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들
미깡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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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거짓말은 나에게 배신감을 주지만, 어떤 거짓말은 감동을 준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 거짓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안정을 준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불필요한 걱정을 누르는 역할도 한다. 이 한 권에 책에 담긴 많은 거짓말이 한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가닿는지, 그 거짓말로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했던 오늘의 많은 거짓말도 어떤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런 말들, ‘아무것도 아니야, 아프지 않아, 금방 끝나, , 다 됐지?’ 자기 차례가 오기도 전에 겁을 먹고 발걸음을 떼지 않고 울기부터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오늘도 이 거짓말을 참 많이도 했다.



각각 따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데, 다 읽고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특히 첫 작품 A의 거짓말과 마지막 작품 나만 아는 거짓말의 연결고리는, 중간에 있던 7편의 작품들이 시간의 흐름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어린 여자아이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사촌 오빠 둘이 방에 들어와서 성폭행했다는 것.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구체적인 행위를 표현하며 말하는 성폭행을 알았을까? 친구들은 A가 거짓말을 한다면서 웃어넘겼고, A 역시 그냥 지어낸 말이라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아무 일이 아니야? 시간은 흐르고 A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고 지냈다고 여겼는데 한 번씩 기억을 소환해 그날의 고통과 충격을 재현한다. 우연히 만난 어린 시절 친구 때문에 이제 A는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말한다. 어떤 거짓말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상흔으로 남는다.


사기꾼에게 당할 뻔하다가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고양이는 건들지 마라를 읽다가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맞다. 많은 말보다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선은 거짓말로 가려진 진실을 보게 한다. 돈을 좇고 욕심을 부렸다면 당하고야 말았을 일을, 차분하게 지켜보면서 고민했더니 위험한 순간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거짓말 때문에 소박한(?) 쟁취에 한껏 신났겠지. 왠지 통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보는 애보는 애역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역술인처럼 보이지만 역술인과는 다른 눈으로 많은 것을 보는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렇다고 그 마음 읽으면서 사기를 치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더 슬프지 않게 하는 일을 거침없이 해낸다. 거짓말 같으면서도 거짓말 같지 않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모호하다. 그래도 괜찮다. 사기를 치고 이익을 취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기라면 얼마든지 당해줄 사람이 줄을 설지도 모른다는 게 핵심이다. 어떤 거짓말은 거짓을 말하면서도 거짓이 아닌 게 된다.


언제까지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를 믿었나? 이빨 자국의 어린 주인공도 엄마가 놔주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믿었다. 정말 산타클로스가 그 밤에 여러 곳을 도느라 바빴구나 싶었다. 친구들의 폭로로 산타클로스가 부모님이라는 걸 알았는데, 사실 아이가 슬픈 건 산타클로스가 거짓이어서가 아니었다.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서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남겨놓은 이빨 자국이 이 아이를 일찍 철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등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고작(?) 초코파이 몇 개였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해서 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초코파이 몇 개는 고작이 아니라,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한입 베어 물고 느꼈던 그 달콤함을 가끔 떠올리고 싶을 정도로... 어쩌다 그 밤에는 성인판 거짓말이 남긴 달곰씁쓸한 하룻밤에 관한 이야기다. 부부가 시들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큰 노력을 하지만, 노력 그 후의 쓰나미처럼 다가온 쓸쓸함은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다. 지금 이대로 계속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변하면 변한 그대로, 감정의 온도가 달라졌으면 달라진 그대로, 우리는 이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어떤 거짓말은 그 거짓말 때문에 슬퍼지기도 한다.


첫 번째와 마지막 이야기 사이에서 분노와 감동을 오갔던 이야기가 도둑맞은 얼굴이다. 주인공의 오늘이 많은 현대인의 삶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아서 계속 읽기가 힘들었는데, 마지막에 등장한 거짓말 때문에 웃음이 났다. 믿고 따르면서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의 삶을 버리면서까지 달려왔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의 얼굴마저 잃어버린 채로 살아왔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는 늦은 것 같았는데, 그 회복의 길을 열어준 거짓말 하나가 또 한 번 삶을 바꿔놓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렇게 달리던 이유가 사라진 것 같고, 손에 쥔 무언가가 스르륵 빠져나간 것처럼 여겨질지 몰라도, 이제부터 또다시 달라질 인생을 그리는 재미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어떤 거짓말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던 것들을 찾게 한다.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절대 좋지 않다. 불신과 불쾌함이 동시에 밀려오곤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도 어떤 순간에 사용하는 거짓말은 부정의 의미와 거리가 멀기도 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거짓말을 사용할 때 어떤 마음이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상대방에게 이 거짓말을 할 때 어떤 의도가 있었느냐 하는 것 말이다. 해가 되는 게 아니라 득이 되어 전달하는 말로 쓰고 싶은 거짓말. 이 단편집의 주인공들에게 닥친 사연은 다양하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활이기도 하다. 슬픔과 분노가 내 안에 쌓여 있기도 하고, 상대방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거짓말은 위로와 치유가 되어 마음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선뜻 생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다가 주저앉는 일에 우리가 이 거짓말의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생생한 이야기에 다양한 에피소드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녹아든 살피는 마음이 이렇게 들려온다. 말 그대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희로애락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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