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출 - 낯선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다
오영욱.하성란 외 지음 / 이상미디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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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나를 만날 수 있다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하던지 아니면 술자리를 만들어 거하게 취하는 등 사람에 따라 무수한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총 동원하더라도 위로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때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장소에서 가슴에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에 스스로 놀라 주변을 돌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커다른 무엇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내게도 그런 공간이 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인적이 드물지만 찾을 때마다 온화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런 곳이다. 내가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는 농사짓는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몸체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최소한의 대책을 마련해 두었다. 승용차로 들어갈 수 있으나 걸어가면 더 좋은 길을 따라 가는 동안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풀과 나무들이 있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보물 제111호인 개선사지 석등이 있는 곳이다. 폐사지에 석등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석등이 보여주는 기품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아름다움이 여전하다. 무생물인 돌로 만들었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소망이 남아 시간을 거슬러 그 뜻을 보여주고 있는 듯 온화하고 생생함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마음이 지치고 기운이 빠지는 날 그곳에 가면 지친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받곤 한다.

 

특정한 공간이 삶에 지친 사람에게 주는 독특한 매력 때문에 반복해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낯선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다’라는 부재를 단 ‘어떤 외출’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건축가, 소설가, 여행작가, 영화감독,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작가, 정원 전문가 등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열여덟 명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장소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자신만의 장소라고는 하지만 잠실야구장이나 실상사, 강진의 다산초당처럼 이미 사람들 사이에 이미 익숙한 공간도 있고, 서귀포 대평박수 큰홈통 같은 제주도의 이름 없는 바닷가도 있고, 이제는 도심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카페나 식당도 있다. 그야말로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특수성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오직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에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장소 또는 공간은 그곳만이 간직한 독특한 정서가 있고 그 정서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 특별한 경험은 아마도 자신이 살아온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아픈 상처나 아련한 추억 같은 것들이 그 장소나 공간이 전하는 이미지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맺어진 인연이라 생각된다.

 

현실의 삶은 만만치 않다. 이런저런 일상의 일로 치인 팍팍함이 있어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쉬어갈 수 있다면 삶이 그리 고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공간이나 장소가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이거나 이름난 곳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내 안에 담긴 정서와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이다. 이런 공간이 있다면 열여덟 명의 저자들이 간직한 마음의 위안을 받는 장소와 다름없는 자신에게 특별한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살아가는 가까운 곳에 있다면 자주 찾아 지친 마음에 쉼과 휴식의 시간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설렘이 함께하지 않을까 싶다.

 

사족하나 달고 가자. 책을 읽다보면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것을 접하곤 한다. 이 책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김준엽의 ‘강진 다산초당 : 상실과 절망을 딛고 선 땅’에 보면 정약용의 형 정약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약전이 유배를 가서 생을 마감한 곳이 신지도로 나오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정약전에 신지도로 유배를 간 것은 사실이나 그곳에서 유배지를 옮겨 자산어보를 지은 흑산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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