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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채소 레시피 - 냉장고의 골칫거리가 식탁의 주인공으로
주부의 벗사 지음, 배성인 옮김, 이치세 에쓰코 요리 / 안테나 / 2015년 9월
평점 :
어찌되었든 이 책은 어묵국을 끓여먹고 남은 무를 새까맣게 잊어먹고 또 무를 사는 나 같은 주부를 잠깐 주눅 들게 만든다. 아마 랩으로 잘 싸서 냉장고에 넣을 때만해도 내일쯤 무생채를 해서 매운 고추장 넣고 들기름 넣고 비벼 먹으리라는 계획을 했을 것이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온다거나, 아들이 친구들과 편의점 만찬을 즐긴다는 의외의 일만 없다면 어쩌면. 그 사이 무는 머릿속에서 가만히 잊혀지고 바람이 들어 푸석해지면서 쭈글쭈글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자취 10년차, 주부 15년차인 내 부엌살림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나는 불량주부인가? 오늘 먹은 반찬을 내일까지 먹지 않고,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차려내려고 고민하는 걸 보면 그래도 봐줄만 하지 않나. 먹고 사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니 말이다.
자투리까지 알뜰하고 완벽하게 소비하는 법은 삶의 지혜와 간섭 사이에서 양가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주부들은 나름의 방법이 이미 있을 것이고, 이런 책은 그저 당신의 비법은 무엇인지 엿보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개는 정말 자신이 주부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혼자 사는 사람에게 요긴할 것 같다. 그래도 내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자투리 채소를 이용해 반찬을 만들고 한 끼 식사를 만든다고 해도 또 반찬이 남아지더라는 것.
무엇보다 부담스러운 것은 여기 실린 음식들에 사용되는 소스들이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과 들기름을 기본으로 하는 내 식단에 일본식 식단에 들어가는 소스들은 낯설다.
다국적 시대에 음식을 갖고 쪼잔하게 한국식을 따지냐고 혼자 생각해보지만 이것은 그냥 아주 작은 불만이다. 어려서부터 요리 프로그램을 겁나게 좋아해온 사람으로서 버터와 치즈, 올리브유, 레몬즙이 듬뿍 듬뿍 들어가는 요새 음식들이 영 낯설기 때문이다. 된장찌개는 남은 감자, 호박, 양파, 두부를 넣으면 해결되는 자투리 음식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을 즐기는 방법으로 여기에 실린 요리를 작품으로 감상하기로 했다. 나는 진심으로 요리를 한다는 것은 창조적이며 상상력과 응용력,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투리 채소를 이용해서 탄생한 훌륭한 요리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작품이다. 자투리를 이용한 요리라기보다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자투리라는 말이 필요해진 것처럼 여기 실린 요리들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오이를 두드려 자르면 간이 배기 쉽다거나 채소들의 보관 기간 등은 유익하다.
내게 자투리 채소 레시피를 포함한 요리의 기본은 친정 엄마에게 배운 임기응변이며, 헬렌 니어링이 가르쳐준 소박한 밥상(요리 시간은 짧게, 최대한 날 것으로, 그 이유는 나를 위해 쓸 시간을 만들기 위한 것),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읽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에 나오는 이것저것 섞어 넣고 끓인 것이다. 먹는 일이 시큰둥해지는 것은 나이 탓인가 보다.
그래도 이 책은 아직 먹는 일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한 레시피가 될 것은 확실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