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4(고소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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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4 : 구미호 카페 특서 청소년문학 30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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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한 약속이 중요하다(약속 식당, 229)’라고 말하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은 지나가 버린 시간에 머문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머무는 순간의 약속이 더 중요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굳이 이런 말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알면서도 자주 잊고 살기 때문이다. 아는데 잘 안 되는 것. 알면서도 망설이다가 놓치고 마는 의미들 말이다. ‘구미호 식당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구미호 카페에서 그 의미를 한 번 더 만난다.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간다.


우연히 설문 조사에 응했던 성우는 받아든 전단에 홀린 듯 구미호 카페를 찾아간다. 달이 뜨는 날만 문을 열면서, 죽은 사람의 물건을 파는 곳이다. 카페에서 파는 목록치고는 좀 이상하지? 어쨌든, 뭐든 가게 주인 마음이니까 그렇다 치고. 더 이상한 건,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 성우는 미심쩍은 이 카페를 며칠 지켜보던 중, 학교에서 짝사랑하던 지레를 본다. 성우만큼 지레도 이 카페의 물건이 필요했던 걸까.


달이 뜨는 날만 문을 여는 이곳, 구미호 카페에서는 죽은 자의 물건을 판다. 무슨 카페가 이런가 싶지만, 뭔가 또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들의 행태를 지켜보게 된다. 카페의 주인 심호는 불사조를 꿈꾼다. 카페의 직원 꼬리는 정해진 규칙대로 손님을 대한다. 카페에 진열된 물건은 모두 죽은 자의 물건이며, 그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되판다. 가격은 얼마냐고? 그건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시고. 성우나 지레가 이 카페에서 무엇을 샀을까 하는 게 더 궁금했다. 며칠 카페를 살펴보던 성우는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지레는 빨간 털장갑을 산다. 물론 지레와 성우는 서로를 알아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카페의 규칙 또 하나, 카페에서 일어난 일은 밖에서 말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서로를 봤다고 해도 카페에서의 일을 묻지 않는다.


이 카페의 물건에 무슨 힘이 있는 걸까? 각자 산 물건에는 저마다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마법이 있다고 한다. 그 소원을 어떻게 이뤄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건마다 정해진 가격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궁금한 건 성우가 산 다이어리와 지레가 산 빨간 장갑에는 무슨 힘이 있고, 카페에서는 어떻게 알고 이 아이들에게 딱 맞는(?) 물건을 팔았느냐 하는 거다. 여기에서 카페의 규칙 하나 추가. 카페에서 물건을 사면, 정해진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어때? 이 정도면 구미호 카페에 한번은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


아이들이 사간 물건과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되면서 읽게 된다.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이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자의 시간을 현재를 사는 자가 이어간다. 죽은 자의 물건이 전달하는 의미를 현재 이 물건을 손에 든 자가 해결하듯, 죽은 자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 시작은 호기심에, 그 물건을 손에 들고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의심 반 믿음 반으로 바라는 것을 말해버리고 기다린다. 이뤄져라, 이뤄져라. 그리고 이루어진다. 성우는 사촌 재후가 지레에게 반지를 준 것을 보고 돈벼락을 맞길 바라고, 지레는 빨간 장갑에 얽힌 사연을 다시 떠올려주길 바란다. 구미호 카페를 찾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고 바라던 게 이뤄진다. 하지만 말이다. 그 소원은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지 않나? 그렇게 이뤄진 게 끝이 되는 게 맞나? 그 이후로 더 바라는 게 없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구미호 카페를 방문해 내가 원하는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상황에서 정말 부러웠던 게 있지 않았던가. 공부 잘하는 아이가, 돈이 많은 사람이, 사랑을 이룬 커플이, 예쁘게 생긴 외모가, 자기 미래를 찾은 사람 등 부러운 것투성이였다. 나는 안 되는 게 그들은 어떻게 다 가능했던 것일까 부러워서 미칠 것 같은 때. 그럴 때 구미호 카페의 제안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드는 깨달음이 있다. 바라던 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게 분명히 있다. 시간, , 마음 같은, 우리가 반드시 내야 할 금액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그런 부러움에도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구매한 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다.


