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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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세상 어디에 있든 실시간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는 현대인들 사이에 소문만 무성한 사람이 존재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 카메라에 걸리고 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속옷까지 알 수도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오늘날 한 사람에 관한 소문이 풍문으로 떠돌고 그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시인이 낸 산문집이라고 해서 선택한 책 제목이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다. 저자인 시인에 대해 난 알지 못하고 시인에 대한 나만의 선입견이 작용하여 제목만 보고 골랐는데... 엉뚱한 말 빨에 놀라길 수없이 반복한다. 앞에서 언급한 소문만 무성한 시인의 책이라고 한다. 그가 바로 류근이란다.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시를 한 편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18년 만에 전작시집을 출간하면서 그에 대한 소문 또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하니 그 소문 또는 풍문이 뭔지 궁금할 뻔한데도 이 산문집에서 ‘천재이면서 술주정뱅이이고, 자산가이면서 거렁뱅이고 만인의 연인이면서 천하의 고아 같은 외톨이’라는 그 이유를 발견하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듯싶다.

 

시인의 가슴에 가득한 것이 무엇일까? 혹, 무엇인가가 있어 그것도 가득한 그것이 넘칠 것만 같아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지극히 솔직한 그의 글에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향한 독설에 때론 어쩔 수 없이 민폐를 끼치면서도 그처럼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 표현되는 그의 독설들은 어쩌면 상처받은 내면의 자아가 살아가고자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몸부림은 아닐까?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 버리고 싶은 건가.

(본문 199페이지)

 

이러한 고백이 시인의 속내를 담고 있어 보이기도 한다. 술을 밥보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밥이 없어 술을 마시며 한 사람의 가슴에 담기지 못하기에 만인의 연인으로 자처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너무도 견고하여 뭇사람들 속에서도 외톨이가 아닐런지. 그가 던지는 세상살이에 대한 독설이 세상과 힘겨루기하다 지친 패배자의 이야기가 아닌 승자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은 시인의 속내에 담겨진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단단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좋다.

 

대부분 시인의 산문이기에 책을 펼치는 동안 그 시인의 시를 찾아보곤 하는데 이 류근 시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책을 접할 때도 책을 다 읽었을 때도 시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처럼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시실로 오랜만이어서 내심 당혹스럽다. 살아가는 동안 일상에 지칠 때 혹 기억의 한 자락에 남아 있다 되살아나는 날 그의 시 한편 찾아 위안 삼아도 좋을 듯싶다. 류근 시인이 만들고 김광석이 부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에서 위안 받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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