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문장 -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 이건창
이건창 지음, 송희준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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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아야 할 진정성은 무엇일까?

수 많은 문학가들 중에 유독 그 문학가의 작품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특정 작가의 글은 빼놓지 않고 찾아서 읽을 정도로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소설이나 시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인문학 분야의 글에도 그러한 현상은 나타난다. 무엇이 이러한 현상을 불러오는 것일까? 우선은 그 작가나 학자의 글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용에 앞서 작가나 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독특한 글 맛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조선의 역사와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관심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조선의 후기를 살았던 이덕무로 그의 책과 글에 대한 관심이 조선 역사를 알가가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조선과 현대인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는 이덕일이 그 사람이다. 이덕일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이를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는 시대도 하는 일도 다르고 두 사람의 글에서 느껴지는 글 맛도 다르지만 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그들의 글을 대하다 보면 지금 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 속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글쓰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글이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니기에 글은 글을 쓴 사람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가지는 진정성이 여기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조선의 마지막 문장 ’을 통해 만나는 사람 이건창은 글쓰기와 관련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선 ‘이건창’(1852~1898)은 어떤 사람일까? 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건창은 강화도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그의 문학적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 김택영(1850~1927), 황현(1855~1910)과 함께 구한말의 3대 문장가로 꼽힌다. 또한 김택영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우수한 고문가 9명을 뽑았던 가운데 들어가 ‘여한구가’에 속했을 정도다.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 이건창’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 ‘조선의 마지막 문장’은 그런 이건창의 문집인 ‘명미당집’을 저자 송희준이 번역하고 이 속에서 이건창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뛰어난 명편들과 당대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을 선별해서 역고 자신의 해설을 붙여 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건창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 ‘문장가’로 주목되는 부분과 백성들의 생활에 대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편집되어 있다. 문장 이론을 모은 제1부, 논설과 평론을 모은 제2부, 충성과 절의와 관련된 글을 모은 제3부, 가족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쓴 산문을 모은 제4부, 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제5부와 제6부, 다양한 문체를 엿볼 수 있는 걸작들을 모은 제7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건창은 ‘문장이란 뜻을 얽는 것이기에 뜻이 연속하고 관통하게 하는 것을 가장 우선해야 하고 뜻을 통하게 하려다보면 “어조사 따위의 쓸데없는 말을 구사할 겨를이 없으며, 속어 사용을 꺼릴 겨를이 없다”고 강조한다.’이는 저자 송희준이 이건창의 문장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나아가 ‘언어를 다듬는 법’, ‘敵意로 主意를 공격케 하는 법’, ‘말과 뜻이 서로 넘침이 없게 하는 법’, ‘소리와 리듬을 울리는 법’ 등 문장을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담긴 글들을 통해 이건창의 글쓰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글로 여겨진다.

 

이러한 문장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에서 보여 지는 이건창의 삶과 글은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부와 3부의 글들은 관료와 학자의 시각으로 본 당시 조선사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하며 보여준 그의 태도가 글쓰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글은 기록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는 특성을 한껏 발휘하여 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모습도 그의 삶의 태도를 알 수 있다.

 

‘현실의 모순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고 싸운 흔적이 역사를 상고하고 문예를 비평하고 정책을 논하고 취미를 완상하고 삶을 철학하는 과정에 순고정대하게 녹아있는 것’, 이것이 이건창의 글이며 삶이라는 저자는 ‘그가 글쓰기의 온갖 요소를 두고 치열한 고민을 전개한 그 귀하고 아까운 현장이 아직 우리의 현재와 접속하지 못했고, 이 시대의 문장론 속으로 갈무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러한 저자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건창이 남긴 몇 편의 글 속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어 공감을 불러온다. 하여 이건창의 평전이나 전기가 나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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