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
최열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외로웠기에 따스한 작품으로 말한 화가

사람의 삶은 예측불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삶이 예측불허라는 점은 지난 역사 속의 사람들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모습일 것이다. 이 점을 당연하게 여기며 스스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문득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이면 삶의 무상함이나 아이러니를 떠올리게 된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열정적으로 살았지만 자신이 살던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살던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이유로 배척받은 사람들 속에서 훗날 그 사람을 기억하며 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그리는 마음에 늘 함께하는 것이 아쉬움일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근현대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다. 일제식민치하를 벗어났고, 이념의 대립으로 몸살을 앓았으며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급격한 외부문물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온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격동과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속에는 유독 불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그 시대를 묵묵히 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했지만 외롭게 살다간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박수근 평전 : 시대공감’이 그것이다.

 

박수근(1914~1965)은 당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곤궁한 생활에 처한 삶이었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 조선미술전람회에 최초로 입선 이후 병상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박수근,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칭송받으며 그가 남긴 그림은 수억 원을 호가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독특한 그의 그림 속에 담긴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어쩌면 그림 값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미안함이 함께한다. 박수근,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런 아쉬움은 더 크게 다가온다.

 

연대기적으로 엮어진 이 책에는 박수근의 삶을 차분하게 조망한다. 구체적인 삶과 각 시기의 작품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기에 삶의 변화에 따른 작품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술사적 흐름이나 표현기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일지라도 박수근 그림에서 느끼는 정서는 비슷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 정서에 박수근의 삶의 가치가 녹아 있다고 보여 진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자신의 화폭에 담고 싶었다던 화가의 마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의해 좌절되지는 않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동료 화가나 예술가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외면으로 받았지만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간 불굴의 의지가 돋보인다. 자신이 활동하는 국내에서보다 그의 진가를 먼저 발견한 외국인들의 후원에 커다란 위안을 삼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칭하는 현대의 평가가 어떤 의미일까?

 

‘미석화풍’(美石畵風)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그림세계는 ‘한국 미술사상 최초로 현대 서구 추상미술의 기법을 한국 고전미술의 기운과 조화시킨 화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림기법과 등장하는 배경에서 오는 친근감이 그림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정감 있게 다가온다.

 

저자의 글이 주는 느낌일까? 글을 읽어가는 동안 건조하다는 느낌에 차가움이 동반한다. 그리운 풍경을 멀리 두고 눈으로만 보는 듯하다. ‘양식사학을 거부하고, 철저한 실증주의 및 사회문화사학 방법론을 동원하여 박수근 세계를 해석한’ 글이어서 그럴까? 다른 화가들의 평전이나 그림 읽어주는 책들에서 느끼지 못한 낫선 느낌이 있다. 이 책은 또한 박수근이 활동하던 1940~50년대 화단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전투구, 권력에 대한 아부와 같은 화가들의 모습에서 다양한 인간의 면모도 살필 수 있다.

 

“나는 추위를 타서 겨울이 지긋지긋하다. 그보다 참기 힘든 추위가 있다. 정신의 추위다.” 지금의 박수근은 그 정신적 추위에서 벗어났을까? 쉽게 볼 수 없는 박수근의 그림을 마음껏 감상하는 시간이다. 눈으로 보다가 마음이 일어나 오래 머물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길로 직접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만져보기도 한다. 이 책이 가지는 최고의 장점으로 꼽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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