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섬의 만찬 - 안휴의 미식 기행
안휴 지음 / 중앙M&B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맛, 그것은 사람의 향기다

오래전 남도의 바다위에서 막 건져 올린 새우 한 마리를 두고 난감해 한 적이 있다. 딱딱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팔딱거리는 움직임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그것을 먹으라는 압박(?)에 잔뜩 인상을 쓰면서 입안에 넣었다. 다행이 껍질을 까고 먹었기에 입안에 전해지는 생소함이 있긴 했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번지는 그 순간의 미묘한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후 다양한 경로로 새우를 먹었지만 그 맛은 결코 따라 올 수 없었다. 그렇다면 생소했던 그 경험이 어떻게 십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일까? 어릴 적 바닷가에서 살긴 했지만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막히고 일상이 바다와는 떨어진 것이라 크게 바다음식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 후 결혼하면서 다시 바다와 만났다. 새우의 그 단맛을 경험한 것도 바로 결혼 후의 일이다. 바다음식 중 생경함으로 다가왔지만 익숙해진 것이 생선 미역국이다. 미역국은 소고기를 넣어 끊인 것이나 기껏해야 새우국물을 넣은 것이 전부였는데 돔을 넣어 끊인 미역국을 접하면서 바다음식의 새로운 맛에 깊이를 알아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처럼 음식은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시간이 흐르며 잊혀 지지 않고 다시 찾고 싶은 힘을 가졌다. 입맛이 특별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자신만의 기억 속에 간직한 음식이 있을 것이다. 음식재료가 무엇이든 그 가격이 얼마든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일부러 맛을 찾아 다닐 만큼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라면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에 큰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음식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와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지역의 역사에 대한 흥미로움은 음식의 맛과는 상관없이 관심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음식과 사람 그리고 생산지에 대한 애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음식관련 책이 있다.

 

‘바다와 섬의 만찬’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맛에 남다른 애정과 애사롭지 않은 입맛을 타고난 저자 안휴가 우리나라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담아낸 미식기행이다. 울릉도를 시작으로 부산, 거제, 완도, 청산도, 고금도, 약산도, 통영, 진도, 관매도, 흑산도, 홍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강진, 영암, 목포, 무안, 담양으로 지어지며 강원도 국수로 끝을 맺고 있다. 맛을 찾아 같은 곳을 여러 번 찾아 그 맛의 변화 없음도 확인하는 저자의 열정어린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안휴의 미식기행에 올라오는 모든 음식재료는 산지에서 막 건져 올린 싱싱함이 우선이다. 여기에 음식을 만들어 내는 요리사들의 정성과 자신만의 독특한 식재료가 더해지며 재료가 가진 원래의 맛이 더 풍부해지며 때론 다른 맛으로 변하기도 한다. 음식은 그래서 사람의 향기가 스며들어 사람에게로 전해지며 그 맛이 사람을 불러 모은다. 그 맛의 부름에 저자와 같은 미식가나 미식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은 일반인들이 모여들어 다시 사람의 맛으로 태어나는 것이리라. ‘바다와 섬의 만찬’에는 음식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또 다른 관심사 중 하나인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안휴의 술 이야기'로 코냑, 위스키, 진, 보드카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막걸리와 진도의 홍주 등 전통주까지 이어지고 있다. 술과 음식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듯 음식, 술, 사람이 저절로 어울리는 이야기들이다.

 

삼면이 바다이고 육지의 농사 또한 풍성한 곳들에서 음식으로 변하는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맛의 향연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입맛을 다지게 된다. 안휴처럼 맛에 대한 열정이나 식감을 지닌 사람이 아닐지라도 제철에 나는 음식을 그 고장에서 먹을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이 가을이 깊어가는 시기에 어울리는 맛은 무엇일까?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어울리는 맛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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