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러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다. 후회는 늘 오늘에서 어제를 찾는 일이다. 중심을 오늘에 두었으니 내일로 갈 근거가 된다. 어제를 찾는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걸까.

#류근_진혜원_시선집 #당신에게_시가_있다면_당신은_혼자가_아닙니다 에서 옮겨왔습니다. (04)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구례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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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듯 하지만 불쑥 치닿는 감정이 있다. 버거운 일상에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꽃길을 걷게 하고자 했던 이가 그 몸 마져 버렸던 날이다. 꽃에 물든 마음은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꽃에 물든 마음만 남았어라
전부 버렸다고 생각한 이 몸속에"

*벚꽃과 달을 사랑하며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살았던 가인으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사이교'의 노래다.

강한 볕과 맞짱이라도 뜨려는듯 강렬한 기운을 전하는 꽃이다. 강물의 품 속에 핀 꽃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춘다. 스치는 풍경이 아니라 일부러 주목하여 멈추는 일이고, 애써 마련해둔 틈으로 대상의 색과 향기를 받아들이는 정성스런 마음짓이다.

꽃은 보는 이의 마음에 피어 비로소 향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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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화화'
산들꽃이 관심의 중심이니 뜰에 들어온 원예종은 눈길이 덜 가는게 사실이다. 그래도 눈맞춤을 건너뛸 수 없는 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이 초화화다. 초화화라고 한다지만 유통명인 듯 싶고 정식 명칭은 알지 못한다. 여름 내내 피고지기를 반복하니 가까이 두고 관상하기에 꽃 좋아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나 보다.
 
붉은 색의 꽃들이 줄기 끝에 달렸다. 볕을 좋아해서 낮에 피는 꽃으로 바람따라 한들거리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여 좋다. 멀리서 봐도 자세히 봐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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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범의귀'
실물은 본적도 없고 사진으로도 마찬가지니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멀리 있고 더구나 귀한 것이니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북방계식물로 백두산에는 흔하게 보인다지만 국내에서는 자생하는 곳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행운이다.
 
꽃 진자리에 우뚝 선 모습이라 여전히 다 본 것이라 말하지 못한다. 그 특이한 모양을 머리속으로만 상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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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 학

人有各所好 인유각소호
物固無常宜 물고무상의
誰謂爾能舞 수위이능무
不如閑立時 불여한입시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바가 있고
사물에는 원래 항상 옳은 것은 없느니라
누가 학 너를 춤 잘 춘다고 했나
한가롭게 서 있는 때만 못한 것을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시다. "不如閑立時 불여한입시" 크게 덥다는 대서大暑에 의외로 신선함을 전하는 바람결에 놀란다. 때문인가. 이 싯구가 문득 떠올라 오랫동안 머문다.

요동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그러하니 나 또한 그 요동에 너무도 쉽게 휩싸이게 된다. 말이 많아지고 시류에 흔들리는 몸따라 마음은 이미 설 곳을 잃었다.

긴 목을 곧추 세우고 유유자적 벼 사이를 걷는 학의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숲 속의 꿩도 그 이치를 안다는듯 고개를 곧추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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