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송은일 지음 / 예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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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숨결이 느껴질 때

부지불식간에 사람은 짧은 생을 살다가 간다. 그 짧은 삶이 때론 천겁으로 지난한 시간이기도 한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그 삶의 무게를 더하는 것일까? 혹 지금 내 삶에서 반드시 해결해할 무엇이 있는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놓치며 사는 것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의 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현실의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지나온 과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다가올 미래는 어떻게 해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지금 당장을 사는 것이다. 그런 한계로 인해 상상이라는 사람의 능력을 키워왔을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기에 가능한 상상은 때론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지난 시간 즉 과거에 집착해 현실의 무게를 더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과거든 미래든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송은일의 소설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른바 자신을 ‘환인(還人)’이라 자각한 사람들이 과거에 풀지 못했던 일에 매어 현재를 과거에 저당 잡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야기 출발이 ‘전생에 미처 풀지 못하고 미완으로 끝나버린 운명’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겪었던 전생의 상처를 소설로 발표하며 현생을 풀어가는 유아리, 또한 자신의 전생을 조형예술로 빚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로즈 이가 밀러는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과 전생을 공유한 채 태어나 현생에서 만나게 되는 석해인과 손재엽은 유아리와 로즈 이가 밀러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과거에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지만 현생에서 이를 해결해 가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유아리와 로즈 이가 밀러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유아리의 전생 어머니와 환인들의 현생에서의 삶은 도와주는 조직이 개입하며 점점 더 복잡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작가 송은일은 회귀를 겪는 인간 즉 환인을 매개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일까? 단지, 지난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한 해결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라는 조건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당했던 여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그 조건을 달라진 현실 세계에서 이해해 보자는 것일까?

 

어쩌지 못하는 지난 과거의 일에 얽매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현생에서 그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지금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과거에 읽힌 일을 해결했으니 남은 현생은 그들에게 어떤 시간으로 채워가야 할 것인가? 역시 풀지 못한 것은 현생의 삶에 고스란히 남게 되어 당장 살아가야 할 현생의 삶의 무개 만 더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성범죄, 이상스런 종교 집단,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들은 앞으로도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문제다. 하여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신을 억압하는 과거의 풀지 못한 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환인이 현생을 살면서 풀어야 할 문제가 과거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생의 삶에 충실한 무엇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죽은 자가 남아 있는 자에게, 나는 떠나지 않고 바람이 되어 언제나 당신 곁에 머물 테니 슬퍼하지 말라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작가 미상의 시가 전하는 것이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애닮픔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현생의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충실히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 그 바람의 숨결이 느낄 때 과거를 떨치며 현실에 우뚝 설 수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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