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 방랑시인, 정해 홍신한문신서 29
권오석 / 홍신문화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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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로 이어가는 김삿갓 일생
가문은 여전히 살아있다. 남녀평등권이 당연시되고 모계혈통이 당당히 법적으로 인정받는 시대인 현대사회에서도 성씨를 중심으로 하는 가문이라는 형태의 문화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대는 변한다고 하지만 성씨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역사의 전통을 이어오는 오래된 관습에 의해 현대인에게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가문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조선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왕권을 중심으로 한 신분사회에서 철저한 가부장제에 의해 한 사회를 유지하고 이어온 사회가 조선이기에 가문에 대한 뿌리는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 정치적 사건에 관련된 조상의 일이 한 가문의 멸문을 가져올 만큼 사회적으로 용인된 사회이기도 하다. 조선의 역사 500여년 동안 이러한 일은 빈번하게 일었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본 사람 중 하나가 김병연(1807 ~ 1863)이 아닐까 한다. 

1980년대 초반 광주에서 무등산을 넘어 동복에 있는 적벽에 간 기억이 있다. 광주시민의 상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 지역에 댐을 건설하여 적벽이 그 위세를 감추기 시작할 때 즈음이지만 적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정자가 있고 그곳에서 바라본 적벽과 그 주변 경치가 아름다웠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훗날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조그마한 시비가 세워져 있고 그 시비의 주인공이 바로 김병연 김삿갓이었다. 교과서를 통해 알게 된 역사적 인물이 바로 그 인근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묘한 감흥이 일었다. 지금 그곳은 후대인이 심었을 벚나무가 주인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김병연은 조선 후기 사람으로 절대 권력을 누렸던 안동 김씨다. 홍경래의 난(1811년 순조 11)이 일어날 때 할아버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홍경래에게 번번한 싸움한 번 하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이 사건에 연좌되어 집안이 망하게 된 것이다. 집안의 하인 김성수의 도움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다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했으나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하였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조선 8도를 떠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겪은 일에 자신의 시적 감흥과 신세한탄이 담긴 시를 남겼다. 주로 권력자와 세상의 부조리를 담은 풍자시가 주류를 이룬다. 이후 전국을 방랑하던 중 전라도 동복에서 객사하였다고 전한다. 

권오석 저 ‘방랑시인 김삿갓’은 김삿갓의 시를 바탕으로 그의 일생을 따라 조선 8도로 이어진다.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에 대한 충격으로 집을 떠나 방랑생활을 한다. 이미 가정을 꾸린 후고 슬하에 자식도 둔 상황이었다. 가정을 돌볼 정신적 여유가 없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운명과 마주친 것이다. 영월을 떠나 동으로 다시 북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방랑은 삶을 꾸러가는 생활인의 모습이 아니라 술에 만취하거나 여성을 탐하는 등 때론 삶을 포기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의 대부분은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풍자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불만이나 그런 상황에 몰려 방랑하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때마다 가슴을 짓눌렀을 무게가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가는 듯하다. 저자는 이런 김삿갓의 일생을 이야기로 꾸몄다. 작가적 상상을 살려 시와 시를 연결하고 그 사이에 주인공의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다. 또한 김삿갓 시의 주류를 이루는 한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 중간 중간 한시 해설을 곁들어 놓았다. 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호흡에 방해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어려운 한시의 체계와 김삿갓의 시적 재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지만 주인공의 시를 통해 살려낸 김삿갓의 삶을 통해 조성 후기의 사회상과 사람들의 일상모습을 알 수 있다. 김삿갓이 살았던 조선 후기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와 그 구체적 모습이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사람 살아가는 속내는 비슷한 것이 아닐까?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방랑하며 결국 객사한 한 시인의 가슴에 담긴 것이 시로 남아 후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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