한없이 이뤄질 줄 알았다. 구미호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을 얻고 만족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은, 재후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빗나갔다. ‘오호라, 이 녀석도 구미호 카페를 찾아갔던 거군.’ 섣부른 나의 판단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던 거다. 며칠 동안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 재후의 모습은, 그 아이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잘 이뤄지지 증거로 여겼다. 구미호 카페의 물건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재후가 실망하고 불안한 마음에 방황하는 거로 생각했던 거다. 아니었다. 그건 재후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한 다른 방향의 과정이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많은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이 작품 속 아이들이, 구미호 카페를 찾은 이들이 발견하게 되는 건, 소원을 이루는 그 자체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고 배워가는지, 세상을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하는 이야기였다.


남의 시간은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었고, 내 삶을 책임지고 나아가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또한 내가 이뤄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이뤄가는 인생의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어야 했다. 누군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거나 탐내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의 최선이야말로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이다. 구미호 카페에서 팔았던 것은, 부러움이 넘치는 남의 시간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으로 채워가는, 자기 삶이었던 거다. 잠깐이나마 구미호 카페 앞에 서서 무슨 물건을 사고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진다.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구미호카페 #구미호식당 #박현숙 #특별한서재 #소설 #한국소설 #청소년문학

#시간 #내인생 #자기삶 #내삶을채워가는건나자신 #간절함 #원하는것을이뤄가는법

##책추천 #청소년소설 #성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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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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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세상을 구원해줄 거냐고 물어본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뭐라고 말해야 누구나 이해하는 문학의 정의가 될지 모르겠다. 대신 문학이 힘이 세다는 말은 긍정의 끄덕임을 날릴 수 있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작품 속 문장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봤던 것처럼 말이다.


문학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스스로를 학대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누구도 믿지 못할 때 문학은 한없이 다정한 눈길로 속삭였다. 너의 불안과 너의 절망과 너의 증오조차 사랑한다고. 우리의 그 어처구니없음과 울퉁불퉁함과 대책 없음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임을 문학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76페이지)


자기가 읽은 책 속의 시간과 장면, 단상을 끄집어내어 펴낸 책을 마주한 게 이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여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한번은 펼쳐보고 싶은 이상한(?) 이 마음은 뭐란 말인가. 그동안 저자가 출간해왔던 많은 책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저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시간을 불러오고, 나 같은 독자가 다시 마주함으로써 그 여운이 마치 다단계 회원 확보하듯이 뻗어 나간다. 특히 저자의 이 말이 이 책의 궁금증을 더해줬다. ‘끝을 모르던 자존감의 바닥에서 구해준 게 바로 문학이었다고. 사실 지금 내가 그렇다. 뭔가 하고 싶은데 이게 맞는 건가 싶고, 잘 안 되니까 이렇게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고. 강사가 뭐라고 말을 하고, 다른 수강생들 다 알아듣고 끄덕이는 것 같은데. 나만 이해 못 하는 거야? 중요하다고 말하는 문장들이 왜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스치듯 지나가 버리는 건지. , 맞다. 나는 외우는 거 못해서 학교 다닐 때 암기 과목 거의 빵점 수준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다 외는 것뿐이니, 이게 될 리가 있나. 내가 그렇지 뭐. 그렇다고 지금 포기하자니 자존감을 넘어서서 자존심까지 나를 떠나버릴 것 같고.


