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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 내 생애 최고의 '사랑 고백'을 꿈꾸는 그대에게
천양희 외 지음 / 곰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고백
내겐 말할 때도 듣게 될 때도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말이 있다. ‘사랑’이 그 말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랑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색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모르겠다. 하여,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에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에 원인규명까지 다용도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겪게 된다는 그 첫사랑조차도 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겐 그렇게 어려운 사랑과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만난다. 시인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에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편지라고 하면서 제목도 그럴싸하게 붙인 책이 있어 보자마자 손에 들었다. 그 이름도 거룩한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책이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막상 손에 들고서도 내용보다는 제목에 꽂혀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던 밤에 손에 들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읽어갔다. 세상을 남다르게 보는 시인들의 이야기라 더욱 더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대한 편지글 모음인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에 참여한 시인들로는 천양희, 김경주, 이근화, 박정대, 유형진, 조용미, 윤성택 등 20명이다. 시인들이 제 각기 털어 놓는 ‘사랑고백’이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시인들의 사랑고백의 육필을 실었다는 것이다. 활자화된 이야기보다 손수 쓴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개성 넘치는 글씨의 매력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가 담고 있는 느낌상의 이야기는 아픔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처럼 세월이 한 참이나 지난 후에 옛사랑에 대한 편지를 쓰다 보니 가슴 속 가만히 놓아두고 애써 다독이던 감정이 살아나 어쩌면 과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편지가 옛 그 시절을 함께 공유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살아 있다. 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랑에서부터 소년 소녀 때 가슴 설레던 그 풋풋함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기에 가능한 자기 성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랑고백을 접할 수 있다.
당신과 함께했던 봄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혼자서 보낸 봄들도, 나머지 봄들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해마다 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애틋했습니다.(조용미, 「봄의 묵서」 중에서)
과연 그럴까?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모든 사랑은 첫사랑일까? 첫사랑이 처음사랑이 아닌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 당면한 사랑이니 첫사랑이라 해도 될 듯도 싶다. 그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 담긴 가슴 진솔함을 나눌 수 있다면 말이다. 여기 20명의 사랑도 지나간 사랑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람으로 읽힌다. 하여, 자신을 떠난 연인에게 여전히 ‘잘 있지 말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아린 시간이었더라도 공유한 무엇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 애틋할 것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관한 정의 중‘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박정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채 비바람 속에 서 있는 일’(유형진), ‘전 생애를 비밀에 걸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윤성택), ‘덜컹이는 눈물 너머 당신에게 오래오래 손을 흔드는 것’(윤성학) 이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들은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낭만도 사랑도 시들해진다고 서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기막힌 스무 명의 시인들의 가슴 속을 들여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