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의 관계가 우리가 살면서 만드는 관계와 같다. 모녀, 스승과 제자, 친구, 자매 같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관계를 쌓으면서 우리는 사랑과 우정도 나누지만, 질투와 배신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웃기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왜 한쪽으로만 향할 수는 없는 걸까. 좋은 관계라면 좋은 것만 나누고, 나쁜 관계라면 그냥 나쁜 것만 내주면서 관계 정리하고 지내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듯한 이 묘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단할까 짐작할 만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소설 내용에 언급되는데,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가 친구에게 바친 시에서 따온 문장이다. ‘자네 심장을 치게, 천재성이 거기 있으니. 연민, 고통, 사랑이 있는 곳도 거기라네.’ 주인공 디안이 이 관계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투나 경멸 같은 감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인용한 구절이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어떤 감정들이 나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해도, 심지어 그게 엄마에게서 나오는 외면의 시선이라고 해도, 내 심장은 나의 중심에서 계속 뛰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는 말로 들린다. 그 심장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연민과 고통도 함께 담겨 있으니 다 감당하고 이겨내리라는 주문처럼 말이다. 디안이 심장내과의 길로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심장이 하는 말, 좋든 싫든 다 듣고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이 심장의 말을 지배하는 것도 나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모든 생명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고,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견뎌 내고, 계속 숨을 쉬려고 애쓰며, 그리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바로 사랑을 알기 위해서였다. (34페이지)


분량은 짧은데, 그 짧은 흐름이 너무 빠르고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결말이다. 그 결말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디안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이들이 잃어버린 감정 하나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인간의 감정이란,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는 딸의 소외된 삶이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시작될 또 다른 인생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괜찮을까? 서로가 줄 수 있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 희망을 동시에 보여 주는 마지막 장면 역시 강렬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건조한 분위기와 잔인한 감정이 사랑을 만나니 이런 이야기도 펼쳐진다. 그래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너의심장을쳐라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소설 #문학 #모녀사이 #애증 #질투

##책리뷰 #책추천 #심장의말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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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2 1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잘 쓰셨네요.
으음... 저도 딸이 있는 입장에서 느낀 바를 말한다면... 딸의 젊음과 나의 나이 들음을 비교할 때
딸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질투한다기보다 딸에 비해 늙어 버린 (젊음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비애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그걸 질투로 착각할 수 있겠다 싶은데요, (흔히 자기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죠.) 막상 딸애가 큰 불행을 겪으면 무지 힘들어할 게 어머니, 라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이니 예외적인 사람이 있을 순 있겠어요.^^

구단씨 2022-09-09 22:02   좋아요 2 | URL
그 비슷한 마음을 저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아이가 없지만, 엄마는 항상 그런 얘길 하셨어요.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이걸 하고, 5년만 젊었으면 저걸 하고... 무언가 간절한 것들이 늙음이라는 것 때문에 포기하게 하는 마음이요.
길을 가다가 보는, 카페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전혀 타인인 저도 부러움 같은 거 느끼거든요...
이 소설 속 엄마는 약간, 음,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된, 원하지 않는 결혼과 임신으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된 생활을 시작한 여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 위주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mini74 2022-10-07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딸과 엄마의 이야기 ~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1 | URL
mini74님도 읽으셨군요. ^^
그 모녀 관계의 묘한 심리가 매력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연휴가 다 끝났네요. 비도 추적추적...

얄라알라 2022-10-1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게 벌써 작년이었나봐요
구단씨님의 리뷰로 기억 소환해보았습니다.

저 역시, 노통브 책이군! 하며 읽었는데..

멋진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10-10 22:11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1년쯤 전에 출간되었어요.
짧은 글인데, 머리가 복잡해지고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뭘까... 하면서요. ^^
감사합니다.
 
거짓말들
미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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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짓말은 나에게 배신감을 주지만, 어떤 거짓말은 감동을 준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 거짓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안정을 준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불필요한 걱정을 누르는 역할도 한다. 이 한 권에 책에 담긴 많은 거짓말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는지, 그 거짓말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했던 오늘의 많은 거짓말도 어떤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런 말들, ‘아무것도 아니야, 아프지 않아, 금방 끝나, , 다 됐지?’ 자기 차례가 오기도 전에 겁을 먹고 발걸음을 떼지 않고 울기부터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오늘도 이 거짓말을 참 많이도 했다.



