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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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튀지 말자. ‘보통혹은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서 살면 되겠지 싶었다. 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니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한 적도 없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곤 했다. 그때그때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비슷하게 살아가되 전혀 다른 방향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우리,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 거 아니었나?


십 대 소녀 나쓰키는 스스로 포하피핀포보피아별에서 온 마법 소녀라고 생각한다. 나쓰키는 어쩌다가 이런 상상에 빠져들어 살아오게 되었을까. 단순하게 어린아이의 엉뚱한 상상이라고 여겼다.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등장하는 이 판타지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쓰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엄마의 한마디에 상처 입을 때마다 아이는 자책했다. 엄마에게 언어적 물리적 학대를 받는 이 아이가 도피처로 삼은 게 또 다른 세계였다. 유체 이탈 같은 방법으로, 이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쓰키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가 사촌 유우다. 외계인이라고 여기며 돌아갈 순간을 바라던 유우는 나쓰키의 포하피핀포보피아별을 아는 유일한 존재다. 일 년에 한 번 백중날에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 누구보다 가까운 두 아이는 마지막으로 만난 백중날의 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쓰키에게 놓인 세상은 그저 인간 공장일 뿐이다.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서 자라야 했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공부를 잘 따라야 했다. 그래야만 착한 아이, 부모님의 기대에 맞게 잘 자라나는 아이, 보통의 삶을 누리는 아이로 남을 수 있었다. 나쓰키에게는 이 세상의 방식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자궁으로 새 생명을 번식하기 위한, 육체로 이어진 인간 공장이었다. 잘 키워진 나쓰키 같은 아이는 언젠가 이 공장의 생산품으로 출하될 거다. 이런 방식의 세상은 누가 만든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나쓰키는 이 방식에 반기를 든다. 자기를 이해하는 유일한 대상 유우에게 결혼하자고 말하며 자기 몸이 더러워지기 전에 그에게 닿고 싶어 한다. 육체적 폭력을 당해도 어른들은 인정해주지 않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육체적 행위에는 야단법석을 떤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쓰키는 도모오미와 결혼한 상태다. 나쓰키가 흘러온 시간만큼이나 정신적인 치유와 성장을 이뤄냈을까 궁금했는데,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흡수되어 잘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가 필요하고 원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처럼 가게 된 아키시나의 산속 집에서 유우와 재회한다. 이제 이 세 사람, 나쓰키, 도모오미, 유우의 이상한 동거는 새로운 전환을 맞는다.


, 이런 소설이 가능해? 믿을 수 없는 결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너무 조심스러워서, 이 소설이 흘러가는 모든 과정을 그대로 옮길 수가 없다. 아키시나의 산속 집에 머문 세 사람의 선택을 처음에는 막장 드라마의 삼각관계쯤으로 여겼다. 과거에 결혼했던 남자, 현재 결혼한 남자, 그 사이의 여자 한 명. 이 구도라면 누구라도 나와 비슷한 예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주인공은 끝까지 평범함을 거부하고 이 세계의 인간 공장 폭발시키고자 한다. 공장의 부품으로 이용되는 여성의 자궁을 거부하며, 인간이 그동안 만들어왔던 규칙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폭파한다. 이들이 선택한 도주이자 자신의 삶이었다.


꼭 같은 방식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반드시 살아남을 것. 이 약속을 지키려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지구별 인간은 다른 모습의 삶을 용납하지 않았다. 점점 옥죄어오는 지구별 인간의 그림자를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이들이 그 끝에서 마주한 것은 더는 참지 않고 자기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정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고, 어른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아이를 이끌려고 착취하는 폭력에 대해 강렬한 결말로 보여준다. 이렇게나 다른데,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고?


