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여름날 그 폭염아래 민낯으로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한없이 붉게 타오른다. 살갓이 벗겨지는 것 쯤이야 개의치 않고 스치는 바람에도 간지러워할 만큼 민감하다. 연인을 향한 불타는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불꽃을 피워 올린다. 그 정이 넘쳐 주름진 잎에 고였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시 '백일홍'이다. 붉은 꽃이 백일 동안 핀다 하여 백일홍이라 하는데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많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핀다. 색깔은 홍색이 보통이지만 백색·홍자색인 꽃도 있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보한집'이나 '파한집'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선비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곳의 광주호로 흘러드는 개울을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근처 명옥헌 뜰에는 이때 쯤이면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저정된 부산 양정동의 '부산진 배롱나무'로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내 뜰에도 다른 나무보다 많은 숫자의 배롱나무가 있다. 모두 꽃보다 고운 마음을 가진 이들의 정성이 깃든 나무들이다. 그 배롱나무도 붉은 꽃이 만발하다.


여름 햇볕에 달궈질대로 달궈진 마음을 주름진 꽃잎에 담아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인듯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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