각각 따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데, 다 읽고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첫 작품 A의 거짓말과 마지막 작품 나만 아는 거짓말의 연결고리는, 중간에 있던 7편의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어린 여자아이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사촌 오빠 둘이 방에 들어와서 성폭행했다는 것.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구체적인 행위를 표현하며 말하는 성폭행을 알았을까? 친구들은 A가 거짓말을 한다면서 웃어넘겼고, A 역시 그냥 지어낸 말이라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아무 일이 아니야? 시간은 흐르고 A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고 지냈다고 여겼는데 한 번씩 기억을 소환해 그날의 고통과 충격을 재현한다. 우연히 만난 어린 시절 친구 때문에 이제 A는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말한다. 어떤 거짓말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상흔으로 남는다.


사기꾼에게 당할 뻔하다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고양이는 건들지 마라를 읽다가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맞다. 많은 말보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선은 거짓말로 가려진 진실을 보게 한다. 돈을 좇고 욕심을 부렸다면 당하고야 말았을 일을, 차분하게 지켜보면서 고민했더니 위험한 순간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거짓말 때문에 소박한(?) 쟁취에 한껏 신났겠지. 왠지 통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보는 애보는 애역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역술인처럼 보이지만 역술인과는 다른 눈으로 많은 것을 보는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렇다고 그 마음 읽으면서 사기를 치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더 슬프지 않게 하는 일을 거침없이 해낸다. 거짓말 같으면서도 거짓말 같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호하다. 그래도 괜찮다. 사기를 치고 이익을 취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기라면 얼마든지 당해줄 사람이 줄을 설지도 모른다는 게 핵심이다. 어떤 거짓말은 거짓을 말하면서도 거짓이 아닌 게 된다.


언제까지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믿었나? 이빨 자국의 어린 주인공도 엄마가 놔주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믿었다. 정말 산타클로스가 그 밤에 여러 곳을 도느라 바빴구나 싶었다. 친구들의 폭로로 산타클로스가 부모님이라는 걸 알았는데, 사실 아이가 슬픈 건 산타클로스가 거짓이어서가 아니었다.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서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남겨놓은 이빨 자국이 이 아이를 일찍 철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등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고작(?) 초코파이 몇 개였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해서 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초코파이 몇 개는 고작이 아니라,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한입 베어 물고 느꼈던 그 달콤함을 가끔 떠올리고 싶을 정도로... 어쩌다 그 밤에는 성인판 거짓말이 남긴 달곰씁쓸한 하룻밤에 관한 이야기다. 부부가 시들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큰 노력을 하지만, 노력 그 후의 쓰나미처럼 다가온 쓸쓸함은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다. 지금 이대로 계속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변하면 변한 그대로, 감정의 온도가 달라졌으면 달라진 그대로, 우리는 이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떤 거짓말은 그 거짓말 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