문장 곳곳에 묻어 있는 소품의 등장이 귀여웠다. 요술봉과 변신 콤팩트, 고슴도치 인형, 마법을 불러오는 퓨트 같이 십 대 소녀의 주변에 충분히 있을 만한 이미지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막상 이 존재들이 일으키는 마법(?)의 힘을 확인한 순간, 우리는 두려움에 빠진다. 굉장히 충격적이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서로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의 폭발일 수도 있다. 인간은 파란 덩어리였고, 피는 금빛 액체로 흘러내리고, 세상은 온통 핑크색이고... 머릿속에 그려보는 이런 세상은 한번 즐겨볼 수 있는 판타지였지만, 막상 이 소설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은 공포였다. 언제부터 고정됐을지 모를 평범한 삶을 강요하는 일은 의미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고, 어떤 것도 똑같을 수 없다. 그저 각자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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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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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 맞춰놓고 챙겨볼 정도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시리즈는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방송을 볼 때도 즐겁게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보고 들었는데, 책으로 정리되어 나올 때마다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었다. 매주 들려오는 주제마다, 세계사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겉핥기로 배운 내용,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빠져들곤 했다. 시리즈 세 번째 책, 이번에는 전쟁이다. 116년 동안 이어진 백년전쟁부터 가장 최근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방송에서 미처 내보내지 못한 내용까지 더해져 전쟁의 역사가 그대로 들려온다. 우리가 아는 전쟁의 이유와 사뭇 다른 목적이 숨겨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까지 파헤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알고 나면 전쟁의 모습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재밌게 지식을 쌓는다는 마음에 읽고 듣기에는 흥미로웠으나, 읽을수록 그 내용은 참담했다. ‘전쟁이란 단어가 주는 장면을 알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그 참상을 확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계사에서 전쟁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는 할까 싶은 절망이 앞선다. 누군가 일으킨 전쟁에 나름대로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그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사람까지 생각하지 않는 건 잔인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백년전쟁, 미국의 독립전쟁,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베트남 전쟁,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요구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 전쟁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동안 배워왔던 기억을 꺼내자면, 이들 나라는 갖가지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다. 그 전쟁에는 양국의 문제도 있었지만,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제삼자가 나서서 전쟁을 발발하며 확대하는 때도 있었다. 각국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겠지만, 무모한 시도는 피를 부를 뿐이다.


프랑스 왕위 세습 문제로 시작된 백년전쟁은 17세의 양치기 소녀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프랑스가 이기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잔 다르크는 마녀로 불리며 화형을 당한다. 이게 말이 되나? 정치적인 이유로 그녀는 마녀로 처형당했다가 다시 정치적인 이유로 명예를 되찾기도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는 하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지만, 어떤 이유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후에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의 존재가 언급되면서 이용되기도 했다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난감하다.


영국의 식민지 13개국이 모여 일으킨 미국 독립전쟁은 그들로서는 치열하게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겠으나, 이 전쟁으로 원주민은 피해자가 된다. 이유도 모르고 연관도 없는 원주민은 피해자로만 남을 일이다. 세상 많은 일에는 주고받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영국은 청나라의 차(tea)를 수입하면서 이 거래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자꾸 손해가 나는 일에 청나라에 개항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보복하듯 몰래 아편을 팔기 시작한다. 이미 아편에 취한 사람들을 휘두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영국은 이 공격(?)으로 넘치는 이익을 뽑아냈다. 메이지 유신은 내분의 명분을 외부에서 찾아내려 조선을 이용했다는 게 억울하게 들린다. 듣다 보면 전쟁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차지하고자 하는 이익을 위해서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원하지도 않는 전쟁의 중심에서 피해자로 남는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영국이 개입하면서 시작된 전쟁이었고, 정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고 있으니, 이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는 누가 구제해줄 것인가. 답답할 노릇이다.


우리나라도 참가했던 베트남 전쟁은, 처음에는 내전으로 시작되었으나 곧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의 규모는 커졌다. 이때 사용된 고엽제는 말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고, 현재에도 이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고엽제와 함께 언급된 게 네이팜탄인데, 자료 화면으로 봤던 네이팜탄 소녀의 장면은 끔찍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뛰어오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웠다. 누가 만든 명분의 전쟁에서 왜 힘없는 민간인이, 어린아이들이 피해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피해자가 되는 슬픔은 어떤 전쟁에서도 비슷하다.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 역시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한국군도 이 전쟁의 민간인 학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견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전쟁은 계속되는가.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은 없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나라는 자국민 보호와 이익을 위해서라는 말을 하겠지. 장기전이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영국과 소련이 연관되어 있고, 특히 소련은 나비 지뢰로 또 한 번 아이들을 학살하는 일을 저질렀다. 소말리아 내전은 부패한 정부를 더는 봐줄 수 없어서 시작되었지만, 이는 또 다른 분단국가가 되는 형국이었다. 특히 소말리아 해적은 유명하지 않은가. 이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여겼는데, 어느 국가의 투자자들은 이 해적을 지원한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 전쟁을 도우려는 것인지 말리려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도다.