그 회복의 순간을 저자는 문학작품에서 찾았다. 찾아내려고 애쓴 게 아니라, 계획된 우연처럼 그 순간을 만난 거겠지. 문학으로 위로받은 저자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그 힘의 중심에 우리가 이뤄가는 사회, 관계, 마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법이 있었다. 누군가 소설을 왜 읽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허구의 세상에서 허우적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환상 속에서 내내 살게 되는 이야기가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던 이였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왜 읽는지를. 지금처럼 일상의 답답함과 빠듯함에서 잠깐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할 때, 전혀 답을 모르겠는데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막막할 때. 대충 이 정도인데, 어쨌든 두 가지는 분명하다. 이야기 자체로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내가 사는 세상 속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저자가 말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로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테다. 내가 그 세상에 접촉하고 스며들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은 언제나 충족되지 못했다. 내 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알면서도 모르고, 몰라서도 모를 그 마음을 문학작품 속 한 문장에서 알게 될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문학의 힘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힘들 때마다 데미안의 문장을 떠올린다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14페이지) 불러오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내가 뭘 모르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존재를 불러와 그렇게 다 아는 것을 좀 말해달라고 하고 싶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내 안에 있어서 부르면 소리를 낼 것 같은 희한한 위로가 이렇게 들려온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어서 나를 지켜주고 내가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잘 될 거야.


문학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독자의 영혼에 상처를 준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서만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상처의 틈새로 온 세상의 햇살이 온통 나에게로 쏟아지는 듯한 벅찬 감정을 통해 내가 아는 나나조차 아직 꺼내보지 않은 내 잠재력의 경계가 기쁘게 무너진다. (199페이지)


저자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으로, 우리 삶에 끼어드는 타인과의 비교하는 일상을 말할 때는 많이 놀랐다. 갖고 싶은 거, 원하는 게 많아지는 세상에서 자꾸만 타인이 가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부러움을 바탕으로 한 자기 비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나는 왜 안 될까, 나는 왜 가질 수 없을까, 나는 안 되는가 봐. 그럴 때마다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넌지시 비추는 문장들에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많은 게 없어도, 타인이 가진 걸 내가 갖지 않아도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왜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은 조급해지는지, 왜 안 되는 걸 자꾸만 마음에 두고 있는지, 왜 타인의 삶을 자꾸 내 삶에 복사해서 붙이려고 하는지 묻게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가 우리 삶에 끼어들어 나를 갉아먹게 하는 건 문학의 역할이 아닌 듯하다. 저자가 느끼고 싶은 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연대하고 공감하는 마음일 테다.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순간 말이다. 좌절하고 무너질 것 같다가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독자의 시선이고, 작품이 말하려는 궁극적인 지점이 아닐까. 그런 과정을 통과하고, 이제 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장착하게 하는 것. 문학의 힘은 이렇게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읽다가 계속 리스트가 추가됐다. 몰랐던 책, 알았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장면들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정말 놀랐던 장면 하나 생각난다. 프랑켄슈타인의 무서운 외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정작 그가 했던 간절한 말 한마디는 생소했다. 자기랑 똑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그럼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는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안의 외로움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던 거다. 자기가 사라지면 외로움도 사라지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그의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의 말처럼, 자기랑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 간절함이 문장으로, 문장으로 그린 내 머릿속 장면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이 나를 놀라게 했지만 나 또한 삶을 놀라게 해줄 거야.” (46페이지)


작품들 속에서 시간을 찾는다. 일상의, 삶의 기회를 만든다. 어느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싶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때로는 내가 막연하게 바랐던 어른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을 다 쏟아내듯 담아낸 작품들 속에서, 꼭꼭 숨겨놓았던 마음을 꺼낸다. 설명하기 어려운 속내를 다 긁어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순간인 거다. 문학으로 삶을 확장해나가는 방법을 이렇게 배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학이필요한시간 #정여울 #문학 #에세이 #한겨레출판 ##책추천

#한국문학 #하니포터 #하니포터5_문학이필요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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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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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로스의 시간은 석 달 정도 남았다.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목숨 앞에서는 그녀의 소설 같은 서사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던 거다. 열다섯 편의 작품을 출간했고, 모두 인기 작품이었다. 이제 그녀의 이름은 브랜드가 되어 출간되는 모든 소설이 연일 매진을 예고하는 수준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괜찮은 작품이 나올까 하는 기대에 반박하듯, 그녀의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다. 뇌종양은 그녀의 온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새 작품 계약도 했는데, 그녀는 계약한 작품을 출간하지 않는다. 정말 써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생명이 사라지기 전에 꼭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력은 쇠해지고, 몇 글자 쓰는 것도 힘에 부칠 때가 많아졌다. 어쩔 수 없다. 이메일로 싸우면서 서로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라이벌 작가에게 그녀의 작품 대필을 의뢰한다.


