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동생의 말이 생각날 때가 있다. 처음 발령 받고 근무하던 중, 평소처럼 사건 신고 접수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마주친 시신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고. 그날은 제대로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이미 여러 번 사건 기록으로, 사진으로 남겨진 처참한 광경들을 봤지만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웠다고 말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칠 때마다 이게 지금 사람 사는 모습인가 싶어서 씁쓸해질 때가 있단다. 일상을 지내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세상살이와 사람들인데, 사람들의 신고와 사건 접수로 현장 출동과 사건 해결로 하루를 채우는 경찰은 오죽할까 싶은 마음이다.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저자를 남자라고 생각했을까. 남자라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저자가 남자일 거로 여기며 읽기 시작했다. 앞선 출간작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작품들은 뒤로 하고, 이번 작품이 먼저 손에 간 이유는 간단하다. 있었지만 사라진 존재들, 저자의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해서다. 어떤 죽음이든 그 과정과 이유가 있을 테지만, 사건이라는 기록 속에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현직 경찰관이 썼다고 하니 단순히 그가 접한 사건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흥미로운 사건의 소개가 아니라, 변사자로 처리된 이들이 여기 있다가 갔다는, 왜 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가 우리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 신고도 해보고, 신고한 문제의 처리를 위해 담당 경찰관과 대면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왜 일을 이렇게 하는 거지?’였다. 오전에 얘기 다 끝내고 해결될 줄 알았던 문제를 오후에 확인하려니, 교대 근무자가 응대하면서 오전의 내용을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때도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확인하려고 하니 또 다른 교대 근무자가 해당 내용을 묻는다. 녹음한 것처럼 그에게 또 전날의 상황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나의 개인정보를 확인하면서도 신고 내용은 확인 안 하나? 기록에 남겨진 것을 보고 확인하면서 응대해 주면 안 되나? , 그들 나름의 일하는 방식과 절차가 있겠지만, 민원인으로 그 상황들을 보자면 여전히 이해가 안 되기는 하다만...


대한민국의 많은 경찰관이 저자와 같은 마음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경찰관에 대한 불신이 더 많았다. 내 가족이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가족이 아니라 그의 직업으로만 보자면 호감이 안 생기는 건 여전했으니까 말이다. 막상 마주한 저자의 이야기는 이 사회의 한쪽 구석에서, 이 세상을 살아볼 단단한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버린 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집중하게 했다. 어디 뉴스에서 볼 법한 내용인데도, 그 내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살피며 그의 생을 유추하게 하는 시간을 직접 겪고 들려주는 이야기다. 어떻게 다가오는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이 꽉 막힌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내 가까운 곳의 장면들이었다. 모른다고 하기에는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안다고 하기에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의 주춤거림이 내 발목을 잡는 일. 그래도 듣고 싶은, 들어야 하는 이야기.


읽으면서 정말 놀랐던 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자살로 처리된 변사자 수가 하루에 34.8명꼴이라고 한다. 이게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았다. 뉴스에서 보던 변사자의 이야기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던 걸까. 살면서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여러 번이건만, 누군가는 정말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야 할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었던 거다. 죽어도 자기 신원을 확인시켜줄 신분증을 방수팩에 넣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 아내의 부활을 믿으며 방치해 부패하게 만든 지적장애 가족, 평범한 외출로 보일 정도로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대로 투신해버린 청년. 이들의 사정은 힘든 현실을 누구도 알지 못해 소외된 자들이었다. 자살의 이유가 그것 뿐은 아니다. 사기로 돈을 다 날리고, 생산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과학수사요원이 마주한 죽음의 사연은 제각각이면서도 비슷했다. 잔혹한 현실을 살아내려던 이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일이 반복 됐다.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애쓰는 몸부림이 문장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저자는 말한다. 잔인한 현실 앞에 우리가 그간 외면해왔던 진실을 깨닫는 일. 그가 경찰관으로 목도한 일을 계속 쓰는 이유라고.


다양한 변사 사건의 사연들은 제각각이지만, 우리 민낯을 보여주는 듯해서 얼굴이 달아오르기를 여러 번이다. 아파트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했고, 조사를 위해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건 현장으로 가려고 하는데도 쉽지 않다. 아파트 관계자와 입주민들은 난색을 표하고, 수사 차량을 안 보이는 쪽에 세우고 들어가라고 하는 정도면 어느 정도인 걸까. 신고 받고 가서 보니 죽은 지 한참 지난 경우도 많고, 자기를 발견해줄 경찰관에게 남기는 말을 유서로 써 놓고 죽은 이의 사연은 또 뭐기에, 몇 번의 실패에도 결국 목을 매고 말았던 이는 다시 살아갈 기회를 붙잡고 싶지 않았던 건지. 이 많은 상처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는지 궁금해지는 것도 잠시, 그 누구도 함부로 그들의 삶을 논할 수 없다는 마음만 남았다. 그저 저자가 이 기록을 남기는 이유, 한때 있었던 존재들의 목소리를 남겨주고 싶은 마음을 살피게 된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는 기도가 얼어붙은 사기를 녹일 수 있는 자애로운 햇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희망과 변화를 소망하게 되는 게 모순적이긴 하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총합이기에 생의 가능성을 믿어본다. 바람의 향기를 맡는다. 바람에 흔들려야만 씨를 부릴 수 있는 민들레처럼 강력한 태풍이 지나가면 낙원이 펼쳐질 거니까. (있었던 존재들, 176페이지)


불편한 일을 소리 내어 말하고, 부당한 상황을 알리고, 자칫 잊히기 쉬운 이야기를 기록하며 들려주고 싶은 이의 진심을 읽게 되는 책이다. 잔인한 현실 속 억울한 죽음들, 안타까운 상황의 선택들, 분명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도 쉽지 않아서 머뭇대다가 포기해버리는 삶. 이런 이유들로 법과 보호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되는 이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날을 기대하게 된다. 한 생명이었던 그들이 어쩌면 지금 우리와 같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날들을 만드는 건, 우리의 용기가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이 없기에 더욱 희망과 변화를 소망하게 되는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인지... 그러한 인생이 결국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총합이기에 생의 가능성을 믿고 싶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을 저자의 이 책 속 문장으로 대신해본다.










#있었던존재들 #원도 #세미콜론 #에세이 #문학 #한국문학

#연대하며살아가기를 #경찰관의사직서 #죽음의과제 ##책리뷰 #책추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4-02-29 0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이 사회가 글러가는 것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 아닐까요?

구단씨 2024-03-01 23:38   좋아요 1 | URL
그렇죠? ^^
저 역시 주변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렇더라도. 그 관심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호시우행 2024-03-02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시간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