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전쟁 같은 현실에 비추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현실로 느낄 때가 있다. 영화와 같은 사람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마치 실제같이 보이도록 한 영상물에 의해 나 자신이 바로 그곳 그 장면 속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 경험 말이다. 세상은 넓고 경험하지 못하는 일 또한 부지기수다. 하여 직접적인 체험은 한정되고 다양한 매체나 책, 자료 등에 기대에 우리는 직접 겪지 못한 일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들 중에 전쟁도 포함된다. 물론 우리 곁에는 아직도 직접 전쟁을 치루거나 전쟁이라는 환경에 노출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근현대사도 이런 전쟁과 무관하지 않고 그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무슨 의미로 남았을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사람 목숨이 한낮 파리 목숨 보다 못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보고 듣고 체험했을 그 모든 상황이 어쩜 한밤의 꿈같지는 않았을까?

 

‘여기에 고요한 노을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이 꼭 그렇게 한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러시아의 전선에서 벌어진 전투상황을 그려 놓은 이 소설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여지를 가득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 서북부의 농촌 마을이 있는 제171대피역, 그곳에 들어선 고사기관포 기지에 여군 고사기관포 사수 2개 분대 병력이 배치된다. 백전노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피역 경비대장 특무상사를 중심으로 이제 갖 군대이 입대한 여자병사들이 어울리지 않은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젊고 씩씩하기만 한 여자병사들이 전투라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특무상사의 고민은 늘어만 가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피역 가까이에 아이와 엄마가 있어 밤마다 군대에서 획득한 생활용품을 가져다주고 새벽에야 돌아오는 한 병사가 독일군 병사를 발견하면서부터 앞으로 펼쳐질 전투상황이 어떨지 궁금하다. 특무상사와 다섯 명의 여자병사로 구성된 정찰조는 독일군의 행방을 찾기 위해 대피역을 나서지만 그들이 과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개의 호수로 둘러쌓인 지역에 대한 특무상사의 노련한 작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자병사들에게 하나 둘 전투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시키면서 진행되는 독일군과의 전투는 거대한 전쟁의 현장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엽적인 전투로 볼 수 있다. 열 여섯 명의 독일군은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특무상사를 비롯한 여자병사들은 소총에 권총이 전부다. 이들이 숲속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여자병사들은 하나 둘씩 죽어간다. 전우를 잃은 특무상사의 독일군에 증오는 날로 커지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하나씩 독일군을 죽어갈 뿐...

 

하나 둘씩 죽어가는 여자병사들의 최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 목숨을 버리면서 지켜야 할 조국 러시아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소설은 중간 중간 여자병사들의 과거를 펼쳐놓고 있다. 그들이 어ㄸ너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꿈꿨으며 바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런 삶에서 전쟁이라는 환경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주변에는 전쟁 상황에 대한 묘사를 실감나게 그려가는 것들이 많다. 전쟁영화, 전쟁소설에다 이제는 게임까지 전쟁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상상 속에서 죽이고 죽는 환경을 맞이하게 만들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흔히들 전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극단적 환경에 노출된 인간의 본성에 집중한다. 그 본성은 어쩌면 살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여자라고 특별히 더 극한 상황이 전재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사람들에게 전쟁은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고요한 노을이’는 다소 심심한 전쟁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격한 감정 몰입도 없고 극한 상황도 이해될만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여자라고 해서 남다른 상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현실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수없이 겪은 것이 이 소설을 심심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들지는 않은 건지 오늘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이 현실이 더 전쟁 같은 상황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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