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심장을 쳐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형제자매 사이에 질투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엄마가 딸을 질투한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엄마란 원래 자식의 아름다움이나 지혜로움 같은, 내 자식을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에 자부심이 생기기 마련 아닌가? 어쩌면 표현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식을 향한 그 묘한 질투심도 드러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뭘까? 아멜리 노통브가 모녀 사이의 정의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소설로 풀어냈지만, 여전히 나는 그 감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모녀 사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여자와 여자 사이의 질투였다고 말하면 오히려 더 쉽게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대했던 게 아닐까 싶은. 그랬기에 딸은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에게 받는 사랑 그대로를 바랐다. 평범하게.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자기 외모가 얼마나 잘났는지 아는 그녀는 그 아름다움을 한껏 이용한다. 주변 여자들의 질투가 어린 시선을 즐기고, 그녀 주변을 서성이는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차지하지 못하게 했고, 그 순간을 영원히 누리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마리에게 근방의 잘생기고 착한 젊은 약사 올리비에가 반한다. 그는 누구라도 원하는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마리는 올리비에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여자들의 질투 유발을 목적으로 올리비에와 사귄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까. 마리는 올리비에의 아이를 가지면서 계획에 없던 결혼을 하고, 딸 디안을 낳는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젊은 남녀가 사귀면서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부모가 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 책임을 지려고 선택한 결혼 이후에 마리가 어떤 엄마가 되었느냐 하는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웠던 아이 디안. 디안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그때마다 마리는 괴롭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찬란한 인생은 사라지고, 아름다움의 주인공은 그녀의 딸 디안이 되었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예상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시작과 육아는 그녀에게 딸을 질투하는 엄마로 만든다. 딸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육아에 관심도 없는 엄마가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사랑을 자연스러운 거니까. 마음이 가는 곳으로 사랑도 향하니까 말이다.


그럼 마리의 딸 디안은 어땠을까. 엄마가 자기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버린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된다. 읽는 나도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 질투를 고스란히 받고 자란 딸은 어떻겠는가. 어느 날 밤 딱 한 번 보여 준 엄마의 포옹이 그녀를 안심시켜주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디안은 알게 되었다. 엄마가 자기에게 주지 않는 사랑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따스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하고 자라온 시간에 절망했다. 그건 괴로움이었다. 살아가는 내내 디안을 괴롭힐 그 감정을 잊으려고 공부에 집중했다. 어렸을 적 어떤 날의 기억으로 의사가 되고자 했던 디안은 심장내과 의사가 되고,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교수 올리비아를 따르고 존경하며 그녀의 성공을 기원하지만, 올리비아가 그녀의 딸 마리엘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오래전의 자기 엄마를 보는 듯한 감정에, 디안은 마리엘에 더 시선을 두게 된다.


딸을 질투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를 피해 달아난 곳에서 엄마와 같은 사람을 발견한 순간 디안의 마음은 순간 과거로 속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작가가 올리비아에게서 마리의 모습을 순간 포착하듯 묘사한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반전을 보여 주는 건가? 엄마에게서 엿본 그 차가운 감정을 겨우 잊고 살아가는 디안에게 어떻게 올리비아에게서 마리를 보여 줄 수 있느냔 말이지. 결국, 세상 모든 여자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말하려는 것인지 잠깐 생각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의 관계가 우리가 살면서 만드는 관계와 같다. 모녀, 스승과 제자, 친구, 자매 같은, 여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관계를 쌓으면서 우리는 사랑과 우정도 나누지만, 질투와 배신도 함께 나눈다는 것을. 웃기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다. 왜 한쪽으로만 향할 수는 없는 걸까. 좋은 관계라면 좋은 것만 나누고, 나쁜 관계라면 그냥 나쁜 것만 내주면서 관계 정리하고 지내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듯한 이 묘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단할까 짐작할 만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소설 내용에 언급되는데,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가 친구에게 바친 시에서 따온 문장이다. ‘자네 심장을 치게, 천재성이 거기 있으니. 연민, 고통, 사랑이 있는 곳도 거기라네.’ 주인공 디안이 이 관계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투나 경멸 같은 감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인용한 구절이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어떤 감정들이 나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해도, 심지어 그게 엄마에게서 나오는 외면의 시선이라고 해도, 내 심장은 나의 중심에서 계속 뛰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는 말로 들린다. 그 심장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연민과 고통도 함께 담겨 있으니 다 감당하고 이겨내리라는 주문처럼 말이다. 디안이 심장내과의 길로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 심장이 하는 말, 좋든 싫든 다 듣고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이 심장의 말을 지배하는 것도 나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듯이.


그러니까 모든 생명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는 그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고,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견뎌 내고, 계속 숨을 쉬려고 애쓰며, 그리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것은 바로 사랑을 알기 위해서였다. (34페이지)


분량은 짧은데, 그 짧은 흐름이 너무 빠르고 감정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결말이다. 그 결말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밤, 디안의 집 현관문을 두드린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이들이 잃어버린 감정 하나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인간의 감정이란,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는 딸의 소외된 삶이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지 그대로 드러내는 결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시작될 또 다른 인생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괜찮을까? 서로가 줄 수 있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 희망을 동시에 보여 주는 마지막 장면 역시 강렬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건조한 분위기와 잔인한 감정이 사랑을 만나니 이런 이야기도 펼쳐진다. 그래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너의심장을쳐라 #아멜리노통브 #열린책들 #소설 #문학 #모녀사이 #애증 #질투

##책리뷰 #책추천 #심장의말 #사랑하라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9-02 1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잘 쓰셨네요.
으음... 저도 딸이 있는 입장에서 느낀 바를 말한다면... 딸의 젊음과 나의 나이 들음을 비교할 때
딸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질투한다기보다 딸에 비해 늙어 버린 (젊음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비애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그걸 질투로 착각할 수 있겠다 싶은데요, (흔히 자기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죠.) 막상 딸애가 큰 불행을 겪으면 무지 힘들어할 게 어머니, 라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이니 예외적인 사람이 있을 순 있겠어요.^^

구단씨 2022-09-09 22:02   좋아요 2 | URL
그 비슷한 마음을 저도 느낄 때가 있어요. 저는 아이가 없지만, 엄마는 항상 그런 얘길 하셨어요.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이걸 하고, 5년만 젊었으면 저걸 하고... 무언가 간절한 것들이 늙음이라는 것 때문에 포기하게 하는 마음이요.
길을 가다가 보는, 카페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전혀 타인인 저도 부러움 같은 거 느끼거든요...
이 소설 속 엄마는 약간, 음, 엄마가 될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된, 원하지 않는 결혼과 임신으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된 생활을 시작한 여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본인 위주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mini74 2022-10-07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딸과 엄마의 이야기 ~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1 | URL
mini74님도 읽으셨군요. ^^
그 모녀 관계의 묘한 심리가 매력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연휴가 다 끝났네요. 비도 추적추적...

얄라알라 2022-10-1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게 벌써 작년이었나봐요
구단씨님의 리뷰로 기억 소환해보았습니다.

저 역시, 노통브 책이군! 하며 읽었는데..

멋진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2-10-10 22:11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1년쯤 전에 출간되었어요.
짧은 글인데, 머리가 복잡해지고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뭘까... 하면서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