그녀의 책 출간과 관련하여 모든 일을 대행했던 케이트는, 헬레나가 10대였을 때 처음 계약하고 처음 봤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다. 그녀의 모습을 열정이 넘치다 못해 까다롭기 그지없던 갑질 대마왕으로 기억했는데, 지금은 마치... 마른 장작처럼 말라비틀어져서, 저기서 몇 걸음 걸어오다가 쓰러질 것만 같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던 케이트는 충격을 받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가 요구하는 많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게, 은퇴를 선언하고 마지막 작품을 쓴다면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작가를 보는 답답함이었다. 아직은 말할 수 없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무슨 내용인지, 왜 그녀가 생명이 사라져가는 이 순간에 그 작품을 써야만 했는지. 그녀의 태도가 자기 멋대로, 막무가내로 보여도 간절함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도대체 그녀가 감춘 비밀은 무엇인가.


예상하지 못했다. 죽음을 3개월 앞두고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일지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칩거하듯 지내면서,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집안에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헬레나가 힘겹게 메모하듯 초고를 쓰고, 마크가 초고를 정리하면서 완성해가는 과정이 매력적이다. 모든 것을 한방에 터트리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헬레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게 될까 기대됐던 거다. 더군다나 헬레나의 숨겨진 이야기가 마크를 통해야만 나오고 있으니, 그 갈증이 더했다. 4년이나 비밀로 간직해 온 그날의 기억은 이렇게 시작된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있고, 그녀의 글은 막힘없이 써졌다. 그녀의 모든 생활은 그녀가 쓰는 소설에 집중되어 있지만, 소설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가 지켜야 할 가족도 있었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좋았겠지만, 어떤 진실은 그녀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사건은 벌어졌고, 그녀는 거짓말로 그 시간을 건너왔다. 평소 소설로 다져진 이야기꾼은 그렇게 거짓말도 진실로 만들어놓았고, 모두 그녀의 거짓말을 믿었다. 이제는 그 거짓말이 이야기가 되어 그녀의 최고작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이렇게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의 몰입감은 좋았다. 헬레나가 감춘 거짓말이 무엇일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입버릇처럼 남편을 죽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남편의 죽음에 그녀가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은 가능했다. 어떻게 죽였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느 정도 예상한 것 이상으로 진실은 교묘했고, 거대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생길 수 있지만, 그 증오와 절망을 잠재울 방법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위험요소를 제거하긴 했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을 잃었다. 완벽한 거짓말로 진실을 감춰둔 채 어떻게 살아왔을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소설에서 서술하는 헬레나의 상태만 봐도, 그녀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훤히 보일 정도다. 죽음의 순간에서야 진실을 쓸 수 있었던 그녀의 마음도 편할 수 없었겠지. 말 그대로 너덜너덜. 왜 고통은 피해자의 몫이어야 하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을 조금만 용서해줘, 라고 말하는 듯 소설은 마냥 까칠한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게 했다. 그녀가 그 세월 동안 혼자 아파했을 것을, 죄책감에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간을, 언젠가 때(?)를 기다리며 시달려왔을 것을 생각한다. 그녀에 대한 단죄이며, 그녀를 용서해달라는 마크의 말이 그대로 와닿는다. 이 작품으로 그녀의 거짓말은 탄로가 났고, 읽는 사람은 숨이 막힌다. 심장이 이렇게 멈추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진실을 듣기 위해 몇 시간을 이 책과 함께 그녀의 다용도실(?)에 갇혀 있어도 좋겠다.


#고스트라이터 #앨러산드라토레 #문학 #소설 #외국소설 #미래지향

##책추천 #책리뷰 #추리소설 #완벽한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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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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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잘나갔던 상담가 임해수는 하던 일을 접고 은둔 중이다. 최소한의 외출만 하면서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그날 이후 임해수의 일상은 달라졌다. 내담자들에게 자신 있게 조언했는데,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조언할 수 없는 마음이다. 당연히 일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욕을 먹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녀에 대한 악성 댓글은 여전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비난의 대상이 된 그녀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설상가상 상담소에서는 그녀에게 퇴사를 통보하고, 남편과는 이혼한다. 자신 있게 해냈던 일은 이제 두려운 대상이 되었고, 외로움도 모를 정도로 혼자인 생활에 익숙해진다.


