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 홍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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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밥 먹여주는 시절이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믿음도 굳건했다. 부모가 가난해도, 명문가의 자녀가 아니어도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던 날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서 그때 많은 부모가 공부 노래를 불렀나 싶기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데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한 적이 없다. 그저 숙제는 하고 놀라고 했을 뿐. 공부를 잘 하면 원하는 학교 선택할 폭이 넓어지니 당연한 거겠지만, 공부를 잘 해야만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을 무조건 믿었다. 어렸을 때는 그랬다. 지금도 많은 부모가 공부와 성적을, 좋은 학벌을 노래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부 못 해서 불안하고 걱정만 가득하지는 않을 거 아닌가. ㅎㅎ 공부를 잘 하는 것도 분명 중요한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하다면, 나는 굳이 공부나 대학이 인생 진로의 순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학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학이 필수 코스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인생 필수 코스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졸업장을 목표로 학교 다녔던 시간이 가끔은 후회되곤 하니까.


제목이 재미있어서 읽게 됐는데, 저자가 바로 공부 못 했던 그 친구. 뭐 하는 사람인가 하고 책날개에 적힌 이력을 살펴보니 영어 선생님이다. 지금은 교감선생님이라는데, 공부 못 했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고 이렇게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가 싶었다. , 그 과정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그의 인생 흐름 순서대로 담겨 있으니 읽어보면 되는데,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이 이렇게 유쾌하게 읽히기도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책을 썼나 싶겠지. 어느 날, S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된 초등학교 동창이 저자에게 40년 만에 문자 한 통을 보냈다고 한다. “, 밥은 먹고 사니?”라는 단 한 문장에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저자가 지금 밥벌이는 하고 사는 것인지 묻는 것으로 느껴졌단다. 하긴, 내가 봐도 그렇게 들리긴 한다. 내 마음이 비뚤어져서 그런가, 뜬금없이 40년 만에 받은 문자가 저런 내용이라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보내는 거로 들리진 않는다. 어쨌든, 저자는 그 문자에 직접 답하고 싶어서, 저자 역시 공부 못했던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마음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게,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 한 권의 책이 나온 이유 치고는 참 재미있다.


읽으면서 깨알 웃음을 놓치지 않는데, 그 웃음이 전혀 가볍지 않아서 무겁게 읽힌다. 한 사람의 생이 이렇게 진지하고, 그의 인생 참 파란만장 하면서도 기가 막히다. 여유롭지 못한 가정 환경에, 초중고 시절을 거쳐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가난한 생활이 끝난 건 아니다. 스스로 학비를 벌고 공부까지 해야 했다. 30여년 전 얘기지만, 학자금 대출을 필수처럼 안고 살아가는 지금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이다. 몇십 만원 들고 상경하여 대학을 다니고, 그를 살려준 운명인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선생님이 되었어도 사정은 비슷했다. 출근하려고 새벽 5시에 버스를 타러 나가는 하루를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그 아침의 출근길이 아니라 그날 퇴근 후가 더 염려스러웠다. 그 정도 출퇴근 시간이 소요된다면, 퇴근 후에는 그냥 기절하면 다음 날 아침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공부 바보가 영어 선생이 되겠다고 인생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으니 책임져야 했다. 스스로 선택한 길에 이 정도의 힘듦 쯤이야 하는 마음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차하고 운전자하고 똑같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욕은 묘한 특징이 있다. 그딴 짓을 어디서 배웠느냐?(사교육의 출처를 묻는다).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가정교육의 수준을 묻는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단박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다). 야 이 양반아!(상대방의 신분을 높여준다). 개 같은 놈!(비유법을 즐겨 사용한다). 아무튼 차는 그 사람이 아니다. 차는 그냥 차다. 그리고 이건 상식이다. (151)


