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장나무'
속눈썹을 길게 뽑아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의 꽃으로 기억된다. 길을 가다 보이면 "앗~ 꽃 피었다"며 눈맞춤한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 일부러 찾아보는 경우는 그렇게 없다.

누리장나무, 봄부터 여름까지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누린내나무이고, 중국 이름은 냄새오동, 일본 이름은 냄새나무다. 하지만 꽃이 필 때는 향긋한 백합 향을 풍긴다. 이쁜 꽃을 피우고도 이런 이름을 얻었으니 좀 억울할 만도 하다.

그래서일까? 계절이 가을로 바뀌는 사이 한번더 주목받는 나무다. 꽃만큼이나 독특한 모습의 열매를 보여준다. 붉은 말미잘 모양의 열매받침과 보석처럼 파랗게 빛나는 열매의 어우러짐이 압권이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잔가지와 뿌리는 말려서 약용한다. 꽃도 이쁘고 독특한 열매까지 볼 수 있어 정원수로 가꾸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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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덧없는 푸른 하늘엔 구름 일고 비가 오는데
텅 빈 산엔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셔도 그 향은 처음과 같고
묘용시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시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시를 차용하며 그 의미를 나누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나 "다반향초"가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시종일관에 주목하고 다른이는 물아일체에 주목한다. 다 자신의 의지나 지향점에 비추어 해석한 결과이니 스스로 얻은 이치를 살피면 그만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서 짠물을 건넜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요동치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무심히 바라본 꽃에 몰입한다. 바깥 세상의 혼란스러움과는 상관없디는듯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꽃이나 그꽃을 바라보는 이나 다르지 않다.

고요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몸과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니 우러난 차향과 같다. 비로소 움직이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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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잎꿩의비름'
첫만남은 어느 골짜기였다. 벼랑에 걸쳐 늘어진 모습이 위험스럽기보다는 유유자적 노니는 여유로 다가왔다. 끝에 매단 붉은구슬 같은 꽃봉우리와의 조화도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눈으로 마음으로 담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올해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때를 맞추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다른 끌림이 더강했다. 어느 골짜기에 들어 사람의 정성이 깃든 모습으로 다시 만났다. 올 봄 평창에서 얻어어 뜰에 안착한 모습까지 보았으니 지난해 그 골짜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겨본다.
 
꿩의비름과 비슷하나 잎이 둥글어서 둥근잎꿩의비름이라고 한다. 붉은색 꽃봉우리를 들여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핀 꽃들이 참으로 이쁘다. 한국특산종으로 꽃이 매우 아름답고, 번식도 잘 되며, 키우기도 쉽기 때문에 관상용으로도 많이 키운다고 한다.
 
다시 기회를 얻어 그 골짜기에 든다면 보다 차분하게 눈맞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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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듯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시인의 시 '긍정적인 밥'이다. 가치는 그것을 알아보는 이에게 의미를 가진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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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차례 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지에 연꽃이 피면 구경하기 위해 한 차례 모이고, 국화꽃이 피어나면 한 차례 모이고, 겨울에 큰눈이 오면 한 차례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한 차례 모인다.

모일때 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을 마시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준비물을 마련토록 하여, 차례대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까지 한 바퀴 돌아가 다 끝나면 다시 시작하여 돌아가게 한다."

*정약용의 '죽난시사첩서竹欄詩社帖序'에 나오는 문장이다. 죽난시사는 정약용 선생이 시詩 짓는 사람들과 만든 차茶 모임이다. 나이가 4년 많은 사람으로부터 4년 적은 사람까지 모이니 15명이었다. 이들이 모여 약속한 것이 이 내용이다.

옛사람들의 이 마음이 부러웠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모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그들대로 지금은 또 나름대로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누리면 되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자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해가 바뀌어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지면 섬진강 매화와 눈속에 복수초 필때 한번,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필때 한번, 동강할미꽃 필때 한번, 깽깽이풀과 얼레지 필때 한번, 한계령풀 필때 한번, 병아리난초와 닭의난초 필때 한번, 참기생꽃 필때 한번, 지네발란 필때 한번, 병아리풀과 남개연 필때 한번, 금강초롱꽃 필때 한번, 해국과 물매화 필때 삼삼오오 모였다.

챙길 준비물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꽃 담을 폰이든 카메라든 이미 있고, 꽃보며 행복했던 눈과 마음이 있기에 빈손으로도 충분하다. 꽃을 사이에 두고 가슴에 품었던 향기를 꺼내놓고 꽃같은 마음을 나누면 그만이다.

꽃이 시들해지는 때가 오니 꽃길에서 만나지 못한 벗이 그리워 갯쑥부쟁이를 핑개로 다시, 바다를 건너 꽃놀이를 다녀왔다. 한해를 마감하기에는 턱없이 이른 때이긴 하지만 꽃쟁이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시기이니 그것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벌써 섬진강 매화피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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