많은 전쟁 중 가장 실감하고 있는 게 올해 2월 발발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기에 더 가깝게 들린다. 이 전쟁을 처음 봤을 때는 곧 끝나겠지 싶었는데, 각국이 원하는 바가 너무도 달라 평행선으로 달리는 듯하다. 러시아는 가스관 공급과 차단을 반복하면서 우크라이나의 경제를 옥죄고, 우크라이나 역시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와 거리를 두려고 하니, 서로의 방향이 다르다는 건 명확하다. 문제는 이 전쟁 역시 피해자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데 있다. 핵무기까지 언급하는 러시아의 공격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고 염려스럽다.


전쟁의 이유는 다양했다.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는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선택 때문인 듯하다. 내 것이 아니면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많이 좀 더 강한 국가가 되어야 다른 공격으로부터 우위에 있다고 믿는 건지 왜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갈등을 종결할 수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그 전쟁에서 피해자는 늘어난다. 대화가 필요한 때라는 건 알겠지만, 누구도 쉽게 그 대화의 장에 나서려고 하지 않는 게 또 문제가 된다. 그런데도 화해와 협상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 피해가 더는 계속되지 않도록 말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들려주는 전쟁사가 재미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시험공부 할 때 잠깐 들여다봤던 주제였는데, 이렇게 들으면서 다시 보니 이 역사가 내가 알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게 새롭다. 특히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는데, 그 기록의 내면을 조금 더 섬세하게 본 느낌이다. 전쟁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고, 피해자도 있다. 이 책에서는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와 피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해준다. 소개 글에서 언급했듯이,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다툼과 분쟁, 갈등과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전쟁이 끝나야 하는 이유를 같이 들으면서, 인류 역사에서 더는 전쟁이 언급되지 않을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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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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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날이었다. 벡과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러 간다. 그날은 곧 엘리자베스가 사망한 날이 된다.


8년을 시체처럼 살았다. 눈앞에서 아내를 잃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의사인 그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빈민가에서 환자를 돌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도착한 메일 한 통. 그 메일에 담긴 아내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죽은 아내가 살아있는 건지, 누가 장난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메일을 보낸 걸까? 아주 조심스럽게 보내온 메일은 한 번 더 이어지고, 벡에게 경고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갑자기 무슨 일이지? 게다가 아내가 살해당한 호숫가 근처에서 백골 사체 두 구와 혈흔이 묻은 야구방망이가 함께 발견된다. 점점 8년 전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살해당한 아내의 사건이 진실이 아니었을 거라는 의심이 계속된다.


나라면? 아내가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 메일을 받고 의심만 하고 있을까? 아니다. 호기심은 늘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아내를 그리워한 시간도 이 위험을 선택하는데 한몫한다. 무엇보다 아내와 나만이 아는 신호 같은 이야기가 암호처럼 이어질 때 확신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의 흔적이라는 걸. 죽었다고 생각하고 8년을 지내왔지만, 메일 한 통에 그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메일을 받은 후 취한 벡의 모든 행동은 누구라도 비슷할 거다. 그 호기심을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을. 위험할 걸 알면서도 아내가 보내는 신호를 따라가서 찾아야만 했다. 8년 전 아내의 죽음이 거짓이었다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 어떤 진실을 마주하며 충격을 받더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함부로 속단할 수 없게, 한번 시작된 사건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간다. 주변에 말하고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마다 귓가에 아내의 경고가 울린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특히 FBI에 쫓기는 벡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모든 증거를 그에게 향하게 만드는 FBI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하기까지 하다. 어디 이들뿐인가. 누군가 벡의 모든 생활 주거지를 도청하고 있다. 모든 전화, 이메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의 감시하에 8년을 지내왔다는 게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모든 진실을 파묻은 채로 세월이 흐르게 놔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벡은 누명을 벗고 죽은 아내의 진실까지 마주할 수 있을까?


