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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평점 :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은밀한 사귐의 시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해 애달퍼 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확 끌어당김의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밀당의 시간.
책 밖에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세워놓는 매정한 '주름'의 시간도 있다. 인연이 아니면 그만 두면 될 일이건만 구애의 시간은 고통 조차 추억할 사건으로 만든다.
김영민의 <봄날은 간다>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책 밖에서 그의 기척을 탐지하기 위해 온 몸의 촉수를 뻗쳐들고 있어야만 했다.
무수한 산책길에 동행하면서 그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불화'하면서 '이드거니' 스며드는지 눈 똑바로 뜨고 하나 하나 지켜보고 더러 더러 따라해 보기도 했다.
그가 찔레꽃을 들여다보면 나또한 찔레꽃을 들여다보고, 걷기를 통해 만나는 우연이 불가능한 내 동네를 한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닫는다. 산이 아니라고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걷지 않는 내가 문제다. '해넘을녘'의 강가의 는개를 볼 수 없다고 해도 세상 모든 곳에 황혼은 존재한다.
이렇듯 순간에 집중하려는 나의 노력은, 그러나 휘딱 부는 바람한점에 흔들리고 말았다.
무엇보다 그의 책 마디마디마다 끼어있는 숱한 이론(혹은 철학)의 역습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구애자를 한방에 훅 보내버릴 만큼 막강한 제 삼자(들)다.
듣다보다 처음인 우리말도 얄미운 방해꾼이고 일상적 말이 한자말로 떡하니 세워지니 독자는 그 또한 어려운 사람 앞에 선 아이나 촌사람이 된 것 같다. 참 어려운 상대다.
그동안 읽었던 저자의 책들이 이 책과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도 이 책에 대해 급한 마음이 든 건 이 책이 그 중 가장 개인적인 글들이기 때문이다. 철학가이기 전의 생활인으로서의 그를 엿볼 수 있는 기회. 전주와 밀양에서 산책하며, 가르치며, 만나며 궁글린 그의 생각들이 푸짐하다.
그런데도 이렇게 다가가기 힘든 것은 그만큼 여기 실린 글들이 짧은 만큼 여백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백은 많고 내면은 거울 같다. 여백은 독자의 자발적인 이해와 고찰, 생각으로 채워져야 하는 공간이다.
간신히 한 발 다가가면 슬쩍 나 앉는데 그게 저만치다. 갈테면 가라지 하고 돌아서고 싶은 마음인데, 사랑은 그럴수록 힘이 더 세진다. 그러니 때로는 꼭 그에게 가고 말리라는 심정으로 여백을 채워가기도 했다. 그렇게 놓아주지 않는 것이 <봄날은 간다>의 매력이고 저자의 힘이다.
미처 알아듣지 못해 민망하지만 독자로서 나는 이런 멋진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여전히 행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 내 공부에 절망했다.
책 한 권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시한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다만 한 권에 대한 독서가 어떤 식으로든지 내 삶에 '주름'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저자가 사랑하는 찔레꽃이 내 주변에도 피기 시작했다. 나 또한 특별히 아끼는 꽃이다. 그는 꽃에서, 은행나무에서 신을 보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 꽃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시대와 창의적으로 불화하면서 사는 것, 알면서 모른체 하기의 진경을 나는 아직도 가늠할 수 없어서 저자의 책 밖에서 서성대는 외로운 혹은 애처로운 구애자다. 스승이 너무 커서 올려다보다가 목이 꺾이게 생긴 늦되다 못해 될 성싶지 않은 제자마냥, 그또한 과분하니 '독애'하는 저자에 대한 독자의 짝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