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혁명 - 콜럼버스가 퍼트린 문명의 맹아
사카이 노부오 지음, 노희운 옮김 / 형설라이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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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는 여섯 가지 씨앗은 인류의 시간-역사의 시간을 함께 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인류를 먹여 살린 이 씨앗이 아직도 생존해 주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

<식탁 위의 세계사>, <식탁위의 한국사>처럼 이미 익숙한 양식이고 내용도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는 것이어서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이지는 않는다.

내용의 새로움이 크지 않은 대신 다른 재미가 있다면 우선 낯선 것에 대해 경계하고 외면했던 유럽인들의 반응이다.

어떠한 주장이나 상황을 설명하고 증거하는 기록들은 재미를 넘어 경외감이 들 정도여서 그들, 기록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주 뜻밖의 경험인데, 시간을 나누는 기원에 대한 어떤 거부감이었다. 감자를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였고, 이 책에 나오는 씨앗들은 기원전부터 인간의 삶과 함께 했던 것들이다. 기원전과 후를 나눔으로써 감자의 시간이 단절되는 것을 느꼈는데 과장을 하자면 감자에 대한 모독 같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향유하고 있는 것이 새로이 발견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분명 생산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의 시대다. 그것도 탐욕적인소비의 시대다. 언제까지 소비가 가능할까라는 걱정과 이렇게 오랫동안 지구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 주는 씨앗들이 고맙기도 하다 물론 지구는 더 고맙고!

영화 <인터스텔라>, <그래비티>가 우주를 향해 있지만 역설적으로 지구 공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은 소비의 욕망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지구에 대한 걱정과 지구 말고 대안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는 우연의 힘이었다. 고무처럼 원재료가 인간에게 유용한 물건으로 거듭 발전하고 적합해진 순간들은 우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자의 눈에만 띄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과 관심을 기울인 자에게만 주어지는 게 우연의 기회다.

담배에 관한 에피소드는 과학적인 증거와 심리적인 물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한다. 담뱃값 인상을 두고, 가격을 인상하면서 이유로 국민건강을 내세웠지만 담배 유해 문구나 그림을 넣는 법안은 미뤄진 것을 보면서, 과학이 도구화 될 때 벌어질 일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의학적인=과학적인 수치는 나와 있지만 심리적 안정 같은 수치는 나와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담배가 해롭다고 하는 것을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 것은 여기 실린 여섯가지 씨앗의 여행기가 아니라 콜럼버스다.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달걀을 깨트려 세우는 창조적 생각의 아이콘으로 어린 시절 우리의 둔한 머리에 꿀밤을 주었던 콜럼버스, 모험가이며 탐험가이며, 개척자였던 콜럼버스, 물론 지금은 그렇게 믿고 보는 사람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무튼 그 신대륙을 발견하도고 죽을 때까지 그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망한 비운의 콜럼버스가 사실은 그냥 선장이었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저 직업인으로서 향신료와 황금을 찾아나선, 배 좀 잘 모는, 바닷길 좀 잘 아는 선장이었다고 하면 콜럼버스가 좀 삐질라나.

내용은 별로 흥미롭지 못했으나, 흥미롭지 못한 내용에서 사유를 확장하도록 하는 이 책이 내게는 어쨌거나 특별한 독서 체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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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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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기 시작해 하루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것은 느린 내 독서력에 비해 빠른 편이다. 그만큼 내용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

 구조주의를 아는 것, 이 책이 해설하는 네 명과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중간 어느 지점에 가서 자연스럽게 해소가 된다.

 그것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이 삶의 방향을 잡는데 유용하다. 관계를 아는 것,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 것, 말해지지 않는 것과 말을 해야하는 것의 이유 등 그것들은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그들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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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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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고 빨래하며 밥상을 치우는 사이사이, <백석평전>을 읽는다.

그리해도 이틀이면 충분할 만큼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감정을 뺀 글에서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느낀다.

 

뒷표지에 보니 안도현 시인이 백석을 만난 것도 스무살때다.

그러니까 나도 백석이 아닌, 백석의 시를 처음 읽게 된 것이 스무살때다.

스무살은 백석을 만나야하는 시간인가.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이 한 줄의 말은 두툼한 이 책의 뒷자리에 들어있다.

백석의 일생을 안도현의 안내로 따라오다가 드디어 만나는 이 말의 울림이 크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슬펐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백석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북한 사회에서 시인으로, 한 인간으로 살아냈다.

이제 이 평전으로 백석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살아냄의 여정을 계속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백석을 만났다고 해야한다.

한동안 다시 백석이다. 아니, 늘, 백석이었다.

백석은 그런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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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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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서를 안내서로 오해.레비나스로 가기위해 출발했으나 도착지였다.과정이 없었으니 더듬거릴수밖에.이 책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싶다면 레비나스의 책들을 미리 읽어야할 듯. 스승과 제자, 책에 대한 해설은 그 자체로 의미있었다.결국한계를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 것이 내게는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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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 삼성세계사상 34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삼성출판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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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도착했으나 먼 미래에 도착한다해도 유효할 아름답고 냉정하며 상식적인 열대 보고서. 문장이 아름다워서 놀랐고,타자를 대하는 마음은 섬세하고 마땅했다. 원주민이란 어쩌면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변화를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던 슬픈 열대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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