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름답게 이별하기 - 네 편의 소설로 읽는 여성심리학
김영신 지음 / 어나더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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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엄마를 떠나고 고향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관계 매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는 엄마와 나를 잇는 진정한 관계의 시작이다. 장차 맞이할 생물학적 이별을 의연하고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기도 하다. (12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엄마와 불편한 관계로 지낸 적이 있다. 아마 세상의 모든 딸이 비슷한 경험 한 번씩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고맙고 든든한 지지자이지만, 한번 어긋나면 그 감정의 골이 누구보다 더 깊어지는 관계였다. 이해하면서도 밉고, 미워하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대상이 바로 엄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의 차이가 그 관계의 모양을 다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바탕에는 비슷한 마음이 자리한다고 믿는다. 많은 엄마와 딸이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걸 저자는 진즉에 알았나 보다. 저자가 심리상담사로 일하면서 만난 내담자의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소설 형식으로 네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묻는다. 당신은 어떤 딸이냐고.


네 편의 이야기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저항형, 순응형, 경쟁형, 동화형 네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네 명이 딸이 들려주는 네 가지 유형의 모녀 관계는 누군가의 고민이면서 우리가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엄마와의 갈등이다. 각 소설에 등장하는 딸은 오랜 세월 엄마와의 관계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알면서도 그 관계를 바꾸거나 벗어나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으며 알게 모르게 가슴에 박힌 상처 치유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저항형. 엄마와 애인이 만난 자리 이후로 관계가 악화하였다. 애인은 헤어지자고 했고,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만의 성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딸은 엄마와의 기억을 조금씩 되짚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적부터 독립을 꿈꿨던 딸. 엄마를 벗어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게 온전한 바람이었을까. 엄마를 떠나와 외로움과 불안감이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순응형. 좋은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었고, 그 능력은 그녀의 업무량을 증가시켰다. 거절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만 하는 게 익숙했던 걸까. 그녀에게 쌓인 피로감과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경쟁형. 서로 할퀴듯 함부로 대하면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모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엄마는 없었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고, 주변 사람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엄마. 가장 가까울 것 같은 관계가 가장 멀고 다툼의 대상이 된다. 갈등은 극에 달하고 독립을 얘기하지만, 결국에는 엄마와의 화해로 자기의 문제를 바로 본다.

동화형. 자기가 모두를 돌봐야 한다고 여기는 주인공은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선을 넘어서면서까지 주변을 챙긴다.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다. 주변에 말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문제를 안으로만 감싸 안다가 둑이 터지고야 마는 것처럼 큰 문제가 된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는다. 세상에 보이는 모녀의 모습은 보통 한 가지로 다 비슷하다고 여겼는데, 내밀한 속내를 들어보면 그 관계가 다 달랐다.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었던가 싶으면서도, 추려보면 몇 가지로 정의되는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네 가지 유형은 우리가 겪는 모녀 관계 갈등의 대표적인 모습이었고, 그 유형 곳곳에 내 모습도 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새 내가 사는 모습의 중심에 엄마가 있더라. 엄마가 원하는 걸 들어줘야지 하면서 나의 바람을 일부러 잊고 지낸 적도 있다. 가장 다정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삶을 부러워하며 질투하기도 했다. 무슨 관계가 이런가 싶었는데, 그건 어쩔 수 없이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융이 분석하고 저자가 설명해준 이 유형들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던 거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제목만 보면 이 책을 오해할 수도 있다. 생물학적 이별을 앞에 둔 마음 자세처럼 들리지만, 그에 앞서 정신적으로 엄마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상담서에 가깝다. 언젠가 우리가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겠지만, 그 전에 우리가 완성해야 할 것은 엄마와의 관계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동안 겪었을지도 모를 혼란을 마주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관계의 거리감에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이 관계를 다시 보는 시간은 엄마뿐만 아니라 내가 겪는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가 있으면 그 시작점을 찾아봐야 하는 것처럼 관계도 그렇다. 저자의 말도 비슷하다.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내 옆에서 실재하는 엄마의 모습을 인정하면서 정신적인 이별을 준비하라고.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한다. 그리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갇혀 있게 된다.


세상 아이들은 엄마를 통해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이때 엄마의 반응이 아이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반응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수정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발전해간다. 추후 이렇게 강화된 특징은 인간관계에서 기질처럼 발휘된다. (105페이지)


엄마는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 말 그대로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이 나에게도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너무 친밀한 관계, 엄마니까 무조건 해줘야 하는 일들, 그러다가 싸우고 원망하며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상황의 반복이 감정을 상하게 한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완벽하게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네 딸의 사례로 살펴보면 나에게도 이들과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겪는, 자리한 줄도 모르고 가지고 있던, 절대화된 엄마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딸의 심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딸의 모성 콤플렉스에 기반한 심리 특성은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개인의 유형 변화는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한다. 더불어 이 문제는 모녀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인 거다.


그 답은 홀로서기였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엄마와 울면 바로 달려와 해결해주었던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외로움을 이기고 혼자 힘으로 자신의 길을 걷는 것. 그러니 엄마와 정신적으로 이별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함께하되 상처 주지 않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기대지 않는,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존재로 머물러야 한다. 혹시나 어떤 매듭으로 얽혀 괴로워하고 있다면, 감당하지 못해 꾹꾹 누르고만 있었다면, 엄마는 물론이고 많은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한 번쯤 만나도 좋겠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한구석을 짚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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