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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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리움일까

시린 겨울이면 아버지를 떠올린다어느 겨울 새벽 유난히 별이 밝았던 날 먼 여행을 떠나신 그 겨울이다가난한 농촌 집안의 장남으로 때어나 땅을 일구며 일가를 이루시기까지 말로 다하지 못할 일상을 한국 현대사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아버지 세대들이 고스란히 겪었을 그 모든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른 한 사람을 만났다전리북도 지금의 익산 지역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간 이춘기(1906~1991) 옹이 그분이다이 책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는 이춘기옹의 일기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세월이 하루도 빠짐없이 담겨있다.

 

농촌지역에서 과수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듯 자식 교육에 매진하여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담겼다아내를 먼저 보내고 겪게 되는 일상의 어려움과 주변 사람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재혼하고 다시 파혼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한 농촌 가정이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일꾼이나 품앗이를 비롯한 농촌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비롯하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생활문화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비롯한 굵직했던 현대사의 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이나 농촌 지역사회가 공통으로 감당해야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한 시대를 아우르는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한 개인의 이와 같은 기록이 갖는 가치는 무엇보다 크다앞선 시대인 조선의 선비들의 개인적 기록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삶의 지혜를 전해주듯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로 정리된 이 일상의 기록 역시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시대상을 반영하고 한 시대의 생활방식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민속을 증거 할 자료로도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어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본다.한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기록이 가지는 가치를 재발견 하는 시간이다.

 

1938년 생이셨던 내 아버지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 몸으로 그려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다나와는 다른 세대의 이야기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던 기억 속 농촌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며내 기억 속 아버지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다른 이의 기록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공감대의 발로이리라.

 

한국 땅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일상을 따라가는 것이 앞선 세대에 대한 채무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감당하기에 버거운 무게로 다가온다이춘기 옹의 삶에 비추어 보며 자꾸 반복해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것어쩌면 그리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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