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내린 눈이 햇살에 녹아 내린다.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이 하도 아까워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포근하기만 하다. 이곳 연화리로 이사한 후 두번째 겨울이지만 첫번 겨울은 여유없이 지나다 보니 계절이 주는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듯 싶어 올해 들어선 주변 정취에 눈길을 자주 주게된다.

 

이곳 연화리 연꽃이 핀 듯 나즈막한 산들이 둘러싼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지명이 연화리다. 그렇다고 답답함을 주는 산중 마을은 아니고 탁 트인 시야까지 확보된 곳이다. 마을이름도 마음에 들고 주변 경치도 마음에 들어 점점 더 정이가는 곳이다.

 

집에서 나와 마을 뒷길을 통해 용주사라는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다. 용주사는 막결혼하고 신혼시절 처 이모님의 안내로 와본 곳이다. 아주 조그마한 암자이지만 독특한 지형과 암벽이 만들어 놓은 자연동굴까지 있어 특이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 인연이 있었지만 이 곳에 이사한 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눈 내린 이 겨울 그 눈이 아까워 길을 나선 김에 용주사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마을 뒷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을 내려다 본다. 손 닿을만한 저곳에 내가 사는 곳이다. 멀리 관음사가 있는 산도 보이고 햇살이 전해주는 눈부심으로 나무 잔 가지에 쌓인 눈이 더 빛을 발한다.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눈길을 따라가다 보니 발자국이 보이는데 오다가 다시 돌아간 듯 끊겨있다. 등선이를 넘어서자 한 사람이 앞서 걷고 있다.

 

이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데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했기에 서둘러 그 분 곁으로 다가 선다. 지난해 이사온 사람이라며 인사를 나누는데 산책 나선 길이냐며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용주사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눈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이 그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은근

한 마을 자랑이 담겨 있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길을 걷는 다는 어르신은 내게 산책하기 좋은 길들을 이곳 저곳 알려주신다. 생각치도 못한 동행을 만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용주사에 도착했고 어르신은 다시 길을 돌아 가셨다.
 
용주사는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에 소재한 조계종 송광사 말사라고 한다. 연화산 기슭에 자리한 곳이라는데 연화산이 얼마전에 올랐던 연산을 일컽는 말인지 확실하지 않다. 연산의 아랫동네에 해당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연산을 오를때도 느꼈지만 연산은 분명 바위산이다. 이곳 저곳 사람을 압도하는 바위들이 산재해 있다. 용주사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주인처럼 버티고 있다. 바위밑에 약수가 흘러 나온다. 지난밤 추위에도 얼지 않고 달콤함을 전해주는 물이다. 약수가 나오는 바위 위에 고드름이 한창이다. 또한 바위틈에 앉은 부처의 모습이 앙증맞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왕대가 숲을 이룬 이곳은 또다른 눈 정취를 전해준다.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암자의 고즈넉함과 잘 어울린다. 겨울 정취의 맛을 한껏 전해주는 것으로 대나무에 쌓인 눈을 놓칠 수 없다. 이곳에서 보는 눈 쌓인 대나무도 절경을 이룬다.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은 혼자다. 햇살에 눈이 녹는 것이 안타까워 나섰던 길이지만 다시 눈이 내려 눈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산길의 호젓함을 방해하는 고속도로 소음을 피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겨울산 그것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정취를 더해주는 이 맛이 참 좋다. 다음 기회에 어르신이 알려준 길을 걸어서 이곳을 다시 찾아 보고 싶다. 그때는 봄의 새싹이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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