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속내를 밝히면 이런 색일까? 다 붉지도 못하는 애달픔이 아닐까도 싶다. 무엇하나 혼자 저절로 이뤄지는 것 없음을 알기에 자연이 담고 있는 그 오묘함에 다시금 놀란다.


잔디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피고 열매 맺는 타래난초처럼 억새의 뿌리의 도움으로 꽃을 피운다. 연분홍 속살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제 할일을 다 했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야고'는 억새에 의해 반그늘이 진 곳의 풀숲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기생식물이다. 꽃은 8∼9월에 연한 홍자색으로 원줄기 위에 한 개의 꽃이 옆을 향한다.


제주도 한라산 남쪽의 억새밭에서 나는데 서울 난지도에 최근 야고가 피었다. 이는 억새를 제주도에서 가지고 온 후 거기에 씨앗이 남아 있어 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 야고는 광주광역시 무각사가 있는 공원 산책로의 인공틀 안에 이식된 억새에서 만났다.


담뱃대더부살이·사탕수수겨우살이라고도 한다. 꽃이 피었을 때 꽃대와 꽃 모양이 담뱃대처럼 생겨 담뱃대더부살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야고는 한자로 野菰라 쓰는데, 들에서 자라는 줄풀이라는 의미이다. '더부살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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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귀 기울인다는 것의 본 바탕은 공존共存에 있다. 홀로 우뚝 서 자신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곁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지는 일이며, 너그러운 마음 자세를 관용寬容이라 한다.

관용에는 네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
두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세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
네 번째는 '나와 다른 것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모르면 세상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만의 맛과 멋을 다른 이와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얻고자 하는 근본 바탕은 공존이 있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시작이다.

이 가을엔 나에게 오는 이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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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경금자는 말하였다."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을 슬퍼하는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았다. 서쪽 산이 붉어지고 뜰의 나뭇잎이 잠잠해지고, 날개를 접은 새가 처마를 엿보고, 창연히 어두운 빛이 먼 마을로부터 이른다면 그 광경에 처한 자는 반드시 슬퍼하여 그 기쁨을 잃어버릴 것이니, 지는 해가 아껴서가 아니요, 그 기운을 슬퍼하는 것이다. 하루의 저녁도 오히려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일찍이 사람이 노쇠함을 슬퍼하는 것을 보니, 사십 오십에 머리털이 비로소 희어지고 기혈이 점차 말라간다면 그것을 슬퍼함이 반드시 칠십 팔십이 되어 이미 노쇠한 자의 갑절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노인된 자는 어찌 할 수 없다고 여겨서 다시 슬퍼하지 않는 것인데 사십 오십에 비로소 쇠약함을 느낀 자는 유독 슬픔을 느끼는 것이니라. 사람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은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유독 가을을 슬퍼 하는 것은, 어쩌면 또한 사십 오십된 자들이 노쇠해감을 슬퍼하는 것과 같으리라!

아! 천지는 사람과 한 몸이요, 십이회十二會는 일 년이다. 내가 천지의 회를 알지못하니, 이미 가을인가 아닌가? 어찌 지나 버렸는가? 내가 가만히 그것을 슬퍼하노라.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옥李鈺(1760~1815)의 글 '남자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를 일부 옮겨왔다. 지나온 시간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가을이다. 이 가을에 제대로 슬퍼할 수 있어야 겨울을 온전히 건널 수 있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몇주가 흘렀다. 그 사이 가을은 이미 이렇게 곁에 와 머문다. 나와 무관한 세상사는 없지만 내 일이라 여기며 공감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그 일부일망정 제때에 제몫을 해내는 이 역시 드물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때가 온 것처럼 물고 뜯고 아우성치는 그 모든 것도 끝날 때가 반드시 온다. 

이제 뚜벅뚜벅 제 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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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잔대'
자줏빛이 선명하다. 색의 선명함으로 무겁지 않고 등치 큰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 특이한 모양에 살아 곧 날아갈 것만 같다.


숫잔대는 남부 도서 지방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변습도가 높거나 소형 늪지대와 같이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다른 이름으로는 진들도라지, 잔대아재비, 산경채라고도 한다.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쓴다.


숫잔대라는 이름은 습지에서 자라는 잔대인 습잔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악의, 가면, 거짓이라는 꽃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신비롭다. 조금만 느린걸음이면 훨씬 많은 생명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묘한 생명들의 모습을 만날 때마다 이 지구라는 별은 사람만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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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後採新茶 우후채신다

乍晴朝雨掩柴扉 사청조우엄시비
借問茶田向竹園 차문다전향죽원
禽舌驚人啼白日 금설경인제백일
童稚喚友點黃昏 동치환우점황혼
纖枝應密深林壑 섬지응밀심림학
嫩葉偏多少石邨 눈엽편다소석촌
煎造如令依法製 전조여령의법제
銅甁活水飮淸魂 동병활수음청혼

비온 후 차를 따다

아침부터 나리던 비 잠시 개어 사립문을 지치고
차밭을 물어 물어 대나무 동산으로 향하노라
한 낮의 새 혀 같은 차 잎, 인기척에 놀라 소리 죽이고
어린 동자 불러 벗 삼으니 어느새 황혼이구려
깊숙한 숲속에는 예상대로 잔가지 빽빽한데
어린 차 잎 다분히 석촌 쪽에 치우쳤구나
법제대로 다려 졌는가
구리병에 생기 있는 차,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오네

*초의 선사의 다송茶頌이다. 가을 장마라며 연일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다. 가을 초입에 찻잎을 따는 것이 생소하지만 8월하순에서 9월 초순에 따는 차를 끝물차라고 한단다. 마침 비 그치고 햇살이 나니 문득 이 시를 떠올려 본다.

가을로 접어들며 싱숭생숭한 마음자리를 다독이는데 차를 마주하는 시간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아직 단풍들지 않은 숲길을 걷는 것은 일부러 가을을 마중하러 나가는 것만 같아 주저하게 된다. 이때 찻잔을 놓고 마주 앉은 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시간이 이때쯤은 아닌가도 싶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초의선사와 교분이 두터웠던 추사의 차에 대한 욕심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글에 들어 있던 다송茶頌이다.

고요함을 찾는 것은 오묘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다. 차를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온다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끝물차 따고 나면 차꽃 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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