첫 번째와 마지막 이야기 사이에서 분노와 감동을 오갔던 이야기가 도둑맞은 얼굴이다. 주인공의 오늘이 많은 현대인의 삶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아서 계속 읽기가 힘들었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거짓말 때문에 웃음이 났다. 믿고 따르면서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의 삶을 버리면서까지 달려왔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의 얼굴마저 잃어버린 채로 살아왔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는 늦은 것 같았는데, 그 회복의 길을 열어준 거짓말 하나가 또 한 번 삶을 바꿔놓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게 달리던 이유가 사라진 것 같고, 손에 쥔 무언가가 스르륵 빠져나간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이제부터 또다시 달라질 인생을 그리는 재미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어떤 거짓말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것들을 찾게 한다.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절대 좋지 않다. 불신과 불쾌함이 동시에 밀려오곤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도 어떤 순간에 사용하는 거짓말은 부정의 의미와 거리가 멀기도 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거짓말을 사용할 때 어떤 마음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상대방에게 이 거짓말을 할 때 어떤 의도가 있었느냐 하는 것 말이다. 해가 되는 게 아니라 득이 되어 전달하는 말로 쓰고 싶은 거짓말.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에게 닥친 사연은 다양하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이기도 하다. 슬픔과 분노가 내 안에 쌓여 있기도 하고, 상대방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거짓말은 위로와 치유가 되어 마음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선뜻 생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다가 주저앉는 일에 우리가 이 거짓말의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생생한 이야기에 다양한 에피소드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녹아든 살피는 마음이 이렇게 들려온다. 말 그대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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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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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두렵게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너무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이게 뭔가 싶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이야기가 판타지의 세계에서 펼쳐지면서 독자의 마음을 빨아들이고 있는 걸까. 더우면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때의 느낌과 닮았다. 한낮의 더위에 등에 땀이 흐르는데도, 저녁의 입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해지는 기분.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알 수 없지만 알 것 같고, 알 것 같아서 더 들여보게 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나는 조예은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더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였다. 고기와 석류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옥주는 쓰레기를 뒤지던 이상한 그림자를 발견한다. 분명 손으로 만져지는 존재였고, 그 아이는 무엇이든 먹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아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던 옥주의 마음은 외로움이었을까? 집안으로 들여 먹을 것을 주고 돌봤다. 그리고 그 아이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옥주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혼자 지내면서 외롭게 죽기 싫었던 옥주의 상황을 알고 찾아온 것처럼, 아이의 등장은 묘했지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하게 고양이와 인간의 동거를 다룬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역시 우리가 혼자 남았을 때의 외로움을 떠올리게 했다. 사라진 고양이를 찾기 위해 전단을 돌리고, 진심으로 그리워하던 순간에 사라진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누구나 자기의 원래 자리가 있을 거고, 때로는 떠나고 돌아오기도 할 테지.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보내주기도 하는 게 관계의 한 모습이라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래서 SF를 읽는 건가 싶게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독자는 더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만난다. 릴리의 손은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지도 모를 미래 세계를 보여주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순간을 연결한다. 누구의 손인지 모를 인공 손이 주인공의 옆에 머문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장면이 스쳐 가면서 어떤 목소리는 주인공을 부르기도 한다. 혼자여서 외로웠는데, 기억도 못 하는 시간의 주인공이 혼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는 서로가 온 곳이 달라도 친해지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대가 누구였더라도 관계가 만들어지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외로움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한 뼘 성장하는 인간이 아닐까.


그래서 가장 작은 신의 결말에 뭉클해지기도 했다. 먼지 바람이 인간 세상을 덮어버리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었을 때, 누군가는 더 깊숙이 숨어들 계기가 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문밖의 세계와 단절하고 지낼 무렵 찾아온 한 사람. 누군지도 몰랐던 존재가 주인공의 외로운 틈을 파고든다. 이용하려는 사람과 그걸 알면서도 곁에 두려는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정을 팔아 올라가려는 사람과 방심하던 사이 훅 들어온 사람 모두 각자의 틈을 메우고 있다는 걸 알기는 했을까. 먼지 폭풍을 뚫고 달려나가던 그 용기에 달라졌을 무언가가 그려진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한없이 무너지기만 하지 않고, 주저앉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숨어있기만 하는 건 더더욱 아닌 존재. 한번 문을 열고서 나간 사람이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알 것 같다고 하면 오버인가. 그래도 어떻겠나. 이 소설의 결말을 본 내가 바라는 게 우리가 바라는 삶일지도 모르는걸.


