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조정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 조정래는 대학시절 대하소설로 만났다. 세상이 어지럽고 그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던 시기였고 그들이 맞서는 세상은 권력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런 권력을 용인하는 제도와의 싸움이엇다.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제도는 견고해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힘들 때 작가의 작품들은 그나마 숨을 쉬게 만들어주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인간, 철학, 정치, 경제학, 사회와 같은 묵직한 서적들이 중심인 당시의 책읽기에서 문학은 보다 깊은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렇게 만난 조정래의 작품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작가가 다루는 작품은 시기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어서 작가 역시 그 제도적 장치에 의해 억압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역사와 민족, 자유, 인간의 본성 등을 중심으로 한 작가의 작품이 당시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등불 역할을 한 것이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은 다시 만난 것은 작가 관점을 달리해서 집필활동을 한 작품이 출간되면서부터다. ‘허수아비춤’은 자본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재벌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렸다. 이 작품 ‘정글만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이며 한발 더 나아가 중국과 한국의 현주소를 확인하며 미래를 열어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재의 변화는 어쩌면 달라진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삶 자체가 버거웠던 지난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라진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그 변화로 인해 혹 간과하는 것이 안니가 싶은 자본과 그 자본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의와 인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골이 깊어지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정글만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몇 가지로 분류되지만 전대성과 김현곤의 이미지가 중복되고 정글이라고 하는 극단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치열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의 전개도 그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이는 골드그룹의 고의부도처리에서 인위적인 처리로 이야기의 단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주인공 전대성은 어쩌면 정글에서 살아가는 전사의 모습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보인다. 경쟁의 현장에서 어쩌면 한 발 떨어져 있는 것 같이 인간성은 좋고 중국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후계자 수업에도 충실하다. 같은 한국인에 대한 전대성의 태도는 올바른 모습으로 정의된다. 그가 명퇴를 결정하고 중국에 남아 펼칠 사업의 성패가 어떨지 다 그려진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글만리’가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동안 1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접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리도 없겠지만 책으로 출간되면서 그 인기는 여전하다. 한 사람의 독자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느끼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그 허전함은 허수아비춤과 정글만리 두작품 모두에서 느껴지는 동일한 감정이다. 이는 기대가 큰 만큼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느끼는 그런 허전함이다. 그렇더라도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로써 충분히 주목받아야 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