어쩌면, 실수라면 실수일 수도 있는데, 그녀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 세상을 등졌다. 국민 상담사로 칭송받던 그녀가 한순간에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 그녀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편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그녀의 기사를 썼던 기자, 죽은 이의 가족들, 그녀에게 진심을 건넨 친구 등 이 사건으로 그녀와 대척하거나 거리를 두게 된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상하게도 이 편지들은 항상 끝맺지 못하고 부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하는 마음인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쓴 편지의 내용은 수신인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과하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편지는 계속 쓰면서도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폐기되는 순서를 반복한다. 읽으면서 느끼겠지만,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반복될수록 그녀의 자기 연민은 짙어지고, 그때의 자기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화는 계속된다.


어쩌면 임해수는 지금 가장 큰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비하와 부정으로, 매일 밤 울분을 토하고 자신과 세상을 원망하며 보내는 시간이 그 벌이라면 벌일까. 그러던 중 심하게 다친 길고양이 순무를 구하려는 세이를 만나면서 전환점을 만난다. 고양이에 관심도 없던 그녀가 우연한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순무 구출 작전에 투입되면서 은둔의 장소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 그녀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대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제 은근한 내담자가 된 세이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임해수가 우연히 세이를 만나고, 세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걸 알면서도 참견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게 의아했다. 한마디라도 해줄 거라고, 실력 있는 상담가로서 이 아이에게 닥친 문제를 자연스럽고 편안한 방법으로 해결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본인은 세상에서 차단당했지만, 그래도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본성은 어딜 못 가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둘 사이의 흐름을 이끈다. 임해수는 세이의 몸에 있는 멍 자국, 피구 연습이 없는 시간에도 여전히 연습한다고 말하는 아이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이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모른 척하기를 바라는 듯 행동하면서도, 자기가 잘하고 있음을 피력하려고 애쓴다. 결정적으로 세이의 내면이 폭발한 순간에도 임해수는 그저 지켜본다.


왜 그랬을까. 불행은 빨리 처리하면 좋은 거 아닌가. 어서 내 옆에서 불행을 모조리 쫓아내 버려야 속이 시원한 거 아니었나. 착각이었다. 나는 임해수가 왜 세상으로부터 차단당했는지 이 짧은 시간 사이에 잊고 있었던 거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다 알지 못하면서 말을 보태지 말 것.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 먼저 완수할 것. 사람들은 이 모든 사태에 임해수의 한 마디가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임해수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매일 밤 쓰는 편지조차도 부치지 못한 채로 쌓아두는 걸 보면, 그녀 역시 편지로 하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기까지 고민하는 것일 테다. 느리게, 그저 듣는 일은 세이가 임해수에게 진심을 꺼내놓는 순간이 오기까지 시간이 길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거기에 그녀가 고양이 순무를 구하자고 들이는 시간을 보면 더 확실히 알게 된다. 기다리는 것. 고양이를 구조하려고 기다린 시간만큼, 고양이를 지켜보는 시간도 많아지고, 고양이를 더 관찰하여 구석구석 볼 수 있었으며, 마음을 전달하면서 천천히, 그녀의 손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을 구조하듯 고양이 순무를 구조하기에 이른다.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182페이지)


처음에는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혼자 우왕좌왕. 작가의 전작으로 진하게 감동했는데, 이 작품은 어디에서 공감을 찾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점점 눈에 보이는 게 있더라. 구조하겠다고 기다리던 순무, 아픈 걸 아는데도 말하지 않는 세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이 눈에 읽혔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상담자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가 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담자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아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강요하거나 자기 얘기로 유도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누구도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는 것처럼 서술되는 분위기가 그렇다. 과거의 그녀가 어땠는지 상관하지 않고, 이제 그녀가 다시 상담가로 살아갈 모습을 기대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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