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향 머무는 시간'

눈 속의 겨울매화, 비 내린 후의 난초
雪裡寒梅雨後蘭설리한매 우후난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워라
看時容易畵時難간시용이 화시난

세상사람 눈에 들지 못할 것을 일찍 알았던들
早知不入時人眼조지불입시인안

차라리 연지(燕脂) 잡고 모란이나 그릴 것을
寧把膽脂寫牧丹영파담지사목단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단서를 제공하고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 조선 전기 훈구파에 대항한 참신한 정치 세력이었던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1431~1492)의 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원성을 사뭇 심각하게 담았다. 그런다고 그로써는 세상쫒아 모란을 그릴 수야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눈 속 매화의 절개와 비 맞은 난초의 기품을 알아버린 고수의 몫은 아닌 것이었기에ᆢ

시를 쓴 사람이 담은 뜻 따로 있겠지만 이 시를 대하자니 마음은 대숲에서 눈맞고 고개숙인 차꽃이 머문다. 이제 찬바람에 눈 쌓이는 겨울임에 틀림없다. 몸보다는 마음 깃 잘다독여서 낙안땅 금둔사 납월매의 그 붉은 마음 음미할 날을 기다리련다.

겨울이 춥기만해서 마냥 피할것 만은 아니다. 매향, 차향 담은 꽃과 새 잎도 이 차가운 겨울 덕분에 가능한 일 아닌가. 그대 몸 버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음 깃 잘 여며서 이른봄 매화향이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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