그래도, 어려운 형편에 건강하게 잘 자랐다. 돈 벌면서 공부하고 자기 진로 만들어 탄탄하게 닦아 놓았으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배웠다. 공부 바보의 과거 기억은 잊고 인생을 책임져줄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서도 그의 시작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교사 연수에 가서도 머물 곳이 없어서 목욕탕 아르바이트 하면서 숙박을 해결했다. 그 덕분에 매일 샤워하면서 연수 받으러 가니, 연수생 중에 가장 깨끗했다나 뭐라나.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곳곳에서 묻어 나는 긍정의 에너지가 저절로 보인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연수 받으러 가는데도, 돈이 없어서 머물 곳도 못 찾게 되니 막막하기만 한데, 그 와중에 다짜고짜 목욕탕에 아르바이트 하겠다면서 재워 달라고 말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상황의 막막함은 뒤로 하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걸 보면, 안 될 거라는 부정보다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생님이 되어서도 인생이 쉽지는 않았다. 학교라고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상사(교장, 교감)에게 잘못 찍혔을 때 아침 출근길이 괴로웠고, 실수로 넘어져 교감 선생님의 바지 자락을 붙잡은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충성심을 인정받기도 하는, 그저 우리가 하는 밥벌이와 똑같은 시간을 저자는 학교에서 보내는 거였다. 그렇게 차곡차곡 사회생활 만랩을 쌓으면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상으로 사람들을 경험했다. 젤 타입의 파스를 교장의 치약과 바꿔 놓으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학생 스파이를 고용하여 인성부장 교사의 명성을 드높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부장 교사에게 삭힌 홍어로 향수 냄새를 덮어버리기도 하는, 선생님이지만 평범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랄 때는 공부 바보로, 성인이 되어서는 생활 바보로 살아간다는 저자 스스로의 표현에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는,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남편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된다.


그의 성장(?)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정말이지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웃기다. 가볍게 웃기면서도 그 의미가 무거워서 중심을 잡는다. 80년대에 초중고와 90년대의 대학 학번이라는 소개에 더 공감하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나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는 세대로, 저자가 들려주는 요즘의 경험 역시 비슷해서 놀랍기도 했다. 요즘에 주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오랜만에 동창이나 친구를 만나도 친구라는 관계의 어렸을 적 편안한 이야기는 멀어지곤 했다. 집값 얘기, 주식 얘기, 자식 공부 얘기 등, 기본적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글쎄, 나는 돈도 없고 주식도 못 하고 자식도 없어서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 했는데,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그런 주제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그렇게 없었나 싶은 거다. 나이를 먹으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서로 가진 거 자랑하듯 꺼내 놓는 거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더라.


그래서인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그 배경, 변호사 동창이 40년 만에 보낸 문자 한 통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때 공부를 지지리도 못 했던, 네가 궁금해 하던 공부 바보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답을 하고 싶은 거 아니었나 싶은 마음.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별일 없이 이렇게 잘 살아왔고, 그때 못 했던 공부가 내 인생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열등한 성적이 삶의 성적과 비례하지도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잘 살고 있다! 됐냐?!’


가끔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과연 올곧은 감성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가족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가장이며, 교사로서는 학생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는 사표였는가? 장학사가 된 지금 학교 현장과 민원인에게 해갈의 물 한 모금 건네는 소통가인가?

아내의 폰을 자주 빌려야겠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말 한마디 던지는 방법을 빅스비에게 배워야겠다. 시리 기능은 영원히 꺼두는 걸로. (256)


저자가 직접 등장한 책 소개의 한 장면을 옮겨본다. 오늘 일찍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잘 보낸다는 보장도 없고, 오늘 늦게 일어났다고 해서 하루를 망친다는 것도 아니라는, 공부를 잘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고 있다는 것 아닐까 한다고. 정말로, 가볍게 읽힌다고 의미를 상실한 책이 아니라고, 위트와 유머, 감동이 더해져 무거운 책이 되어버린 이야기에 빠져들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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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4-03-11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단씨의 글을 읽고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환경적 영향과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며 지냅니다. 35년째 교직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몇몇 제자와는 여러 고민을 함께하는 인생 선배, 동료 교사에게는 권위를 인정받고 싶지만 쉽지 않은 듯합니다.

구단씨 2024-03-11 23:35   좋아요 0 | URL
어렵죠? ^^
그래도 그 오랜 세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만들어준 무언가가, 분명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놓쳐서 신경 쓰였는데, 그저 삶의 평범한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다시 해야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