문을 한번 열 때마다 시간이 바뀌고, 운명이 달라진다.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는 어느 시간을 통과해도 결말을 달리할 수는 없었다. 다만,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 메리 블루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긴, 죽은 여자들을 대신해 넘나드는 시간 속에서 하던 일은 계속됐다. 그녀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듯, 기꺼이 살인마가 되어 악인을 처단한다. 악몽을 뿌리며 배를 채우면서도 연민을 느끼는 나쁜 꿈과 함께역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렸을 적 가슴에 품었던 곰인형이 낡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성장한 것 같아도 완벽하지 않다. 불안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우리는 계속 성장해야 하며, 혼자가 아닌 존재로 살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외로움에서 파생한 감정은 사랑이 되고 함께가 된다. 외로움이 외로움으로 머물지 않게 한다. 사람의 곁에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괴담으로 가득한 이야기라고, 판타지로 포장한 으스스한 차가움이 아닐까 싶었다. 잔인한 장면에서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고, 악인의 등장에서는 내가 처단하고 싶기도 했다. 혼자서 꼭꼭 숨듯 살아가는 이를 볼 때 슬퍼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소설은 마치 비극의 결말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듯,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적인 장면으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 머물던 목소리, 달려나가서 친구를 구하는, 싫어했지만 삶의 방향이 같아서 미워할 수 없는 사촌, 사라진 아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시선을 보여준다. 혹시 어느 날 찾아온 외로움이 힘들거든, 악몽이 찾아와 밤이 괴롭거든, 함께였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생각나거든, 결코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보이지 않아도 당신 곁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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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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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곳 주차장을 걷다가 발에 뭐가 걸려서 넘어졌다. 그날따라 반바지를 입었고, 넘어진 무릎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넘어진 게 창피해서 몰랐는데, 대충 치료를 하고 나니 점점 통증이 심해지더라. 아팠던 거다. 내 피부가 쓸리고 피를 흘리는 일은 아픈 거였다. 지금 무릎의 상처는 딱지가 되어 있다. 아픔보다는 가려움이 더 커진 상태. 처음에는 피부의 상처가 크게 보여서 속상했는데, 다리가 부러지지 않은 게 어디냐 싶어서 그때의 고통은 곧 잊히더라. 사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슬픔은 내일의 고통보다 가벼울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3년 전, 정희는 아들을 잃었다. 2년 넘게 병원에 있던 아들은 더는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을 감당하며 죽어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그녀는 고스란히 경험했고, 3년이 지났음에도 아들이 잃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일상은 언제나 위태로웠고, 그나마 남편이 존재함으로써 견뎌내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정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른 여자를 향해 환히 웃으면서 달려가던 남편의 실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이상한 일은 계속 일어난다. 정희는 남편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실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협박하듯 걸려온 전화, 연락도 없이 계속 실종 상태인 남편, 처음 본 시누이의 남편이 찾아와 이제까지 몰랐던 진실을 꺼내놓는 등 그녀를 둘러싸고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진다.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다. 꼬리만 드러낸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녀가 나서야 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로, 그녀가 겪은 슬픔의 감각이 만들어낸 예민함으로 한발 한발 진실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정희와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 철식이다. 외모부터 피폐해 보이는 그는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이다. 그는 같이 탈북한 아내 록혜와 한국에서 행복할 줄만 알았다. 목숨 걸고 탈출한 그들이 아니었던가. 북쪽의 일은 다 잊고 이곳에서 뿌리내리는 삶을 계획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가 자살했다. 그는 아내가 자살한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다가 록혜가 한 남자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철식의 남은 생은 한 가지를 위해 존재했다. 아내를 죽게 한 남자를 찾아서 죽게 하는 것.


알 듯 모를 듯 이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인물이 영호였다. 정희의 시누이 지애의 남편으로, 결혼한 줄도 몰랐던 지애의 남편이라며 갑자기 찾아온 그는 혼란스러워하던 정희를 더 세게 흔들고 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정희 앞에 나타난 것이며, 그의 아내가 사라진 것을 왜 정희에게 말하고 은근한 협박 같은 말을 쏟아놓고 갔는가. 더 이상한 건 아내가 연락이 안 된다면서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거. 그가 성훈의 실종과 지애의 연락 두절 사이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처음에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애쓰며 읽었다. 아이를 잃고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여자가 살아가는 모습에 빠져 있다가, 강인하면서도 나약해 보이는 남자의 분노에 두려워하다가, 너무 신사다운 모습으로 사라진 아내를 찾는 순한 남편의 태도에 안쓰럽다가도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몰라서 궁금했다. 정희의 눈앞에서 사라진 성훈은 어디에 있는지, 왜 사라진 건지, 그의 실종이 이 소설의 과정을 어떻게 장식할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는데, 인물 각자가 가진 오늘의 무게가 버거워 보여서 단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은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영업하는 사람이 팔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엇이든 팔 수 있는 시대가 된 거다. 돈과 목숨을 맞바꾸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이거 현실에 너무 진하게 물들어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도 사고팔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아니었다. 결말을 확인하면서 점점 나 자신에게 묻는 횟수가 늘어간다. 나는 어떤 상품일까. 얼마나 잘 팔릴까. 얼마에 팔릴 수 있을까. 아니, 내 삶이 나를 팔아야 할 정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묻고 있었다.


그녀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 상황이 어떤 식으로 치달아 갈지 역시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정희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끝이 아니며 가장 나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걸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6~207페이지)


내용을 다 소개하자니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스포일러가 될까 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한 사람을 의심하다가 보면 진실은 다른 곳에 있고, 다른 사람을 추적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여기에서도 진실은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닥칠 때마다 누군가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전율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의 무너지지 않음이 이 소설의 희망이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고통에 빠져 있다가 벌떡 일어나게 될 계기가 되기도 하는, 어쨌든 찾아야 할 진실이 있다는 이유로 맨발로 뛰어야 했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 숫자를 세면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이 가장 최악 같아도, 가장 나쁜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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