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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1 -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고선미 지음 / 스프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결혼 후 달라지는 것들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남자들이 주목받았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오면서도 일상의 모든 중심에 가족이 있었던 남자들의 이야기는 IMF라는 경제적 위기의 시대에 살며 직장으로부터 쫓겨난 가장의 실질적 위기감과 함께 한 인간으로써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책임감을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 경로를 통해 조망하며 그 남자들을 주목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젠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사회적 분위기는 지나가 버린 것처럼 다시 휑한 바람만 분다. 이렇게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삶의 무게를 더하는 것이 남자들 뿐 이겠는가? 인간이라는 공동의 범주에 속한 남자와 여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을 때 그 가치는 빛나는 것이기에 삶의 무게 또한 여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한 여자들에 대해 여성의 인권과 같은 대의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소설 ‘클라리 세이지’는 결혼한 여자들에 집중해서 그들의 일상을 드려다 보고 있다. 한창 육아와 교육이 집중되는 아이를 두고 일터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정으로 돌아왔거나 전업주부의 길을 가는 네 명의 여자들이 ‘클라리 세이지’라고 하는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정말이지… 우아하게 살고 싶었답니다.”라는 고백처럼 누구라도 ‘사랑’이나 ‘연애’, ‘결혼’에 대한 자기만의 상상한 이미지가 실제 생활을 살아가는 동안 꿈이 깨지는 현실을 직면하고 난 후 흘러간 시간과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담겨있다.
사랑의 상처를 안고 결혼한 지아는 뇌수술 후 기적적으로 살아나 두 딸아이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지아, 17개월 된 딸 지수와 넉 달 안 된 쌍둥이 아들들 때문에 처절한 육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사는 한때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수정, 국민요정 아이돌 출신으로 이혼 후 이제는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생계형 연예인인 소영, 의사 남편에 임신 중인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명인사 해밀. 이 네 명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서 느끼는 여자와 엄마, 부인으로써의 존재감의 상실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클라리 세이지’라는 공간의 회원으로 익명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회원들 상호간 대화로 일상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해 가는 것이다. 네 명의 결혼한 여자들이 주인공이기에 그 안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 남자들이 없다면 ‘결혼한 여자’라는 전재가 성립할 수 없다. 같은 시각으로 남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구성되었다면 어떨까?
가상공간이며 이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되는 ‘클라리세이지’[Clary Sage]는 식물로 ‘안정, 치유’ 또는 salvo ‘구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네 명의 여자들에게 휴식과 위안의 공간인 그곳의 이미지를 닮은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네 명의 여자들에게만 ‘클라리 세이지’와 같은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이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위안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공간의 긍정적인 역할을 부정하거나 애써 축소할 생각은 없다. 그곳 역시 가상이기는 하지만 분명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곳이고 또 현실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변하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다소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감당해야할 현실의 무게는 무겁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만들어가는 이 사회는 그들의 상호간을 인정하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바가 없다면 지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결혼한 여자들의 현실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이기에 이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