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가만 있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음을 다하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한 후에야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꽃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어 보지 못하고 아쉬워만 하다가 오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먼길을 나섰다.


죽령 옛길을 올라 그늘진 경사면에서 첫눈맞춤을 한다. 빛이 없기에 제 품은 빛을 온전히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서성거리다 이렇게라도 본 것이 어디냐며 애써 위안 삼았다. 간밤에 내린 싸락눈 사이에서도 봤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하루를 마감하는 빛을 품고 제 속내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꽃마음이 불원천리 달러온 그 마음에 닿았나 보다. 반짝이는 보랏빛 꽃술을 품는다.


처녀치마, 특이한 이름이다. 땅바닥에 퍼져 있어 방석 같기도 한 잎에서 치마라는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꽃이 필 때는 작았던 꽃대가 활짝 피면서 쑥 올라온다고 한다. 어린 꽃부터 성숙한 꽃까지 봤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차맛자락풀이라고도 하며 비슷한 종으로는 칠보치마와 숙은처녀치마가 있다. 숙은처녀치마는 지리산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올해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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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春雨
참새 소리가 요란하여 창밖을 내다보니 차분하게도 내리던 비가 멈추었다. 솔가지 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참새들의 몸짓이 가볍기만 하다. 며칠동안 새로운 둥지를 짓기 위해 마른 풀잎을 물고 가던 녀석들이었는데 그사이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나 보다.

짝을 지어 서로를 희롱하는 모습이 정답다. 

봄은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라 산과 들을 찾는 발걸음이 저절로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발밑에 돋아나는 풀도 새싹을 내는 나무도 그 사이를 넘나드는 새들에게도 극도로 민감할 때라서 낯선 방문객은 늘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몸짓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처마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도 푸른 꿈을 꾸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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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괭이눈'
큰키나무가 잎을 내기 전 땅에 풀들이 올라오기 전 볕을 받기에 좋은 맨땅에 꿈틀대는 생명의 순간들을 만나는 것이 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옴싹옴싹 모여 핀 모습이 금방 눈에 띈다. 연한 녹색과 노랑색의 어우러짐이 순하여 자꾸만 돌아보게 만든다. 제법 넓은 잎이 든든하게 받쳐주니 꽃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도 가졌다.


옆으로 벋는 줄기는 뿌리를 내린 다음 곧게 서서 자란다. 줄기어 털이 없고 잎에 자잘한 결각이 다른 괭이눈과의 구별 포인트다.


씨앗 모양이 고양이의 눈을 닮았다 하여 괭이눈이라 불리는 종류 중 하나다. 애기괭이눈에서 부터 시작된 괭이눈의 눈맞춤이 흰괭이눈과 산괭이눈에 선괭이눈 까지 왔다. 조만간 금괭이눈을 만나면 내가 움직이는 범위에서 본 종류들이다.


먼 길을 나서는 걸음에 주저함이 없다. 이번 나들이에서 만난 귀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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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십이객花十二客

ㆍ상객賞客 : 모란
ㆍ청객淸客 : 매화
ㆍ수객壽客 : 국菊
ㆍ가객佳客 : 서향瑞香
ㆍ소객素客 : 정향丁香
ㆍ유객幽客 : 난초
ㆍ정객 靜客 : 연꽃
ㆍ아객雅客 : 차마
ㆍ선객仙客 : 계桂
ㆍ야객野客 : 장미ㆍ
ㆍ원객遠客 : 말리茉莉
ㆍ근객近客 : 작약芍藥

*중국 '삼여췌필三餘贅筆'에 송나라의 증단백曾端伯의 '화십우花十友'와 장민숙張敏叔의 '화십이객花十二客'이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장민숙이 선택한 열 두 가지 꽃을 화객花客의 내용이다.

꽃을 보고 즐기는 것의 요체를 어디에 두어야할까. 옛사람들은 화품花品이라 하여 꽃의 품격과 운치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그에 따라 꽃의 품계와 등수를 매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설총薛聰이 모란을 화왕花王으로, 장미를 미인, 할미꽃은 백두옹白頭翁에 비유한 '화왕계花王戒'를 시작으로 양화소록을 지은 강희안이 화목의 기호에 따라서 등품을 매긴 '화목구품花木九品'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다양한 사람들이 꽃의 품격을 이야기 했다.

꽃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현대인들의 상상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꽃을 꽃으로 보는 것을 넘어 꽃이 벗으로 보이고 벗이 꽃으로 보인다면 사람 사귐의 매 순간마다 꽃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이제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봄이다. 그 봄을 맞이하는 봄꽃나들이에서 기품있어 보이는 춘난(보춘화)를 만났다. 몸을 낮추어 이리보고 저리보며 '화십이객' 중 '유객幽客'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세상 일을 피해서 한가롭게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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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_읽는_하루

미간(眉間) 

눈썹과 눈썹 사이
미간이라 부르는 곳에 눈이 하나 더 있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
고인 그늘에 햇빛 한줄기 허공의 뼈로 서 있을 것

최초의 방랑은 그 눈을 심안(心眼)이라 불렀다
왜 떠도는 발자국들은 그늘만 골라 디딜까
나무 그늘, 그의 미간 사이로 자라던 허공의 벼

먼 눈빛보다 미간이 좋아
바라보며 서성이는 동안 모든 꽃이 오고 간다

나무가 편애하는 건 꽃이 아니라 허공
허공의 뼈가 흔들릴 때 나무는 더 이상 직립이 아니다
그늘마다 떠도는 발자국이 길고

뒤돌아보는 꽃처럼 도착한 안부, 어느 마음의 투척(投擲)이 당신의 심안을 깨뜨렸다는 것
돌멩이가 나뭇잎 한 장의 무게도 안 되더라는 말은 완성되지 않았다
온전한 무게에 깨진 미간의 기억이 치명적이었다는 소견, 왜 미간의 다른 이름은 명궁(命宮)일까

사람들이 검은 액자를 오래 바라보지 않는다
화염의 칼날이 깨끗이 발라낸 몸, 뼈가 아직 따뜻한데
직립을 잃은 허공이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눈인사 없이 떠난
그가 나무로 다시 태어날 거라고 믿지 않는 봄날

투척의 자리에 햇빛의 무늬, 밀려가고 밀려오는

*이은규의 시 '미간(眉間)'이다. 되돌이표가 붙은 악보를 보듯 반복해서 읽는다. "먼 눈빛보다 미간이 좋아/바라보며 서성이는 동안 모든 꽃이 오고 간다" 문장 하나를 건너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아픈 봄날의 하루보다 길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수놓는_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나무물고기 #우리통밀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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