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학의 출발, 부끄러움을 아는 것

인문학 열풍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대중들과 만나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이 등장했다. 우선 반갑고 좋은 일이다. 강단에서 사람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머물던 인문학이 사람 곁으로 다가서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더욱 환영할만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것이니 이보다 좋은 기회다 또 없을 것이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분야에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류에 편승하여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불호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이러한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기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에 집중되는 현 인문학에 대한 평가다. 소위 말해 인기강사로 급부상한 대중강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인문학자들에 대한 시각이 갈라진다는 점이다. 그 중심이 강신주와 최준영이 있는 듯하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최준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인문학 실천가, 노숙인 인문학자, 길거리 인문학자, 거지 교수’ 등이 그를 일컽는 호칭이다. 다양한 호칭에서 공통점으로 찾을 수 있는 점은 낮은 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얻는 호칭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것이 인문학이기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 삶이 버거운 이들을 찾고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한 결과다.

 

저자 최준영의 이야기를 솔직히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거리에서 감옥에서 그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소통의 과정에서 발견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 속에서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 반갑다. ‘420자 칼럼’으로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며 사람들과 공유했던 저자의 속내 또한 볼 수 있는 기회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은 거대한 무슨무슨 주의가 아니다. 그저 쉽게 읽히는 에피소드들 속에 담긴 사람들의 속내가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를 만들어 준다. 이 점이 반갑고 저자의 그간 행보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저자의 일상이 그저 학문에 갇힌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변변할 것 없는 학벌, 경제적 궁핍,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낮은 곳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이유가 된 것이 아닌가도 싶다.

 

한자에 恥(치)라는 글자가 있다. 부끄러울 치로 이는 자신을 향한 감정을 중심에 두고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다. 가만히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동안 자신을 향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치심(恥心)이다. 몸과 마음이 밖으로 향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한 나의 마음 씀과 행동을 스스로가 어떠했는지를 자신에게 묻는 마음일 것이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제목 속에서 바로 이런 치심(恥心)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이 어쩌면 인문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