크고 작은 단서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위기에 처한 벡이 순간을 모면하면서 진실의 중심에 다가설 때마다 긴장하면서 읽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의심스럽다. 아내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장인, 벡의 누나와 함께 사는 쇼나가 정말 벡에게 아군일까, 아들을 구해줬다고 벡에게 호의를 표하는 티라이스가 정말 벡을 돕고 있는 걸까 싶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지시하는 건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심지어 벡이 정말 아내를 죽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실에 다가서다가 매번 뒷걸음질 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언젠가 끝은 있고, 그 끝에서 마주하는 건 진실뿐이겠지. 그때 벡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더한 진실을 마주하며 경악하고 있을까. 한 번의 위기를 벗어날 때마다 반전이 펼쳐질 걸 기대하게 하는 이 묘한 이야기는 뭔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란 바로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진실을 알 것처럼 안심하게 하다가, 마지막까지 다 읽고 나서야 완벽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이 사람이 범인이군 싶다가도, 조금 아쉬운 증거에 그 확신을 무너뜨린다. 우리 사는 곳곳에서 마주하는 많은 일과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 곳곳에 담아내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 이야기 역시 작은 일 하나에서 시작한다. 정의를 찾는다고, 옳다고 믿은 일을 수행하고자 했을 뿐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그걸 바로잡고자 했더니 또 사건은 벌어진다. 작가는 그렇게 크기를 다르게 해서 반복하는 듯한 흐름에, 인간이 따라가려고 하는 호기심까지 심어놓는다. 밝히지 않고서는 궁금해서 잠을 못 잘 갈증을 뿌려놓는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일을 서로 엮어놓고, 그렇게 엮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을 독자가 끝까지 확인해야만 잠들 수 있게 한다.


살면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 실수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몰라도, 해결해야만 하는 게 실수를 저지른 사람의 몫이다. 이야기의 끝에는 결말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에 우리는 인생의 찰나에 조금 더 집중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슬퍼하며 고통에 빠져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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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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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림으로 보는 차별의 역사 같았다. 저자는 권력자의 의도로 달라지는 그림을 이야기한다. 흑인, 장애인, 여성 등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이들은 그저 그림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어떤 혐오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이들의 존재는 상당히 깎아내려 진다.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어떤 소품을 그려 넣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그림의 의미를 저자는 권력으로 달라지는 시선에 집중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 없는 그림의 해석, 누군가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어느 시대이라도 이런 시선을 만드는 이가 있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말한다. 그림을 예술로만 볼 수 없다면 그림이 말하는 시대의 모습까지 같이 보게 한다. 얼핏 권력을 담은 그림 때문에 오해나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을 듯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예술가들이 바라는, 예술 그 자체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에 담긴 많은 대상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듣고 있노라면, 예술이 이래도 되는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린이, 노인, 성소수자, 인종, 질병 등을 중심으로 사회가 정한 정상에서 벗어난 차별을 그려 넣는다. 하지만 이들은 이 차별을 그대로 감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해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작품 속 소품에 머물지 않게 되기까지의 험난한 시간을 저자는 풀어낸다. 4부의 구성으로, 각 장에서는 주제에 맞는 그림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울어진 그림을 부수는 존재들, 그림 속 소품이기를 거부한 여성들, 뒤틀린 권력에 균열을 내는 그림들, 선전 도구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이다.


흑인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걸까 싶었던 그림마저 백인을 돋보이게 하려고 흑인을 배치했다는 게 놀라웠다. 한 인간의 존재가 장치로 사용되었고, 그를 비판하며 흑인의 자리를 찾아주려고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렸다는 화가 바스키아. 얼핏 패러디처럼 보이지만, 웃음이 아니라 진지한 생각을 남겨주는 느낌에 단순한 그림이 아니구나 싶었다. 열 마디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질병이 벌을 받는 거라고 여긴 시대의 잘못된 시선을 말하는 <병든 아이>는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같이 풀어가야 할 문제임을 시사한다. 질병은 단순히 육체의 아픔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꼬집어야 하는 일이었다. <가니페데스의 납치>로 미켈란젤로가 자기의 성정체성을 커버하려고 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영화 <데니쉬 걸>로 알게 된 게르다 베게너의 성정체성을 관한 이야기와 연결해서 보게 되는데, 드러내지 못해서 커버해야만 했던 시대의 배경을 듣는다. 우리가 말하는 정상성은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 되는지 알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한다.


여성 혐오의 시대는 끝나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도 그렇지만, 그림 속 시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러하다. 자신이 태어난 곳인 자궁을 혐오하는 역사가 이렇게 깊었다니. 월경하는 여성을 열등하게 여겼으며, 여성에게는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상을 강요하기만 한다. 그림 속 여성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지 않거나 너무 과하게 해서 욕을 먹는다. 여성에게 모성 신화를 강요하면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심 잡기를 강요에 더한다. 시쳇말로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고 하는 것인가 따지고 싶지만, 모성을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에 모성의 정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계속되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한 <네덜란드 집의 내부> 등의 그림도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한다.


