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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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G2시대, 중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등장 한 것은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서양의 제국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수천 년 동안 중국 역시 많은 왕조들이 부침의 역사를 반복했다. 그러한 중국의 역사는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와 맞물리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이다. 한때, 짧은 기간 동안 내전을 겪으면서 그 지위가 약화된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G2의 위상은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역사 역시 그런 중국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조선 이후 고구려와 고려, 조선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와 중국의 관계는 곧 현대 한국이 처한 동아시아에서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결코 약화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우두머리인 미국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며 그 지위를 격상시키고 있는 중국은 우리의 이웃으로 경제적 교류가 중심이 되지만 그 이전에 북한과 함께 한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 이것이 중국을 현대적 관점에서 본질적인 측면을 살펴야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중국과의 관계에서 전쟁이라는 극단의 조치를 통해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것이 고려 말과 조선의 정묘, 병자년에 일어난 양대 호란이다. 임진왜란보다 더 굴욕적인 역사가 어떻게 보면 이 양대 호란일 것이다.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정통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문학부분에서도 이미 다뤄진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단편적이나마 잘 알려진 역사가 아닐까도 싶다. 하지만, 양자 호란을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조선 내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심도 깊게 다룬 대중 출판물이 얼마나 될까?

 

푸른역사 출판사에서 발간한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1, 2’는 1627년(인조 5년)에 일어난 후금과의 전쟁인 정묘호란 전후로부터 1636년(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후까지 동아시아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단순히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중심으로 한 47일간의 이야기나 주화파 척화파나 삼학사, 삼전도 굴욕 등 역사적 단편을 중심으로 병자호란을 다루지 않고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우선 ‘병자호란 1’은 그러한 흐름에서 중국의 역사인 명나라와 청나라 정권 교체기와 조선의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던 인조반정과 1627년의 정묘호란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후금(後金)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치루는 동안 명나라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는 조선에 대해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정립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숭명배금(崇明排金)’을 바탕으로 한‘재조지은’이라는 임진왜란 때 입은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에 묶여 변화하는 당시 정치적 역학관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런 때 후금은 정묘호란으로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으면서 평화’를 유지한다는 정치적 기조를 목적을 이룬 것이다.

 

조선이 명나라에 발목이 잡힌 이유가 뭘까? 임진왜란 때 입은 은혜가 표면상 직접적인 이유로 볼 수 있으나 그 이전의 관계를 제대로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중심에 성리학이라는 사상의 유입으로 조선의 중심적 사상으로 자리 잡은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임진왜란 당시 구원병을 보내준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살펴야 할 것이 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등장한 인조반정이 그것이다. 정권을 바꿀 만큼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등장해 그런 정치적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살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말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점은 어느 정권이든 권력의 근본 바탕인 백성을 외면해서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정권이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백성은 살아남아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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