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雨蕭蕭送薄涼 추우소소송박량
小窓危坐味深長 소창위좌미심장
宦情羈思都忘了 환정기사도망료
一椀新茶一炷香 일완신다일주향

가을비가 소소히 내리며 서늘함을 보내오니
작은 창 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그 맛이 깊고 깊도다
벼슬살이 시름 나그네 근심 모두 잊어버리고서
향불 한 심지 피워 놓고 햇차 한 잔 마신다네

*고려사람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다.

많은 이들이 가을 단풍에 주목한다지만 가을의 또다른 정취를 전해주는 것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 만한 것이 있을까. 올가을 귀한 비로 목마른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다소 시끄러운 속내를 달래줄 비를 기다리며 옛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의지해 본다.

남쪽의 가을은 앞산 무릎에 올라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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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
가을 숲은 빛의 천국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에 온기로 스미듯 달려드는 가을볕의 질감이 대상을 더 빛나게 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이 그렇고 요란스러운 단풍이 그렇다. 그 가운데 꽃보는 묘미를 빼놓을 수 없다.

짙은 청색의 색감이 주는 신비로움이 특별하다. 먼 하늘로 땅의 소리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세워둔 종모양의 꽃이 줄기끝이 모여 핀다. 까실한 가을 햇살과 잘 어울리는 꽃이다.

용담龍膽은 용의 쓸개라는 뜻이다. 그만큼 약재로 유용하게 쓰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약초꾼이 아니기에 이쁜 꽃일 뿐, 가을 산행에서 놓칠 수 없는 꽃이다.

아름다운 꽃에는 유독 슬픈 꽃말이 따라붙는 경우가 많은듯 하다.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는 꽃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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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추
뒷산 숲길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꽃이다. 바위틈에도 사는 것으로 보아 척박한 환경에도 적응을 잘하는가 보다. 올해는 먼길 나서서 만난 꽃이기에 더 반가웠다.
 
홍자색으로 피는 꽃이 줄기 끝에서 조밀하게 많이도 달렸다. 꽃술을 길게 빼고 하나하나 거꾸로 달린 모습도 이쁘지만 이 자잘한 꽃들이 모여 둥근 꽃 방망이를 만들어 눈에 쉽게 띈다.
 
익히 아는 채소인 부추의 야생종이라고 한다. 산에서 자라니 산부추로 이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식물로 산마늘, 산달래, 참산부추, 두메부추 등 제법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산부추 역시 부추 특유의 똑쏘는 맛을 내는 성분이 있어 스스로를 지켜간다는 것으로 보았는지 '보호'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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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 산행
閒花自落好禽啼 한화자락호금제
一徑淸陰轉碧溪 일경청음전벽계
坐睡行吟時得句 좌수행음시득구
山中無筆不須題 산중무필불수제

산길을 가다
조용한 꽃 절로 지니 고운 새 우짖고
외길 맑은 그늘 푸른 계곡 따라 도네
앉아 졸고 가며 읊어 가끔 시 되어도
산에 붓 없으니 적으려 할 것도 없네

*조선사람 김시진(金始振, 1618~1667)의 시다.

숲에 들어 한가로운 걸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헐거워진 숲에는 까실한 볕이 들어올 틈이 넓어졌다. 누운 나무 둥치에 깃들어 사는 이끼들에게도 볕이 찾아 들었다.

겨울을 건너기 위해서 볕의 온기가 필요한 것은 이끼뿐 만이 아니다. 숨을 쉬는 모든 생명들에게 틈을 열어 온기를 품도록 허락하는 가을숲의 여유로움이 고맙다.

없는 붓을 핑개로 수줍은 감정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는 가을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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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비상하는 새의 꿈은
날개 속에만 있지 않다 새의 꿈은
그 작디작은 두 다리 사이에도 있다
날기 전에 부드럽게 굽혔다 펴는
두 다리의 운동 속에도 그렇고
하늘을 응시하는 두 눈 속에도 있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우리의 몸속에 숨어서 비상을
욕망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을 보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그것들을 반짝인다

모든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잎이나 꽃의 힘에만 있지 않다
나무의 꿈이 푸른 것은
막막한 허공에 길을 열고
그곳에서 꽃을 키우고 잎을 견디는
빛나지 않는 줄기와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꿈이 그러하다
깜깜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숨어서 일하는 혈관과 뼈를 보라
우리의 새로움은 거기에서 나온다

길이 아름다운 것은
미지를 향해 뻗고 있기 때문이듯
달리는 말이 아름다운 것은
힘찬 네 다리로
길의 꿈을 경쾌하게 찍어내기 때문이듯
새해가 아름다운 것은 그리고
우리들의 꿈이 아름다운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비상하는 날개와 다리와 눈과
하늘로 뻗는 줄기와 가지가
그곳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오규원 시인의 시 "잎과 가지"다. 깊어가는 가을 나를 있게 하는 모든 수고로움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드러나지 않는 너로 인해 오늘의 나는 내 삶을 살 수 있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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