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구슬붕이'딱히 대상을 정해두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 그때에 맞는 만남이면 좋다. 그것이 풀이건 나무건 특별히 구분 하지도 않는다. 들어가고 싶었던 숲에 들어 걸음을 멈추고 숲의 공기와 소리, 색과 빛 그리고 냄새까지 내 눈과 귀와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보이는 것들에 주목하면 되는 것이다.
볕이 잘드는 땅 가까이에서 하늘 향해 속내를 마음껏 풀어냈다. 과하지 않은 보라색의 꽃잎에 햇볕을 품에 제 본연의 색을 발한다. 여리디여린 꽃대에 어찌 저렇게 큰 꽃잎을 달고 있을까. 땅에 바짝 붙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슬처럼 자줏빛 꽃이 뭉쳐 피어 구슬이 송송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일까. 구슬붕이에 비해 크다고 해서 큰구슬붕이라고 한다. 비슷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것으로 구슬붕이, 봄구슬붕이 등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숲으로 깊숙하게 내려않은 햇볕이 봄 숲에 기쁜 소식을 던해주듯 큰구슬붕이는 보는이에게 꽃말 처럼 봄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가만히 본다. 순하디 순한 얼굴에 담긴 묘한 매력에 눈을 떼지 못한다. 무엇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이 순함이 좋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 억지나 거짓이 없는 자연自然의 이치가 여기에 있다.넘치거나 부족한 무엇이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되어 저절로 드러남에 주목한다.늦은 봄맞이가 곱다.
조금 남겨 뒀어요.
다음에 오는 바람 섭섭하지 않게?.
'노루삼'한번 봤다고 멀리서도 보인다. 처음 만났던 때가 고스란히 떠오르면서 조심스럽게 눈맞춤 한다. 노고단에서 첫만남 이후 두번째다. 의외의 만남은 늘 설렘을 동반하기에 언제나 반갑다.
흰색의 꽃이 뭉쳐서 피었다. 연한 녹색에서 점차 흰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느다란 꽃대는 굳센 느낌이 들 정도니 꽃을 받치기에 충분해 보인다. 녹색의 숲과 흰색의 꽃이 잘 어울려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삐쭉 올라온 꽃대가 마치 노루꼬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루삼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녹두승마라고 부르며 약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본 모습이 마치 숲 건너편에 서 주변을 경계를 하고 있는 노루를 보는 느낌이다. 꽃말은 ‘신중’, ‘허세 부리지 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