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으로 가는 숲에 들었다. 풍문으로 전해진 꽃소식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선두에 서고 게으른 몸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이른 꿈을 꾸며 온 몸으로 봄을 불러오는 여리디여린 풀꽃들을 조심스런 눈길로 만났다.내 더딘 오감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 익숙해지자 비로소 빛이 들어온다. 생명을 깨우며 숨을 불어넣는 빛의 스며듬이 좋다. 사람 발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니 한적하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 진다.봄으로 들어선 숲은 한창 바쁘다. 그 품에 슬그머니 들었으니 나올 때도 흔적 남기지 말자. 이른 봄 숲은 발자국 남기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조심스런 공간이다.걸음을 멈췄다. 천년을 꿈꾸는 생명이 꿈틀대는 진동이 전해진 것이리라. 떡잎이 열리고 햇볕을 품는 순간, 세상을 향한 꿈은 부풀어 갈 것이다.상수리나무의 꿈에 내 꿈을 보텐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저, 한겨레출판"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았다고 한다.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전작이 있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새로운 책이다.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기본 도리가 아닐까. 그의 시각에 공감하여 첫 만남을 시도 한다.
'앉은부채'긴 겨울을 기다려 보고 싶은 식물이 한 둘이 아니지만 놓치고 싶지 않고 기어이 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에 하나가 이 식물이다.
제법 큰 몸통이지만 키를 키우지는 않는다. 땅과 가까이에서 품을 넓히고 그 안에 꽃을 피운다. 꽃은 붉은 얼룩이 있는 주머니처럼 생긴 포 안에 담겼다. 꽃이 지면서 부채처럼 넓은 잎이 나온다. 앉은부채는 꽃을 피울 때 스스로 열을 내고 온도를 조절하는 신비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잎이 땅에 붙어 있고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모양 때문에 '앉은부채'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바위 틈에서 벽을 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면벽 수도승을 닮아 보이기도 한다.
첫 눈맞춤 이후 세번 째 겨울을 맞아 찾은 곳에서는 파헤쳐진 흔적이 많다.독성이 강하다는데 어디에 쓰려는지 의아하다. 어쩌면 더이상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편한 마음이다.
#시_읽는_하루중년의 가슴에 3월이 오면꽃은 사람이 좋아자꾸만 피는가사람은 꽃이 좋아사랑을 하네내 나이를 묻지 마라꽃은 나이가 없고사랑은 늙음을 모르지그러나꽃의 아픔을 모른다면사랑의 슬픔을 모른다면쓸데없이 먹은 나이가진정 부끄럽지 않은가*이채의 시 '중년의 가슴에 3월이 오면'이다. 놓치지 않고 새롭게 태어나는 봄은 늘 현재다. 지금 여기가 현주소이니 오늘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하다. 봄맞이를 하듯 하루를 살고 계절을 누린다면 더이상 나이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없는 꽃을 보는 내 사랑도 늙음이 없다.'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핸드드립커피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아침 햇살이 좋다.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듯 허리를 숙이고 오랜 눈맞춤을 한다. 온 몸에 온기를 나르며 살아 숨쉬게 하는 피가 붉은 이유를 이른 봄 새싹의 빛으로 짐작 한다. 애써 새싹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비로소 봄이 내 몸 안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