많은 혐오로 사회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우리가 강요하는 이미지는 그 나이와 위치에 맞는 역할이다. 아이도 노인도, 전염병이나 개발로 쫓겨나는 사람들은 많은 불평등에 노출된 거다. 여성의 늙음을 죄악이라 여겼던 <피에타>와 달리, <농암 이현보의 초상>은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렸다. 평소에 생각하던 게 이 그림이 녹아든 것 같아서 설명을 듣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다. 늘어가는 눈가의 주름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확인받은 것만 같다. 이런 것을 보면 그림이 권력에 기울어지거나 혐오에 쓰이는 도구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겠다.


좀 더 분야를 넓혀서 얘기하는 게 마지막 4장이다. 권력자들이 그림을 이용해 자기의 독재나 권력 누리는 걸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기도 한 화가가 있는 걸 보면,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노력한 이들이 분명 있다는 거다. 저자가 그림으로 풀어내고 해석하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다양한 시선으로 예술을 봐야 하는 이유가 이런 거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베네치아에서 열린 코뿔소 전시회>는 이미 제목에서 그림의 의도가 들린다. 관광지에서 보게 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학대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그대로 담았다.


권력자들의 시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 예술 세계. 저자는 많은 그림과 마음을 담은 설명으로 그 기울기를 뒤집는다. 그림에 표현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묵인되었고, 인간이 평등하게 살아가야 함에도 불평등은 늘 있었다는 것. 그림에 담아내지 못한, 그림에 담긴 아름다움이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림을 제대로 보기를 말한다. 제대로는 기존의 설명이나 소개 같은 거 대신, 우리의 시선을 약간 비틀리게 하면서 그림 속 이야기를 담아내게 한다. 많은 것을 보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왔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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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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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9페이지)


무슨 말이야? 어떤 마음으로 저런 문장으로 시작된 소설인지, 첫 페이지 첫 문장에 잠시 궁금증이 스쳤는데, 이상하게 편안해지는 느낌으로 이 소설과 첫 대면을 했다. 누구에게 왜 전하려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참 다정하게 들린다. 모르기에 관계가 없고 한없이 거리가 먼 사이일 텐데, 이런 말을 건네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이 다정한 말을 서로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함께하는 사람과 평온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유리는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통장 잔고 2만 원 정도에 빚이 7천만 원가량 있었다. 이게 인생에 남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순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싶어서 답답했을 텐데, 그때 언니가 먼저 손을 내민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서로에게 완전히 닿지는 않는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남이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정도. 그런데도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 관계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다고 여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도 아니고 오랜 세월 봐온 사이도 아닌데, 이런 호의가 가능하다고?


가능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존중하며 살았으니까. 그 가운데 위로가 있었다. 각자가 가진 슬픔은 다르지만, 그 슬픔의 의미는 비슷하게 겪으며 살아가는 게 우리 인생 아니었었나. 그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나보다 싶고. 유리와 언니 두 사람은 넓지 않은 그 집에 많지 않은 돈으로 사는 데도 크게 불편해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부터 이들이 가족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었다. 각자 자기 일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하루를 이야기하는 관계가 가족이 아닌데도 가능했다. 정말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들은 상대를 존중하듯 거리를 지키며 일상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마음, 관계의 정도가 애매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뭔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서는 것도 아닌데,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을지도.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 (113~114페이지)


영화관에 같이 가서도 서로 다른 영화를 보는 관계, 산책하면서도 가까이 닿지 않는다. 모호하게도 보이는 이 관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는지 알게 된다. 마음이 풍요로워 보이지 않는 이들은 각자가 가진 슬픔과 외로움이 있지만, 그 감정을 살짝 누를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기에 고마움을 안다. 유리와 언니 사이에는 또 싱글대디 재환 씨가 있는데, 그 역시 어떤 순간에 이들을 만나서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서로의 근황을 묻기도 하지만, 이들의 삶에 깊숙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놀랍다.


어쩌면 심심하게 보일 정도로 밋밋한 소설이다.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의 이름이 이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애틋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서 이해의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 사이의 이해는 그 거리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 정도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온기와 유대감이 서로 공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은근하게 다가오는, 조심스러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당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인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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